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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겁없는 자에게 주어진 행운 - 중동 천일야화
겁없는 자에게 주어진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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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된 사진은 Http://stonebird.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곳에 게재하려고 했는데, 플래시 사용이 제한되어 사진을 모두 올리

지 못했습니다. 불편하더라도 한번 방문해서 보세요. ^^ 감사합니다.ㅎ]

이집트의 첫번째 아침을맞이 했다. 전날 저녁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고 ‘마아디 지역’ 집에 짐을 풀고 샤워하고 짐정리하고나니 밤 10시쯤.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다 잠이 들어는데 서너 시간은 잤을까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이집트에서는 필수라는 선글래스를 챙겨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이집트 국립 박물관. 낯선 풍경에 소풍나온 유치원생마냥 두리번 거리며 메트로를 타고 ‘사다트’역에서 내렸다. 당시엔 몰랐는데 사다트는 지금의 무바라크 대통령 이전 대통령의 이름이다.그는 1981년 시월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처럼 카이로 메트로 역이름을 살펴 보면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모두 찾아 볼 수 있다.

이집트 박물관 앞에 서니 이건 뭐 난장판이 따로 없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 유럽, 아시아인, 아랍인등 오만가지 인종,나라사람들이 시끌거리며 박물관 표를 사려고, 또는 가방,카메라를 맡기려고 난리였다. 여기 저기에서는 가이드가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일행을 불러 모아 설명하느라 바뻤고, 가이드 프리랜서는 어슬렁 거리는 관광객에게 음흉하게 다가가 박물관 설명 듣고 싶지 않냐고 교태를 피우고 있었다.

이 난장판을 가로질러 한국 촌놈 노석조는 ‘세계를 간다’를 펴고 검문소를 디지털카메라를 교묘히 숨겨 통과하며 박물관에 입성했다. 와 내가 정말 고대 문명 어쩌고 하는 곳에 왔구나. 들어가자 마다 우뚝 솟은 석상의 위엄에 흥분됐다.

무지하게 집중해서 세계를 간다를 통해 고대 문명에 대한 지식을 머리속에 구겨 넣으려고 노력했다. 아, 무조건 뭔가 익히고 배워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이 발동걸린거다. 사진도 하나 하나 다 몰래 찍고 자료가 될 거라고 행복해 했다. 그 때 난 유학생인 동시에 기자였고, 첩보원이었고 여행가였고, 공상가였다.

앞에 한 동양 여자가 나랑 같은 세계를 간다 책을 보고 있었다. 응? 한국 사람인가?갸우뚱 거리는데 그가 내게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건낸다. 윽 뭐야 일본녀잖아. 그녀가 들고 있던 건 세계를 간다는 일본원판이었다. 일본인 앞에서 세계를 간다 책을 들고 있으니 괜히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다. (여행책자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국.아이고.)

그녀는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래서 난 각자 박물관 보고 두시간 뒤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이렇게 인연이 된 ‘히토에’상은 2년이 넘은 요즘에도 이메일로 연락하고 그녀가 한국에 놀러 오면 커피한잔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친구가 됐다. 나보다 열살은 더 많을 것 같은 그녀는 일본의 한 국립대학교 행정 직원인데, 한국은 수십번은 넘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방학 때마다 세계 여행하는게 취미인 인생자유롭게 즐기려고하는 안정적 직업을 가진 노처녀다.)

(박물관 감상기는 생략)

히토에와 밥을 먹으려고 카이로 중심가를 아무리 돌아 다녀봐도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라마단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고생하던 와중에 한 이집트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와줄까요?" 친근하게 다가온 그의 이름은 알리. 그다지 나이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대머리였다. 그는 호의를 베풀며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게를 안내해줬다. 그 덕에 처음으로 이집트의 대표 인기 상품이라 할 수 있는 과일 주스와 과일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었다. 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망고, 오렌지, 석류 주스가 2이집션파운드(기니)라는 사실이 믿어 지지 않았다.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앞으로 쥬스는 원없이 마시리라.하하하. 2기니는 당시 환율기준으로 350원에 불과했다.(1기니 =170원, 지금은 200원)

알리 아저씨는 나보고 자기 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라마단시기에는 해가 져야 밥을 먹는데, 여럿이 모여서 양고기 등 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고 했다. 그는 계속 저녁밥을 두고 ‘breakfast’라고 얘기를 해서 좀 헷갈렸는데, 이는 라마단(이슬람 금식月)기간에는 해가 지고 먹는 첫 끼니를 아침식사라고 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다. 히토에상은 좀 겁을 먹어서 안간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행동이었지만)난 안될 것 없다고 생각하고 알리 아저씨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아 드디어 이집트인들의 식사를 맛볼 수 있는 것인가. 난 마냥 흥분됐다.

알리 아저씨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가로질러 큰 다리 밑의 버스 출·종착역으로 가서 ‘기자Geza’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이집트 첫날부터 외국인들은 쉽지 않다는 버스에 올라 탄 것이다. 버스에 올라 타니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난 손을 흔들었다. ㅋㅋ안녕하쇼. 버스는 낭만있었다. 빨갛게 물드는 나일강을 가로 질러 다리를 건넜다. 오른쪽으로는 카이로 타워가 보였고, 카스르 아이니 대교에는 마차가 따각 따각 소리내며 도로 한쪽에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삼십분이 지났을까. 기자지역에 도착했다. 카이로 다운타운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됐다. 알리 아저씨는 갑자기 말수가 줄고 표정도 굳었다. 조금 겁이 났다. 알리 아저씨는 버스에서 내리자 더 가야 한다며 골목길에 정차하고 있는 봉고차(마이크로버스)를 타자고 했다. 윽 뭐야. 봉고차 여닫이 문은 헐렁 헐렁 거리고 의자 시트는 걸레 커버가 씌워져 있으며 뒤의 승객 중 아줌마들은 온통 천으로 몸을 가리고 나를 불편하게 응시했다. 옴마야 뭐냐 이게 정말.

난 보조석에 앉았다. 잠시 후 운전사가 올라 탔다. 하이. 인사는 했지만 뭘 더 얘기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할게 있어도 표현을 하지 못했다. 봉고차는 빠르게 달렸다. 빵빵 클락션도 무지하게 울려 댔다. 이십분을 달렸을까. 순간 당나귀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당나귀 위에 올라타 가기도 하고 사탕수수더미를 얹혀 끌고 가기도 했다. 정말 내가 과거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 였다.

잠시 후 봉고차에서 내렸다. 오, 이런데가 있구나. 사막 같은 지역인데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나는 알리에 이끌리어 그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그의 집에 가게 됐다. 가는 동안 온 동네 아이들이 나를 따라 붙으며 뭐라 소리질렀다. 알리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저리가라고 뭐라 했다. 난 이방인었다. 내가 그들에게 이방인만큼 그들 또한 나에게는 미지의 사람이고 동네도 미지의 낯선 세계였다. 긴장된 마음과 함께 뭔가 기대됐다.

시멘트로 집 흉내만 낸 듯한 건물이 자기 가족의 집이라 소개를 했다. 대문은 따로 없었다. 천을 통로에 발처럼 내려 트려 사용했다. 바닥엔 카페트인지 돗자리인지 잘 모르겠는 것을 깔아 놨고 천장 또한 뻥 뚤렸는데 큰 돗자리 및 나무 더미로 뚫린 천장의 일부를 막아 놓았다.

알리는 집에 들어가자 마자. 막 소리를 아내에게 질렀다. 그녀는 대꾸없이 부엌에서 나와 바닥의 옥수수 껍질 같이 더러운 것을 쓸어 버리고 집 입구에 물을 뿌리며 청소했다. 나에게 자상했던 알리 아저씨가 집에서 큰 소리 뻥뻥치는 걸 보며 이집트 사회가 가부장적이구나 생각했다. 부엌에 남자는 전혀 가지 않았다.

알리는 집 구경을 시켜줬고 집 밖을 나가자고 했다. 그의 집 옆은 바로 사막이었다. 그리고 저 너머로 글쎄 피라미드가 보였다.

그는 내가 맘에 들었는지 너는 내 형제라며 자기가 사막 투어를 시켜 주겠다며 지프차를 어디서 가지고 와서 나를 태웠다. 덜컹 덜컹 사막으로 사막으로 계속 들어갔다. 들어가니 수십명의 이집트 젊은 남자애들이 맨날로 사막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 피라미드가 보였다. 난 카메라를 계속 눌러댔다. 보물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화 속에 내가 온듯한 기분. 특권을 누리는 기분.

그는 굴절 피라미드 앞에 날 내려줬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의 아들과 그의 친척과. 이제 이집트에 온지 하루인데, 이런 경험을 하다니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값비싼 경험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프타르(breakfast)’가 준비돼 있었다. 양고기도 있었고 속을 비운 호박에 볶은밥이 채워진 것 같이 별희안하게 많았다. 난 정말 그냥 마구 먹었다. 맛있었다.

밥먹고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해가 완전히 졌다. 에고, 빨리 가야겠다. 난 알리아저씨한테 입고 있는 그 이집트 전통옷을 사고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기 조카를 시켜 나를 옷가게로 안내해줬다. 40불에 그 옷을 샀다. 물론 비싸게 샀다. 이집트유학을 계획하며 최대한 현지화 하자는 일념하에 평상복도 이집트사람처럼 하자고 했기 때문에 첫날부터 급한 마음에 사다보니 일반가보다 조금 더 비싸게 샀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때 산 갈라베야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갈라베야가 됐다.

알리 아저씨 동네에서 봉고차를 타려고 하는 데 어린아이들이 불꽃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나라 쥐불놀이처럼 깡통에 불동이를 넣어 돌리는가 하면, 싸구려 화약 폭죽을 마구 터트려 댔다. 라마단 기간의 단상들이었다.

길도 잘 모르는 가운데 일반외국인은 절대 가지도 않는 갈 일도 없는 기자 사막지역의 한 누추한 마을 기행은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첫날 겪은 것이지만 1년 6개월 간의 기행 중 단연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건 아마 정말 뭣도 모르고 마구 이집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풋내기의 개끼같은 거였기 때문일게다.

Fostering the open mind to understand the arab world which is distorted in many ways. Knowing the fact and the truth is most important.
Stonebird, writer wants to be a ‘News Caravan’ being stepping stone between Korea peninsula and 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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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김동주

    2009/12/21 at 1:50 pm

    그렇지요. 아랍에 대해, 이슬람에 대해 여러가지로 잘못 알려진 부분이 적지 않지요.
    선입관 없이 객관적인 접근이 쉽지 않은 실정이기도 하구요.
    가자기 이집트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지는군요.   

  2. 노석조

    2009/12/21 at 3:09 pm

    아, 이집트에 가보셨었군요. 반가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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