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일흔다섯, 아무리 생각해도 냬 나이가 어때서 하고 항변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닌것 같다. 옛날 같으면 고려장을 시켜버렸을 나이도
한참 지났는데 세월을 잘 만나서 운동도 다니고 블로그도 하고
배우고 싶은것도 배우고 여기저기 가고싶은 곳 다 가보면서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을 살고 있는가 말이다.
모든것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마땅할진데 때로는 투덜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분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찔끔거리도 한다.
진달래꽃만 보면 어릴적 아버지 나무지게에 매달렸던 진달래꽃방망이가
생각난다. 특별한 간식거리가 없던 우리들 어린시절의 진달래는
입술이 빨갛게 물들도록 먹을수 있는 훌륭한 간식이었지.. 이 간식을
아버지는 나무를 해 올 때 마다 지게에 메달아서 오시곤 했다.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대단히 영리한 분이었다.
학교를 다니신것 같지는 않은데도 우체국에서 근무했고 밤에는
이웃의 할머니들 모임에 춘향전 같은걸 읽어주러 다니시곤 했다.
할머니들의 모임에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오시는 날에는 늘 떡을
갖고 오셨다. 아마 할머니들의 곗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릴적 나는 여름이면 학질을 잘 앓았다. 지금도 기억하는건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이 되면 나는 곧잘 학질에 걸리곤 했다.
이 학질이라는 병은 여름에 벌벌 떨면서 앓는데 하루는 죽도록
앓고 하루는 좀 멀쩡하고 이래서 그 이틀을 한죽이라고 했는데
보통 너댓죽을 앓아야만 낫곤 했었다.
금계랍이라고 노란 알약, 쓰디 쓴 그 알약을 먹기도 하고
어느때는 엄마가 날 경찰서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다 버려두고
도망 가 버리기도 했다. 무서워 하면 낫는다는 미신을 믿고 날 경찰서
앞에다 갖다 놓았던 엄마, 그런데 용케도 그렇게 몇번 무서움을
겪고나면 신기하게도 병이 낫곤 했었다.
지금은 말라리야라고 부르는 학질,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없어진
병이라는 뉴스도 본 적도 있다.
선을 보고 결혼 말이 본격적으로 오가면서 그 양반과 나의 첫 데이트,
부산 미화당뒤에 있던 칸타빌레 음악실엘 갔었다.
마침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빠바빠 하면서 운명 2악장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 양반, 자기가 아는 음악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슨곡이냐고 물었드니 글쎄 영화 사랑할때와 죽을때의 주제가라는
것이었다.
순간, 기가막히고 코가막혀서 말이 안나왔지만 꾹 참고 몇 시간을
음악감상실에서 보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얼마나 지루했을까
하는 미안함에 결혼을 하고 그와 23년을 함께 살았다.
40대의 후반이었던 어느날 그는 느닷없이 나더러 자기도 이제
늙었는지 국이 없으면 밥을 못먹겠다고 귀찭겠지만 끼니때 마다 국을
끓여 달라고 했다.
국을 끓여주면서 밥먹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한 두어숟갈
먹고는 꼭 국물을 먹어야먄 넘어가는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드니 부근 이비인후과에서 신경성이라고 한다면서
약을 타갖고 왔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미심쩍어서 의학사전도 뒤지고 이웃에게
물어도 보고 하니 모두가 식도암의 증상같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 서울시청앞에 있던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진단 받은결과
식도암이 맞았다.
자기들 병원에서는 수술을 잘 못한다고 한양대병원으로 소개해 주어서
그 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이미 너무 퍼져서 수술도 못하고 도로 닫았다.
그리고는 방사선치료.
서울대병원과 한양대병원을 오가며 방사선치료를 한 결과 어느정도 회복이
되어서 그런 상태에서도 10년 가까이 살다가 갔다.
처음 병원에서 40여일밖에 안 남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10년 가깝게
살았으니 사람은 어떤 경우든 최선의 조치와 최선의 치료를 해봐야 한다.
불교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그는 석가탄신일 하루전이 생일이고
하루 후가 제사다. 그래서 음력으로 지내는 생일과 제사가 절대
잊어 버릴수가 없다. 살아서 생일도 식구들이 기억하기가 좋았는데
돌아가고 나서 제사도 달력을 안봐도 저절로 기억되는 날이다.
절에 연등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달이면 그 양반 간 지도
25주년이다.
솔직히 돌아가신 양반은 억울하고 불쌍하지 남은 우리 식구들은
별 탈없이 잘 살아왔다.
내 인생의 세 남자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 아들이 아직까지 결혼 안한건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들이 옆에 있어서 좋을 때도 많다.
그래도 결혼해야 하는데 도무지 결혼생각이 없으니 나로선 어떻게
해 볼 재주가 없다.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수밖에….
관악산 연주대다.
요즘의 나는 바위가 많은 관악산은 오를수가 없다.
이 사진들은 아들이 며칠전 관악산 등산갔다가 찍어 온 사진들을
몇장 얻은것이다.
나도 한때는 산악회의 멤버로 우리나라 유명산은 지도를 읽어가며
다 다녔었는데 지금은 이 관악산도 못 오르고 있다.
내가 처음 등산을 시작했던 60년대 초는 산길이 지금처럼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독도법을 모르면 정상찾기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는 산을 오르기 위하여 군대를 다녀 온 남학생들로 부터 독도법을
배웠었다.
나는 관악산을 주로 과천향교쪽으로 오르내렸다. 구로에서 근무할 때
신림동에서 올라본것 몇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과천쪽에서 올랐기에
이렇게 험한 길은 없었는데 여긴 어딘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새벽산책 한시간, 그리고 오후에 수영 한시간. 두시간의
운동을 했다.그런데도 지금까지 잠이 안와서 이렇게 횡설수설
지나 간 얘기를 하고 있는것이다.
이제 자볼까? 내일 미사 갈 시간에는 깨겠지….
Beacon
2014년 4월 12일 at 5:56 오후
그러셨군요..
인생의 세 남자, 단촐해서 좋습니다요.. ㅎㅎ
그렇게 사별을 하셨네요.. 많이 아프셨을건데 씩씩하게 사시니 좋습니다..
일흔다섯요? 하이구,, 이렇게나 정정하세요?,,
그게 다 마음먹기 나름이구요.. 근데 그 마음이란거도 사실 현실적인 문제와 아무래도 전혀 무관할 수는 없는거니..
마음도 여유롭게 생활도 여유롭게 그러셨으니 이리 정정하신게지요..
이후로도 오랫동안.. ㅎㅎ
강녕하시길요..
보미^^
2014년 4월 12일 at 6:14 오후
아드님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시겠습니다만 그래도 축복된 삶이십니다.
건강하시고 시대의 좋은것들 많이 누리고 사시니까요.
건강이 제일입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dotorie
2014년 4월 12일 at 7:39 오후
40일 남았다는 진단 받으셨을때 얼마나 놀래셨을까요?
데레사님 기막히고 코막히게 하신분 몫까지
오래오래 건강 하세요.
가보의집
2014년 4월 12일 at 8:21 오후
데레사님
사진따라 글 읽으면 그 진달래철에 나도먹던생각 하였어요
유일한 간식이었지요 아까시아철에 그것도많이 먹었던
내나이보다 2살이 많네요
울아버지도 우체국 다니셨고 막내라 서당 안보냈는데 한문을 능하데요
지금까지 함께못있고 23년 사셔서 안되였고요
4월초파일이 가까이오데요
그런데 그나이에도 산행도 하시고요
또수영도 하셨어요 산행도 힘든데 말입니다.
커피를 드시면 잠이 안와요 특히 오후에요 그런것 안마셔요
우리는 오늘 주일아침과 수요일아침식사때만 주로 마셔요 예배시간 졸려서요
커피가소변도 잘 나오고 해서 삼가 하지요
오늘 미사에서 은혜롭게 지내요
감사 하게 잘 보았어요
오병규
2014년 4월 12일 at 8:49 오후
아! 두 번째 남자를 그렇게 보내 셨군요.
말씀이야 그렇게 하시지만…25년이라는 세월을 홀로….
그래도 누님께서는 다복하시니….
딱 쉰 되던 해?
제 아내가 쉰이었을 때는 어땠을까? 옴마! 그러고보니
제가 위암 수술 받은 해 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누님 회고록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그나저나 금계랍… 그거 우리 갱상도에서는 깅기랍이라고 했었지요.
허벌나게 씨구왔고, 제 아래 동생들 젖 땔 때 엄마 젖에 바르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깅기랍은 지난날 보통 가정의 상비약?
좋은 휴일 되십시오. 누님!
mutter
2014년 4월 12일 at 8:59 오후
지나간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해요.
한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오신 데레사형님.
조금더 가까이 느끼게 되는 글이네요.
건강하셔요.
한시간 걷고 한시간 수영할 정도면 허리는 거의 나으신거네요.
無頂
2014년 4월 12일 at 10:31 오후
제마음에도 진솔하게 녹아드는 지난 길이네요.
늘 행복하세요 ..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03 오후
비컨님.
고맙습니다.
남들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나이만큼은 아파요.
그래서 젊었을때 아껴서 모은돈 병원에 갖다주기 바쁘답니다. ㅎㅎ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07 오후
보미^^님.
걱정이긴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볼수도 없어요.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 먹어주면 좋을텐데…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08 오후
도토리님.
병원 진단 40일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때 마침 분양중이던 심심산골의
공원묘지를 구입했는데요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그곳이 분당신도시가
되어 버렸어요.
주택투자를 이렇게 했다면 부자 되었겠지요?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10 오후
가보님.
저도 잠 때문에 커피 입에도 안 댑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잠을 오랜동안 못 이루는 날이 많아요.
그러나 포슽 올려놓고 이 시간까지 잤으니 오늘은 많이
잔 편이라 몸이 게운합니다.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12 오후
종씨님.
맞아요. 아기 젖뗄때 발르기도 했지요.
얼마나 쓴지….
지금이나 그때나 그립다거나 외롭다거나 그런 감정은 별로
안들어요. 그저 죽은사람만 불쌍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우린 그래도 잘 살아왔거든요.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14 오후
무터님.
허리는 치료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이 병원이 비싼만큼 듣기는 하네요.
운동도 약, 침과 함께 치료용도로 하는거에요.
의사가 시키는대로의 운동을 하는거라 수영장에서도 제한되는게
많아서 재미가 없긴 해요.
데레사
2014년 4월 12일 at 11:14 오후
무정님.
고맙습니다.
사는날 까지 아프지 말고 살다가 자식들 애먹이지 않고
마감했으면 하는게 지금의 소망입니다.
북한산.
2014년 4월 13일 at 2:17 오전
간략하게 데레사님 자화상 쓰신거 잘읽었습니다.
어느사람이나 겉으로보면은 다들 좋와보이고 무탈한듯 하여도 그속 깊은 내면에는 다들 아픈사연이 잇는것 같습니다.이제는 다잊어버리시고 데레사님 건강지시시는데 충실 하시기바랍니다.건강 하세요.
벤조
2014년 4월 13일 at 4:15 오전
뭐, 겨우 75세 가지고…ㅎㅎ실례!
그런데 왜 저런 바위산을 쳐다보시며 못 오름을 아쉬워 하세요?
얕으막한 산 즐겁게 다니시면 됐지…ㅎㅎ
저는 책만 들면 자니까 이책저책 머리맏에 잔뜩 쌓아놔요.
한 페이지가 수면제.
summer moon
2014년 4월 13일 at 4:34 오전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글을 많이 쓰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담담한 말투로 옛이야기 들려주시는 듯한 글들 속에 많은게 녹아 있는거 같아요
처음 읽을 때의 잔잔한 감동이 몇몇 되풀이 해서 읽을 때도 여전하구요.
정말 세상에 나눠주실게 많은 분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 주실 때도 그렇고
여행을 다니시면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도 그렇고
생활 속에서 데레사님 가슴에 걸리는 이야기들도 그렇구요.
늘 건강과 행복이 데레사님께 !!!!!!!!!
바위
2014년 4월 13일 at 5:04 오전
담담한 이야기 속에 세 남자에 대한 짙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말씀은 안 하셔도 아버님과 남편 분에 대한 연민이 많으십니다.
이젠 잊어버릴 때도 되었건만 문득 생각나는 건 애달픔 탓이겠지요.
아드님이 빨리 배필을 맞아 손주라도 품에 안으시면
그나마 지난 세월의 아쉬움이 해소되겠지요.
아드님에게 좋은 일이 어서 생기기를 기원해봅니다.
데레사님의 건강과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5:09 오전
북한산님
고맙습니다.
석탄일이 가까워오면 늘 이렇듯 먼저 간 사람 생각이 나네요.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5:11 오전
썸머문님.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야지요.
뭔가 발표하고 뭔가 더하는것도 이제는 힘들어요.
염려, 고마워요.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5:12 오전
벤조님.
내게도 책이 수면제이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책도 수면제가 못되고 우유도 양파도 다
수면제노릇을 못해요.
그저 오면 자고 안 오면 노는수밖에요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5:14 오전
바위님.
우리 아들, 결혼 안한다는 주의에요.
선이라도 부지런히 보고 툇짜를 놓는다면 희망이라도 가질텐데
안가겠다는거에요.
그래서 많이 답답합니다.
한국인
2014년 4월 13일 at 5:43 오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종이 한장 차이인 것 같아요.
어제까지 같이 있던 사람이 오늘 사진으로만 볼 때…
사는게 무엇인지…
그래도 살아 있는게 제일 중요하겠지요?
나의정원
2014년 4월 13일 at 6:12 오전
아드님도 인연이 있다면 좋은 소식이 있을것 같은데요?
님의 인생에 세 남자에 대한 짧은 단상의 글이 맘에 다가오네요.
그런데 정말 정정하십니다.
편찮으시다고 하시지만, 그 연세의 다른분들과 비교하면 열정적으로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평안한 날 되세요~
雲丁
2014년 4월 13일 at 6:20 오전
세 남자와의 인연 저의 세 남자를 생각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미사엔 다녀오셨겠지요.
진달래 피는 봄이 좋습니다.
주일오후도 즐거운 시간 되셔요.
배흘림
2014년 4월 13일 at 6:38 오전
금계랍 참 쓴 기억이 새롭습니다. 흰 봉다리 가루약…
세 남자 이야기는 … 긴 시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어쩌면 관계가 있던 없던 인연이라는 고리가 삶의 자락에 스며있는지도 모릅니다.
산 꼭데기의 암자 카메라에 담을 남을 기대 해 봅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7:06 오전
한국인님.
그렇더라구요. 종이 한장 차이, 맞습니다.
그래도 사는한 열심히 살아야죠.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7:06 오전
나의정원님.
그러게 말입니다. 부디 좋은 인연 만나 결혼했으면
합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7:07 오전
운정님.
그러셨군요.
오늘은 외출않고 집에만 있을려고요.
벤자민
2014년 4월 13일 at 7:07 오전
참 건강하시군요
병원도오진이많아서 여기저기많이알아보는게좋지요
저의이종형님은 그냥감기기라고해서 약만드셨는데
조금큰병원가도 감기라고..
나중에 종합병원가서보니 폐암말기엿어요
그래서 6개월박에못산다고햇는데 본인이 그후자제력을잃어
4개월만살고돌아가셨어요
이주일씨도 비슷한경우죠 아마
얼마전 제블로그에소개한 골프장노인분은
돌아가시고나니 골프장아줌마들말씀이
아마 그할머니 안계셨더라면 더오래사셨을거라는말을해요
뭔말인지는 잘모르겠지만요 ㅎㅎ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7:10 오전
배흘림님.
금계랍, 알고 계시는군요.
정말 쓴 약이었죠.
지금도 말라리야에 그 약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7:12 오전
벤자민님.
우리 큰딸의 시아버님은 6개월 시한부를 받고 한 일년쯤
사셨어요.
그분 성격이 대범하고 편안했거든요.
그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원인이었을까요? 설마 하지만.
노당큰형부
2014년 4월 13일 at 8:07 오전
데누님
어릴적 이야기가 가슴에 울컥합니다.
아버지의 추억과 함께
몸 약했던 어린시절을 이겨내고 이렇게 잘 지내시니
이 또한 마음도 몸도 건강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람돌
2014년 4월 13일 at 9:46 오전
데레사님의 세남자 중에서
뒤의 두 남자(클래식을 모르는 남자와 장가 안 가는 남자)는
조금 문제입니다.ㅎ
제 세 여자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여자분은 고생만 하다가 90에 돌아가셨고
둘째는 제 옆을 홀로 지키고 있습니다.
셋째는 자식 셋을 낳은 애국자입니다.^^
士雄
2014년 4월 13일 at 10:18 오전
여전하게 문전성시이십니다.
건강하셔서 좋은 블로그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해 연
2014년 4월 13일 at 10:33 오전
하루걸이 라고도 했어요.
하루는 디게 아프고 하루는 웬만해서요.
금계랍, 원명은 키니네
많이 먹으면 치명적이어서 5,60년대 자살용으로 많이 사용했어요.
그렇게 독한 약을 먹어야 병이 나았으니
마라리야란 병이 지독한가 봐요.
세남자.
유교에서는 삼종지도 라고 해서 여자들이 섬겨야 하는 상대인데
요즘 세상 많이 변했지요.
데레사님의 두번째 남자 이야기 마음이 아림니다.
저도 비슷해서요…ㅎ
힘 내시고 많은 사람들의 ‘멘토’ 로 건강하시기 바람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1:01 오후
노당님.
우리들 어릴때는 참 가난했었지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부족할게 없지요.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1:03 오후
바람돌님
어머님께서 오래 사셨군요.
그 시절의 어머님은 다 고생만 하셨지요.
따님께서 세아이를 낳으셨다니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1:03 오후
사웅님.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1:06 오후
해연님
맞아요. 학질을 하루걸이라고도 불렀지요.
그때는 모기가 많아서 그랬는지 학질이 꽤 성했지요.
앓아보지는 않았나 봅니다.
우리 그래요. 힘내고 열심히 살다가요.
睿元예원
2014년 4월 13일 at 3:04 오후
데레사님,
수년전에 봉정암에 올라갔었는데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거든요.
그 때 같이 등반한 할머니 두어분이 70이 넘으셨어요.
얼마나 잘 오르시던지요.
70대 연세는 숫자일뿐이라는 말 정말인 것 같아요.
기운 팍팍 내시고 힘차게 활동하셔요.
그래야 저희들도 본을 받잖아요.~~~^.^
데레사
2014년 4월 13일 at 7:50 오후
예원님.
고마워요.
절에 오르시는분들은 신앙심이 커서 인지 높은산도
운동화신고 잘 오르더라구요.
흙둔지
2014년 4월 13일 at 8:19 오후
요즘은 100세 시대이니
보통 자기 나이에서 10~20년은 빼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 한창 나이이신데요~ 뭘~
운동 열심히 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시면
지금 나이는 그저 숫자일뿐이라는 생각입니다.
미뉴엣♡。
2014년 4월 13일 at 8:26 오후
우와~ ‘내 인생의 세 남자’
무슨 영화제목 같은데요..ㅎ
한국여성, 대부분 그럴겠죠
아버지,남편, 아들..^^ 얼른
아드님이 얼른 결혼하시면
확실한 내남자로 좋으실 듯~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12:02 오전
미뉴엣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생각이 없어요.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12:04 오전
흙둔지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절망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카스톱
2014년 4월 14일 at 1:12 오전
학질, 제게도 아련한 기억이 있습니다.
묘잔등에 식칼을 꽂고서 나이만큼 굴르면 낫는다하여
그렇게 했던 적 있습니다.
3대에 걸친 남자?들 모습을 담담하게 올리셨군요.
여러가지를 생각케 합니다.
저 바위벼랑은 관악산 정상에서 사당동방면으로 내려서면
곧장 만나는 코스지요^^
まつ
2014년 4월 14일 at 2:16 오전
우와, 연세가 생각보다 높으셔서 깜짝 놀랐어요.^^
대단하십니다.
내 인생의 세 남자, 글도 잘 읽었습니다.
늘 좋은 나날 보내세요.
청목
2014년 4월 14일 at 3:52 오전
남녀란 서로서로가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로 쉰에 홀로 되셨다면 그다지 남다른 경우는 아닐 것 같네요. 청상과부도 있잖아요. 그러나 그다지 많지 않던 여 공직자라 여려운 고비를 잘 넘겨 오셨을 거로 짐작됩니다. 집집마다 한 두 가지씩의 말못할 사정은 다 지니고 잇는 듯 합니다. 제게도 과년한 딸애가 결혼을 미루고 있으니…
그러나 저러나 데레사님은 건강 하나는 타고 나신 듯 해서 부럽습니다. 잘 관리하셔서 백세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사시길 빌어드립니다.
jh kim
2014년 4월 14일 at 5:32 오전
언제 들어와도
감동이 함께 하는곳
건강 하셔야 합니다
누가뭐래도 전국을 아니 어느나라라도
즐겁게 다니시며
사시니 데레사 선생님보더 복을 더많이 받은분은 흔하지 않습니다
최용복
2014년 4월 14일 at 7:28 오전
연주대의 모습 오랫만에 보니 반갑습니다^^
과천과 서울대 앞에서 퍽 많이 오른곳이죠!
훌륭한 아버지가 계셨고, 누구못지않게 삶속에서 희노애락을 느끼신것 같네요…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3:04 오후
마츠님.
제가 나이가 좀 많아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3:06 오후
카스톱님.
그때는 무섭게하면 학질이 낫는다는 말이 있었어요.
아마 그래서 무덤에도 데리고 간것 아닐까 싶어요.
저는 관악산을 늘 과천향교쪽으로만 다녀서 저쪽은 낯설거든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3:07 오후
청목님
그러시군요.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에 그닥 관심을 안갖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는 얼른 결혼해 주는것이 좋은데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3:08 오후
jh kim 님.
저도 나이만큼은 아픕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는척 할 뿐입니다. ㅎㅎ
데레사
2014년 4월 14일 at 3:08 오후
최용복님.
관악산을 자주 다니셨군요.
저도 한때는 참 많이 오른 산이긴 합니다.
인회
2014년 4월 15일 at 1:06 오전
글을 다 읽기전에는 데레사님께서 올르셨는줄 알았어요.
그래도 도전해보세요.
저력이 나올겁니다.
저와 산에다니는 왕언니도 70이 훨씬 넘었거든요.
힘내세요.
이야기가 있는 세남자분…!!!
그리고 100세시대니..,
우리딸래미 말대로 제가 아직 베이비라네요.ㅎ
뽈송
2014년 4월 15일 at 2:46 오전
그래도 데레사님은 참 복을 많이 타고 나신 분이시지요.
그 연세에 가고 싶은 곳 다 다니시고 잡수시고 싶은 것 다 찾아 잡수시고 계시니까요.
오랜 경찰경력으로 그만큼 몸이 건강하시단 얘기도 되겠지만요.
아직은 멀었으니 더 열심히 다니시고 더 열심히 찾아 잡수시기 바랍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5일 at 5:12 오전
인회님.
장수가 얼핏 축복인듯 싶지만 사실 축복이 아닌 경우도
많아서 그게 더 걱정이에요.
최소한 자기손으로 자기신변을 정리할 수 있어야만 인간다운거죠.
노력은 해보지만 쉽진 않으리라고 봐요.
데레사
2014년 4월 15일 at 5:13 오전
뽈송님.
고맙습니다.
이 정도 건강이라도 유지될때 하고싶은것 다 해볼려고요.
지해범
2014년 4월 15일 at 9:09 오전
‘내 인생의 세여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데레사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데레사
2014년 4월 15일 at 10:52 오전
지해범님.
고맙습니다.
산성
2014년 4월 15일 at 4:10 오후
참 일찍 사별하셨네요.고생 많으셨어요.
다 지난 이야기라 하시지만
문득 새록새록 생각나실 것 같아요.에고..
데레사
2014년 4월 15일 at 5:45 오후
산성님.
이제는 다 흘러 간 얘기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사람만 억울하고 불쌍한것 같아요.
엄마
2014년 4월 16일 at 3:29 오후
*^^*Good night, 데레사님~~***
데레사
2014년 4월 17일 at 4:28 오전
엄마님.
반가워요.
다프네
2014년 4월 18일 at 6:04 오전
아… 음…. 그러니까……………….. 제가…. 기도해드릴게요.(지금도 가끔은 하지만요)^^
데레사
2014년 4월 18일 at 6:56 오전
다프네님.
탱큐.
샘물
2014년 4월 29일 at 9:22 오후
뒤늦게야 이 글을 봅니다.
데레사님의 아주 중요한 인생 이야기인데 매번 들르지 못하는고로 읽지 못했네요.
길고도 아픈 사연이었을 터인데 아주 간략히 담담히 적으셨네요.
아드님의 혼인문제로 안타까우신 심정, 잘 알겠습니다.
저는 그나마 결혼을 안하겠다는 이야기는 딸들이 안하니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