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부끄러우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때론 파격적인 글로 인해 인상이 깊게 각인이 된 작가 중 한 사람인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아껴서 읽듯이 이 책 또한 시간을 끌다 읽게 된 책중에 하나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연령대는 언제부터일까?

요즘은 워낙 성숙한 시대라 흔히 생각하는 사춘기의 연령을 넘기기도 전에 느낀다는데,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자전적인 일을 그린 작품이다.

 

흔히 말하듯 나의 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자신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아물어가는 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부끄러움이란 제목은 말 그대로 저자의 생생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p 23

 

 

마치 큰 사건이 벌어질 것처럼 여겨지던 문장의 첫 강렬함은 이내 숨죽이며 읽게 된다.

도대체 그녀의 부모님들은 어떤 이유로 위와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일까?

 

흔히 부모들이 다투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방에 있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자식들 앞에서는 그 어떤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는 부모님들도 있겠지만 저자의 부모는 상당히 다혈질인 것 같다.

 

12살 소녀의 눈과 귀에 모두 그 장면을 보고 듣게 된 후의 그녀가 느낀 감정은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이웃도 모를 수도 있던 그 사건은 이후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나가는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것을 잊지 못했고 그녀의 부끄러움이 본격적으로 더욱 와 닿은 것은 바로 학교생활이었다.

 

자신의 또래들이 다니던 일반 학교가 아닌 사립 기독교 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던 신분과 가정환경에서 오는 차이들, 그들의 세계에서 바라본 자신의 가정 모습은 없어졌다고는 하나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계급차이었다.

 

 

****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 버렸기 때문이다. -P 137

 

 

특히 선생님이 자신을 집으로 바래다주었을 때 속옷 차림으로 나온 엄마의 모습을 본 저자의 그 당시 충격은 결코 잊을 수없는 부끄러움의 둥지로 자리 잡았으니, 어쩌면 이렇게 담담히 서술한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용기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 p 117

 

주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만이 느끼는 그 부끄러움에 대한 회상은 저자 자신이 글을 통해 훌훌 털어버리고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랬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이와같은 부끄러움을 고백한 저자의 글은 마치 제삼자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도 그럼에도 이 글을 탈고했을 당시에는 자신의 내면을 끝까지 몰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들을 과감히 꺼내어 서술한 개인적인 이야기, 이제 그 부끄러움은 더 이상 그녀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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