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세군교회의 주일학교를 다녔다.
어릴적 살았던 영덕에는 큰예배당으로 불리우는 장로교회와 작은예배당으로
불리우는 구세군교회, 이렇게 두 개의 교회가 있었다.
큰예배당은 집에서 많이 멀고 작은예배당은 동네이기도 했고 목사님 사택과
우리집이 붙어 있어서 목사님 딸이었던 영자와 나는 단짝 친구이기도 해서
자연스레 구세군교회를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피난으로 아버지의 고향인 경주로 오기까지의
초등학교 4학년까지 나는 구세군교회 주일학교의 똑똑한 어린이였다.
성경외우기 대회에서는 언제나 상을 탔고 결석도 거의 하지 않고 잘 다녔다.
하나뿐인 내 언니, 지금은 몸이 안 좋아서 거동도 잘 못하고 집에만 있는
언니는 성가대원으로 활약했었고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구세군교회를 다니셨다.
글을 모르던 엄마는 기도 시작할적에 눈을 감으면 기도가 끝날때는 언제나
잠들어 있었고 찬송가 부를때는 그저 입만 벌리고 따라하는 시늉을 하는게
우습기도 하고 싫기도 해서 나와 언니가 열심히 찬송가를 가르쳐 드렸지만
엄마는 한곡도 제대로 부르지를 못했었다.
그런 우리 엄아셨지만 성탄 새벽에 언니가 낀 성가대가 집앞에 와서
새벽송을 부를때는 꼭 뜨끈뜨끈한 팥죽을 쑤어서 대접하곤 했었다.
그때는 성탄새벽에 성가대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교인집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곤 했었는데 어느샌가 그 풍습은 없어져 버렸다.
우리집과 담을 나란히 했던 목사님 사택에서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로 시작하는 찬송가를 부르며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나는 늘 그 소리에 깨서 가만히 따라 부르곤 했었지..
어제 점심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가 사당역에서 올 해 처음으로 구세군냄비를
만났다.
나는 해마다 처음 만나는 구세군냄비에 얼마간의 돈을 넣는다.
만나는 냄비마다 다 돈을 넣을수는 없으니까 그 해 처음 만나는 구세군냄비에
자그만한 성의를 넣고는어릴적 구세군교회에서의 생활을 추억하곤 한다.
남편은 마지막을 경찰병원에서 보냈다.
지금은 어떤가 모르지만 20여년전의 대학병원들은 운명이 가깝거나 희망이
없는 환자는 입원을 시켜주지 않아서 경찰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때
성탄절에 구세군교회의 위문봉지가 환자들에게 모두 주어졌다.
약간의 과자와 치약같은 일용품에 모든 환자들은 감격해 하면서 받았다.
아직까지 구세군교회의 자선냄비에 대한 비리같은건 보도가 되는걸 보지 못했으니
정당하게 쓰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올 해도 냄비가득 돈이 모여지기를 바라고 싶은 마음이다.
전쟁으로 아버지의 고향인 경주로 피난겸 이사를 온 후로우리식구는
더 이상 구세군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주의 우리마을에는 구세군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결혼을 했고, 남편이 병들었을 때 같이 천주교영세를 받고
천주교신자가 되었지만 구세군교회를 생각하면 늘 친정같은 그리움에 잠긴다.
영덕의 남석동 언덕배기에 있던 아담했던 작은예배당 구세군교회가 지금
이 시간도 무척 그립다.기도시간 마다 잠이들던 엄마생각과 함께.
보미^^
2013년 12월 14일 at 6:35 오후
노년이 돼도 엄마가 그립다고 어느 블로그 언니가 말씀하셨는데
언니도 그러시군요. 저희 동네에도 구세군 교회가 있는데 전 그 교회
안나가고 다른 교회 다니고 있습니다만 구세군 교회 청소일 일주일에
두번 하고 있습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4일 at 6:43 오후
보미^^님.
안 주무셨어요? 아님 중간에 깨신거에요?
나는 낮에 이웃님들을 만나 오랜만에 커피 한잔 했드니 잠이 안오네요.
엄마생각은 죽을때 까지 나겠지요.
Beacon
2013년 12월 14일 at 7:44 오후
아~~주 오랜 어린 시절의 추억이시네요..
전 제가 어린이 성가대원이었었기에 성탄날에 모두와 함께 교회서 밤을 새고 새벽에는 저도 같이 신자들의 집앞에서 찬양을 부르기도 했더랫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제게도 참 그리운 추억이기도 한데,,
근데 구세군냄비를 보긴 하지만 그 구세군이란데는 어디에 속하는지 잘 모르겟어요..
천주교와도 다른거 같고,,?
가보의집
2013년 12월 14일 at 8:03 오후
데레사님
구세군 서울시내는 12월이 되면 항상구세군 자선남비가
있었지요 서울살때는 나도 항상 넣었어요
어릴대 47년도에 남을 내려와서 이곳 가까운 에서 동란을 만났어요
울부모님은 북한에서 교회를 문닫게 하니 내려온것이지요
데레사님도 어릴때 신앙심이 있네요
그어린 믿음의 생활 나역시나 생 생 하지요
년말 그러니가 크리스마스때는 항상 상을 주었지요
잘 보았어요 또 한주 가고 성스러운 주일 이네요
즐겁게 기쁘게 맞이 하세요
mutter
2013년 12월 14일 at 8:13 오후
데레사님의 이런이야기는 처음 보네요.
정이 가고 데레사님을 더 잘알게되는 이야기예요.
저는 이런이야기가 좋아요.
12월 어느날 부터 음력설까지 구세군의 빨간자선남비를 서울에서는
여기저기 가는곳마다 매일보며 살았지요.
여기서는 구경도 못해요. 나무에 앉은 눈꽃들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해요. 이젠 눈이 오면 눈치울일이 걱정부터 앞서요.
summer moon
2013년 12월 14일 at 8:42 오후
늘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좋지만 이 글은 특히 더 좋습니다
한 줄 한 줄 천천히 잘 가슴에 담으면서 읽게 만드는…
고 박완서님이 읽으셨다면
데레사님 손을 꼬옥 잡아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되구요.
저희도 구세군냄비를 보면 꼭 멈춰서 돈을 넣고 인사를 건넵니다.
요즘은 수퍼마켓에 갈 때 입구에서 보게 되요.
노당큰형부
2013년 12월 14일 at 10:18 오후
구세군의
빨간 자선 남비를 보며
저 모급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지기를 바랬지요.
오는 데누님의 돌아가신 옆지기 분의
이야기를 봅니다
많이 아프셨군요.
주말 눈길 조심 하시고 편안 하십시요.
바람돌
2013년 12월 15일 at 12:14 오전
구세군의 딸랑딸랑하는 종소리를 들으면
세모의 쓸쓸함을 느낍니다.
춥고 배고프고 아픈, 불쌍한 사람들,
이 겨울을 잘 보내길 빕니다.
해 연
2013년 12월 15일 at 12:42 오전
나는 늦어서 뛰느라고 눈에 안 띄었는데요.ㅎ
저도 어렸을적 처녀 선생님의 등에 업혀 성탄 연습하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렸은적 작은 추억들이 이 즈음에는
얼마나 행복하게 떠오르는지요.^^
오병규
2013년 12월 15일 at 1:20 오전
역시 누님 음전함의 출처가 어딘가 했더만
음~! 그러셨군요. 제대로 된 믿음은 타인을 한 없이 편케 하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성직자라는 놈들 자체가 종교를 멀리하게 합니다.
저도 누님만 할 때 꼭 이맘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뚝.
625 사변이 나고 얼마 안 됐으니 당시는 교회에서 구호물자를
많이 나누어 주었거든요. 그거 얻으러….
睿元예원
2013년 12월 15일 at 1:22 오전
아마 6~7세때 쯤 이웃에 사는
한살쯤 위인 언니를 따라 성당에 가서
문앞에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파란눈의 신부님이 나오셔서
저에게 포장을 뜯지도 않은 캔디 캔
(해태 사랑방캔디로 모방제품이 나왔던)
을 쥐어 주시는거에요.
그런데 저는 성당에 안다니고 이웃언니는 다니고 있어서인지
언니가 빼앗아서 자기집으로 다 가져 가버렸지요.
성당에 안다니는지라.. 그러는게 ..아리송한채로 말았던 기억이 나네요.
구세군냄비는 연말이면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봤고요.
춘천에 이사와서 명동입구에서 만났을 때 모금에 참여했지요.^.^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34 오전
비컨님.
구세군은 개신교에요.
그런데 조직이 천주교와 비슷하게 세계적으로 짜여 있고
목사님들도 전근을 가고 그래요.
새벽송이 그리워져서요. 문득.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35 오전
가보님.
어릴적 주일학교는 추억의 장소지요.
성탄때가 되면 선물도 받고 상도 타고 발표회도 하고….
지금은 사라진 그런 풍습들이 그리워요.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37 오전
무터님.
집이 언딕이니까 눈 치울 일이 더 많을거에요.
아파트에 사는 나같은 사람이야 눈을 낭만적으로 보지만
막상 그걸 치울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닥아오는건 즐거워요.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38 오전
썸머문님.
그러시군요. 슈퍼마켓 입구에도 구세군냄비가 있나 봅니다.
여긴 주로 지하철역이나 명동같은데 있더라구요.
올해도 모금이 많이 되길 바라면서 저도 조금 넣었습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38 오전
노당님.
아직 구세군 자선냄비의 돈에 대해서는 이렇쿵 저렇쿵이 없는걸
보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저희도 그 혜택으로 선물을 받아봤거든요.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39 오전
바람돌님.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모든 사람에게 한해의 종언을 예고하기도
하지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40 오전
종씨님.
저희도 교회에서 구제품을 많이 얻었어요.
구세군은 다른 교회보다 그게 좀 많았거든요.
가난했던 시절의 부모님은 아마 그때문에 교회를 다니시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가끔 해보거든요.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41 오전
해연님.
이제 이 나이가 되니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닌것
같아요.
어릴적 주일학교에의 기억은 늘 저를 즐겁게 합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3:42 오전
예원님.
ㅎㅎ
사탕을 어이없게 뺏겨 버렸군요.
그때 먹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고 웃어봅니다.
춘천명동에도 자선냄비가 걸렸군요.
우산(又山)
2013년 12월 15일 at 5:08 오전
가슴이 찡해지네요.
그 때 그시절….. 그땐 훈훈한 인정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새벽송을 들을수 있는 그때는
신성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연말에는 보이는 사랑이 아닌
헌신하는 사랑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위
2013년 12월 15일 at 7:09 오전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는 안 밝힐려고 했지만,
오늘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는 고교 2년 때인 1962년 9월부터 진주 구세군교회를 다녔지요.
구세군은 교회라는 용어 대신 영문(營門, corps)이란 용어를 쓰지요.
말씀처럼 개신교의 한 교파인데, 영국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에 의해
1865년 동런던에서 시작되었지요.
전 세계 130여개 국에 선교되었고,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란 뜻의
구세군(救世軍, Salvation Army)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있는 자들이 교회를 차지하고 가난한 자들을 냉대해서
창립자 부스는 서민들을 구원시키고 구제하기 위해 길거리로 뛰어든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1908년 10월 영국인 선교사 허가두(한국명)에 의해 시작되어
벌서 105년의 역사가 지났습니다.
지금도 NCCK(기독교교회협의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현 사령관(한국 최고 책임자) 박종덕 사관이 NCCK 회장입니다.
성경이나 찬송가는 일반 교회와 같고 군대식 조직이다보니 용어만 좀 다르지요.
목사를 사관이라 부르고 장로를 정교, 집사를 부교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40여년 간 자선냄비 봉사에 참여하고 있지요.
정부에서 승인한 유일한 대국민 모금이기에 감독기관(안전행정부}의
철저한 감사를 받습니다.
모금된 성금은 전액 어려운 시설들의 지원과 구제사업에만 쓰고 있습니다.
구세군은 교단은 작지만 참으로 깨끗한 교회지요.
사관들은 대개 5년 주기로 이동하고 있고, 전국에 3백여 개의 교회가 있는데
사회사업시설(복지관, 어린이집, 고아원, 양로원 등)이 3백여 곳에 이릅니다.
선교 못지 않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구제사업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데레사님이 영덕 구세군교회를 다니셨다니 반갑고요,
그 교회는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설명 드리다보니 많은 공간 차지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7:40 오전
우산님.
지금은 아마 새벽송 불렀다가는 시끄럽다고 신고할거에요.
어디 인심이 인심이어야죠.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7:43 오전
바위님.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드립니다.
구세군교회를 어릴적에 다녀서 자세한건 잘 모릅니다.
목사님이 전근가실때 울었던 기억은 나고요.
영덕의 교회가 그대로 있군요.
죽기전에 꼭 한번 가서 예배에 참석해 보고 싶습니다.
바위
2013년 12월 15일 at 12:38 오후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 역사는 80년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시작되었지요.
지금까지 모금액에 대해 단 한 건의 비리도 없었습니다.
깨끗하게, 투명하게 집행되었기 때문이지요.
혹자들은 성금을 모아 교회를 짓거나 다른 용도로 쓰는 걸로
오해하지만 절대로 구제사업 외에는 쓰지 않습니다.
자선냄비에 참여하는 평신도들은 무보수 자원봉사를 합니다.
저도 올해 두 시간 봉사하고, 아내는 네 시간 봉사합니다.
12월 1일부터 24일 자정까지 모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말그미
2013년 12월 15일 at 5:14 오후
까마득한 옛 추억의 글이 정감이 갑니다.
구세군교회의 역사를 바위님의 글을 보고 공부도
하였습니다.
올해, 자선냄비를 보았지만 일부러 그곳까지 가기가 귀찮아
그냥 지나친 것이 부끄럽습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6:03 오후
바위님.
그러시군요. 날씨도 추운데 봉사하시느라 애쓰십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제가 대신 인사드립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5일 at 6:04 오후
말그미님.
아직 시간이 많으니 지나치실때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우리의 작은 정성이 불우이웃에게는 큰 도움이 되거든요.
좋은날
2013년 12월 16일 at 3:17 오전
새벽 캐롱송을 듣다가
어릴적 크리스마쓰 추억을 적고는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들어와 오랜만에 잔잔한 수필을 읽습니다.
사탕과 과자가 귀하던 시절 성당에서
나눠주던 맛난 것에 일일 신자?로 갔다가
발길을 끊곤 하던 일을 우연스레 데레사님과
같은 날에 추억을 합니다.
박완서님 책에서 느끼던 독후감이었습니다. ^^
데레사
2013년 12월 16일 at 5:06 오전
좋은날님.
우리들 어린시절의 사탕 한알은 참말 보석같이 귀한 물건이었지요.
그 아스라한 추억이 때로는 삶을 즐겁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인회
2013년 12월 16일 at 5:16 오전
저도 지금은 교회를 안다니지만…
어렸을적의 데레사님같은 추억은 있습니다.
정말 옛날이야기군요.
그리고 산을즐겨찾으며 산사를 찾기도 하였지만..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후 한일이년 열심시 다니가다..
다시 냉담으로…
산행하면서 자주찾는 산사에도 깊은 관심과…~~
옛생각에 젓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산성
2013년 12월 16일 at 5:25 오전
새벽송의 추억은 언제나 아련합니다.
집집마다 다니는 사람들도
맞는 사람들도 추위속에 밤을 지키는 기쁨이 있었지요.
멀리서 들려오면 몇집 건너 우리 집이겠구나…하던.
구세군 냄비 아직 못만났어요.
시내로 나가게 되면 꼭!^^
다사랑
2013년 12월 16일 at 9:12 오전
한국을 떠나기 전에 구세군 냄비에 정성을 표시 해야지 하곤 못 넣고왔네요.
봤을 때 넣어야 하는데..
명동=구세군=성당..ㅋ
이런 시절도 생각납니다.
구세군과의 추억이 많으시네요.
그리운 분들… 주님 곁에 편히 계실겁니다.^^*
아멜리에
2013년 12월 16일 at 10:33 오전
전 덕수궁의 한국근현대회화전 보러 갔을 때요.
지하철에서 내리니까 시청앞 지하철엔 구세군에서 나와 봉사를 따뜻한 차 한잔씩 권하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어제 길 반대편에 구세군 냄비가 서 있는 걸 봤는데, 일행이 있어서 그냥 지나왔죠.
아마 관악산에 먼저 구세군 냄비가 등장했을 거구요.
데레사님은 좋은 추억을 가지고 계시군요.
雲丁
2013년 12월 16일 at 11:12 오전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구세군 교회.. 자선남비를 만날 때면 다시 떠오르곤 하시는군요.
그해 처음 만나는 자선남비에 얼마간의 돈을 넣으신다는 말씀이 푸근하게 다가옵니다.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따듯한 소식입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6일 at 11:40 오전
인회님.
그러다가 나이 더 들면 어느 종교에 안착하게 될겁니다.
지금은 젊으니까 그럴거에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6일 at 11:40 오전
산성님.
아직 못 만났군요.
만나면 부탁해요. ~~
지금도 새벽송을 들으면 행복할것 같은데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렸지요.
데레사
2013년 12월 16일 at 11:41 오전
다사랑님.
잘 돌아가셨군요.
이제 성사도 보았으니 차분이 성탄절을 맞아야겠어요.
데레사
2013년 12월 16일 at 11:42 오전
아멜리에님.
과천 관악산 들어가근 곳에 구세군교회인가 양로원인가가
있지요?
그곳에도 냄비가 걸리겠지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추억은 아름다운 법인가 봐요.
데레사
2013년 12월 16일 at 11:42 오전
운정님.
저도 그 뉴스 읽었습니다.
얼굴 안 나타내고 돈 넣는분,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jh kim
2013년 12월 17일 at 1:55 오전
영덕
낮설지 않게 느껴지는곳
강구항이 있는도시
저와 가까운 유명한 성악가이자 경원대학교 음대학장을 네번이나 역임한
임정근교수의 고향 얼마나 가난 했던지 팬티와 런닝셔쓰를 중학교갈때가지
구경도못했다는임교수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곳
바다가 너무아름다운곳
구세군교회와 남비의 소중한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데레사
2013년 12월 17일 at 10:51 오전
jh kim 님.
반갑습니다.
정말 그시절엔 너무 가난했어요.
구세군 교회는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사업도 많이 했어요.
silkroad
2013년 12월 17일 at 12:47 오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
그 찬양이
"데누부야를 건강하고
편안하게 하는것 같슴니더"!
데레사
2013년 12월 17일 at 6:18 오후
실키님.
반가워요.
요즘 고흐에 빠진것 같던데 연말 잘 보내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