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에서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갱스터를 다룬 독자라면 대표적인 영화로 ‘대부’를 연상할 것이다.
스티븐 킹이 말했듯 대부 이후 최고의 갱스터 소설’ 이라고 했다던 작가 데니스 루헤인 소설인 ‘무너진 세상에서’ 란 책은 갱스터를 다룬 책을 목말라하던 독자들에게 단비로 선사할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2010년도에 처음 접했던 ‘운명의 날 1. 2부’, 2013년도에 읽었던 ‘리브 바이 나이트(밤에 살다)’, 그리고 완결 편인 이 책, ‘무너진 세상에서’로 커글린 가(家)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그의 역량을 발휘한 책이라고 하고 싶다.
1부작인 운명의 날에서는 솔직히 미국의 역사에서 큰 상처를 남긴 1919년 미국 보스턴의 사상 최대 경찰 파업을 다룬 역사소설이라 이 부분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들을 접해보지 못했기에 읽는 데에 있어서 약간의 정성이 필요했다면 본격적으로 커글린 가의 막내인 조의 인생의 황금기를 다룬 제 2부에서는 금주법 시대에서 어떻게 조가 아일랜드 혈통임에도 이탈리아인들이 주름잡고 있었던 마피아의 세계에서 살아 남아 사랑과 아내를 맞이하고 쿠바에서의 삶까지 다룬 책이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알다시피 뒷골목의 세계에서는 위계질서가 철저하다.
상하의 명령엔 아무리 끈끈한 정이 있고 혈육 이상의 감정을 지닌 사이라도 윗선의 명을 거부할 수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과 법이 있는 법-
‘무너진 세상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그들의 세계를 끈적거리면서도 우울한, 그리고 마피아의 세계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보통 시민으로 봤을 때의 조가 어떤 마음과 행동을 망설이게 되는지에 대한 긴박감을 그린다.
이제는 플로리다 템파 일선에서 물러나 친구인 디오에게 최고의 지위를 물려준 조-
아내가 죽은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싱글이자 아들인 토머스를 보면 항상 마음 한 구석이 찡함을 느끼는 남자다.
황금알을 낳게 해 주는 마이더스의 존재처럼 군림하되, 어느 누구에게도 원망과 비난의 대상이 아닌 그가 어느 날 살인청부의 대상으로 올랐다는 제보를 접한다.
왜, 누가, 무엇 때문에….
처음엔 무시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그런 말을 들은 이상 좀체 안정이 되질 못하고 서서히 마음의 창이 무너진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군지, 알게 모르게 피해를 주진 않았는지, 하지만 뭣보다 가장 염려스러웠던 부분은 자신이 잘못됐을 때 홀로 남겨질 아들 토머스에 대한 걱정이다.
비록 깨끗하게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삶이었지만, 아들 앞에서만은 특별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아빠란 것을 생각하게 하고픈 마음이 마피아라도 부모란 모두가 똑같음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들이 안쓰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가족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배제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마피아의 가족관을 보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득을 얻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며 총질이 난무하는 장소, 자신을 배신했지만 가족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인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친구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비정한 세계,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던 현장까지 보게 한 아버지로서의 조의 마음과 행동이 세상이 아무리 나쁜 마피아라 해도 아들 앞에선 여전히 좋은 세상만 보여주고 싶었던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조’란 인물에 동정이 가게 만든다.
“아들을 사랑하나?”
“세상에서 제일.”
“그럼 당신 생각은 때려치우고 엄마를 선물하게.”
먼투스는 옷장에서 갈색 바지를 꺼내 입었다.
“아들은 언젠가 떠나. 늘 그래. 평생 같은 방에 앉아 있다 해도 아버지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니까.”
먼투스는 바지 고리에 혁대를 꿰어 넣었다.
“나도 아버지한테 그랬소. 당신은?”
조가 럼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먼투스는 가죽으로 된 총 지갑을 어깨에 찼다.
“비슷해. 그렇게 어른이 되잖아? 아이들은 매달리고 사나이는 떠나고.”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 사내로 거듭 태어난다.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었던 존재인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조가 믿었던 동료의 배신과 그 배신을 염두에 두고 자신 또한 또 다른 계획을 세워 살아남아야 했던 비정한 세계를 그린 이 책은 대부 이후의 갱들의 삶을 잘 그려낸 또 하나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세계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진솔함이 존재했다. 이곳에 들어와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지은 죄의 죄수이자, 망가진 삶의 볼모였다. 영혼이 무구하고 삶이 자유로워서, 조 커글린이나 디온 바르톨로, 엔리코 디자코모가 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이 세계의 일원이 된 까닭은 죄와 슬픔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삶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 그 안에서도 사랑과 경쟁, 의리, 배신, 믿음이 난무하고 온갖 추악한 일을 저지르고 살아가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던 세계지만 결국엔 조가 믿었던 세계는 조를 배신하고야마는, 비열함 극치의 세상을 제대로 보여준 책이자, 책을 덮고서도 가슴 한구석이 왜 그리도 쉽게 여운이 가실지 않게 되는지….
그동안 살인자들의 섬(셔터 아일랜드)>, <미스틱 리버>등 여러 작품을 통해 작가의 글을 대해왔지만 이번만큼 여러 가지 복합된 감정을 쏟아내게 한 작품은 없지 않았나 싶다.
미국 역사의 격동기 시대를 다룬 3부작 시리즈를 차례대로 읽어도 좋지만 따로 읽어도 무방할 만큼 독립적인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책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부를 제외한 2. 3부를 연이어 읽으면 조의 삶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같이 읽어 보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벤 애플렉이 ‘리브 바이 나이트’ 영화를 만든다고 한 지도 꽤 되었지만 이제서야 곧 보게 될 것이라고 하니 영화에서는 어떻게 조란 인물의 삶을 그려낼지, 정말 궁금해진다.
연이어서 ‘무너진 세상에서’의 영화화도 되면 좋겠단 생각이 들 만큼 유연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마피아의 세계을 그린 책, 한 번 읽어 보면 대부와는 또 다른 느와르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