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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휴가 마지막날의 새벽에 - 심장 위를 걷다
휴가 마지막날의 새벽에

9일간의 휴가가 끝나고

날이 밝으면 출근합니다.

세찬 비가 내린 날들이

유난히 많았던 휴가 기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자니

마음이 무겁군요.

어머니와 3박 4일간 홍콩 여행을 다녀왔고,

이틀간 전세집을 구하러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습니다.

기적적으로 집을 구했고,

10월 말에,

8년간 살았던 마포를 떠나

서대문구 주민이 됩니다.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는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네요.

8년이란 참으로 긴 세월이어서요.

집 주인 아저씨께 "집을 내놓겠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래도 서운하네"라는 답이 돌아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8년간 이 곳에 살면서 꽤나 트러블이있었는데

그동안 정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어제, 오늘 계속 심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원, 우체국, 도서관이 한데 모여있는

이 동네의 놀라운 편의성과 작별해야한다는 사실이요.

아니 그것보다도,

골목 귀퉁이의 저 집 담장 위로 삐죽이 솟아나온 나무가지 끝에

어떤 꽃들이 피는지 알고 있습니다.

법원 울타리로 비져나온 나뭇가지 끝에 봄이면 어떤 빛깔의 새순이 돋는지도.

골목의 목련나무에서 커다란 꽃잎이, 무겁지만 둔하지 않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아스팔트와 부딪히는 광경을 여러 번 보았지요.

예스러운 지붕의 집들과, 계단과, 담벼락들을 아우르는 길들을무수히 걸었거요.

밤이면 뒷골목의 집들에 켜지는 불빛의 비밀스러움과,

문을 닫은 상가 처마 아래에 깃들었던연마되지 않은 어둠에서 묘한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어요.

이 모든 것들과 시간을 들여 친해졌는데

이제,

안녕이라니.

아니,

그것보다도.

저 골목길을 눈물을 훔치며 들어서던

스물 다섯,

사회 초년생의 서투르고 애띤제 모습과

휴일 어느 날,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함께 골목길을 나섰던 친구들….

늦은 밤 집앞까지 바래다주고서

계속 창문 밖에서손을 흔들어주었던

오래전의 그를 비췄던가로등.

어느집 담장 위로 홍매화가 발그스름하게 얼굴을 드러낸 봄날,

함께 한가로이 동네를 거닐었던또 다른 오래전의 그와…

그런 기억들이,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쉽게하는군요.

과거의 추억과 이별해야

새로운 추억을 맞아들일 수 있겠지요.

센치한 기분에 휩싸여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사들인 오규원의 시집 ‘한 잎의 여자’를 읽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늘상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16 Comments

  1. 오공

    2010년 8월 30일 at 6:56 오전

    내 것이라 여겼을 땐 모르다가,
    이별이 예고되어야 더 이뻐보이는 사람과 주변…
    ..이 것이 정상인지, 제가 미련한건지 모르겠네요^^;;

    그보다,잘못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막 사는건지, 잘 사는건지
    어쨋던 제게 밤은 늘 악마같기를 바래용~~~
       

  2. dhleemd

    2010년 8월 30일 at 12:12 오후

    작별을 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보이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지요.
       

  3. 곽아람

    2010년 8월 30일 at 2:14 오후

    오공님/ 저도 그렇네요. 내 것이라 여겼을 땐 몰랐었는데 이별이 예고되고나서야 살던 집과 살던 동네가 더 예뻐보여요…. 전 밤은 좀 천사같으면 좋겠는데 늘 악마같아서…

    dhleemd님/ 오랜만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4. 쉬리

    2010년 8월 30일 at 3:16 오후

    우리 딸과 동갑인 아람님.
    동갑내기 아람님의 책을 보고 도전을 좀 받으라고
    책도 사주고 했었는데….

    그 딸이 오월에 결혼을 했다가
    직장 때문에 우리 딸도 이사를 하네요.

    아람님 새로 이사하는 집에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께요.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인연도 만들고요~   

  5. 곽아람

    2010년 8월 30일 at 5:27 오후

    쉬리님/ 저도 새 집에서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따님도 그러길 빕니다. 갑사합니다. ^^   

  6. wonhee

    2010년 8월 31일 at 10:11 오전

    드디어 큰집으로 이사를 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그 많은 책들을 잘 정리해 놓을
    공간이 생기게 되어 좋으시겠어요. ㅎ

    하지만 정든 곳을 떠나는 것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이지요?

    그곳에서 지냈던 시간, 했던 생각들,
    읽었던 책들, 보았던 연속극들 ….

    문득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한 말이 떠오르는군요.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다른 사람에겐 별다를 바 없는 집이겠지만
    님이 그곳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그곳을 소중하게 만들었겠지요.

    8년의 소중한 기억 잘 간직하시고
    새로운 집에서 행복한 일들 많길 바랍니다.   

  7. 풀트로틀

    2010년 8월 31일 at 11:16 오전

    축하드려요. 먹고 입는거야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집은 변화가 가장 큰 것이지요.
    항상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 설레임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버릴 건 버리고, 두고 갈 건 두고 가시길.
    비워져야 다시 채워지는거랍니다.    

  8. 곽아람

    2010년 8월 31일 at 5:45 오후

    원희님/ 네, 드디어 이사갑니다. 객관적으로 보아 ‘큰 집’은 아닙니다만, 8평 원룸에 비해서는 상당히 큰 집이지요. 짐작하신대로, 책을 꽂을 공간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새 집엔 더 이상 책을 들이지 않는 게 목표랍니다.
    말씀하신대로, 정든 곳을 떠나는 건 반갑지만은 않네요… 어린왕자의 장미꽃처럼, 이 집을 길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으니까요. 좋은일도, 나쁜 일도 많았었는데 ^^; 언제나처럼 격려 감사합니다.

    풀트로틀님/ 비워져야 다시 채워지는 거지요. ㅎㅎ 근데 버릴 게 너무 많아서.. 이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ㅜㅜ   

  9. 하늬바람

    2010년 9월 1일 at 10:28 오전

    책을 보고 찾아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기자님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언니라고 불러야 할것 같은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서른쯤 그림을 보는 아람님의 감정이 고스란히 공감되었다고나 할까요 ㅋㅋ

    이사가신다는 글을 보니 제가 학교 다닐때 자취를 한지라
    짐을 싸매며 이사다니던 기억들이 나네요.

    새집에 대한 설레임도 한가득이지만
    짐을 싸고 풀고 그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죠 ㅠㅠ
    그래서 빨리 시집가서 집이란건 가지고 서울에서 살고 싶단 생각 많이 했었어요 ㅋ   

  10. 서영희

    2010년 9월 1일 at 1:41 오후

    아, 이사… 소설 한 편 나올 것 같은 센치함이 밀려들긴 하더군요. 최근에 저도 이사했는데 이사 나간 분들이 결혼 사진을 놓고 가신 거예요. 아니 이 사람들, 어쩜 결혼 사진을…. 그랬는데 저역시 결혼사진을 놓고 왔더랍니다 하하하… 찾으러 갔더니 문밖에 빈박스들과 함께 기울려 있더군요. 버려질뻔한 결혼사진 ㅎㅎㅎ 결혼은 살다보니 그리 의미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    

  11. 곽아람

    2010년 9월 1일 at 2:07 오후

    하늬바람님/ 짐 싸고 풀고 스트레스.. -_-;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아… 정말… ㅜㅜ ㅎㅎ 저도 그 ‘결혼해서 집이란 거 가지고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사를 안 가고 버텼건만.. 시집가느니 집을 얻는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손 들고 집 구했어요 ㅎ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이젠 부족한 게 없으니 더 가기 힘들겠다고 ^^;

    영희/ 어머.. 그 결혼 사진 이야기는 참…. 그거야말로 무슨 소설 소재로 써도 되겠다. ㅎㅎㅎ 버려질뻔한 결혼사진이라니!   

  12. 김준학

    2010년 9월 1일 at 8:21 오후

    알찬 휴가를 보내셨어요^^ 큰 집으로 이사가게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이번 이사하면서, 방정리까지~ 깔끔히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교보문고 오픈해서 좋으시겠어요! 오픈해서 가니까 좀 정신없어도
    넘 좋았어요ㅎㅎ    

  13. 곽아람

    2010년 9월 2일 at 6:33 오후

    준학님/ 알찬 휴가였나요? ㅎㅎ 고맙습니다. 제발 방 정리가 잘 되어야하는데. 교보문고 오픈해서 좋긴 한데 정신없는 건 정말….-_-;   

  14. 김미영

    2010년 9월 3일 at 4:07 오후

    휴가 다녀오셨군요.우리 딸도 얼른 키워서 함께 여행다녀와야 할텐데..아람님처럼 엄친딸이 되면 더욱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같을 순 없겠죠.자식을 기르면서 참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자식은 역시 나의 분신도 아니고 대리전을 치르는 대상도 아닌듯 해요.
    이사 결국 하시게 됐네요.근데 직장 나가면서 언제 정리하실란지 제가 다 걱정입니다.정리의 달인과 20년 가까이 살다보니 준정리의 달인이된 처지라 후배들도 제게 살림을의뢰하기도 한답니다.당근 남편이 옵션입니다.울남편이 못질과 각종 수리담당이거든요.필요하심 연락주세요.일당도 싸답니다.삼겹살에 쏘주면 되요.ㅎㅎㅎ    

  15. 곽아람

    2010년 9월 3일 at 5:54 오후

    이사 결국 하게 되었어요. 알려주신 동네도 알아봤는데 넘 비싸서… 포기.. ㅜㅜ 저두 정리의 달인 남편 만나고 싶어요 ㅎㅎㅎㅎ 기장님은 넘 고급 인력이라 의뢰하기 어렵구, 그냥 이사 전문가들께 의뢰할려구요! 감사합니다!!!   

  16. 김미영

    2010년 9월 3일 at 7:10 오후

    ㅋㅋㅋ 이사후 집들이 한번 하심 달려가서 필요한 조치들을 다 해드릴 수 있다는..ㅎ제 후배들과 다들 이용한답니다.안비싸대두요…ㅋ
    그날 곽기자님 만난 날 무악재사는 선배집 현관 노루발 달아줬는데요 남편이 이런 난이도 낮은 공사 의뢰하면 자기를 무시하는 거라니까 선배왈 "그럼 물구나무 서서 달으세요!"했다는…

    결혼에 관해 적극적인(?) 곽기자님
    제가 담에 만나서 결혼 생각 확 달아나게 해드릴게요.
    저와 한시간만 이야기함 절대 결혼안할거란 생각이 팍팍….ㅠ
    저는 지금 미혼이라면 결혼은 절대 안하고 연애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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