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明山의 흐린 여름날

잿빛흐린하늘아래,남한강은그자체로수묵화다.
강물속에거꾸로잠긴산그림자는고요하고
낮게드리운비구름은물안개걷힌수면위를유영한다.

기상청에선장마중이라하는데도통장마같질않다.
기상청은올해부터장마시작만알리고종료시점은예보않기로했단다.
장마전선이소멸돼도국지성호우가잦기때문이라는데…글쎄?
예보하고동네북되느니차라리안하고욕먹는쪽을택한것인가?

양수대교건너양평으로이어지는도로가촉촉하다.
아마도한줄기소낙비가스쳐지난듯싶다.
노면을스치는차륜의마찰음에묘한긴장을느끼며유명산으로향한다.

달달하게애간장을녹이다가도아무런일도없었던듯차갑게돌아서는애인처럼,
맑다가도일순비구름이형성돼장대비를쏟아붓길반복하는장마를일러
‘마른장마’라하던가,요즘날씨가딱그러하다.

양수대교건너양평을벗어나설악방면37번국도로접어든다.
사람살아가는것,마른장마와닮은꼴은아닐런지.

유명산은가평설악면과양평옥천면의경계를이룬다.
유명산주차장에차를두고(1일3천원)등산화끈을조여맨다.
등산로안내판앞에서서눈으로휘~익산행코스를훑는다.

휴양림야영장을벗어나계곡이시작되는곳에이르면오름길은두갈래다.
계곡을끼고돌아오르느냐(정상까지4.3km),
산허리로곧장올라붙느냐(정상까지2km).
곧장산허리로올라붙어정상찍고시계역방향으로둥글게돌아
입구지계곡으로하산하는원점회귀코스를택했다.

쭉쭉뻗은나무가들어찬눅진한숲길로든다.
채100m도못걸었는데그새등줄기가척척하다.
그래도습기를잔뜩머금은낙엽과짙푸른나뭇잎들이한데어우러져
내뿜는진한숲내음이있어더할나위없다.

까칠한된비알보다은근한오름길이사람을지치게한다.
통빡을굴려보건데2km를걸어해발862m에닿으려면
아마도정상까지계속오름길이란계산이나온다.

고도계는얼추정상을가리키고있는데오름길은여전히팍팍하다.
몇번더가쁜숨을몰아쉬고나자,산정이모습을드러낸다.
비구름이바람에실려빠르게이동하면서
금방이라도세차게쏟아부을것처럼사위를에워싼다.

펄럭이는파라솔아래아이스께끼통이덩그러니산객을맞는다.
따가운햇살이내리꽂혀야뚜껑이열릴터인데
스산한날씨에뚜껑열릴리만무하다.그냥공치는거다.

비구름걷히면북한강과남한강이내려다보이고
중미산과용문산도한눈에들어온다는데,
오늘은온통비구름에갇혀천지간이잿빛이다.

빗방울이후두둑나뭇잎을치는가싶더니
3천원으로가득채운대폿잔위로방울방울떨어진다.
이윽고빗방울은세찬빗줄기로돌변했다.
대폿잔파는아주머닌잽싸게1회용우비장수로변신한다.
1회용우비도3천원,서른명정도단체로오른분들덕에
막걸리도우비도순식간에동났으니
아이스께끼공친거우비로너끈하게복구했겠다.

너나없이우비를펼쳐입고서산아래로종종걸음친다.
질척해진산길을걷다보니바짓단은온통흙범벅이다.

정상에서부터유명계곡을따라날머리에이르는거리는4.3km다.
이구간이야말로유명산의백미인입구지계곡을끼고걷는환상코스다.
마당소,용소,박쥐소가들어앉은계곡을따라걷다보면
설악과지리의여느계곡에안긴듯착각에빠지게된다.
콸콸넘쳐나는계곡물은바위를삼켜버릴듯역동적이며
시퍼렇게깊은소로곤두박질치는물소리에귀가멍멍하다.

비경에흠뻑취해서일까,긴긴너덜길을시간의흐름도잊고서
반쯤넋을놓고걷다보니어느새휴양림야영장이다.
야영데크에올라앉은텐트,그안에서흘러나오는통키타소리는
흐린날오후의고즈넉한숲속풍경과하모니를이루고…


주차장을벗어나37번국도를구비구비돌아오르며
건너다본유명산은여전히운무에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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