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페트라 휠스만 지음, 박정미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5월
사랑에 빠지는 시간을 잴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빠른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 듯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느긋하게 천천히 상대방과 자신과의 관계를 여유를 가지고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의 인연에는 어떤 정해진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에 빠지는 것도 작정하고 빠지는 것은 아닐 터, 이 책에서 그려지는 두 남녀 간의 사랑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사랑에 빠지는 그림을 그린다.
편집증 환자처럼 어떤 정해진 규칙처럼 쳇바퀴 돌듯 일주일 안에 해아 할 일들을 계획성 있게 처리해 살아가고 있는 27살의 이자벨라-
그녀는 꽃집에서 일하는 플로리스트로서 자신의 직업 외에 즐겨보는 드라마는 꼭 봐야 하고 정해진 요일에 빨래, 운동, 아빠 묘소 방문, 엄마 집 방문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스타일이다.
이런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긴다.
11년간 모퉁이를 돌면 있는 베트남 식당에서 즐겨먹던 누들 수프를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폐업이 되어 버린 것, 더군다나 그곳엔 까칠한 셰프이자 사장인 옌스라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온통 그녀가 즐겨하지 않는 음식들 뿐이다.
수시로 의견 충돌과 달리 받아들이는 관점들 때문에 전혀 친해질 수 없는 둘 사이는 옌스의 이복 여동생 메를레로 인해 차츰 관계가 이어지게 되는데…
이 책은 어떤 우연을 가장한 폭풍처럼 질주하는 사랑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보통의 우리들 모습들 속에 들어있는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가지고 사랑을 이루어나가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까?
이자는 자신만이 꿈꾸는 완벽한 로맨스의 전형인 사랑을 꿈꾸는 여인이다.
한순간에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면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둘 만이 느끼길 원하는 여인, 하지만 이혼남인 옌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요, 더 이상 사랑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나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옌스가 봤을 때 이자가 꿈꾸는 듯한 사랑의 희망은 완전히 현실을 배반한 그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을 터,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기반에 어느 날 정말 자신이 꿈꾸던 남자인 변호사 알렉산더란 남자를 만나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아가려는 이자의 ‘사랑에 빠지려는 노력’을 보게 되는 옌스의 감정, 그와는 반대로 이 둘을 이어주려 노력하는 깜찍한 학생 메를레의 활약과 주위의 또 다른 사랑의 커플들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발랄하고 엉뚱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와 차갑게 느껴지면서도 속 깊은 캐릭터로 무장한 두 남녀를 대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이끈다.
자신도 모르는 순간 옌스를 사랑하고, 옌스 또한 자신에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란 감정을 확신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두려워하던 이자에겐 때론 자유분방함도 필요하단 사실, 그런 자신의 작은 변화를 통해서 세상엔 누들 수프만이 아닌 달콤한 퐁당 쇼콜라도 먹을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둘째, 사랑은 모든 것이 언제나 멋지고 완벽하고 조화로우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그런 게 아니야. 진실을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지!”-p394
완벽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빠져들던 이자에겐 어쩌면 옌스에 대한 사랑 감정과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자신과 맞지 않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현실적인 사랑이야말로 행복을 일구어나가는 첫 출발점이란 생각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화려한 고백도 없고 어떤 특정한 장소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두 인물들의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는 읽는 동안 나 자신도 모르게 폭신한 솜이불처럼 사랑이란 감정에 빠지게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옆에 퐁당 쇼콜라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