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5경에 들어가는 수리산 성지 가는길
어제 성당 반모임으로 수리산성지 미사를 다녀왔다.
안양쪽 수리산의 병목안 골짜기에는 가을빛이 꽤 아름다웠다.
제법 울긋불긋 한데다 비 그친 날씨라 하늘도 맑고 공기도
상쾌해서 미사참석으로 가는 길이 꼭 가을소풍가는 기분이었다.
운전을 다른 사람이 했기에 차속에 나는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만 찍었다. 이런 벽화가 그려진 좁은 골목도 지나고…
어느새 잎이 지기 시작하는 은행나무 옆도 지나간다.
떨어진 나뭇잎만 보면 생각나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밣는
발자국 소리가….." 도 한번 읊조려 본다.
미사 시간에 늦을까봐 내리지는 못하고 차창을 통해서만
열심히 찍었는데도 빛깔이 곱네.
퇴직 후 몇년동안 새벽마다 수리산을 오른적이 있다.
산본에 살던 친구와 함께.
산본쪽으로 올라가서 이쪽 병목안으로 내려 오기도 하고
산본쪽으로 되돌아 내려오기도 하면서 새벽마다 한 두어시간씩
수리산을 오르내렸는데, 어느날 그 친구가 수지로 이사가고
나는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하고, 그래서 스포츠센터의 실내운동으로
바꾸고 했던 세월의 필름이 마음속으로 휙휙 지나간다.
아, 옛날이여!!!!
수리산 성지는 1840년 기해박해 때 3명의 순교자 최경환 프란치스코,
이성례 마리아, 이에메렌시아를 낸 성지로, 현재는 최경환 성인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1836년경 수십명의 신자가 이곳 수리산 담배촌(담배를
재배하여 생계 유지) 에 살고 있었고, 성인의 가족이 1837년 이곳으로
이주해 살면서 기도와 선행으로 이웃과 어우러진 교우촌을 만든 곳이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또 수리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라
성당의 우리 반 모임에서는 이곳 미사에 자주 참석한다.
최경환 성인은 한국의 두번째 신부이신 최양업 토마스 (1821-1861) 신부님의
아버지시다.
조선 후기 순조-헌종 때 천주고 신자로서 수리산 일대의 지역 주민
에게 자선을 베풀어 인심을 순화하고 상부상조와 만민평등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다가 1939년 기해박때 순교한 최경환 (1804-1839) 성인의
가족과 그 외 순교한 교우들의 거룩한 정신을 기념하는 이곳
수리산 성지에는
최경환 성인의 시신이 80여년간 이곳에 묻혀 있었으며
현재도 성해(聖骸)의 일부와 진토(塵土) 가 포함된
무덤이 모셔져 있는 한국 천주고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거룩한 곳이다.
또한 이곳은 성인 부부가 순교한 후에도 다섯째 아들인 최신정부부가
한동안 머물면서 성인의 무덤을 돌보았으며 이곳 주민들은 수차례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유덕을 기리며 약 170년 동안
천주교 신앙의 전통을 이어 온 교우촌이었다.
공소 회장이었던 최경환 성인은 성경독서과 교리공부를 열심히하여
교리지식에 해박했고 강론에도 뛰어났으며 수련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셨다.
미사 마치고 점심먹고 이렇게 예쁜 녹차라떼도 마셨다.
오늘은 딸과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난다. 부여쪽으로.
하룻밤만 자고 내일 올라올것이지만 모처럼만의 여행이라
랄랄랄라 하면서 딸이 "내려 오세요" 하는 전화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웃님들
잘 다녀 오겠습니다. 그래서 댓글 닫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