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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먼북으로가는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매해 유명한 작품상 수상작품에 대한 궁금증은 그 문학상에 대한 기대감, 수상자의 글을 통해 심사위원들의 향후 심사의 기준 같은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에 출간 소식을 기다리는 독자의 입장에선 흥분이 된다.

 

2014년도 맨 부커상 수상작, 장르 소설로써 접해왔던 호주의 작가가 아닌 유명 수상작으로서 접하는 호주 출신의 작품이란 점에서 출간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전쟁을 소재로 삼아 드러내는 다양한 활보는 그것을 자신에 맞게 접하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지게 된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상을 통해서, 글 읽기를 좋아한다면 활자를 통해서….

 

이렇듯 인류 역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쟁’이란 키워드는 어떻게 다뤄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해 주는 작품, 바로 이 작품에 엄지 척!

 

다른 책이나 영상처럼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일흔일곱 살의 도리고 에번스-

 

호주에서 저명한 유명 인사이자 외과의로서 성공한 인물이다.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는 그는 사실 내면에는 피폐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인생의 최대 잊을 수없는 숙모와의 헤어 나올 수 없는 금단의 사랑,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일본군 포로로서 일본군이 당시 태국과 미얀마 간 철도 건설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하지만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는 평생을 그에게 아픈 상처로 남긴다.

 

문득 책을 읽으면서 영화 ‘콰이어 강의 다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하는 철도 건설 현장이 이 책에서 겹쳐 보인다.

 

매번 하루에 필요한 일군들을 선별하기 위해 일본군 나카무라와 노동에 적합한 병사 차출의 숫자를 목숨 걸고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던 도리고, 그들 안에서 벌어졌던 굶주림과 고통,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일 자체가 생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그들이 숙명처럼 안고 가야만 했던 짐이었다는 사실들은 이 책의 제목에서 의미하듯 상반된 의미로서 다가오게 한다.

 

일본의 하이쿠를 불러대며 포로들을 매질하고 폭행으로 죽이는 장면들, 변변한 수술도구조차 없어 다리 절단을 통해 생사의 기로에 섰던 동료를 끝내 지키지 못한 처절한 시간들은 정 반대의 극한 상황을 변주함으로써 전쟁이란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만든다.

 

**** 순간적으로 그는 무서운 세상의 진실을 본 것 같았다. 끔찍한 공포에서 도망칠 길이 없고 폭력이 영원한 세상, 세상이 창조한 문명보다 폭력이 더 위대하고 유일한 진실이며, 폭력만이 진실한 신이기 때문에 인간이 숭배하는 어떤 신보다 폭력이 더 위대한 곳, 마치 인간은 폭력의 세력이 영원히 유지되도록 폭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폭력은 항상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끝나는 날까지 다른 사람들의 부츠와 주먹과 끔찍한 행도 아래에서 죽어갈 것이다.  인류의 모든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나 서방의 국가들은 전범자들에 대한 추적을 통해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비극의 마무리를 위해  그들이 역사의 한 시대에 포함되었던 진실의 정당성을 완결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은 그런 여파에서 하나 더 이어진 장면들이자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을 보인다.

 

천황을 위해 선을  행한 자신들의 행동은 그저 하나의 정당방위처럼 여겨지는 과정과 그들의 뇌리 속에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는 전쟁에서 겪은 기억의 망각 성, 전후에 다시 보통의 인자한 아버지이자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살아가는 나카무라 같은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일본의 침탈에 일본군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조선인 최상민 같은 인물을 통해 상위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인 자신의 처지가 결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의 결정 자체도 말로만 전범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한다는 결정이 사실은 그들도 정의란 이름 아래 복수심을 감춘 행위가 아닌가 하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전쟁 진행 후에 이어지는 또 다른 배신을 보인다는 점에서 타 책들과는 다른 점을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된다.

 

강자독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포로들, 그 안에서 질투와 배신, 모욕, 처참하게 죽어간 다이키와 도리고의 인연은 기막힌 인생의 한 단면을 보이는 동시에 아픈 상처를 간신히 추스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독자들에게 가감 없는 솔직함을 보였다는 점에서 행복과 불행이란 단어의 차이, 전쟁과 평화는 그저 종이 한 장 차이요, 동전의 양면성이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단 하나의 여인과의 불같은 사랑,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불편한 심정들이 결국은 모두가 하나의 원 안에서 돌고도는 풍차처럼 불행의 연속성을 보인 생활들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이란 것이 있음으로 해서 벌어진 비극을 담아낸 저자의 이러한 글은 도리고란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삶을 통해 죽음의 철도 라인에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고 이어졌다는 것,   더군다나 지독하고 처절했던 전쟁의 현장에 대한 기억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거나 미화되어 각인이 된다는 점에서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다. 노인이 된 뒤 도리고 에번스는 이것이 어디서 읽은 말인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만들어냈다가, 이것저것 뒤섞었다가, 다시 부숴버렸나? 가차 없이? 바위가 자갈이 되고, 자갈이 흙이 되고, 흙이 진흙이 되고, 진흙이 바위가 되는 식으로 세상은 굴러간다. 그가 세상이 왜 이러저러한 모습인지 설명해달라고 다그칠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 그대로다. 세상은 그냥 그런 거야. 원래 그래, 아들.

 

 

강자 약식의 세계에서 살기 위해 해야 했던 행동들, 그 행동들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쾌감과 우월함을 느끼게 되는 일본군이나 일본군 내에 속해있던 조선인들의 이성을 망각한 실태들은 전쟁이란 특수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가 대하고 살아가야만 했던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날 것 그대로의 삶, 그 자체를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던 안타까움과 역겨움, 아픔을 모두 동반해 드러낸 책이 아닌가 싶다.

 

문장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진실됨이 가미된 책, 꾸밈없고 가감 없이 드러낸 시대의 흐름을 일본의 하이쿠와 대비함으로써 극과 극의 체험을 오고 가게 한 저자의 필력을 읽으면서 모처럼 소름이 돋아나게 한 책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진정한 적은 인간인가?라는 물음을 수도 없이 몰아치며 생각하게 하는 책, 책 속에 자신의 청춘을 전장에 바친 포로들, 50엔 받자고 일본군에 자원한 최성민 및 그 외의 조선인들 모두에게 진혼곡 하나 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