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백암산의 秋夜夢(추야몽)

막힘없이달려온버스는장성백양사로통하는초입마을,
약수리에서부터옴짝달싹을하지않는다.
가는날이장날?하필오늘이이곳단풍축제개막일이다.
간신히약수리를빠져나와우측길로접어들자,거짓말처럼한산하다.
산행들머리를백양사가아닌구암사로택한건
꽁지머리등반대장의노하우가돋보이는대목이다.

70여년전,위당정인보선생은구암사기행을이렇게적고있다.

"龜巖寺가얼마나높은곳에있는가하면
정읍에서보면내장이까맣고
내장에서보면순창넘어가는재가또까만데
순창은실로산꼭대기고을이어늘
龜巖(구암)은순창에서도또까맣다"

세월은흘러흘러,깊고도아득하기만하던그길은이제없다.
정읍에서내장은악셀레이터두어번만밟으면닿고
잘포장된도로따라내장에서몇구비돌아추령만넘으면순창이거늘.

엎어지면코닿을거리다.구암사도더이상까맣게멀지않다.
산허리를깎아내바닥을넓혀시멘트를쏟아부은탓에
절마당까지차바퀴가닿는다.

콘크리트포장길을걸어오르며허접한상상속으로침잠한다.

등뒤헛기침소리에흠칫놀라눈을비벼살핀다.
두어번의헛기침은모름지기지체높은양반들의노크가아니던가.
호젓하던길이못내아쉬웠던지위당선생께서한마디거들고자
시공을초월하여나그네를불러세운다.

"한양서예까지당일산행을다닐만큼좋아진바깥세상얘기는
내이미귀동냥으로듣고있어반길일이오만
구암사절마당에이르는오솔길이깊고도호젓하여좋았는데
어이하여저리볼쌍사납게덕지덕지시멘트를쳐발라놓았는지답답하오.
운치있는옛길을보존할생각은않고그저굽은길은곧게펴고,
고갯마루는깎아낮추고,소로는넓히기에만급급한데…안타까운마음을놓고가오"

오른쪽으로龜巖寺(구암사)를바라보며산비탈을오른다.

구암사는백제무왕35년(624년)에창건된후
조선태조원년(1392년)각운선사가중창했다고전한다.

소슬바람은가을을채색하는붓인양실가지사이를파고들어
옅게또는짙게,부드럽게또는기운차게運筆한다.
가을빛은어쩌면소슬바람이그려내는것은아닐까.
일찌감치가지를벗어난나뭇잎들은발아래서바스락댄다.

아무리가을빛좋다고넋놓고걷다간다친다.
초입부터급오름낙엽길이기때문이다.
낙엽아래는너덜길이거나눅눅한토사가감춰져있어
조금만주의를놓으면미끄러거나발목이꺾인다.

구암사에서600여미터올라서니국립공원팻말은
상왕봉과백학봉갈림길임을알린다.

양털처럼몽실몽실피어오르는오색산자락을굽어보며상왕봉을향한다.
사자봉저너머로봉분처럼생긴가인봉이우뚝다가선다.

오른쪽저멀리내장산산봉들도고갤들어반긴다.
지난10월에걸음한산봉들이라금새알아본걸까?

가을빛깊숙히스민오색단풍산자락과는달리
산정을잇는능선은이미가을끝자락이다.
서둘러잎을떨궈낸나무들은겨울나기에들어앙상하고
스산한기운은겨울이멀리있지않음을예고한다.

짙푸르게여름을보낸숲은가을에이르러제몸을
불살라가을빛을선사한뒤행복하게스러져간다.
가을산능에서서잠시인생을생각해본다.

웃자란산죽사이로낙엽수북한오솔길은또다른가을정취를선사한다.
호젓한산죽오솔길을벗어날즈음,상왕봉(741m)이다.
백암산의주봉인데등로지도만세워져있을뿐산봉표시석은없다.

산아래장성군에선’내장산국립공원’명칭을
‘내장산.백암산국립공원’으로변경을요구하고있다.
이리하여전남장성과전북정읍은현재
명칭을놓고서목하대립각을세우고있는데…

객이끼어들긴뭐하나백암산주봉인상왕봉에정상표시석이라도
하나세워두는정성을보이는게지나는사람붙잡아세워
서명받는거보다훨씬효과적이지않을까,소견이다.

상왕봉에서는정읍,순창평야가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장성호,그리고광주무등산도가물가물눈에든다.
상왕봉을내려와사자봉을향해능선길을오르락내리락,안부다.
안부갈림길에서오른쪽은남창계곡,왼쪽으로운문암,
곧장가면사자봉,가인마을로이어진다.

사자봉정상(722m).사방이산죽에둘러쌓여조망이답답하다.
산죽사이소로를따라드니거짓말처럼명당이나타난다.
목좋은벼랑바위에자릴잡고서건너가인봉과은빛눈부신장성호를
내려다보며산행간편식으로허기를채운다.

사자봉에서청류암방향으로1km정도진행하여
유턴하듯좌회전하면운문암을거쳐백양사(3.5km)가는길이나온다.
바로여기서부터운문암에이르는산자락에
백암산자생토종단풍이현란하게펼쳐진다.

초절정의단풍숲을지날때주의를요하는사항셋.

넋을꼭부여잡고걸어야한다.언제빠져나갈지모른다.
중심잘잡고걸어야한다.언제확빨려들지모른다.
핏빛쟈켓에놀라지말라.붉은단풍물이배어든것이니.

천만다행,빠져나가지도빨려들지도않고무사히?운문암이
올려다보이는산길로내려섰다.
운문암은상왕봉너른치마품에포근하게들어앉은모양새다.
운문암은禪院으로스님들이수행중이라
발길을돌려달라는알림글이사립문에걸려있다.

운문암에서계곡을따라천년고찰백양사까지
3km를더내려걸어야한다.그러나단풍철체감거리는300m.
형형색색가을단풍에취해걷다보면금새백양사뜰이다.


백학이날개짓하는형상의백학봉아래가시끌벅적야단법석이다.
‘2007백양사야단법석쌍계루의秋夜夢’
단풍축제에맞춰백양사에서열리고있는행사인데타이틀한번요란하다.
秋夜夢이라면한용운스님의詩가아니던가.

秋夜夢(추야몽)

가을밤빗소리에놀라깨니꿈이로다
오셨던님간곳없고등잔불만가물가물
그꿈을또꾸라한들잠못이루워하노라
야속다그빗소리공연히꿈깨놓고서
님의손길어디가고이불귀만잡았는가
베개위의눈물자욱씻어무삼하리요
꿈이면깨지말자백번이나벼렀건만
꿈깨고서님보내니허망할손맹서로다
이후는꿈깰지라도잡은손은아니놓으리

쌍계루앞연못가엔카매라맨들로장사진이다.
백양사의三紅을담기위함인데자리다툼이장난아니다.
쌍계루앞연못(水紅)에反映된백학봉(山紅)과사람들(人紅)
가을백양사를대표하는사진이바로이장면,
형형색색요란한옷차림을더하면四紅이라…

백암산단풍을두고누가그랬던가.
量은내장이요,質은백양이라고.

백양사는인산인해,진입로는거대주차장.
하여초입마을인약수리까지3km를더걸어내려와서야버스에오를수있었으니…

장성호로이동,호반평상에올라앉아
된장국에하산주일배로백암산행을마무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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