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역사
마야 룬데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인간들이 자연을 생각하는 의도가 과연 선의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선의는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어떤 결과물에 대한 연관을 생각하고 행하는 실천인지를 경각심 있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항간에 떠도는 자연현상, 즉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한반도에서 잡히는 물고기 종류의 수량이 극히 적어지고 오히려 열대야의 물고기나 과일의 출현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정말 알게 모르게 우리들 주변의 삶이 점차 지구의 이런 영향을 하나둘씩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벌들의 대한 이야기, 즉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믿기지 않으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성을 드러낸 이 문학을 대하노라면 더욱 그 체감을 가까이서 접할 수가 있다는 데서 저자의 이런 의도가 새삼스럽게 우리들 앞 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만든다.
벌들의 활동량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어린 시절 벌의 모험을 그린 동화를 통해서 벌의 일생 일대기라든가 좀 더 심오하게 접근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벌이 우리들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자연의 섭리는 재미를 주었다는 기억이 있는데, 만약 벌들이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를 다룬 이야기는 그저 막연히 상상만 하기란 심각함을 전해준다.
이야기는 총 세파트로 나뉜다.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가면서 그리는 구조는 모두’벌’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1852년 영국의 동물학자 윌리엄은 촉망받는 학자로서 기대를 모았으나 결혼 후 8명의 자식을 부양하느라 자신의 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고 어느새 종자씨 가게 주인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람 교수로부터 돼지새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이후 우울증에 걸리고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아들 에드먼드가 책상에 놓고 간 책의 인연으로 다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2007년 미국의 양봉업자 조지-
그는 어느 양봉업자와는 달리 인공 수분이 아닌 자연적인 생산 방식의 양봉을 가문 대대로 하는 양봉업자이다.
손수 가문 대대로 만드는 벌통을 고집하며 자신의 뒤를 이어받아 양봉사업을 하길 원하는 아들 톰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버지다.
그리고 미래의 2098년 중국, 타오는 이미 벌들이 멸종한 시대에 살아가는 주부다.
사람들이 손수 나무 위에 올라가 일일이 인공수분受粉을 해줘야만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이면서 세 살 된 아들을 둔 그녀는 하루하루 정해진 일과에 따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에게 산수를 가르쳐 주는, 자신의 뛰어난 머리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거부했던 부모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엄마다.
책은 이렇게 세 연대를 번갈아가면서 그들의 삶 속에 벌이 우리들 생활에 미치는 존재감과 그 여파의 영향이 어떻게 과거에서 시작해 미래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고 살아가게 되는지를 모자이크식의 연관성을 부여하면서 종내는 커다란 하나의 서로가 서로 연관되어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그린다.
윌리엄 시대 때만 해도 양봉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가운데 그가 고안해 낸 벌통의 설계도는 훗날 그의 딸이 미국에 건너가 조지의 조상으로 발판이 되면서 벌통의 설계도가 가문의 가보처럼 내려오게 되고 이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어느 날, 벌통의 모든 일벌들이 사라지는 상황과 맞부딪치면서 좌절을 겪게 되는 우리들의 시대와 가까웠던 그날들을 그리면서 보여준다.
이러한 내력은 톰이 이어받으면서 그가 쓴 책이 어느 날 먼 미래 자신의 아들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찾아 나선 타오의 손에 들어오게 되고 타오는 이미 자신이 살던 시대 이전에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다양한 실체의 모습들을 읽어나가면서 아들의 존재가 차후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한 작은 생명체의 활동이 이렇게 인간의 삶에 철저하게 파고들어 하나씩 삶의 영향을 파괴하고 있는 진행형의 묘사들은 섬뜩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벌을 지배하고자 했던 윌리엄의 생각 발전은 자연은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존재이며 오히려 인간이 그 속에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고 조지처럼 인간이 개발해 낸 온갖 이기적인 문명은 편리함이란 이면 뒤에 기후온난화, 무분별한 살충제 이용, 벌의 천적인 바로아 진드기와 더불어 급속히 멸종해 가는 과정들을 그리기에 미래의 타오를 보는 장면은 이러한 모드 과정의 결과물이란 생각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자연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아온 벌들의 세계는 그저 한 자연의 현상처럼 교과서로 보일 만큼 다양한 개체 군의 하나로써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분처럼 보였던 것이 이러한 작품 속에 그려진 배경에 빠져 들다보니 어느 덧 우리들의 시대가 물러가고 후세대에 살아갈 후손들의 삶은 과연 지금처럼 자연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첫 장인 미래에서 시작해 1852년의 윌리엄, 그리고 2007년의 조지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미래인 타오의 시점으로 끝을 맺으면 끝난다.
자연의 생태계는 벌이나 인간의 삶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벌들은 여왕과 애벌레들의 먹이를 열심히 나르다가 때가 되면 죽듯이 인간들 또한 자신들의 자식을 위해 열심히 양봉을 하고 연구를 하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이야기 구조는 벌의 멸종이 인간에겐 하나의 경고이자 미리 얼마든지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와 상황 설명, 그리고 다각적인 방향을 토대로 그려낸 자연과 인간의 삶을 공통으로 느끼면서 보는 듯한 이야기 구조라 읽는 데에 힘든 점은 느끼지 못했던 책이다.
2015년 노르웨이 서점협회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는데, 이 또한 68년 만에 데뷔 소설로써는 최초 수상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북 유럽 권이 추리 스릴 소설도 대세지만 이런 자연교육이 담긴 책도 읽어보면 또 다른 북유권의 문학 분위기도 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