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저는 더위+코로나+삼시세끼+세 남자+과외공부 때문에
머리풀고 꽃꽂기 일보 직전입니다.”
우리 아파트 1층에 사는 교우 소피아의 카톡이다.
코로나로 남편과 두 아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바람에 삼시세끼 밥 해주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거기에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출신이라 몇 아이들의
공부도 봐주고 있기 때문에 돌아버릴것 같다고.
그러면서 덧붙여 온 카톡 “참는거 말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게 짜증납니다” 이다.
“형님 우리는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얼굴도 못 본채 살아서 되나요?”
같이 일본어를 공부했던 희남씨의 카톡이다.
오늘 이 두사람의 카톡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코로나 시대를 잘 나타내 준다.
동네공원도 동네길도 텅텅 비었다.
덥기도 하지만, 우리 안양시에서도 하루에 확진자가 40여명씩 생기다 보니
스스로 겁이나서 두문불출하는거다.
미장원에 머리를 자르러 갔드니 그곳에도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뿐이다.
머리를 자르고는 혼자서 동네 한바퀴들 돈다.
아파트 단지 이곳 저곳에 나리꽃도 피어있고 원추리꽃도 피어있고 해바라기도
피어있고, 비비추가 피어있는 사잇길에는 까마중도 익어가고있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살면서 한번도 경험 해 보지 못한 세상, 어릴적에도 역병이 돌긴 했었다.
주로 호열자(콜레라)나 마마 (천연두)가 돌때 마을어귀에 새끼줄로 금줄을 쳐놓고
할아버지들이 그 금줄앞에 앉아서 마을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간섭하던일은
까마득한 추억속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일년 반의 세월이 훌쩍 지나 가 버렸다.
그 세월동안 친구도 못 만났고 여행도 못 갔다.
병원과 시장, 그리고 동네 한바퀴 돌기가 전부인 삶, 그래도 백신을 맞으면
좋아지리라는 희망은 있었다.
그러나 그 백신에의 희망도 무너지려 하고 있다.
돌파감염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우리를 절망으로 빠트리고 있다.
하루에 한 두시간밖에 안 쓰는 마스크인데도 턱밑으로 땀띠인지 모낭염인지가
나를 괴롭힌다.
우리 큰 사위는 토,일 쉬는날 절대로 집밖으로 나올려고 하지 않는다.
마스크 쓰는게 징글징글해서 집을 나서기가 싫다고 걷기운동도 집에서 제자리걷기로
한다. 아마 모든 직장인이 다 그럴것이다.
직계 10명의 가족중 여섯사람이 백신을 맞았다. 네 사람은 기다리는 중이고.
나는 화이자, 미국의 손자 한명은 모더나, 한명은 얀센, 태국의 사위와 딸은
아스트라 제네카, 여기 큰 사위도 아스트라 제네카인데 큰 사위는 아직 한번밖에
못 맞았다.
딸이 8,2로 모더냐 예약이 되어있는데, 이 예약을 하기위해 광클을 했다고 한다.
백신이 모자라면 그 숫자만큼만 접수를 받으면 되는데 모자라면서 60세에서 55세까지의
사람들 신청을 받다보니 하루도 되지않아 마감이 된 모양이다.
나머지 아들과 손녀는 아직 접수조차 못한 상태이고.
까마중이 익었다. 어릴적 동네 길 모퉁이에서 까마중 몇 개를 따 먹을수 있었던
날은 재수좋은 날일 정도로 저 까마중도 귀했는데 지금은 우리동네 샛길에
엄청 많다. 나이든 사람 빼고는 먹는것인줄도 모른다.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이 줄줄이 확진이다.
그들이라고 코로나가 비켜가는것도 아닌데 마스크도 안 쓰고 동료끼리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걸 볼때마다 저래도 될까
싶었지만 언제나 자막으로 “코로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찰영했습니다” 라는
자막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아직 백합도 남아있네.
다음 주는 40도로 올라갈거라고 한다.
한반도가 열돔에 쌓이게 된다는 기상예보다.
이러다 모두 머리 풀고 꽃꽂기 일보전이 되어 버리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머리에 꽃꽂았던 강혜정, 영화 동막골에서의 강혜정은 머리에 꽃을 꽂아도
예뻤지만 나같은 사람이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