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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올 해의 마지막 리뷰를 올리는 책이 됐지만 여전히 그 남은 잔상은 오래갈 것 같은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호기심은 책 띠지에 새겨진 문구 때문이었다.

저자가 프랑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서점대상 1위라고, 콩쿠르 상 수상작이란 문구는 그 내용이 무척 궁금하게 만들었다.

 

실제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기존의 어떤 스릴이나 첩보의 소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숨 막히는 경쟁 상대나 경쟁국과의 두뇌 싸움과 온갖 무기가 총출동하는 그런 내용이 아닌 실제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재조명해 보는 책의 방식으로 쓰인다.

 

다른 책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이런 구성을 할 때 등장 실존인물들의 노선이나 대화의 상대와 당시의 정경들이 모두 저자의 상상력에 의해 복원이 되고 독자들은 쉽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단순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 책은 화자가 저자다.

저자의 시선으로 역사 속에서 벌어진 당시의 시대를 실제 대화록을 참고로 하여 그 당시의 장소를 찾아가 보고 느껴보면서 소설이란 창작품에 관하여서도 심히 고심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렇기에 처음 역사의 실존 인물에 대한 구상을 기대하고 읽으려고 했었던 나에겐 조금은 당황스럽고 이것이 소설인지, 그 장소에 대한 세세한 묘사 부분들로 인한 여행 에세이인지, 그렇다고 이렇다고 할 뚜렷한 어떤 근거의 기준이 아주 애매했었기에 흐름을 따라가면서 시작했던 첫 초입부는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하되 결코 세 사람만이 아닌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제목의 첫 알파벳은 약자로서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 즉,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 라 불린다.’라는 뜻이란다.

실제 사형 집행자, 도살자, 금발의 짐승, 독일 3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로 불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암살하기 위해 벌인 코드명 ‘유인원 작전’에 실제 참여했던 두 사람, 체코 망명 정부가 잠입시킨 공수부대원 요제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가 등장함으로써 이야기는 풀어나간다.

등장1

 

유대인으로 의심을 받았던 하이드리히는 유대인을 추방하고 몰살시키기 위한 모든 작전들을 모두 결정하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이 잘 아는 아이히만까지 등장시킨 인물이다.

나치 친위대 내부 정보기관의 책임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에서 이루어졌던 나치스의 정치 공작과 비밀 작전을 모두 지휘하는 천재적 역량을 지녔던 그,  때마침 그가 통치하던 체코의 국민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던 요주의 인물이다.

 

등장2

 

이 책을 읽으려면 다소 역사적인 부분까지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한다.

체코와 독일 간의 오래된 역사적인 관계, 타국의 땅을 넘보려는 야욕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당시의 독일 국민들이 살았던 체코의 지리적인 역사, 국제적인 협약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과 개인적인 야욕을 위해 체코의 도움을 나몰라 했던 프랑스, 영국의 상황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접한다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과정들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게 한다.

 

1942년 5월 27일. 나치 독일에 병합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보헤미아­ 모라비아 보호령 총독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타고 있던 메르세데스 차량에서 괴한의 습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까지 받지만 상처의 감염인 패혈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암살 주동을 한 두 사람, 요제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가는 총의 엇나간 발사로 인해 실패로 끝날뻔 했던 이 작전이  다행히 폭탄 투하로 인해 부상을 입히는 것까지 성공했고 그 이후 이들은 성당으로 피신, 탈출을 도모하게 되지만  밀고자의 발설 덕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박물관이나 자료 섭렵, 유인원 작전(Operation Anthropoid)에 투입된 두 사람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도왔던 채코 국민들의 모습들까지, 끝부분에 이르면서 당시의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읽게 되는 몰입도는 강하게 와 닿게 한다.

 

어느 시절이나 애국자도 있고 밀고자도 있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여 밀고를 했던 사람의 운명적인 결말과 하이드리히의 큰 아들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등이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잊을 수가 없는 부분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자신들의 앞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조국을 위해 싸운 낙하산병들이다.

물론 이들이 성공하기까지 잠입과 식량, 그 외에 외적인 부분들을 도와준 평범한 사람들의 공로도 잊지는 말아야겠지만 역사라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사라져야만 했던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두고 미래의 희망으로 바꾸려 했던 그들의 노고가 새삼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저자는 시종 글의 흐름을 똑같은 양상으로 이어나간다.

소설의 창작자로서 느끼는 역사적인 사실을 표현할 때, 참고로 했던 영화, 특히 ‘새벽의 7인’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유명 인사들의 짧은 말들을 적재적소로 집어넣음으로써 글의 활력을 불어넣고, 이 책의 토대를 이루는 암살범을 죽이기까지의 과정들이 한 편의 다큐를 찍었다고 생각될 만큼 사실적이면서도 저자의 생각을 집어넣은 형식은 새롭고 신선함을 던져 준 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하이드리히가 죽은 뒤에 몰고 온 여파는 엄청난 사실을 초래했다는 사실, 짧은 세치의 혀 몇 마디로 인한 밀고가 이렇게 자국의 힘없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동포들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데서 인간의 극악한 이기심과 그릇된 모험심이 가져온 결과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전달해준다.

 

아마도 일본에서 1위를 했다는 점은 일본 자신들이 저지른 행태가 고스란히 이 책을 통해서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 독일의 히틀러가 행한 온갖 역사적인 행실들을 보노라면 지금까지도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독일의 자세가 그나마도 낫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책이요, 저자가 ‘토대 소설(infra novel)’이라고 말했듯이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은 이름 없이 생명을 빼앗긴 사람들과 요원들을 도와주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 아닌가 싶다.

 

 

꼭 읽고 싶게 만드는 책까지도 검색하게 만든 책(아쉽게도 국내엔 출간이 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세드릭 히메네즈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어 2017년 개봉 예정작이자, 체코 곳곳의 역사적인 장소와 유명 장소에 대해 다시 한번 가보고 싶게 만드는 장면의 묘사들이 역사와 맞물려 들려주는 책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나는 그녀를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개정판을 대하고 보니 새삼 처음 읽었던 당시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조금은 달리 다가옴을 느낀다.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랑’에 대한 생각들이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현재의 사랑법이 워낙 빠르고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탓도 있겠거니 하면서 비교해 읽어 보니 여전히 작가의 짧은 대사들은 깊은 생각을 던지게 한다.

 

‘사랑’이란 감정 앞, 더군다나 연인 사이도 아니고 부부 사이로 발전해 결혼이란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의 구속이 아닌 구속이 되고, 그 구속이 어떤 형식적인 절차에 의해서가 아닌 자연스러운 서로의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맺어지는 상호 배려 차원에서의 느낌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엔 평생을 해로하기란 정말 어려운 시대란 생각이 들 만큼 이혼율도 증가하는 추세고, 이혼의 원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불륜이 아닐까 싶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 생활에서 닥치는 불륜과 이혼의 현장을 겪은 사람이라면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더군다나 아이들까지 있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게 된다면?

 

클로에는 두 딸을 가진 엄마다.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고 하면서 집을 나간다.

떠난 남자가 집 앞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불륜의 여인을 생각하고 있다는 현장을 바라보는 클레에의 입장은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손녀들과 함께 시골 별장에 함께 가길 권하고 그곳에서 시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말의 위로를 해준다 해도 직접 겪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과연 그들의 말을 들을 여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식구들에겐 따뜻함이나 여유로운 점을 발견하기 힘들었던 시아버지로부터 위로의 말이라니~

하지만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더 이상 자신의 아들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행복과 사랑에 대한 인생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제목 그녀.. 바로 시아버지가 사랑했던 마틸드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시아버지의 고백은  자신의 옛 시절 처음으로 느꼈던 인생에서의 마지막 사랑으로 끝을 맺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시아버지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경우를 빗대어서 다룬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배신만큼 크나큰 상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냉랭함과 인정을 받으려 애를 썼던 남편을 위해 자신이 힘이 되어주었던 클로에는 남편의 통보로 인한 가정의 쓰러짐, 더 이상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막막함을 두고 시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들은 아주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눈으로부터 정직하지 못했던 시아버지, 인생에 있어서 어떤 타협점을 찾으면서 살아왔기에 진정으로 자신의 아들이 집을 나간 상태라면 돌아오게 함으로써 사랑이 식어버린 냉랭한 가정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클로에 며느리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세상 밖으로 나아가 더 나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비교해 들려주는 시아버지 자신의 이야기들은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아닌 현실적인 직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 그게 인생이야.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래. 에움길로 돌아가고 상황에 적당히 맞춰가며 사는 게 인생이야. 우리 안에는 약간의 비열함이 있어. 그 비열함은 애완동물과 같아. 그것을 쓰다듬어 주면서 기르다 보면 애착을 갖게 돼. 그게 인생이야. 용감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어. 타협하며 사는 게 한결 덜 피곤하지. -p170

 

 

 

자신이 용기 내지 못하고 가정에 머물러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의 상처와 남은 가족들에게조차 온기 있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을 통해 며느리에게 들려주는 이 고백을 통해 독자들은 과연 누구의 행동이 옳았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까?

 

내가 당한 현실에서 억울함만 느끼게 되는 것이 모든 인간들이 겪는 상황이라면 시아버지가 말한 대사들은 또 다르게 다가온 사랑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듯도 하다.

 

–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니?”-p 98

 

글쎄, 인생에서 다가온 한 순간의 강렬한 선택처럼 느껴지는 사랑이 찾아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정을 버린 아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마음의 차가움을 가정에게 표현했던 아버지의 선택이 남은 가족들에겐 과연 어떤 경우가 좋은 것인지를 묻게 되는 책, 흔하게 들려오는 불륜이란 소재를 이렇게 인생의 긴 여정 속에 하나의 선택으로 다루고 ‘행복’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과 행동이 필요한 것인지를 묻게 되는 책인 것 같다.

실제 저자의 실 생활도 이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클로에의 대사를 통해서 대변해 주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하고, ‘지금의 우리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 책이다.

 

 

 

 

 

이 세상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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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12월

전 1편에 해당되는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에 이은 2 편 격의 이야기다.

따로 읽어도 무방할 만큼 이야기는 계속 가상의 마을 대러비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기에 부담은 없는 책이다.

 

원하던 결혼을 한 주인공은 신혼의 만끽을 줄길 새도 없는 여전히 수의사로서의 신혼 시간은 모두 밖에 내놓은 채로 살아가는 중이다.

한 밤중에 긴급하게 동물들의 이상 신호를 받고 뛰쳐나가 한 겨울에도 손에 비누칠을 하면서 동물들의 새끼를 받아내는 일들의 묘사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주는 장면이다.

 

한없이 드넓은 목초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특유의 동물과 하나가 되어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들은 그저 낭만에 젖어있기엔 사람으로서 가축을 돌봐야 하는 긴 하루의 일정이 고되기만 하고, 그 안에서 차곡차곡 경험을 토대로 가축들을 치료하는 과정들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때때로 웃기는 상황들의 연출은 저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기에 여전히 재미를 주지만 기르던 가축을 이용할 때는 제대로 이용하다 쓸모없다 싶어 지는 상황들이 닥치면 한 곳에 죽기까지 내버려두는 당시의 상황들은 동물이라도 감정이 있을 텐데 그런 처지에 당하는 심정은 안타까움을, 자신과 한 몸을  이루다시피 같이 동고동락했던 말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안락사를 택하는 장면들은 가슴 한 편에  아픔을 전해준다.

 

이 책에서는 큰 가축 외에도 전편에 잠깐씩 나왔던 반려견 차원의 개와 고양이, 새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당시의 1930년대 상황상 목축을 하는 가구가 많았던 만큼 주로 큰 말이나 양, 소, 염소를 다뤘던 주인공이 작은 동물에 속한 개나 고양이 치료를 위해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의 의사를 찾아가는 과정, 그 병원 의사와의 배꼽 빠지는 술 연출 장면과 예상치 못한 반전의 일들, 수의사 실습생과의 에피소드들은 읽는 도중 웃음이 배어 나오게 만드는 유쾌한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하지만 시대의 발전은 이제 짐말의 수요가 필요 없게 되는 현실을 다룬 부분들에선 그 현장을 목격했던 주인공의 시선, 죽으리라고 생각했던 동물에게 마지막 편히 가란 의미로 주사했던 것이 자연의 알 수 없는 현상처럼 살아나는 자연치유의 과정의 모습들, 그리고 여전히 전문적인 기술은 아니지만 오랜 전통과 경험으로 다진 축척으로 인해 오히려 수의사보다 더 믿음을 갖는 동네 돌팔이들을 믿는 농부들의 미신들은 수의사로서의 해명 아닌 해명을 할 수 없게 하는 막막함을 던져주게 되는 이야기가 마치 전래동화처럼 술술 흘러나오는 기분은 느끼게 해 준다.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 말 못 하는 거대한 암소 앞에서 꼼짝 못 하고 당해야만 하는 수의사로서의 곤란한 장면들은 당사자는 힘들진 몰라도 읽는 독자들에겐 왜 이리 웃음을 던져주는지….

 

수의사로의 긍지를 느끼는 장면들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작은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옴니버스 형식처럼 그려진 책이기에 온 가족이 읽어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 차후 출간될 다음 이야기가 또다시 기대된다.

                                                 

물의 감옥

물의 감옥               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수영을 처음 배웠을 때의 두려움이 생각난다.

물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가만히 있기를 처음 시도했을 때의 그 막막함, 귀가 꽉 막히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수영 강사가 아무리 몸에 힘을 빼고 있으라고 해도 나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시로 머리를 물 위로 떠올리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 물에 적응이 되면서 마치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내 몸을 조절하게 되기까지 타인들보다 더딘 운동 신경 탓도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 기억이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또다시 공포가 밀려왔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물속에 뜨게 되어있지만 과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물속에 빠지게 된다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순식간의 적응으로 물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책 속에서 표현되는 그때의 감정선들은 그래서 더욱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다.

 

어느 날 에릭 스티플러 경정에게 전화 한 통화가 걸려온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아나벨의 폰으로 걸려 온 전화는 ‘슈티플러, 수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였다.

그 순간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늠하게 되고 그녀는 결국 물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된다.

발견 당시 그녀의 배에는 인두로 지진듯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그 사건 이후로 에릭은 그 사건에 대한 전담 책임을 맡으면서 신참으로 들어온 여성 경찰 마누엘라와 같이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3년 전 룸메이트의 살인 사건 이후 어떤 미지의 인물에 의해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라비니아, 그녀는 우연히 택시 운전사 프랑크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처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그 이후 행방불명이 된다.

 

기면 장애로 인한 수면발작과 수면장애, 탈력발작 증세를 겪으며 힘겹게 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프랑크는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되고 에릭이 맡은 사건에 대해 같은 연장선으로 감지한 마누엘라 덕분에 라비아니의 행방을 쫓게 된다.

 

책의 범인을 행동을 보면서 얼핏 영화 ‘그랑 블루’가 많이 연상이 됐다.

깊고 깊은 심연,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의 수심 깊이보다 더 깊게 들어가 얼마 동안 무호흡으로 견디며 바다와 한 몸으로 이루며 체험하는 프리 잠수 다이버들의 생활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닌 범인은 왜 하필이면 경찰인 에릭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주도면밀하게 그를 이 사건에 끌어들인 것인가?

 

죽은 여인들은 무엇 때문에 이 범인 하나로 인해 안타까운 생명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은 물속에서 범인이 여인들을 어떻게 죽이는지에 대한 묘사 장면 때문에 섬찟함, 물에 대한 가공할 압력과 그에 대응하다 버티지 못하고 반사 조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가게 되는 장면들이 잊을 수가 없게 만든다.

 

– 온 힘을 다해 여자를 안고는 최대한 세차게 눌렀다. 그의 손가락이 여자의 살을 파고들었다. 합성고무 잠수복을 입었지만 여자의 심장 박동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남녀 무용수가 두 개의 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이듯이 남자도 녹아서 여자와 하나가 되었다. 그의 심장도 여자의 박동에 맞추어 같은 박자로 뛰었다.(본문 중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들 속에 자신들이 취하고자 하는 다양한 형태의 조합들로 인해 그때마다 상황이 달라지게도 되지만 에릭이 전처로 인한 아픈 마음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결국 한 가정의 파멸을 몰아가게 만들었고, 그 파멸의 가정은 해서는 안될 금지선을 넘어선 한 남자의 사랑, 그 이후 오로지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 에릭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기까지의 범인의 심리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린다.

 

신참 여경찰에 대한 믿을 수없는 배격의 자세, 같은 경찰 내에서의 파벌로 인한 조종과 어쩔 수없이 조종당하며 살아가는 동료와 그릇된 동지애들이 함께 들어 있어서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에 있어 믿음과 불신의 차이는 어떠한 기준선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이상 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범인의 확고한 중오심은 이렇듯 아무런 해를 자신에게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에릭과 단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 하나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었단 사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만했던 에릭이 범인과의 조우를 하기 위해 사건의 현장으로 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희생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게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증오와 복수라는 감정을 ‘물’이라는 장치를 설정해 독자들로 하여금 호흡을 가쁘게 만든 저자의 필력은 그동안 출간되었던 책들보다 훨씬 세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수영장에 한동안은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사랑이 필요한 시간

 

사랑필요

사랑이 필요한 시간 –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사랑 인문학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자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연말연시를 맞아서인지, 아니면 이 해가 저물어가는 하루하루가 짧다고 생각해서인지, 요즘엔 시끌벅적한 세태도 한 몫하는 가운데 ‘사랑’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저자의 기존의 유명 책 외에도 이 책에는 사랑의 여러 가지 이해도와 그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근접을 통해 우리들에게 또 다른 사랑의 제시를 전달해준다.

 

하긴 요즘엔 부득이 결혼이란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 버렸고 누구나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세태에 대한 현대인의 감성의 메말라감을  고전 문학과 철학, 심리학, TV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사례를 통해 보이는 그의 글들은 확실히 과거의 선배들이 겪었던 경험들과는 약간씩의 차이가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기본의 욕구 안에는 사랑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첫 발인 두 남녀의 만남에서 점차 서로에게 길들여가는 시간 속에 배려라는 것이 필요함을, 내가 상대방을 나 이외에 모든 접근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결국엔 진정한 결실의 사랑으로 맺어지기 위한 절차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랑의 조건, 연애의 순조로운 절차를 위한 조언, 그리고 진실된 감정의 정체는 과연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말들은 사랑하기도 힘들다는 요즘의 세태에 아주 적절한 충고가 아닌가 싶다.

 

성숙한 사랑이란 서로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 95쪽

 
위의 말을 읽으니 참 쉽게 말은 내뱉기가 쉬우면서도 실제 내가 해준 만큼의 보상심리 격으로 상대방도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 가짐의 다스림부터 시작해야 할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이러한 마음가짐을 다져본다면 결코 두 남녀 사이에 얽매인 감정 관계가 아닌 제삼자와의 연결에 있어서도 최선의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흔히 말하는 질투,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질투란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한 잡담이나 노력이 배제되어서는 안 되야한다는 글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질투

 

 

해어짐

 

옛 그리스 철학자들은 최고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 문학, 영화. 종교, 철학을 넘나들면서 연구를 했고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해 정신적인 것은 물론 육체적인 체험 또한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사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동성애에 대한 관점은 과거에는 이성애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이에 따른 교육적인 관점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의 초식남, 비혼 남녀, 만혼화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정보화의 발전, 그리고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며, 이러한 타인과의 만남을 주저하는 현상은 인구 감소의 현상과 더불어 방송에서도 나오는 용어 ‘혼자’라는 개념을 더욱 극대화시킨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요소요소에 들어있는 글들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점차 미혼남녀들의 결혼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이 글을 읽는 동안에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정이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분은 많이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그저 두렵고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행동에 나서는 것은 어떨지, 인간은 끝까지 홀로 남는 존재인 동시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인 만큼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습관화’의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굴스기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 위대한 작가들이 간직해온 소설 쓰기의 비밀
프리츠 게징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2월

책을 읽으면서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적을 때면 가끔 막힐 때가 있다.

내 느낌은 이런데 이 느낌을 타인들이 읽을 때 내가 의도했던 대로 받아들여지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어떤 때는 막힘 없이 술술 적을 때도 있지만 왠지 나 자신조차도 불만스러울 때가 올 때면 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쉽게 알 수 있게 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글쓰기의 재미’는 느끼고 싶지만

‘글쓰기의 노동’은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노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정여울(작가)

 

추천 작가의 말이 그대로 와 닿을 만큼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나쳐왔던 부분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와 글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준비를 시작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은 무척 유익하다.

저자는  현재 소설가로 활동 중이며, 함부르크 창작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1994년 초판이 나온 후, 2002년, 2004년, 2010년 개정을 거듭하여 독일에서 ‘글쓰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글쓰기에 대해 막연한 부담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초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글을 쉽게 쓸 수 있으며 더불어 나아가 고난도의 테크닉에 대한 여러 제시 문장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에 이 책의 장점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글쓰기1

 

어떤 책의 문장을 읽었을 때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에서 과연 작가는 독자와 어떻게 연관성 있게 같은 호흡을 느껴갈 수 있게 써야 하는지,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가 전후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가르침은 막연하게 그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읽은 것이 전(前)이라면 이 책을 읽고 책을 읽을 때의 받아들임은 좀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생각하고 넘겨짚을 수 있는 후(後)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소설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첫 번째로 습작과 더불어 유명 작가의 필사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같은 단어의 중복을 피할 수 있게 되고 여러 단어의 뉘앙스를 포함해 발전된 문장의 글을 쓸 수가 있게 된다고들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유명 작가의 글쓰기 시간, 장소, 도구는 무엇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엿보기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글쓰기2

 

딱딱할 것만 같은 내용을 쉽고도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본질에 충실한 저자의 설명은 체크 리스트를 통해 쉽게 알아갈 수 있는 장점이 들어있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있거나 글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좀 더 잘 쓰기 위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언덕 중간의 집

언덕

언덕 중간의 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게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가족들, 특히 남편과 아이들 위주의 삶 중심이란 것으로 바꾸어 살아간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 엄마들 모습에서 자신의 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을 때를 상상해보자

큰 마음먹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려고 아이쇼핑을 하던 와중에 남편에게 어울리는 옷을 발견하거나 아이들에게 입히면 딱 좋을 제품을 발견하게 되면 일순간 망설임과 함께 자신이 만족할 것을 포기하는 순간이 수없이 스쳐 지나감을 알고 있다.

 

이러한 결혼이란 과정 속에 세월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란 구성원 속에 하나의 결집체가 만들어지지만 이러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육아전쟁’에 돌입했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를 들을 적이 있는데, 실제 곁에서 지켜본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한 생명이 태어나고 사람다운 구실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모자란 잠을 쪼개자면서 틈틈이 모유 수유에다 이유식, 목욕을 시키고 책을 읽어주는 행동들, 특히 바로 태어난 생명으로 출발해 미운 세네 살이란 말이 붙을 정도의 영리한 아이들을 대하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노고를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단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 책-

 

처음 ‘종이달’이란 작품을 대하면서 이 작가가 그리는 여성에 대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 그리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여전하다.

 

타인들처럼 무난한 연애와 결혼 생활을 거쳐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둔  리사코는 세 살의 딸아이를 둔 전업주부다.

한창 말을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고 불만스럽다 싶으면 고집을 부리는  어려울 때의 아이를 둔 엄마로서 어느 때처럼 동네 또래의 딸아이 연령대를 가진 엄마들과 대화를 하거나 아동도서관에 가는 행동을 통해 여타의 주부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느 날 미즈호라는 여자의 유아 살인 사건에 보충 재판원으로 재판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즈호라는 여인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미즈호라는 여인은 자신의 딸을 딸을 욕조에 물아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떨어뜨려 살해했다는 죄를 지은 사람, 왜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기를 죽여야만 했던 것일까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와 질의 심문을 통해 독자들은 출산이란 고통을 넘어 하나의 생명체를 안은 그 순간부터 닥쳐오는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같이 느끼게 된다.

 

육아 전쟁이란 말이 쉽게 내뱉어지는 말이 아닌 이상 초보의 부모 된 입장, 특히 엄마 된 입장에서 오는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낮과 밤이 바뀌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 모유가 모자라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남과는 다른 발달이 늦어진다는 초조감 외에 정작 서로가 필요한 말은 배제한 채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과정에서 오는 남편과의 대화, 시댁과의 갈등들을 보이는 장면에선 아마도 결혼을 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주부라면 공감대를 느낄 만한 장면들과 대화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처음 읽었을 때, 같은 또래를 둔 아기 엄마로서의 리사코가 미즈호를 바라보면서 점차적으로 그녀가 놓인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공감대는 점차 자신의 결혼 생활과 남편이 그동안 자신에게 해왔던 말과 행동들, 그리고 시댁과의 관계를 생각해가면서 느껴가는 의기소침의 과정들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부분과 없었던 장면도 들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영유아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이렇게 번진 사건의 토대가 부부간의 말들, 행간에 보이지 않는 의도된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과 그것으로 인해 자신조차도 모르게 위축되어가는 결혼이란 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쌓이면서 벌어지는 행태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느껴보게 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육아도 남편들이 적극 동참해 같이 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루 온종일 붙어서 같이 있는 시간을 통해 귀엽고 예쁘다가도 고집을 부릴 때의 행동을 저지 못하는 순간 자식이지만 정말 밉고 행동조차 울컥하게 만드는 아이의 행동들을 바라보는 엄마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들은 잠깐, 그 해맑은 순간만을 바라보고 느끼는 행복감과는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듯 같은 육아를 한다지만 리사코나 미즈호처럼 친정과도 가깝지 않고 주위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친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철저히 고립되고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면 리사코가 미즈호를 바라보던 시선이 결코 가상이 아닌 현실적인 공감대를 느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보게 된다.

 

‘싸운 적은 있지만 싸운 이유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p.370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위의 경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란 것은 그것을 내뱉는 사람의 의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간의 쌍방향으로 같이 느끼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즈호는 남편의 냉철한 말 한마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뜻과는 다르게 스트레스성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생한 사건이란 생각을 들게 했다는 점에서 기혼여성들은 공감을 많이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결혼, 출산에 이어 육아에 지친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그려지는 이 책에 나오는 여성의 심리가 뛰어난 작품인 만큼 다양한 층의 독자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무코다 이발소

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이발소라는 명칭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의 이발소는 동네에서 두세 군데는 많은 편이고 한 곳이 있을까 말까 하지만  동네 아저씨는 물론 그의 아들들까지 무조건 남자들이라면 당연히 머리는 이발소에서 깎는 것으로 생각되던 시대가 이제는 너도 나도 미용실을 이용하는 시대가 왔다는 데서 이 책의 제목처럼 문득 그때의 회상이 떠오르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다.

 

공중 그네에서의 유쾌한 의사 출현으로 인해 세상만사 시름시름 앓던 걱정거리는 모두가 이렇게 쉽게 쉽게 해결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재밌게 읽었던 책의 저자가 이번엔 또 다른 따뜻한 감성에 젖게 하는 책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무코다 이발소-

이 책의 6편의 연작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결코 어떤 소설 속의 허상적인 구상이 아닌 현실의 우리들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들을 엿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묘사를 자랑한다.

 

 

예전의 탄광도시로써 명성을 날렸던 시골 마을 도마자와.

이제는 산업의 침체와 함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탈출을 하고 그나마 명맥상 마을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는 고령인구의 노인들과 어릴 적 죽마고우처럼 자란 중장년층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25년째 이발소를 운영 중인 야스히코 씨는 23살 먹은 아들인 가즈마사가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으로서는 내심 가업을 잇는다는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폐쇄 직전의 노후한 마을에서 과연 누가 이발을 하러 올 것이며 그나마 자신이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의 근근이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단 사실에서 걱정이 산처럼 쌓여만 간다.

그런 아버지 옆에서 아들은 장차 이 마을에서 어떤 것을 이루며 살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는 야스히코 씨의 죽마고우인 다른 친구의 아들도 마찬가지인 경우에 속한다.

 

일본에서의 가업을 이어간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이러한 경우처럼 경제적인 여건이나 생활환경에서 오는 불합리한 조건을 이겨내고 다른 도시와는 다른 차별화를 내세운 젊은이들의 패기를 엿보는 장면들은 생명력이 넘친다.

 

작은 마을이기에 사생활이 없는 점, 누구 집에 어떤 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세세한 사정들이 마치 무코다 이발소를 거점으로 사랑방 구실을 하며 전해지는 마을 소식들은 잔잔한 작은 마을에 누구 하나가 새로 들어오거나 새로 가게를 차리게 되었단 소식이 들리면 작은 흥분과 소동이 일게 마련이다.

 

나이는 먹었어도 젊었을 적의 패기 어린 신선한 알싸한 사랑의 두근거림이 이미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바람의 자취가 남긴 자국은 작은 마을의 부인들조차 작은 불만과 불안에 쌓이게 하는 작은 소동, 이 고장에 중국인 신부를 맞이했다는 한 노총각의 결혼 소식에 너도 나도 발 벗고 축하를 해주려는 선한 마음씨, 노령의 부모님 때문에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아들된 도리로서 어쩌지 못하는 현실적인 상황들이 우리네 가정들의 한 일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저자의 뛰어난 글이 빚어낸 작품의 덕이 아닌가 싶다.

 

농촌의 신부 부족 현상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들 농촌의 현실을 마치 거울 비추듯 보는 듯한 설정과 묘사는 이내 부모로서 가지게 되는 자신의 아들 결혼 문제까지 생각하게 되고, 사기를 치고 도망간 아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동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주는 노력들은 여전히 따뜻한 마음의 훈기를 불어넣어준다.

 

이처럼 연작시리즈로서 별다른 큰 사건이 없는 가운데 날씨의 변화에 따라 축제가 열릴 뿐, 큰 별개의 사건이 없는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소동 가운데 어떤 것은 부모의 마지막을 대하는 자세와 남는 자의 살아가는 방식, 자식의 미래 걱정, 좀 더 마을을 알리기 위해 유치작전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세우는 공무원들과 젊은이들의 패기, 영화 촬영으로 인해 고요했던 마을이 잠시 흥분에 들뜨고 외지의 사람들이 들어옴으로써 시끌벅적했던 작은 에피소드들의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별건가, 이처럼 때론 격렬하게 토론을 벌이다가도 일말의 파도가 물러난 것처럼 다시 고요함을 맞게 되는 평범함의 나날들이 살아가는 맛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는 책이기에 이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읽으니 더욱 그런 감성에 젖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눈이 많이 내리는 도모자와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 중일 것만 같은, 마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캐치해 글로 풀어낸 것만 같은 저자의 글이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 책이다.

브루클린의 소녀

20161214_161046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한국에서 인기 있는 프랑스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기욤 뮈소-

그의 신작 소식을 접할 때면 이번에 또 어떤 이야기를 내놓았을까를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국영화로도 개봉할 거라는  원작자인 만큼 이번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가 사랑하는 뉴욕과 프랑스를 오고 가는 이야기~

 

베스트셀러 작가인 라파엘은 어린 아들 테오를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대디다.

테오의 일로 병원에서 만난 소아과 의사 혼혈인 안나와 사귄지 6개월째, 곧 3주 후면 결혼식을 올리며 정식 부부가 된다.

기념 여행으로 떠난 곳에서 라파엘은 부부 사이가 되기 전에 서로 간의 비밀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있다면 얘기해서 서로가 알길 원하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꺼린다.

그러던 차, 그녀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보여주게 되고 그 사진을 본 순간 라파엘은 그 자리를  떠나게 되지만 곧 후회를 하면서 다시 그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장소엔 이미 그녀는 떠났고 곧 뒤를 이어 그녀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녀는 행방불명 상태-

도대체 누가, 왜, 아니면 자신에게 그 어떤 말조차도 하지 않고 떠나버렸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치기 위해 라파엘은 이웃인 전직 형사 마르크와 함께 탐문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장기인 ‘사랑’이야기다.

다만 지난 작품처럼 시간을  주체로 한 타임머신 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듯한 설정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피해자와 그 당시 끔찍한 사건을 당한 사람으로서 살아나가야만 했던 한 소녀의 비밀에 감춰진 인생 이야기, 여기에 더불어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곤 하는 정치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숨겨진 자식을 모른척하고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사랑, 납치,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의 경로를 거치면서 이야기의 구성을 이룬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과 괴로움, 어려움을 모두 알고 싶고 공유하고 싶었던 남자, 첫 결혼에 실패한 강박관념은 부부간에는 비밀이 없는 것이 오히려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라파엘의 사랑방식이 자신의 본명을 숨기고 제3의 인물로 거듭 태어나야만 했던 한 소녀의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가 사이코패스 하인츠 키퍼가 벌인 사건으로 다시 재조명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운명적인 인생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전개과정이 여전히 빠르고 쉽게 전개된다.

 

거대한 정치인물을 둘러싼 압력 속에 힘없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결국은 딸아이의 친부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 함께 사건의 뒷 반전에 속하는 다른 사람을 아픔은 여전히 부모로서의 아픔을 전달받게 하는 느낌을 전해준다.

 

사랑이란 말 앞에 모든 것을 알고자 했던 한 남자, 그 사랑하는 남자라면 자신의 모든 과거를 얘기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던 여자, 하지만 결국 여러 가지 난관을 겪게 되면서 밝혀지는 미스터리한 납치사건의 전모와 그 안에서 더욱 깊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남다른 인생 이야기까지, 여전히 저자의 상상의 꿈은 왕성한 창작 활동에 버금가는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에서 워낙에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쓴 글일까? 싶을 정도로 글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등장은 일면 반가운 면도 있게 한 작가의 센스 넘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다각 면도를 쉽게 쉽게, 빠른 장면 전환의 강점을 지닌 작가인 만큼 본의 아니게

브루클린의 소녀로 불린 여주인공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재미를 선사해 준 책이다.

짐승의 성

짐승 성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묻지 마 살인에 대한 사회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면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기에 이런 잔학한 일들을 벌일 수가 있을까?

혹 흔히 대두되는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들이나 원만치 못했던 성장과정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사회적인 성격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럴까?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가게 되면서 사건의 잔학성을 보도하는 글들을 읽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건의 발생에는 항상 원인이 있게 마련이지만 위의 경우처럼 아무런 원한, 동기도 없는 가운데 쉽게 ~그냥!~ 이란 말 한마디로 대변되는 범인의 진술에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는데 이 책,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기만 하다.

평소의 스릴이나 추리소설을 접할 때면 잔학성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들어있고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그 이야기 속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가면 나름대로 사건 구성에 대한 전반부를 맞춰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책처럼 대책 없이 읽어나가는 도중에 구토를 경험한 적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2002년 전모가 드러나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글을 구성한 작가의 서술 능력도 대단하지만 정말로 이런 사건을 벌인 범인의 본마음 안에 들어있는 실체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17세의 마야라고 불리는 소녀가 어느 날, 경찰에 휴대폰으로 자신을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온몸에 상처가 있는 소녀는 그녀의 진술을 토대로 하자면 1년 넘게 선코트마치다라는 맨션 403호에 감금되어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경찰은 즉시 그 현장에 가게 되고 마침 그 집에 있었던 아쓰코를 만나면서 그녀 또한 그녀 몸에 학대의 흔적을 발견한 경찰에게 자신도 마야와 같은 경험을 당했다고, 그러면서 이 사건은 아쓰코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조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마야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인 고다 야스유키가 두 사람에게 살해되었다고 하고, 아쓰코 역시 자신들이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집에 있는 현장을 조사한다.

 

코를 찌를 듯한 냄새와 살균을 한 듯한 세제 냄새, 무엇보다 욕실에서 루미놀 반응을 보인 혈액 검사에는 다섯 사람 분의 DNA가 검출되고 이 혈흔 중 네 사람이 같은 혈연처럼 보인다는 사실,  그렇다면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 방향과 과연 요시오라는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다.
 

한편 29살의 신고는 자동차 정비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건실한 청년, 24살의 세이코와 동거를 하면서 살아가는 와중에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곰처럼 생긴 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 있다.

세이코의 친아버지란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고요하고 정적인 남자, 우연히 미행하게 된 신고는 그가 공원에서 바라보는 초점에 대해 더욱 의심을 하는데….

 

소설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한 데로 합쳐지면서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은 과연 몇 개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한다.

 

인간이 자신이 살기 위해선 어떤 악조건 속에서 얼마만큼의 각오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처음에 뭐지? 이러한 상황이 있었다고?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인데 정말 이럴 수도 있을까? 를 연신 스스로 묻고 답을 요구하는,  극도의 미칠 지경이란 이런 말이 아닐까 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책이다.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이 언니를, 조카를 엄마와 이모가 죽이게 되고 그 사체를 유기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다룬 장면들은 얼마 전에 읽은 ‘넥스트 도어 킬러’란 책에서 나온 장면들과 흡사 유사하게 그려졌지만 그 책과 확연히 다른 점은 범인의 동기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아쓰코의 진술을 토대로 그려지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 속에 범인의 왜? 란 것이 빠진 상태에서 순전히 아쓰코의 진술과 마야의 진술만을 가지고 수사를 벌여야 하는 경찰의 모습들은 아쓰코의 두 갈래의 진술처럼 보이는 행보 때문에 조사를 하는 경찰들 마저도 도저히 이런 일들이 실제 벌어졌다고 믿지 않는 대사들이 나오는 이야기의 구성들은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짐승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왜 갇혀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도망칠 생각을 못했을까? 설마 사회적인 법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지라도 차라리 처벌을 받고 다시 사회에 나가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지만 인간이 한 인간을 동물처럼 길들이고 세뇌시키는 일련의 조련사처럼 행동을 연속적으로 벌이게 되면 갇힌 인간의 의지는 ‘의지’그 자체의 말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 수동의 자세로 변해가는 과정들이 정말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저자는 동물과 확연히 다른 인간이 학습의 범주에 이상한 궤도를 겪게 되면 인간의 본성 안에 도사린 어떤 행동들이 나올지, 나조차도 결코 인간다운 행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를 묻는다.

 

– “녀석들은 다른 사람들을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먹잇감으로 보죠. 사랑도 하지 않고 동정하지도 않아요. (중략) 최악의 경우에는 죽여서 버리죠. 그게 녀석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더 나쁜 건 녀석들이 인간 사회의 규칙을 숙지하고 있다는 거예요. 절대 머리가 나쁘지 않아요. 그저 그 규칙을 따를 생각이 없는 거죠. 그 정글에서 인간을 먹잇감으로 해서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놈들이 분명히 있어요. 사람의 탈을 쓴 짐승 말이에요. 하지만 사회는 슬프게도 그걸 인식하고 있지 않아요.”-p352~353

 

너무나도 강렬하다 못해 다시 읽어보기가 힘든 책인 만큼 아주 센 스릴을 좋아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고려해봐야 하지도 않을까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작가의 냉철한 표현의 서술이 오히려 극대화를 시킨 작품인 만큼 인간의 본성을 이만큼 제대로 그려낸 책도 없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