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有感

개성시봉동리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대강당.
이른아침부터재봉교육을받기위해모여든북한여성들의눈빛이예사롭지않다.
한가지기술이라도더배울려는자세와용어한마디도놓치지않으려는듯열의가대단하다.
이들은본격적인생산라인투입에앞서재봉실기와함께현장용어를익히기위한사전교육프로그램에참가하고있는중이다.

교육중이라서인지단체작업복이아닌평상복차림이다.집에서부터입고나온복장그대로다.
평상복의무늬와칼라가의외로화사하다.표정들도매우밝다.시선이마주치면목례도건넬줄안다.
교육에임하는자세도활기차고의욕적이다.
그러나건축공사현장에서만난남성작업자들은이와는사뭇대조적이다.한결같이무표정한얼굴이다.

‘도와줘서고맙다’는말을건네도썰렁할정도로외면한다.이들이입고있는옷들은한결같이무채색류이다.

상하의가한벌로된검정색아니면회색이다.

북쪽남녀의복장을유심히살펴보면남성은무채색,여성은유채색계통으로마치편을갈라놓은듯하다.
패션칼라리스트들이말하는무채색은의욕을저하시키며흥미를떨어뜨린다고한다.
그렇다면북쪽남성들은스스로무채색계통의옷을선택하는것일까?아니면반드시그렇게입어야만하는규정이

라도있는것인가?
아파트나건물에있어서도마찬가지다.
개성공단에서송악산자락을쳐다보면주거지역들이드문드문눈에들어온다.마찬가지로빛바랜회색건물들이다.

주택의색깔은엄격히규제되므로화려한색깔을찾기는어렵다고한다.
결국건물은흰색이나회색계통,옷또한대부분검정이나회색이다보니도시전체가온통무채색으로비치는것이다.
우선의복이무채색으로굳어버린배경은사회주의생활양식에맞도록옷을규격화하여지급해왔기때문이다.

즉북한은피복공업총국산하피복연구소에서직업·체격·연령에맞는옷의형태와규격을제정해각지역피복공장에서일괄생산하는시스템을상당기간유지해왔다.
1960년대의남자는인민복과노동복,여자는흰저고리에검정치마로단조롭고획일적이었다.
1970년대들어의복에대한인식변화로색상·디자인등이과거보다다양화되기시작했다.
이시기,무채색일변도로흐르는것에대해당시김일성이직접제동을걸고나선적이있다.

“평양시등대도시주변인민들은발전하는시대의요구에맞게유색복장을해야한다”
이는곧북한여성복패션변화에분수령이된중대한교시로전해진다.이에고무되어북한여성들이앞다퉈양장차림을했다는기록도있다.
1982년4월,그는또한번최고인민회의석상에서패션전문가적(?)교시를내리게된다.
“여성들이소매없는옷과앞가슴이많이패인옷을입고다닌다고해서사회주의양식에어긋나는것

은아니다”라고선을그은것이다.
유독여성들의패션에대해서는관대했음을알수있는대목이다.

이후,북한여성복의패션,색상과디자인의변화가감지되기도했다.

김정일도이에뒤질세라86년,“여성이국방색이나검정색옷을입는것을금한다”고공표하였으며

이를어기면벌금까지물리겠다고했다.반면에남성복에대한언급은그어디에도없다.
주구장창황토빛나는(보위색)북한군복색깔은긴세월불변이다.세관원이입은제복역시언뜻보아

군복색상과별반다르지않아보인다.지난달,개성공단서만난북한청년들복장또한마찬가지였다.

열에아홉은검정색이나회색이다.80년대중반,북한에서식량난조짐이나타나기시작하자그간여성패션에비상한

관심을보이던김일성이이른바‘食衣住’교시를내린다.
“옷이나집은부족하여도좀참을수있으나배고픈것과는타협할수없다.나는인민들의먹는문제가중요하기

때문에이제부터衣食住라는말을食衣住로고쳐쓰도록하겠다”
관용어로굳어진‘의식주’를‘식의주’로고쳐부른지20년이지난지금도안타깝게도食사정은별반나아진게없다.

최근북한여성의류의색상이나모양을볼때차라리우선순위에밀려나있던衣사정이어쩌면더나아진게아닌가싶다.

이참에과거북한최고지도자가여성패션에대해‘민소매나앞가슴이많이패인옷을입고다닌다고해서사회주의

양식에어긋나는것은아니다’라고할정도로관대했던것처럼남성복장에대해서도특별한‘한마디’를한다면어떻게될까?어쩌면그‘한마디’로인해무채색도시가생동감넘치는유채색도시로탈바꿈되지나않을까.

개성공단방문을통해직접접한이들의복장을,그리고건물을보며잠시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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