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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베르메르 취재기 - 심장 위를 걷다
베르메르 취재기

전시 비수기의 미술 기자는 괴롭습니다.

매주 면은 있는데 기사 거리는 없으니까요.

매번 기획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잠을 설치며 고민하다 보면

‘이러느니 내가 차라리 예술을 하고 말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하여 지난주에도 도쿄 휴가에서 본 것들을 써먹었습니다.

우에노역에서 우연히 본 전시 포스터 때문에 보러 간 전시였어요.

시부야의 분카무라(文化村) 미술관에서 열리는

‘베르메르로부터의 러브레터’전입니다.

분카무라는 일본의 철도재벌 도큐 그룹이 운영하는 복합문화시설인데요,

고급 백화점인 도큐 백화점에 딸려 있는 곳이랍니다.

P1050294.jpg

전시의 컨셉은 17세기 네덜란드 그림 30여점을 통해

베르메르의 시대를 시각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전시의간판스타 격인 베르메르 그림 3점도 좋았지만,

다른 작품들도 아주 훌륭해 ‘백화점 미술관 전시가 과연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제 선입견을 싹 씻어주었습니다.

특히나 작품 설명 카드가 아주 자세해서

베르메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작품 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vermeer02.jpg

베르메르, ‘푸른 옷을 입고 편지를 읽는 여인’

vermeer-lady-writing2.jpg

베르메르, ‘편지를 쓰는 여인’

lady-writing-a-letter-with-her-maid-jan-vermeer.jpg

베르메르,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특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의 ‘푸른 옷을 입은 편지를 쓰는 여인’은

막 복원을 마치고 공개된 것이었고,

일본에서는 최초 공개였는데

저 개인으로서는 두번째 책 ‘모든 기다림…’에 저 그림을 썼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푸른 옷…’과의 남다른 인연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건 두번째 그림 ‘편지를 쓰는 여인’이더군요.

저 그림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반짝거리는 진주의 느낌에 즐겁고 황홀해졌어요.

관객을 바라보는 매혹적인 눈초리도 마음에 들고요.

아트숍에서 ‘푸른 옷…’ 그림의 모사본을 팔고 있었지만

‘연인과 헤어져 눈물 짜고 있는 여자라니 재수없고 칙칙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절대로 집에는 걸어놓고 싶지 않더군요.

대신 ‘편지 쓰는 여인’ 냉장고 자석을 사서 집에 붙여놓았습니다.

어쩐지 연애 기운을 불러모으는 그림 아닙니까?

고야전을 보았던 우에노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6월 30일에 베르메르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도쿄도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포스터와 맞닥뜨렸습니다.

cycameraimage(23).jpg

…….집 냉장고에 붙여놓았습니다.

그와 함께

6월에 열리는 서양미술관의 베를린 국립미술관전에서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이 최초로 일본에 온다는 내용의 포스터도요.

Jan-Vermeer-van-Delft-XX-Young-Lady-with-a-Pearl-Necklace-1660-5.jpg

‘뭐야, 올해 일본 전시 얼굴마담은 베르메르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왜 일본에서는 베르메르 전시가 잦을까’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어요.

제 기억에 몇년 전에도 베르메르의 ‘밀크메이드’가 일본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거든요.

30여점밖에 안 되는 베르메르 그림이 유독 일본 나들이가 잦은 이유는 뭘까?

베르메르 그림이 유독 일본 사람들에게 먹히는 이유가 잊지 않을까?

……뭐, 이러한 궁금증.

전시를 볼 때는 기사를 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귀국 후에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취재를 하다보니

저 스스로가 그 주제에 너무 빠져버려서

‘아,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의까지 생겼습니다.

분카무라 미술관에 전화를 걸어 PR 담당을 찾아내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하는 과정은 약간 피곤했습니다.

국내 미술관이었다면 정말 쉬운 일이지만

도쿄 미술관의 컨택 포인트를 전혀 모르는데다가,

게다가 영어로도 일본어로도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서

반벙어리짓을 하고 있자니

‘아, 일어 공부나 좀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불쑥.ㅠㅜ

그래도 운이 좋아서

연락이 된 그날 관객 수를 물어보니

‘전시가 교토-미야기 순회전인데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60만 돌파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주귀고리 소녀’가 올 예정인

도쿄도미술관에도 전화를 걸어 더듬거리며 물어봤는데

2007년에 개최했던 베르메르 전시에 90만명의 관객이 들었고,

1926년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이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죠.

그리고 일본문화와 일본미술사 전문가들께 전화를 드려

일본인과 베르메르와의 관계에 대한 강의를 한참 들었어요.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흥미로왔던 것은

일본엔 역사적으로 재앙 이후에 미술 붐이 불었다고 해요.

1920년대에도 관동대지진 이후에 미술전집 출판 붐이 일었고,

버블 경제의 거품이 꺼진 1990년대에도 사람들이 전집으로만 보던 미술 작품의

실물을 보기 위해 해외로 떠났다고 해요.

아름다움에의 탐닉은 극심한 충격에 대한 ‘치유’를 위한 일본인 나름의 방어기제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는데 기사 맥락과는 동떨어져서 패스.

일본은 우리보다 서양미술을 받아들인지가 오래 됐고,

그래서 일본에는 유럽 미술관의 꽤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자주 옵니다.

미술 애호가들 중에서는 전시를 보러 일부러 도쿄에 가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진주 귀고리 소녀’와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의 일본 전시가

베르메르의 팬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래간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어 하며 기사를 썼습니다.

(그림 제목 중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은 일본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편지를 읽는 소녀’로 돼 있어서

영어 제목을 번역해 기사에 썼는데 사실 소녀처럼 보이지는 않죠?)

여름 휴가는 ‘진주 귀고리 소녀’ 보러 다시 도쿄로 갈까 고민중…

아래는 기사 링크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30/2012013002820.html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9 Comments

  1. 참나무.

    2012년 2월 6일 at 8:50 오전

    아름다움에의 탐닉은 극심한 충격에 대한 ‘치유’

    강하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진주 귀고리…전시 기간도 알고싶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2. 김진아

    2012년 2월 6일 at 3:22 오후

    안그래도, 기사 읽어내려가면서,

    두분 생각이 났죠. ㅎㅎ
    여름의 ‘진주 귀고리 소녀’기사도 기다려 봅니다.
    행복하게요. *^^*

    참나무님, 곽아람기자님도…^^   

  3. 곽아람

    2012년 2월 13일 at 10:36 오후

    참나무님> 전시 기간이 기사에 썼는데 6월 20일부터 9월 언제까진가.. 할 거예요.
    김진아님> 여름엔 ‘진주귀고리’ 보러 ‘놀러’ 가야죠 ㅎㅎ 행복하세요.    

  4. 이지나

    2012년 2월 15일 at 12:26 오전

    안녕하세요, 기자님!
    연말 크리스마스 카드이후 첫 인사드려요. 이지나입니다.
    먼저.. 일본인의 베르메르 사랑- 저도 참 궁금했던 점인데
    (대학시절부터 도쿄를 자주 여행할 기회가 있었고,
    작년 지진났을 때도 도쿄에 있었거든요..) 이점을 아주 말끔히^^ 해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쿄에서 가장 좋아했던 미술관 중 하나가 분카무라였는데
    그곳을 소개해주시고, 또 그곳에 베르메르가 있었다니, 역시나 놀랍네요.
    (몇 년 전에도 분카무라에서 보았던 거같아서..)

    저도 올 여름에 베르메르 만나러 도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두번째 <편지를 쓰는 여인>은 정말 진주가 빛이 나는 것같아서
    꼭 한 번, 언젠가 직접 보고싶은 그림이네요.

    일본은, 참 문화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같아요.
    같은 전시여도 함께 보는 사람, 관람객의 태도와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그 전시가 100%달라질 수 있는데
    저도 기회가 좋아 (유학생 친구들이 많아) 학창시절 도쿄에서 본 몇몇 전시들이
    이미 제 전시의 기준점(!)이 되어버려 서울의 전시들에선 실망하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아무쪼록 앞으로도 좋은 기사 많이 써주세요. 고맙습니다 !!   

  5. 참나무.

    2012년 2월 16일 at 3:22 오후

    죄송해서 어쩌나
    제가 기사를 읽고도 왜 기억을 못했는지
    요즘 오독증에도 시달리고있답니다
    ‘서울 아트 가이트’ 월간지와 함께 기자님은 정말 저에겐 친절하신 가이드이신데…

    서울대학 미술관 새로 바뀐 프로그램도 체크해뒀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가가람 기자님…^^*   

  6. 곽아람

    2012년 2월 17일 at 12:21 오전

    이지나님> 네, ‘편지를 쓰는 여인’ 참 좋아요. 일본은 일찍부터 서구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경제력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으니 좋은 컬렉션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죠… 저는 다른 것보다 일본 전시에서 부러운 게, 국립 서양미술관같은 미술관에서 ‘고야’전이라든지, ‘뒤러’전이라든지 한 작가의 작품만 가지고 치밀한 모노그래프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거요… 우리는 아무래도 그렇게 하기 힘든 것 같은데, 일본은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참나무님> 제가 가이드라니 쑥스러습니다. ㅎ 서울대미술관에서 하는 네덜란드 마술적 리얼리즘 전시 재미있습니다. 한 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7. 다사랑

    2012년 3월 18일 at 11:55 오후

    편지를 쓰는 여인을 붙여놓고 연애기운이 몰려오길 기다리는 곽기자님!
    올 봄에 꼭 그렇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편지를 쓰는 여’과 ‘진주’는 화가의 특별한 기억이 있는 존재와 물건일까요?
    편지를 쓰는 여인 중 둘이나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네요.^^*

    무식장이 다녀갑니다.ㅎ   

  8. 곽아람

    2012년 3월 19일 at 12:40 오전

    다사랑님> ‘진주’는 빛을 반사시키는 존재라 반짝이는 빛에 관심이 많았던 베르메르가 즐겨 그렸던 소재랍니다. 아마 소품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부유한 장모의 것이라는 설도) 이 그림, 저 그림에서 다 쓴 듯 해요. :)   

  9. 김준학

    2012년 3월 25일 at 11:47 오후

    그러게요~ 일본에서 베르메르가 정말 인기가 많나봐요.
    2월에 서울노트라는 연극을 봤는데, 원작이 <도쿄노트>라는 일본연극이에요. 여기서도 베르메르의 작품이 소재로 나오거든요. 유럽의 전쟁으로 베르메르의 비롯한 그림들이 일본의 미술관으로 피난을 오게되는데, 서울노트에서는 서울의 미술관이고요ㅎㅎ
    베르메르는 자신의 집에서 두개의 방만의 그렸고, 창을 통해 빛을 받는 그림들만 그렸다는 얘기들이 연극에 나오는데, 위에 그림들을 보니~ 정말 그렇네요^^ 왜그랬을까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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