청마 유치환 (1908-1967) 선생님의 생가와 문학관을 알리는 이정표가
이순신공원에서 내려오자 마자 바로 보였다.
얼핏 생가가 거제 둔덕에서 본걸로 기억하는데 이곳에 있다니 뭔가
약간 헷갈리는 기분은 들었지만 그래도 지나칠 수 없어서 찾아 갔다.
생가와 문학관은 통영기상대가 있는 정량동의 산 중턱쯤에 자리하고 있어서
올라가느라 약간 숨이 찼지만 올라가서 내려다 본 통영항의 경치가
아주 일품이었다.
청마선생님은 젊었을적 경주고등학교 교장을 하셨으며 우리가 졸업 한
후에는 경주여고의 교장도 하셨기 때문에 몇번 뵙기도 했고 존경심과
더불어 친근감이 가는 그런 분이다.
생가는 원래 통영의 태평동에 있던것을 도로공사로 인하여 이리로
옮겨서 복원해 놓은것이라고 한다.
약방, 안방, 부엌, 마루등을 갖춘 본채과 사랑방, 광, 측간으로
이루어진 아래채로 두 채다.
넓이는 57,6 평방미터라고 한다.
틀림없이 거제의 둔덕에서 생가 안내판을 봤는데 이상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봤드니 거제의 둔덕면 방하리에도 생가가 있다고 한다.
청마선생님은 1908년 거제 둔덕에서 태어나서 1910년 통영으로 이사를
했는데 당시의 거제는 통영에 속했다고 하며 이로 인해 거제시와 통영시
간의 생가다툼으로 소송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따뜻해서 아직 꽃무릇이 피어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벌써
다 졌는데…
여기가 안채다.
여기는 아래채
걸린옷이나 이불이 선생님이 사용했던것인지는 모르겠다. 설명이 없어서.
생가에서 내려 다 본 통영항, 사진으로 보다시피 계단이 아주 많다.
생가 조금 아래쪽에 자리한 청마문학관이다.
169,02평방미터의 넓이로 청마의 생애와 작품세계, 발자취를 둘러보고
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100여점의 유품과 각종 문헌자료 35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2002년 2월 14일 청마문학관 개관과 동시에 청마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는데 매년 7월경 신인상과 본상을 선정하여 상을 수여한다.
청마선생님이 통영에 계시던 무렵에는 전혁림 화백과 음악가 윤이상도
함께 교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이곳 학교 교가의 대부분은 청마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윤이상이 작곡한것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육필편지와 원고들
선생님은 1967년 부산 남여상 교장으로 계실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나도 부산에 살고 있었다.
선생님 사후에 시조시인이신 이영도 선생님과의 염문이 터져 나와서
매일 매일 신문을 장식했던 일이 생각난다. 사랑하므로 행복하였네라로
끝맺는 선생님의 시에 나오는 우체국, 그곳이 바로 이곳 중앙우체국으로
선생님은 그곳에서 이영도 선생님에게 연서를 부쳤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선생님은 상당한 로맨티스트였었나 보다.
청마선생님 사고 후 이영도 선생님이 쓴 시 한편을 찾아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 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어
푸른 돌로 굳어라
시조시인이신 이영도 선생님은 같은 시조시인 이호우 선생님의 여동생이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봄이 오면 자주 읊조리는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본들 반겨 아니 맞으리 ( 이 시가 이호우 작)
청마문학관 내부전시실은 시 감상코너와 터치스크린으로 직접 만져가면서
뵬수 있고 후랫쉬만 끄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관람료는 없으며 09:00 부터 18:00 까지 문을 열고 있다.
청마 유치환 선생님의 문학과 예술의 향기에 취한채 돌아 나오면서도 내내
깃발과 행복의 시 귀절을 되뇌인다.
mutter
2013년 10월 8일 at 6:41 오후
‘사랑하므로 행복하였네’
란 문구는 어렴풋이 기억나요.
그런일이 있었네요.
전혀모르던 일이예요.
청마유치환선생이 교장을 오래하셨군요.
오병규
2013년 10월 8일 at 8:56 오후
저는 ‘노스탈쟈’라는 단어를 이 분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떠나시던 때 많이 놀라고 안타깝기도 했고요.
배흘림
2013년 10월 8일 at 9:05 오후
사진을 보니 화면을 잡느시라 이동 거리도 많아 보이네요..
건강하심의 징표 같습니다.
저렇게 단아한 방이 있고 환경과 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주옥 같은 글들이 탄생 하는데
도음을 준것 같습니다…
데레사
2013년 10월 8일 at 10:49 오후
무터님.
네, 우리들 학창시절에 여기저기서 교장선생님을 오래 하셨습니다.
경주에도 계셨고요.
데레사
2013년 10월 8일 at 10:50 오후
종씨님.
그때를 기억하시군요.
모두들 슬퍼했지요. 불의의 교통사고라.
데레사
2013년 10월 8일 at 10:51 오후
배흘림님.
이제 우리는 저런 글을 쓰는 시인들도 없고 모두가 난해해서
잘 읽어지지도 않아요.
생가는 복원된것이긴 하지만 꽤 잘 살았던 집 같기도 해요.
좋은날
2013년 10월 8일 at 11:27 오후
교과서에 청마의 깃발이란 시가 실려
청마께서 시인으로만 아는데
저는 그 분을 수필가라 칭하고 싶습니다.
제가 십수년전에 수필가로 등단을 하게된 직접적 동기가
국립도서관에서 만나 청마의 수필 때문이었습니다.
청마의 정신세계가 오롯이 스며들어 한없는 정신세계를 유영하면서
얼마나 그 젊은 날의 한때가지극히 행복했었는지 모릅니다.
해서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청마입니다.
저곳은 두 세번 다녀왔지요.
가파른 계단 언덕배기를 오르면 눈앞으로 왈칵 다가서던
통영항의 갯내음.
다시 가고픈 남쪽입니다.
해 연
2013년 10월 9일 at 12:02 오전
나는 ‘春信’ 이 너무 좋아요.
이영도시인과의 로맨스는 심심하면 또 나오더라구요.ㅎ
로맨티스트 맞습니다.
요즈음 그런분들 보기 어렵습니다.
시인이란 사람들 잘 나가다 정치색 띄우고…
아주 화가 납니다.ㅎㅎ
미뉴엣♡。
2013년 10월 9일 at 12:14 오전
시인 – 청마도 고향이 통영이군요..ㅎ
역시 자연환경이 수려해서 예술인
배출이 많은가 봅니다 청마문학관
좋네요.. 단아한 실내외 공간에서
청마 시가 나올듯한 정갈한 분위기~
바람돌
2013년 10월 9일 at 12:21 오전
한때 청마는 경북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었는데,
당시에 김춘수도 같이 재직했었지요.
교수는 논문을 써야 하는데, 논문 쓰기가 생리에 맞지 않아
교수는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학자는 논문으로 말하고, 문인은 문학 작품으로 말하지요.
청마는 철저한 문인이었고, 로맨티스트이었지요.
논문보다 작품을 선택한 그의 결단 덕분으로
후인들이 주옥같은 그의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summer moon
2013년 10월 9일 at 12:39 오전
커피 마시면서 두번 읽고 생각에 잠겼다가 지금 다시 또 읽었습니다.
통영 여행기 중에서 이 포슽이 제겐 가장 가깝게 다가오네요
너무나 좋아서 읽으면서 몇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어요.
안채는 ㄱ 자 모양, 사랑채는 ㄴ 자 모양이었던 제 조부모님 시골집 생각도 났고
유치환 선생님의 시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리고…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잘 읽었어요, Thank YOU !!!!!!!!^^
士雄
2013년 10월 9일 at 1:01 오전
누구나 세상을 살지만 누구나
생명있는 흔적을 남기고 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ㅎㅎ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35 오전
좋은날님.
이번에 가시게되면 들려보세요.
시간이 되면 거제 둔덕의 생가도 한번 둘러보시고요.
청마선생님은 신라문화제때 백일장에 나가면 심사위원으로
계셔서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뵈었던 분입니다.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36 오전
해연님.
요즘은 그런 시인, 그런 배우들이 많지요.
잘 나가다가 정치인이 되어 별 인기도 못 얻고….
암튼 청마선생님의 시어들은 다 새길수록 맛이 있어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37 오전
미뉴엣님.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예술인도 많이 나오고 특산물도 많은 곳이
바로 통영이에요.
좋은 고장입니다.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38 오전
바람돌님.’
김춘수선생님도 생가가 통영에서 보이더라구요.
시간상 그곳은 못 들렸어요.
통영이 배출한 문인이 많아요. 김상옥 선생님도 여기고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40 오전
썸머문님.
옛집의 구조는 참 쓸모가 있었어요.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고 여름에는 더위를 피할수 있게끔
건축되었지요.
우체국에 가서 저도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북한산.
2013년 10월 9일 at 3:40 오전
지난달 통영만 들렸다가 오셨는데도 박물관등 여러군데를 들려 보셨네요.
건강 하세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40 오전
사웅님.
맞습니다.
그저 왔다 흔적없이 사라지는게 보통의 사람들이지요.
저역시 그럴것이고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3:41 오전
북한산님.
자는 시간외는 돌아다녔거든요.
자동차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벤조
2013년 10월 9일 at 3:53 오전
편지쓰고, 엽서 쓰고, 주소 쓰고, 우표 붙이고,
우체통에 달칵 집어넣는 맛,
요즘애들 그거 잘 모르겠지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6:11 오전
벤조님.
요즘 아이들이 그 재미를 어떻게 알겠어요?
ㅎㅎ
綠園
2013년 10월 9일 at 6:21 오전
덕분에청마 유치환님의 생가와 문학관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생가에 약방이 있는 게 특이한 것 같네요.
생가는 태어난 집일텐데 생가가 둘이어도 되나요? ㅎ
통영과 거제가 그 생가의 소유권 쟁탈전도 있었다니 좀…
30년 교직에 계셨는데 15년 간 교장을 하셨으니 훌륭한 리더쉽도 지니신 분입니다.
저렇게 높은 계단을 넉근히 올라가신 건 그동안 건강관리를 잘 하셨기에…^^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나의정원
2013년 10월 9일 at 6:30 오전
위의 시를 외우고 친구에게 전해도 보고, 간직도 해 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한국 시를 통해서 정겨움이 느껴지고 짧은 문장 안에 모든 것을 드러내 쓰는 작가들이 부럽게 느껴지는 한글 날입니다.
보미^^
2013년 10월 9일 at 6:44 오전
진실하신 시를 남기셨습니다. 로맨티스트 이신것 같습니다.
그리움
2013년 10월 9일 at 9:58 오전
정말이어요 나의 정원님처럼 저두요~~
달달 외우고 또 많이 써 보내고-
데레사님은 직접 뵙기도 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영광스러움 이시겠어요
오늘 데레사님 방에 들어와 흥분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는 언제나 절 울려줘요~~~~~~~
睿元예원
2013년 10월 9일 at 10:03 오전
문학에는 너무 문외한이라
아무말도 안하렵니다^.^
풀잎피리
2013년 10월 9일 at 10:58 오전
로맨티스트~~~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
멋진 시와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셨네요.
바위
2013년 10월 9일 at 11:42 오전
제가 좋아하는 청마 시인의 생가 구경 잘 했습니다.
그의 시는 다 좋지만 특히 ‘그리움’을 더 좋아하지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
다음 통영에 가면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노당큰형부
2013년 10월 9일 at 12:27 오후
고교(야간) 시절에
자칭 문학 소년이라고 지은 號가 靑瑪(청마)였는데
바로 유치환님의 號였습니다.
한자의 운이 하나가 다르군요.
다행입니다 ㅎㅎㅎ
산성
2013년 10월 9일 at 1:36 오후
청마문학관에는 가보질 못했어요.
남겨 두었으니 다시 갈 날 있겠지요?
이영도 시인과의 애틋한 사연이 기억납니다만
혹자는 비난도 많이 하고 그랬었지요.
직접 뵈었다시니 여쭤봅니다.
청마 선생님 멋지셨나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4 오후
녹원님.
저도 그점이 너무 의아했어요.
제 생각으로는 거제 둔덕이 생가이고 여기는 어렸을때 살았던곳
같은데요.
요즘 지자체들 끼리 좀 어수선합니다만 문학관이 생기는건 좋은
일이지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5 오후
나의정원님.
오늘은 오랜만에 한글날 공휴일이었지요.
여기저기 행사도 하는 모양입디다만…
옛날에는 한글날 백일장에 더러 참석했었거든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6 오후
보미^^님.
그래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죠.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7 오후
그리움님.
그러세요?
청마선생님의 시를 학창시절에 한 두개 안 외운 사람은 드물거에요.
울 그리움님도 시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나 봐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7 오후
예원님.
ㅎㅎ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잘아는 분야가 있고 모르는 분야가 있지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7 오후
풀잎피리님.
맞습니다. 아름답게 살다 가신 분이지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8 오후
바위님.
청마선생님의 시를 좋아하셨군요.
저는 깃발을 좋아했습니다.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29 오후
노당님.
노당님도 청마?
ㅎㅎ
앞으로 그렇게 불러 드릴까요?
데레사
2013년 10월 9일 at 2:30 오후
산성님.
우리는 백일장 참가 학생이고 선생님은 심사위원, 아득히 높은분이라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었지요.
이영도 선생님은 아주 조용하신 분이셨습니다. 부산에서 따님과 함께
칩거하시다시피 사셨거든요.
이제는 모든게 전설로 남아버렸군요.
지해범
2013년 10월 10일 at 5:41 오전
작년 9월 이곳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에는 우리나라 문단에 청마처럼 널리 존경받으며 이웃처럼 친근한 분들이 꽤 있었는데, 어느새 그런 분들은 다 사라지고 악다구니 ‘정치꾼 문인’들만 득실대니 사회가 더욱 매말라가는 것 같습니다.
청마문학관, 또 가고 싶네요.
데레사
2013년 10월 10일 at 9:25 오전
지해범님.
옛날 문인들은 고고했지요. 문학외길만 걸으신 분들이 많았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많이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