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山友둘러앉아밤늦도록희희낙락
낑낑대며챙겨온酒하룻밤새거덜났네
혹시몰라꼬불쳐둔팩소주가있긴한데
내일저녁생각해서바닥났다시치미뚝
그제서야주섬주섬자리털고일어나네
이른새벽,선잠에서깨어잠시뒤척이다침상을빠져나왔다. 서서히산자락에아침햇살이번진다.여유로운아침이다. 벽소령에서부터신벽소령갈림길까지,길은평탄하다. 평탄한작전로를버리고숲길로들어섰다. 선비샘을지나세석대피소까지는된비알의연속이다. 낙남정맥이분기하는영신봉에서니세석대피소가발아래다. 영신봉은바람이지나는길목인가보다.목덜미를훑고지나는 세석대피소에잠시배낭을내려놓고날씨상황을검색했다. 애초계획은오늘장터목대피소에도착,침상을배정받아충분히 계획수정이불가피했다.다섯山友가머릴맞댔다. 대원사방향으로내려선다하여나섰는데…뭐선택의여지가없다. 촛대봉(1,703.7m)에서서걸어온능선과가야할능선을굽어보나, 촛대봉에서장터목대피소까지2.7km,천왕봉까지는4.4Km이다. 장터목대피소지붕위로비안개가자욱이내려앉고있다. 배낭을내려놓고서둘러천왕봉으로향했다. 가파른돌계단을올라서면제석봉(1,808m)까지목책길이이어진다. 제석봉산자락은6.25직후까지만해도울창한숲이었으나도벌꾼들이 제석봉고사목지대를지나하늘로통하는문,통천문에이르자, 그렇게다섯山友는운무에갇혀버린천왕봉(1915m)에섰다. 그래서일까,안전을이유로정상석을몇미터옮겨놓아야한다는 천왕봉에서의명품조망은끝내허락치않았다. 장터목대피소로서둘러유턴했다. 남은먹을거리들을탈탈털어끓는물에집어넣었다. 다음날아침(5월3일)
장영희 우의를뒤집어쓴채장터목대피소를벗어나중산리방향으로내려섰다. 칼바위삼거리(장터목4.0km,천왕봉4.1km,중산리1.3km)를지나
곧장거북이식당에서제공해준샤워장으로들어갔다.
푸른빛새벽어스름이벽소령대피소를감싸고있다.
목구멍이칼칼했다.물을길러가기위해취사장아래로난가파른
계단을내려섰다.장딴지는뻐근하나다행히컨디션은괜찮다.
샘터는대피소로부터200m쯤떨어져있다.
목부터축인다음,물통과코펠에가득채웠다.
샘터에서비누나치약사용은물론씻는행위는할수없다.
종주산행에서물티슈는필수다.
코펠을비롯설거지는물론얼굴과손발닦을때요긴하다.
아침끼니는햇반과라면으로간편해결했다.
식후커피가빠질수는없다.
K가바리스타를자처하고나섰다.
물의양과비등점그리고분말투여타이밍이포인트라나…
그성의가가상하여’천하의어떤바리스타도흉내못낼
오묘한맛’이라고,극찬을푸짐하게날렸다.
달달한커피로텁텁함을달랜후대피소를나섰다.
과거무장공비침투에대비키위해만든군사작전도로다.
지리산의흉물이기도한이도로도조금씩흔적이사라지면서
자연스런모습으로복원되어가고있어다행이다.
작전도로는신벽소령에서주능선과갈라져음정마을로이어진다.
덕평봉산자락을몇구비돌아드니’선비샘’이다.
물한모금에내장깊숙이서늘함이전해진다.
산꾼들사이에서지리산제일의’오아시스’로통한다.
한구비를돌아들면또한구비가막아서고,
한봉우리올라서면또한봉우리가다가선다.
인내심이한계치에이를때쯤,장막이열리듯천왕봉으로
이어지는주능선이파노라마처럼펼쳐졌다.
이처럼지리산은간간이숨막히게아름다운속살로
산객의고단함을보듬어안는다.
칠선봉(1,558m)은숨을턱끝까지차오르게하고
영신봉(1,652m)은젖먹던힘까지앗아갔다.
한반도의척추,백두대간에서마지막으로분기되는산줄기가
낙남정맥이다.이곳영신봉에서갈라져경남의수려한봉우리들을
두루일으켜세운뒤낙동강하구로자맥질한다.
한줌바람은지친삭신을일으켜세우는청량제와도같다.
세석평전과촛대봉이바짝다가섰다.
칠선봉지나기전까지만해도시리게파랗던하늘이
세석평전에이르자,잿빛으로변해버렸다.
오늘밤부터지리산일대에비를동반한강풍이시작되어
내일오후까지계속될것이란예보다.
휴식을취한후내일새벽,장터목을출발해천왕봉에올라
지리10경중제1경이라는일출을보고,치밭목대피소거쳐
대원사로하산하는것이다.
-대원사방향은포기하고장터목에서중산리로하산한다.
-내일아침비바람이몰아친다하니오늘장터목에배낭내려놓고
천왕봉올랐다가장터목으로유턴한다.
-그리고내일아침,여유있게중산리탐방센터로하산한다.
지리산을첫종주할때03시에대원사를출발해깜깜한산속을
나홀로걸어어스름이걷힐무렵치밭목산장에닿아따스한커피
한잔의여유를즐기던추억을되새김해보고싶었기에
내심섭섭하기도했다.
안타깝게도그새비구름에갇혀버렸다.
지리산최고의비경을간직하고있는구간이기도하다.
그런데이구간에들어서자,날씨가심술이다.
지리산을관장하시는산신께서요만큼만허락하시니도리없다.
천왕봉일출을보기위한거점이라늘산객들로붐빈다.
어깻죽지가가벼우니몸과마음은새털같다.
군데군데고사목은세월의무상함을그대로전한다.
그흔적을없애기위해불을질러타다남은구상나무에
세월이녹아들어지금의고사목이된것이란다.
짙은비안개는바람에실려급습과물러남을거듭하며
천변만화(千變萬化)의신비로움을펼쳐보이고있다.
인증샷을남기기위해선길게줄을서서기다려야하는
수고는감수해야한다.
천왕봉정상에서의인증샷을보면한결같이판박이다.
그럴수밖에없는이유는사진찍는이가피사체(정상표시석)에서
2미터이상물러설수없다.뒤는바위벼랑이기때문이다.
주장도설득력을얻고있는모양이다.
일정간격을두고정상석을하나더세우는것은어떨까?
지리산에첫발걸음한P와K는못내아쉬워하는표정이다.
"지리산신께서는단한번걸음에지리산의전부를보여주지않는다네.
두어번더걸음하라는뜻이숨어있으니다음을도모하세."
침상을배정받고나서먹을거리를챙겨들고야외식탁으로나왔다.
바람이거세다.어제처럼야외식탁을이용하기엔무리다.
그런이유로실내취사장은이미초만원이다.겨우비집고자릴잡았다.
궁극의조미료는천하의쉐프도울고간다는’라면스프’다.
국적불명의잡탕찌개를가운데두고다섯산우가둘러앉았다.
꼬불쳐뒀던팩소주의진가는대단했다.
가여우리만치소주한방울에휘둘리는모습을보고있노라니…
그렇게장터목대피소의밤은속절없이깊어갔다.
장터목에비바람이거세게몰아쳤다.몸을가누기쉽지않다.
어제천왕봉을찍은것이나하산코스를바꾼것은옳았다.
귀경버스는중산리탐방센터옆거북이식당에서14시에출발한다.
그이전에중산리로내려서면되기에서두를필요가없다.
비바람이거칠게요동치나’믹스커피’의느긋함이먼저다.
달달한커피를음미하며좀더여유를부린다.
발소리내지않고
몰래산에들어가
세상에서입은옷을벗고
그늘속이끼가되어
엎드려있어도
바람의자유를안다
이끼가먹고사는고독의맛을안다
키큰나무는
내한숨다들이마시고
한숨뱉아낸만큼
나는나무가되고
산에들어가면
바위와나무와
산새와이끼가
어떻게친구가될수있는지
바람이전해준다
시인장영희(부산대겸임교수)는필자의오랜친구다.
지리산을열여섯번이나종주했을만큼산마니아다.
山詩한편부탁했더니흔쾌히보내왔다.
**
거친바람은이내잦아들었으나빗줄기는여전히세차다.
계류는그새무섭게불어나으르렁거렸다.
계곡을따라걷는내내비가멎지않는통에장터목에서중산리까지
5.3km를쉬지않고줄곧걸을수밖에…
땀과빗물이뒤섞여온몸이꿉꿉했다.우의는입으나마나다.
기능성방수신발역시줄기차게내리는빗속에선대책없다.
중산리탐방센터옆,’거북이식당’에닿은시간은11시.
말이샤워장이지언감생심,온수는바라지도않았다.
찬물이라도콸콸나왔으면좋으련만…(공짜인데감사해야지무슨!)
그럼에도불구하고다섯山友는용케도샤워를끝내고
뽀송뽀송한모습으로둘러앉아추적추적내리는비를안주삼아
애꿎은막걸리항아리만거푸동을내고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