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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볕 좋은 겨울날, 가사를 돌보다 - 심장 위를 걷다
볕 좋은 겨울날, 가사를 돌보다

한참 자다가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본 후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녁 9시 17분.

으악!!!!

이러면 안 되는데……. 털썩.

종일 집에 틀어박혀서

실내 온도 25도로 고정시켜놓고

가습기 틀어놓은 채,

피자 시켜먹고,

TV 보고,

책 읽고,

침대에서 뒹굴다가…

너무 졸려서 오후 5시쯤 스르르 불도 켜놓은 채 잠이 들었거든요.

자다 보니 계속 잠이 와서

중간에 일어나 아예 불을 꺼 버렸습니다.

아침까지 연이어 잘 심산이었지요.

한참을 잤습니다.

중간에 몇 번 깼지만,

지금 일어나면 밤에 못 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무감으로 계속 잤습니다.

자고, 자고, 또 자다가

지쳐서

지금쯤이면 설마 일어나서 딴 짓을 할 엄두가 안 나도록

시간이 흘러갔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살짝 일어나 시계를 보았더니

밤 10시도 안 되었더군요.

새벽 4시는 되었을 걸로 기대했는데… ㅠㅠ

결국,

머리가 지끈거려서 더 이상 못 자겠고

일어나서 남은 피자 먹고,

TV 보고,

친구랑 통화하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부엉이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오늘 잠은 다 잤지요. 네.

의도하지 않은 낮잠을 자게 되는 것이 싫어서

주말에도 항상 약속을 만들어 억지로 밖으로 나가곤 합니다.

근데 주말마다 계속 밖으로 나가는 것도

하다보니 지치더라고요.

이번 일요일만은

날도 추운데 꼼짝도 않고 집에서 한 번 푹 쉬어보자고

단단히 결심을 하고 틀어박혀 있었는데

그만 동면을 해 버렸습니다.

올 겨울 들어 제일 춥다는 날이었습니다.

창문을 열었더니 유리조각이 부서지듯 쨍한 겨울 바람이 들어오더군요.

그러나 햇살은 더할 나위없이 환해서

추운 날씨와 대비돼 더 값지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집안 청소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가장싫어하는 일이 바로모든 종류의’정리정돈’인데

특히나 청소를 싫어해서

정말 맘 잡고 청소하는 일이 1년에 한 번이 될까말까 합니다.

왜냐고요?

너무 소질이 없어서 청소를 하거나 정리를 한다고 해도

깨끗해 보인다거나 깔끔해 보이지 않거든요.

여전히 방은 엉망진창…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니

청소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한번쯤은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개 겨울이었습니다.

청명한가을날이나

따스한 봄날이 아니라,

오늘처럼 대기는 차갑고 햇살은 밝게 빛나는 겨울날

아찔하게 차가운 바깥 공기를 쐬면서

활짝 문을 열어놓고 청소를 하고 있노라면

어릴 때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였던 것 같은데

제목이 아마 ‘홀레 할머니’였던 것 같아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계모에게 구박받던 한 여자아이가

우물에 떨어져서 신비한 세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소녀는 그 세계의 어떤 집에 가정부로 취직을 하게 되는데,

그 집 주인이 ‘홀레 할머니’라는 이름의 할머니였지요.

(이 할머니는 커다란 앞니를 가진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소녀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집안일을 척척 잘 해서

할머니의신임을 얻게 되고요,

집에 돌아갈 때 할머니는 그간의 일에 대한 보상으로

소녀의 몸 위로 비처럼 금이 쏟아지게 합니다.

온몸에 금을 잔뜩 붙인 채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새어머니와 의붓 언니의 시샘을 받게 되고,

이런 이야기들에서 으레 그러하듯,

샘이 난 의붓 언니는 소녀를 따라하려 하지요.

그런데 언니는 일도 잘 못하고 게으름을 부려서 할먼의 미움을 사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온 몸에 코르타르가 잔뜩 묻어서 돌아간다는 뭐 그런 이야기랍니다.

어릴 때는 당연히 주인공 소녀에게 동화되었고, 소녀 편을 들었었지만

지금다시 생각해보니의붓 언니가 가엾어지는군요.

남의 행운을 시샘한 건 죄라면 죄겠지만서도,

가사일 못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의붓 언니는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서 부렸겠습니까..

일을 잘 못하니까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거지요.

여자라면 당연히 가사에 능해야한다는

아주 그릇된 고정관념을 어린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동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야기가 길었는데요.

청소를 하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던 이유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장면때문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소녀는 할머니를 도와

깃털 이불을 터는데요…

이불을 털 때 날리는 깃털이

바로, 세상에 내리는 눈이랍니다.

즉 눈이 내리는 날은,

홀레 할머니가 깃털 이불을 터는 날이지요…

청소를 하면서 오리털 이불을 반듯하게 매만지고 있자니

홀레 할머니의 깃털 이불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이라 그렇겠지요.

홀레 할머니가 깃털 이불을 털어서

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었답니다.

오래간만에 걸레를 깨끗이 빨아 널고,

빨래통에 담겨있던 빨래도 세탁기에 넣어 돌렸습니다.

날은 추워도 볕이 좋아 그런지

금방 마르더군요.

빨래를 널고,

마른 빨래를 개고 있자니,

다음의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4회

일본 근대 서양화가

사카모토 한지로(坂本繁二郞)의 1910년작,’張リ物(하리모노)’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張リ物’란 ‘천 등을 빨아서 재양치거나 하여 말림, 또는 그 천’이라고 되어있군요.

‘재양치다’라는 말을 몰라서

또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재양 載陽
[명사]명주나 모시 따위를 빤 뒤에, 풀을 먹여 반반하게 펴서 말리거나 다리는 일.

재양틀에 꿰매어 말리거나 재양판에 붙여서 말리기도 한다.

우리 말로 풀이하면 ‘풀먹이기’ 쯤 될까요?

……역시 저는 ‘가정적인’ 단어에는 약한 모양입니다. ^^;

이 그림은 사카모토 한지로가

제4회 일본 문부성 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문전’이라는 약칭으로 흔히 불리는 ‘문부성 미술전람회’는

메이지 40년인 1907년에프랑스의 ‘살롱’을 본따개설되었지요.

일본 화단에 서양화가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큰 역할을 한

전시회이면서,

많은 화가들이 명예욕에 휩쓸려문전의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무난하고 아카데믹한 스타일로만 그림을 그리도록 만든 주범이기도 합니다.

모든 제도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으니까요.

그림을 보면

분명히서양 그림이면서도

약간은 미숙한 무언가가 느껴지지요.

당시많은일본 화가들이 그러했듯,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르느와르 느낌도 나고요.

화분에 푸른 잎새들이 있고,

화면의 여인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야외에서풀을 먹이고 있는 걸 보니

겨울은 아닌가 봅니다.

가사일을 싫어하는 저같은 사람마저도

세탁과 청소를 하고싶게끔 만드는

볕 좋은 오늘같은 날,

습관적으로 떠올려보는 그림이랍니다.

벌써 월요일 새벽,

모두들,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날씨가 무척 춥긴 한데,

이럴수록 ‘꺾이면 지는 거’랍니다.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9 Comments

  1. 참나무.

    2009년 12월 7일 at 7:27 오전

    참으로 긴 이야긴데 전혀 길게느껴지지않는 이 필력에 놀랄뿐입니다
    로긴 하기 전에 ‘워킹 온 디 에어’ 들어서인지 눈 이야기? 하다
    ‘유리조각이 부서지는 쨍한 겨울바람에서…’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추위’ …감각체 문체도 생각하다
    오늘은 무슨그림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그림이랑 화가랑 생소한 단어네요
    예전에 풀맥여 홍두깨에 돌돌말아 방망이질 하던 할머님 모습도 떠오르고

    여튼 아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오늘이 대설이지만 눈소식은 없다네요 라지오에서…^^
    송년의 달 멋진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2. 파이

    2009년 12월 7일 at 8:42 오전

    좋은 아침입니다~
    참나무님, 안녕하세요?

    월요일 아침은 느긋해요. ^^
    아람님의 글을 읽고 웃음이.. ㅎㅎㅎ
    이 대목에서요.

    [남의 행운을 시샘한 건 죄라면 죄겠지만서도,
    가사일 못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의붓 언니는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서 부렸겠습니까..
    일을 잘 못하니까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거지요.

    여자라면 당연히 가사에 능해야한다는
    아주 그릇된 고정관념을 어린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동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

    게다가 소녀는 얼굴이 하얗고 예쁘고
    의붓언니는 뚱뚱하고 못생긴데다 얼굴에 더덕더덕 뭔가 났을것만 같은..
    어릴 때 동화, 만화에서부터 주입 되어진
    외모에 대한 편견이예요. ^^

    전 청소와 정리 정돈은 좋아라~ 하는데,
    걸레질이 아주 별로예요. ㅎㅎㅎ

    지금 창 밖의 파란 하늘을 보니
    눈은 조금 더 기다려야겠어요.
    네.. 저도 눈 기다려요~
    홀레 할머니가 깃털 이불 터는 날!

       

  3. 현우

    2009년 12월 7일 at 10:25 오전

    붙인 건 떼기 쉽고, 묻은 건 무쟈게 지우기 힘들 텐데…

    못됐다! 그 할마이.   

  4. 곽아람

    2009년 12월 7일 at 1:38 오후

    참나무님/ 전 그 홍두깨질이라는 걸 소설에서만 읽었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한 번 보고 싶어요. 아버지 와이셔츠 깃에 어머니가 풀 먹이는 건 보았지마서도.. 그건 분무기에 든 풀이라 ㅎㅎ 오늘이 대설이군요, 몰랐습니다.

    파이님/ ㅎㅎ 웃음이 나셨다니 ㅎㅎㅎ 가사에 소질이 없는 저로서는.. ㅠㅠ 그 의붓언니가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아마도 소녀는 예쁘고 의붓언니는 못생겼겠지요. 계모는 왠지 심술궂고.. 그 편견이란 게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청소와 정리정돈을 좋아하시다니 부럽군요. 전 요리는 좋은데 설거지는 싫고, 어지르는 건 좋은데 청소는 싫답니다. ㅎㅎ 아, 언제쯤 눈이 올까요?

    현우님/ ㅎㅎ 그러게요 코르타르라니 너무하죠? ㅎㅎ 홀레 할머니의 심술이 장난 아닌 것 같습니다.    

  5. wonhee

    2009년 12월 7일 at 11:59 오후

    ‘화려한 싱글의 느긋한 주말 보내기’를 읽는것 같군요. ㅎ
    주말에는 쉴틈없이 아이들과 함께지내야 하는 저에게는 무지 부러운 생활입니다.
    ‘하루라도 이렇게 여유롭게 보낼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

    동화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함부로 남 따라하지 말자’,
    그리고 ‘남의 전문성을 얕잡아보지 말자’ 입니다. ㅋ

    동생이야 (아마도) 신데렐라 같이 계모의 구박에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면서
    청소에는 도가 튼 경지에 이르렀기에 홀레 할머니의 마음에 쏙 들었겠지만
    의붓 언니는 손끝에 물 한방울도 안 묻히며 ‘귀한 몸’으로 살았을텐데
    청소를 잘 할 수가 없겠지요. ㅎ
    그런 언니가 자기도 금을 온몸에 붙이고자 하는 욕심으로
    동생의 ‘전문성’을 얕잡아 보고 무모한 도전을 했으니 결과야 눈에 보듯 뻔하겠지요.

    평범한 일상일 수 있는 주말의 하루를 엮어서 재미있게 풀어낸 글 잘 읽고 갑니다. ^ ^   

  6. 곽아람

    2009년 12월 8일 at 6:09 오후

    ‘화려한 싱글’이 아니라 ‘처절한 싱글’이랍니다. ㅎㅎ 근데 기혼자들은 부러워하시더라고요. 원희님의 동화 분석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전문성 생각은 해보지 못했네요 ㅎㅎ 그러게요, 함부로 남을 따라하면 안 되지요 ^^   

  7. 김준학

    2009년 12월 8일 at 6:40 오후

    저랑 비슷한주말을 보내셨네요~ 저 역시 빨래하고, 청소하고 그리고나서 나른한 일요일을 보냈어요. 날씨도 추워서 집에서 책보고, 정리하면서 하루가 금방갔네요~
    아람님 책보다가, 빨간머리앤 책을 다시 읽었어요!   

  8. bahan

    2009년 12월 8일 at 10:31 오후

    곽기자님의 댓글에 동감합니다. 누가 싱글을 화려하다 했는가? 처절하기 그지 없지요.
    저는 금요일 저녁 집에 들어와서 월요일 아침에 다시 집밖으로 발을 디딜때 약간의 희열을 느낍니다. 주말내내 집에 쳐박혀 있었다는 말 안되는 성취감이랄까? 다시 내가 충만해집니다(내 나태합의 극치?) 5일 동안 "지친" 내 심신을 위해서는 집에서 뒹구는게 최고죠. 엄마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생활 패턴 . . . 아주 즐겁습니다.
    그리고 정리정돈에 잼뱅이라도 괜찮지 않습니까?
    포스트 읽으면서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또 있구나. 그럼 난 특이한 애가 아니라 어느 부류의 하나구나"라는 동질감에 반가웠습니다:)   

  9. 곽아람

    2009년 12월 9일 at 11:42 오전

    김준학님/ 빨강머리앤은 언제 읽어도 좋은 책이죠.. 뒤에 나온 시리즈물, 그러니까 앤이 어른이 되어서의 이야기도 좋지만 역시 1권의 매력을 따라잡기는 좀 힘들어요. 추운 날의 이점은 나가지 않아도 뭔가 손해본 것 같지 않다는 거 ^^

    bahan님/ ㅎㅎ 처절한 싱글에 공감해주신다기 감사합니다. 전 월요일 출근할 때마다 회사가 절 구원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_-; 가족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혼자 살면서 뒹구는 것도 힘들다는.. 특히 피자 한 판 다 못 먹어서 점심때 먹었던 피자 저녁에도 먹고 냉동고에 얼릴 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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