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he called constructor method for WP_Widget is deprecated since version 4.3.0!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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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차도르 쓴 반항 소녀의 이란이야기, 영화 페르세 폴리스 - 중동 천일야화
차도르 쓴 반항 소녀의 이란이야기, 영화 페르세 폴리스

Persepolis_Hijab.jpg

▲ 페르세폴리스 캡쳐 화면.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는 대신스카프(히잡)을 바로 고쳐 쓰는 이란 여성의 모습.

"스카프 고쳐 쓰시오." 무성한 턱수염이 입술과 함께 움직이며 지적한다.’마르잔’은

순간 말을 잃지만 이네 "네"라며 스카프(히잡)을 당겨 머리카락을 가린다.

무성한 턱수염은 이란 정부를, 마르잔은 이란 국민을 상징한다.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를 한 편 보고 나니 이란의 근대사가 가지런히 정리가

됐고,영화속인물들의 외침을 되새기다 보니 이란의 현대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란의 역사를 정리해주고 재조명시키는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세워지기 2천년전포용과 융합을 문화를 꽃피웠던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이름이다.

페르세폴리스는 피정복 민족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흡수 융합시켰던 관용의 상징적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도시였다.

샤왕조는 이란의 근대화를 추구했다. 터키개혁의 아버지 카먈 무스타파처럼 팔레비왕조 레자샤는 여성의 차도르 착용 금지, 철도의 부설, 국제 연맹 가입, 석유산업 국유화등 2대에 걸쳐 추진했다. 여성참정권 확대, 문맹탈출 등 백색혁명이란 이름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허나, 어디에나 반대세력은 있기 마련. 반백색혁명 운동과 반정부 운동이 격화됐고, 결국 반정부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설립한다. 동시에 1979년 1월 팔레비는 이집트에 망명한다. 영화는 마르잔이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이란의 파란만장한 변화상을 피부로 와닿게 그려낸다. 주인공 마르잔은 영화감독 마르잔 사트라피의 실제 이야기이다. 이제는 이란어(페르시)보다 불어가 편하지만 어릴 적 살았던 그리고 가족이 살고 있던 이란에 대한 추억가 영화로 되살아 난 것이다.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은 반미, 반서구를 기치로 내세웠다. 종교적이지 않은 것은 반미였고 반서구였다. 허나 남성주의적인 것은 종교적이지 않은게 아니었다. 마르잔 어머니는 신의 이름으로 히잡을 고쳐쓸 것을지적받을 때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치부하는 음단패설적 욕설과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이란 국민들은 이중적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핑크 플로이드와 스티브 원더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종교경찰의 눈을 피해야 했다. 길거리에서 남녀가 데이트하는 것은

구속감이었다. 운전 중 손을 남자친구와 손을 잡은 마르잔은 경찰서에 끌려가야 했다. 남자는경찰이 문제삼지 않았다.문란한 것은 여자에게만 적용됐다.

이란인들은 정부의 압제를 피해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포도주를 즐기고 싶기도 했고 음악을 듣고 춤고 추고 싶었다. 검열의 검열을 거친 책으로 공부하는 것에 넌더리가

났다. 그리고 마르잔은 이란을 떠났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지낸 마르잔의 삶은 죄책감과 열등감 그리고 무기력의 연속이었다. 국제적으로 걸레취급받는 이란의 국민이란 정체성은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마르잔은

소파에 누워 티비를보다보면 이라크 사담 후세인과 전쟁 중인 조국의 현실과 고통받는 가족 생각에 괴로워 했다. 담배는 고통의 한숨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게 해주는 도구였다. 영화에서 담배 연기는 유독 무채색 빛이었다.

다시 마르잔은 이란으로 돌아 왔지만, 변한 것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박차고 일어 나려고 시도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영화 록키의 음악에 맞춰 그녀는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마리 연어가 되고자 했다. 차도르(몸매를 감추고 전신을 덮는 검은 무슬림 여성 옷)는 그녀에게는 억압이었고, 정치적 도구로 인식됐다. 그녀는 "왜 남자들은 마음대로 옷입고 속옷 삐져 나오채로 다니는데, 여자들은 왜 남자들의 기준에 맞춰 정숙하게 옷을 입어야 한가"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마르잔은 결국 다시 이란을 떠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말한다.

"영원히 떠나는 거야. 너는 이제 자유로운 여성이다."

"오늘날의 이란은 너에게 없는 것이다."

자유를 원한다. 이란인들은 자유를 원한다. 그들은 이슬람을 믿는다. 사랑한다.하지만 이슬람공화국 정부는 믿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하지만 정부는 이슬람을 믿는 이슬람공화국정부를 믿으라고 짖누른다. 우리가 너희의 전부라고토해낸다.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를 말한다.그리고 기회란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오늘날 이란에는 자유가 없다.

선거이라는 선택의 기회는 존재하지만선택에 따른 변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실시된 이란 대통령 선거가 이를 말해줬다. 선거 결과가 투표와는 무관하게 이미 결정돼있는 부정선거였다.

부정선거를 반대하다 이란인 여대생 네다가 경찰의 총에 사살됐다.

영화속 마르잔처럼 미처 이란을 떠나지 못한 네다는죽어서야 자유를 찾았다.

돌새 노석조 Http://stonebir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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