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멀리 기차인지 고속 전철인지 모르겠으나, 난 그냥 기차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한 남자는 창 밖을 바라 본 풍경을 통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연신 궁금하게 한다.
정말 이토록 가슴 한 구석의 서늘함과 과거로의 회상, 그리고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기쁘게 접했다.
알렝 레몽-
저자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제대로 접한다.
책 겉표지에 이력을 보니 유명한 잡지의 편집장을 지낼 만큼의 이력이 눈에 띄고 이 책이 발간된 것이 2000년도이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구식의 때가 묻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번역자의 필치의 힘도 있겠고 가장 중요한 저자의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같은 동질성, 그 당시의 누구나 겪었을 시대적인 상황이 비록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선 여전히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힘이 들어있지 않아서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순간 순간을 나 자신의 살아온 시간과 비교해 보게 됐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동안 한 집에서 부모님과 형제들과 같이 생활하고 단독을 벗어난 시간이 얼마 안되었기에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응팔의 골목의 정겨운 풍경들과 함께 이 책에서 그려진 가족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가족은 대가족이다.
10명의 형제자매와 부모가 한 집에서 살면서 겪게 되는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터득하게 되는 삶의 연장선들, 오랜 시절 우리나라의 옛 풍경을 연상시키는 엄마들의 냇가 빨래터 모습 묘사까지, 유머가 있고 따뜻함과 복잡스러운 생활질서가 있었으며 전쟁 이후로 여러 번 집을 옮겨 다니다 최종적으로 트랑이란 곳에 안착하고 그곳에서 형제들이 차례로 기숙사로 떠나면서 또 다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누구나 자라면서 겪는 유년시절의 놀이는 더 이상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하지 않게 됨을, 이 또한 인생의 한 순간과 작별하고 다시 새로운 만남에 적응하면서 살게 됨을 느끼게 해주는 각 에피소드들이 모든 감정을 다 동반하게 만든다.
시대적인 상황에 부응하고 전통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우파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집안 분위기와 함께 어릴 때는 몰랐던 부모 간의 불화를 겪으면서 고스란히 경험하게 되는 집안의 경직된 분위기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모르고 자란 자신의 성장기를 쏟아낸다.
술 마시고 들어오면 폭언을 일삼으며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이어지던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아버지의 죽음을 맞고 비로소 엄마가 가장의 길로 들어서는 결과를 낳는데 까지….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의 나이 53세, 자신이 비로소 당신의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실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왜 진작 솔직히 아버지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미련, 마음이 아픈 병으로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여자 형제에 대한 이야기, 간단한 위궤양 수술로만 알고 있었던 엄마의 병이 암이 전이되어 더 이상 손을 쓸수 없게 된 사연들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별의 상처를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철부지 적이 오히려 좋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여정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어느 날 불쑥 이별의 손을 전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주위에선 평판이 좋았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다른 중편인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전편에서 말하는 대가족 속에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삶을 회고하는 형식이라면 여기서는 본격적인 자신의 성찰 기이자 내면에 깃든 고백서이기도 하다.
친. 외가가 모두 전통적인 가톨릭이었던 영향과 형제자매 중 신부가 돼도 좋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자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는 1968년 5월에 일어났던 68 혁명이라는 이념의 대립과 자신이 갖는 종교적인 고뇌,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했던 젊은 날의 자신의 자화상을 돌아보는 자전적인 성격의 소설이다.
두 편의 책을 통해 저자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여형제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겪게 되는 인생의 작별의 순간이 그 순간마다 화해와 용서, 상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아쉬운 이별의 정으로 마감을 해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들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구구절절 생각났다.
이 노래를 들었던 당시가 서른도 되지 안됐던 때였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이 이 시간이 지나면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구절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대목마다 같은 울림을 주기에, 저자의 두 편의 글은 다른 책들보다 더 정독하게 읽게 만들었고 이는 아마도 이런 인생에 대한 쓸쓸함을 솔직하면서도 관조적인 자세로 쓴 저자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 읽고 책장에 보관해두는 책이 아닌 인생 전반에 흐르는 밝은 톤과 회색톤의 인생의 여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 다시 한 번 정독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