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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섬에서 온 편지

스카이섬스카이 섬에서 온 편지
제시카 브록몰 지음, 정서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편지 쓰기를 즐겨하시나요?

 

나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듯싶은데, 막 초 1이 되면서 외할머니께 안부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외삼촌과 살고 계셨던 할머니께 보낸 편지 내용은 엄마가 불러주면 또박또박 글씨를 연필에 의지해 눌러서 썼던 기억, 외손녀를 외선녀로 잘못 썼다가 엄마한테 혼난 기억들…

 

그 후론 방학이면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까지,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 누릴 수 있었던 감성들을 제대로 겪었던 것 같다.

 

편지지에 내용을 쓰고 봉투에 담아 우체국이나 문방구에 가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이나 빨간 우체통에 넣었던 설렘, 제대로 도착했을까?  보내고 받기까지 적어도 3일 정도는 소요되는 그 시간들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고 답장을 받게 되면 그 기쁨은 참으로 컸던 시절로 기억이 된다.

 

이후 컴과 친해지면서 가까운 사이라도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절이 됐지만 여전히 편지란 감성이 주는 매개체는 그런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겐 하나의 추억거리일 것이다.

 

이 책, 기타 다른 책들과는 다른 서간체 소설이다.

 

오로지 서간체, 편지의 형식으로만 주고받는 소설로써 정말 오랜만에 접해보는 형식, 그래서 반가웠다.

 

자자의 실 생활이 바탕이 되어 소재가 된 편지의 형식이라 일반 책들이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글 쓴다는 것에 대한 기억을 몰고 오면서 느린 사랑의 느낌을 느껴보게 되는 책이다.

 

첫 시작은 1912년 3월 미국 일리노이 주 어배나에 살고 있는 21살의 대학생인 데이비드 그레이엄의 편지로 시작이 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팬임을 자처하는 그, 곧 그 시집 작품의 저자인 엘스페스 던에게 팬으로서 편지를 쓰게 된다.

뜻밖의 먼 미국이란 나라에서 자신의 작품을 좋아해 주고 팬으로 편지까지 받게 된 엘스페스는 고마움에 답장을 하게 되고 이후 그 둘은 수시로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가까운 소통의 소재로서 편지를 이용해 기타 다른 가족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그에게 , 막연하게나마 희망적인 사항을 이루기 위한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는 엘스페스, 그에 대한 보답처럼 의사를 희망하던 아버지의 뜻을 뿌리치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까지의 과정들이 둘 사이에 따뜻한 우정처럼, 어떤 때는 오로지 자신의 뜻을 알아채 미리 말하기도 전에 솔선수범해서 행동해주는 친구 이상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책은 당시 스코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야생의 모습을 간직한 스카이 섬에 사는 엘스페스와 미국의 데이비드 사이에 이루어진 편지를 통해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연상의 여자, 그것도 이미 오빠의 죽마고우인 이언과 결혼한 여자인 엘스페스와 아직 풋풋한 소년의 이미지를 간직한 데이비드 간의 사랑은 시간을 훌쩍 넘어 1940년대의 엘스페스의 딸인 마거릿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상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엄마가 간직한 편지를 보게 되면서 엄마가 말한 엄마의 인생 첫 장인 ‘내 삶의 제 1권’이라며 비밀을 간직한 사연을 추적하는 두 갈래의 길을 취하면서 독자들을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게 한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어떤 상황이나 대화 속에서 상대방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글로써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 보이는 과정이 훨씬 더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해와 설득력을 지닐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굳이 어떤 곤란한 경우이거나, 부딪치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게 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론 글이 주는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와 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볼 때, 이 책에서 보이는 설정들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남녀가 전쟁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을 깨달은, 한 발짝도 섬에서 나가지 못했던 엘스페스로 하여금 런던에 오게 된 데이비드를 만나러 결심을 굳히는 행동까지 하게 하는 사랑의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편지 속에 다가오는 말들 속에 숨겨진 행간들의 비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편지에서 점차 팬과 작가로서의 호칭이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처럼 강렬하게 다가오게 만들며, 딸인 마거릿이 겪고 있는 폴과의 사랑과 전쟁과도 비슷한 사랑의 행보를 보인다는 점과도 비교해 보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저자는 다분히 편지란 형식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탈피해 엄마가 간직한 그 사람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딸의 과정과 맞물려 과연 마거릿은 누구의 딸인지도 궁금하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랑으로 인한 그 두 사람의 행보가  한 가족의 분산과 불화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 동안 딸을 홀로 키워온 엘스페스의 인생의 여정 속에 사랑의 대상인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추적해가는 과정까지…. 읽는 내내 독자들은 서간체 소설에서 주는 감동 그 이상을 받을 수 있게 한다.

 

 

 

– 네게 말했어야 했는데,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알려줬어야 했는데. 편지가 그저 한 통의 편지로만 남는 게 아니라는 걸 꼭 말했어야 했는데. 편지지 위에 놓인 말들이 영혼을 적실 수 있다는 걸. 네가 그걸 알 수만 있다면.-P 25

 

 

이처럼 글이 주는 특성을 제대로 표현한 말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엘스페스의 글은 그녀에게 두 사람에 대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시대가 주는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

 

서로의 오해와 한 통의 편지를 보지 않은 부주의로 인한 사랑의 결실은 맺어질 수 있을까를 독자들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주는 묘한 분위기와 뜻밖의 반전이 들어있는 비밀까지 알고 나면 이 책이 주는 서간체 소설의 감동과 또 달리 받아들여지는 ‘진실된 사랑’에 대한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가끔 전쟁 때문에 오랫동안 헤어진 두 남녀가 기막힌 타이밍에 백발이 된 채로 만나게 됐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특히 서로의 배우자가 죽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홀로 지내다 만나게 됐다는 기사들을 접할 때면 인간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는 ‘사랑’이란 감정은 영원하다는 느낌마저 갖게 할 때가 있다.

 

이 소설 속에서처럼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과 헤어짐, 그 후로 마거릿의 편지를 통해 재조명해보는 편지의 주인공 찾기와 그 후에 이루어지는 비밀 이야기들까지를 접하고 나면 당장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편지 형식을 다룬 비슷한 문학 작품인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과 비교해 봐도 좋을 듯하고, 채링크로스 84번지(한비야 님의 추천 도서). 그리고  편지가 아닌 정보 시대에 걸맞은 이메일이란 장치로 이야기를 다룬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까지 고루고루 비교해 읽어보아도 좋을 듯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의 위대함은 거리가 멀고 짧은 것에 비교되지 않는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카이 섬을 나서게 만든 힘의 원천,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강렬하게 다가온 ‘사랑’이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