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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영국 출판사 취재기 - 심장 위를 걷다
영국 출판사 취재기

지지난주였던가요?

영국 출판사에서 한국 현대미술책을 출간하려고

미술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접촉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아,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템스앤허드슨에서 한다는데요"라는 말에 귀가 쫑긋.

템스앤허드슨(Thames&Hudson),

대학원 다닐 때, 수많은 책들을 제본 떴던 그 템스앤허드슨,

결국 제본한 책만 보고, 한 번도 오리지널은 보지 못했던 그 템스앤허드슨?

런던에 본사가 있고 뉴욕에 자매사가 있어서 두 도시의 강 이름을 따 명명됐다는 그 템스앤허드슨??

해외의 유명 출판사에서

한국 전통미술도 아니고 현대미술 책이 나온다면

기사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그 책 출간 관련해서

실무를 맡은 한국분이 서울에 와 있다길래

연락처를 부탁하고는 차후에 만나 자세한 이야길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트랜스글로브(TransGlobe)라는 중소규모 미술 출판사가 기획하고,

템스앤허드슨이 배포를 맡는 거라고 해요.

어라, 템스앤허드슨 출간이 아니야?

하고 다소 맥이 빠졌지만

예전에 출판 담당할 때 알고 지내던 분들에게 문의한 결과

그래도 일단 큰 출판사가 배포를 맡는다면

기사 가치는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취재를 시작했죠.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템스앤허드슨과 직접 접촉해야겠기에

템스앤허드슨 홈페이지에서 Press 담당자 연락처를 찾아

"당신들이 이런 책 배포한다는데 사실인가. 만일 사실이라면 이유가 뭐냐"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놓았습니다.

시차때문에 한참을 기다렸는데,

템스앤허드슨 담당자가 이메일을 확인한 건 확실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변이 없는 겁니다.

…하는수 없이 제일 싫어하는 일…..

…….영어로 전화걸기를 시도했는데

자동응답기가 받더군요. ㅠㅜ

….영어 통화보다 더 싫은 영어로 자동응답기에 메시지 남기기..

그래도 어떡해요. 안 할 순 없잖아요…

‘빨리 좀 확인해주세요’라고 남겼는데 곧 이메일 답변이 와서는

"책 배포 담당 부서에 물어봤더니, 아직 계약서에 사인 안해서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라고.

…청천벽력…

아니, 이게 뭐야, 아직 계약도 안 한 거였어?

다시 트랜스글로브쪽에 메일을 보냈더니

그 쪽 수석 에디터는 "우리 발행인과 그쪽이 구두계약을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나올 거다"라는 겁니다.

제가 다시 메일을 보내 "템스에서는 애매하게 말하더라"고 했더니

수석 에디터의 답변, "우리 발행인이 지금 책 만든다고 브라질 가 있는데 거기 오전 10시야.

전화 한 번 해 볼래?"라며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더군요.

…..전화………..

영국 영어는 안 그래도 알아듣기 힘든데

게다가 그 분은 이란계… 아, 정말 발음 알아듣기 힘들텐데

어쩌겠습니까, 전화해야죠…

그렇게 전화를 했더니 발행인은

"무슨소리냐. 네가 접촉한 사람은 아마 주니어 에디터일 거다. 나는 그 쪽 넘버원, 넘버투와 이야기가 다 끝났다.

이 책은 터키, 이란, 아랍, 브라질 등 특정국가 현대미술에 대한 시리즈 중 한 권이고, 나머지 책들도 다 템스랑 했다. 이 책도 그렇게 한다."

라는 겁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그가 말하는 템스의 ‘높은 분’의 비서 연락처를

홍보실에서 가르쳐준 게 생각났습니다.

마침 홍보팀에서는 계속 "트랜스 글로브 발행인에게 물어보라"고 하던 차,

일단 전화를 끊고 다시 템스앤허드슨에 이메일을 보내,

"그쪽 발행인은 이미 당신네 임원 XXX와 이야기가 끝났다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이걸 당신들에게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팩트에 어긋나지 않게 기사를 쓸 수 있다.."…..라고 하고 싶었으나…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고로…

"발행인이 임원과 이야기했다는데……….."까진 해놓고선..

그냥 "Can I trust him?" 해버렸다는. -_-;

써놓고 보니 trust라니 무슨 범죄자 의심하듯이 너무나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엎질러진 물….

근데 그 trust의 효과가 있었는지,

그 문제의 임원에게서 답장이 왔어요.

내용인즉슨

"지금까지 계속 트랜스글로브와 공동출판해왔기 때문에 이 책도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만 책이 내년에 나오기 때문에 서면계약은 아직 않았다. 그 책을 할지는 최후에 결정한다."

…이 정도면 거의 한다는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돌려서 이야기하는 건지.. ㅠㅜ

여튼, 다소 마음을 놓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기획력이 좋은 중소규모 출판사가

유통망을 갖춘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공동출판을 하는건

해외에선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해요.

그리고 이번 공동출판의 경우

책은 표지에 출판사명이 트랜스글로브라고 찍힌 것과

템스앤허드슨이라고 찍힌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오는데,

소매시장, 즉 일반 서점엔 템스앤허드슨 버전이 유통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그럼 일반 독자가 책을 사는데소매 말고 도매도 있냐. 트랜스 글로브버전은 뭐냐"고 물었더니,

박물관이나 기업에서 대량으로 직접 주문할 때는 자기네 출판사명이 인쇄된 걸로 갖다준다는군요.

그럼 일반 독자들 입장에선 결국 템스앤허드슨에서 책이 나오는거랑 똑같잖아요?

출판사 공신력은 책의 공신력으로 이어지니까,

만일 그렇게 책이 나오게 되면 파장은 제법 있겠지요.

그리하여,

정말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자신감을 갖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취재하면서 배운 점이 많아서 저 개인적으로는 뿌듯했던 취재였습니다.

어떤 생각들을 했냐면,

재작년에 출판 담당을 1년간 했던게 참 도움이 되었구나,

그리고 짧았지만 대학원 다녔던 것도 도움이 되었구나,

그러면서

얼마전에 인터뷰했었던 설치미술가 서도호씨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천으로 집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서도호씨는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땐 중고 재봉틀을 사다가 직접 바느질을 했다고 해요.

그는 유학시절 옷에 관심이 많아 의상학과 수업을 들었고,

웬만한 패턴은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봉틀 사용법을 익혔다고요.

그 때 배운 것들이 나중에 쓰이게 되었다며

자신은 세상엔 ‘우연’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기사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던 그 말이

계속해서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서툴고 어렵고 어리둥절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모든 실수와 어설픔이..(더듬더듬 영어로 전화하는 것 포함)

나중엔 다 어딘가에 쓰이겠지, 하는…

뭐 그런 생각들.

(근데 30대 중반에 전 왜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요..

20대도 아니고.. ㅠ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그취재의 결과물은 아래에 링크로 첨부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05/2012030502854.html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5 Comments

  1. shlee

    2012년 3월 7일 at 9:24 오전

    잠시 외국에 살때 홈쇼핑으로 물건 산 후
    그 물건 값이 계속 카드로 빠져 나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영어로 전화해야 했던 암담한 순간들이 떠오르네요.
    결국 영어 능통자에게 부탁해서 겨우 해결하긴 했지만…
    영어로 전화하기 너무 힘드러~
    수고 하셨네요.^^   

  2. 흰독수리

    2012년 3월 7일 at 10:04 오전

    취재원을 귀로 듣고….시작해서의 과정을 필름 돌아가듯이
    숨죽이고 진행과정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산고(?)라 할수없지만…….지면으로 올라오기까지의 고뇌
    글~~감사합니다   

  3. 곽아람

    2012년 3월 10일 at 2:02 오전

    shlee님> 네. 외국어는 대면하고 말하면 표정이나 제스처로 눈치챌 수 있는데 전화는 그게 안 돼서 힘든 것 같아요 ^^
    흰독수리님> 고뇌라기보다는 삽질이랄까요 ^^; 그래도 재밌었어요. 새로운 경험이라. 저도 감사합니다.    

  4. 2012년 3월 19일 at 10:09 오전

    월요일아침부터 곽기자님 글 보니까 좋습니다 ^^
    저도 30중반 넘으면서부터 우연이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대, 30대 초반에 의미도 없이 했던 일들이 나중에 요긴하게 도움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40,50 대가 되면 더 그렇겠죠.
    날씨가 참 좋습니다. 곽기자님도 좋은 한주일 보내세요.   

  5. 곽아람

    2012년 3월 19일 at 10:28 오전

    곰님>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갈수록 와닿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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