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 이항로 (華西 李恒老) 선생(1792-1868) 은 조선 말, 성리학자로서
대원군의 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한 당대의 직언자였다.
일생을 바쳐 민족정기 수호와 한민족의 주체성을 굳게 지켜 온 분으로
19세기 열강의 침략에 맞서 벼슬을 사양하고 제자양성에 힘써
화서학파를 이루었다. 화서학파는 항일 의병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그 인물로는 양헌수, 김평묵, 유중교, 최익현, 유인석등이 있으며
이 집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북한강 가를 달리다 이정표를 보고 우연히
들리게 된 이항로 선생의 생가에서 조선선비의 기품어린 집 구경도
하고 몰랐던 역사적 사실도 공부하게 되었다.
유형문화재 105호로 지정된 이 집에서 화서선생은 정조 16년 부터
고종 5년에 이르는 우리 민족 최대의 격변기를 살았던 것이다.
77세로 서거하기 까지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직언을 서슴치 않았으며
의리론의 대표자로 서양과 일본의 침략에 해한 민족적 저항의식의
불을 지피셨다는 안내문을 읽으며 생가를 돌아보는 내내 존경의
마음과 함께 우리 역사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했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솔직히 여기를 들리기 전의 나는 이런 분이 계셨다는 사실도
화서학파에 대한것도 다 몰랐으니까.
현판을 보니 강당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서 후학들을
가르치신듯…
생가는 튼튼한 목재로 지어져서 조선 선비의 기품을 보여주는
그런 집이다. 건축물에 대해서 잘 안다면 좀 더 좋은 설명을
할 수 있을테지만 워낙 이런 방면으로는 문외한이라 사진으로만
소개할 수 밖에 없는게 좀 아쉽다.
이 곳은 집 밖에 있는 우물로 당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는데 올라가서 볼려니 개가 무섭게 짖어서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생가 바로 앞에 기념관이 있었다.
화서 선생 초상화다.
경은 난세를 다스리고자 하늘의 기운을 타고난
삼대시대의 순수한 인물로서
밝고 슬기로우며 강직하고 과감하여
뭇 사람을 초월하였도다.
그러나 경의 학문은 땅과 바다 같이 넓고 깊어서
그 몸은 이미 죽었으나
그 도는 오래 전해질 것이다.
산에 태산이 있는것과 같고
북극에 북두성이 있는것과 같아서
훌륭한 선비들이 많이 찾아 가
강명하고 전수하였도다.
나라가 안정하게된 것은
경의 아름다움을 힘입은 덕택이로다.
(고종 6년, 임금이 내린 제문 중에서)
사후에 임금께서 이런 제문을 내릴 정도였으니 선생의 인품과
학식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듯…
주변의 자연경관이 좋아 드라이브 하다 우연히 찾게된 화서 이항로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 관람은 무료이며( 전화 031-770-2473 ) 18:00 까지
개방되어 있다.
좋은날
2015년 6월 9일 at 4:58 오후
고택을 찾아가는 여행은
마음을 침잠에 이르게 합니다.
옛날 선현들의 학식과 고매한 인품을 만나게 되는 일.
현대를 살아가면서 그 어떤 문화적인
것들에서 그 으뜸으로 자리매김을 해야는데
너무들 외국문물에 들어 홀대되어지는 우리의 뿌리.
아주 고즈넉한 풍경함께
감상 잘 했습니다.
벤조
2015년 6월 9일 at 5:46 오후
여기에 저런 한옥을 짓고 살고싶은데 꿈이겠지요?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njel02
2015년 6월 9일 at 8:02 오후
데레사님 발길 따라 몰랐던 학자이고 애국자이신 화서
이 항로 선생의 기품있고 정갈하게 관리된 생가도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또 하나 알고 가는 즐거움을 안고 감사합니다
가보의집
2015년 6월 9일 at 8:06 오후
데레사님
저역시나 몰랐던 이항로 선생님 입니다
그렇게 위대하신분의 생가와 기품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건물 이 너무나 아릅습니다
하여튼 데레사님 도 이런 게시믈 보여 주셔서 늘 감사 하게 생각 합니다
필코더
2015년 6월 9일 at 10:19 오후
17, 18번째 사진의 ‘同治五年’이란 글이 제 눈을 끄는데요. 조선이 독자적인 연호를 쓰지 못하고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했다는, 청나라의 속국이었다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同治帝는 유명한 서태후의 아들이지요. 이항로 선생님의 생가가 저곳에 있다는 것을 데레사님의 ‘막강한 기동력’ 덕분에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9일 at 10:36 오후
좋은날님
저도 우연히 이정표 보고 찾아 들어갔지요.
의외로 잘 보존되고 있는 생가와 기념관을 보고
놀라기도 했고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 이런 곳을 자주 찾아 볼려고요.
데레사
2015년 6월 9일 at 10:37 오후
벤조님
미국에다 한옥짓고 살면 좋겠지요.
그런데 돈이 얼마나 들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저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건 나도 꿈이거든요.
데레사
2015년 6월 9일 at 10:40 오후
엔젤님
저도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여행 다니다 보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아요.
데레사
2015년 6월 9일 at 10:41 오후
가보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역사와 우리의 위인들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살고 있는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9일 at 10:42 오후
필코더님
고맙습니다. 동치가 그런 의미군요.
사실 내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고종일까, 아니면 어느 임금님일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거든요.
해 연
2015년 6월 9일 at 11:37 오후
목재의 결과 색, 그리고 돌담,
정말 좋으네요.
요즘 흉내내서 지은것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간직하고 보존할것이 많아요.
덕택에 오늘도 공부했습니다.^^
無頂
2015년 6월 9일 at 11:56 오후
선비의 올곧은 성품을 보아 기쁩니다.
덕분에
역사공부 잘했습니다.감사합니다.
바위
2015년 6월 10일 at 1:20 오전
화서 이항로 선생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처럼 훌륭하신 선현을 몰랐다니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여행기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여행기도 기대가 됩니다.
즐겁게 다녀오십시오.
선화
2015년 6월 10일 at 2:09 오전
요즈음 저런 사람이 울나라에 지도자가 꼭 필요한데요
여러가지로 어지러운 형세인 눌 나라판이 걱정됩니다
한옥은..특히 여름에 아름답지요?
어려서 한옥에 살아봐서 아는데 겨울엔 춥거든요 너무~~ㅎ
담엔 어디편인가요? 보기에 참 좋아요!!!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2:17 오전
바위님
저도 이런 분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 어디에서도 배워 본적이 없었거든요.
우리 교육, 참 한심하죠.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2:19 오전
해연님
저도 공부 많이 했습니다.
목재가 실제로 보면 아주 두꺼워요. 마루가 묵직하던데요.
아마 건축가들이 본다면 설명이 좀 자세했을 겁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2:19 오전
무정님
저도 공부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2:21 오전
선화님
한옥을 어릴때 살아서 기억에 생생해요.
겨울에는 정말 문고리에 손이 척척 달라 붙을 정도로
추웠지요.
그래도 우리 선현들은 다 견뎌내면서 살았던 거지요.
당분간은 좀 조용히 있어야 할것 같아요.
뽈송
2015년 6월 10일 at 2:29 오전
나도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그나마 우리 역사학자들은 근현대 것만 그것도 이념을 집어넣어 전파하고
있으니 너무 실망스럽기도 하고요. 역사가 바로 정립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2:38 오전
뽈송님
이런 곳을 발견할때 마다 제가 너무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는것을
느낍니다.
이런 순수한 학자들이 왜 조명이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인
2015년 6월 10일 at 5:54 오전
한옥이 참 시원해 보입니다.
대청에 누워서 부채질하다가 수박 한통 깨먹고 싶군요.
메르스가 설치는 요즈음도 그게 가능할까요? ㅠㅠㅠ
나의정원
2015년 6월 10일 at 6:42 오전
지금이라도 대청마루에 나와서 지그시 앞 정문을 응시하고 있을것 같은 풍경이 정말 좋네요.
인회
2015년 6월 10일 at 8:42 오전
제가 답사를 하면서 느낀것은 인물공부가 참 재밌더군요.
한옥도 예쁘구요..
급조로 복원한것등은 식상하던데..이곳은 그렇지 않으네요.
임영란
2015년 6월 10일 at 9:56 오전
액자의 글씨는 강하고 반듯하고 자신감을 가진 성품이 느껴지는 반면,
제월대란 암석에 새긴 글씨는 돌 모양과 어우러져 예술 작품처럼 보입니다.
드라이브 다녀오셨구나. 원기왕성 데레사님@! ㅎㅎ
셔터소리
2015년 6월 10일 at 10:13 오전
양평 서종을 제법 많이 지나쳤지만
저는 못 본 곳을 데레사님은 헤안으로 잘 찾으셨네요? ^^ ㅎㅎ
역사 속의 인물
또 한 분을 배웁니다. 제가 역사학과 출신이거든요.
학교 다닐 때는 별로였는데
뒤늦게 역사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습니다~^^ㅎ
노당큰형부
2015년 6월 10일 at 11:42 오전
이항로 기념관을 다녀 오셨군요
잘 다녀 오셨습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3:28 오후
한국인님
메르스가 설쳐도 그건 가능할거에요.
아직 지역사회 감염은 없다고 하니까요.
메르스도 양심이 있지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 건들지는
않을거에요.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3:29 오후
나의정원님
퇴마루에 걸터 앉으니까 앞 산이 보이더군요.
녹음이 우거진 산과 마주한 위치였거든요. 그 앞으로
계곡물도 흘러가고.
그곳에서 쉬었으면 절말 좋겠더라구요.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3:30 오후
인회님
저도 새롭게 이 분을 알았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분을 몰랐지요.
인물에 대한 공부, 참 좋지요.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3:31 오후
임영란님
홍천 운정님네 집구경 다녀 왔지요.
가면서 살펴 본 것입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3:32 오후
셔터소리님
저도 서종의 갤러리들에는 더러 다녀 왔습니다만
여긴 처음이에요.
역사학과 출신이군요. 좋은 공부를 하셨네요.
데레사
2015년 6월 10일 at 3:35 오후
노당님
운정님네 가다 우연히 이정표 보고 들렸어요.
그리움
2015년 6월 11일 at 11:10 오전
늘상 느끼긴 하지만 기와지붕의 아름다움이 정말 좋아져요
고궁에서도-
그리고 역사를 남기고 가신 분들의 거처에서도-
공부했습니다 데레사님 덕택으로-
조금은 알고있던~~
정말 존경드립니다 끝없는 여행길이~~~
데레사
2015년 6월 11일 at 11:20 오전
그리움님
조금은 알고 있었군요.
그런데 나는 조금도 몰랐거든요.
기와지붕, 언제봐도 좋지요.
날아갈듯한 기와집 지어놓고 친한 사람들 불러서 먹고 놀고
자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
샘물
2015년 6월 11일 at 12:36 오후
데레사님,
정말 기품 어린 한옥을 보여주시니 가슴이 뜁니다.
벼슬을 사양하시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쓰셨다니 오늘 아침 읽은 이퇴계 선생님과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데레사
2015년 6월 11일 at 12:52 오후
샘물님
네, 기와집이 서까래며 기둥이며 나무가 다 튼튼하고
좋았어요. 요즘은 그런 마루 구하기도 힘들거에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