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0년 9월 13일

걸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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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프란시스 지음, 이진 옮김 / 크로스로드 / 2020년 9월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갖춘  중년 여성 로라는 자신의 일을 갖고 있으며 부유한 남편, 그리고 자신의 첫 아이를 잃은 아픔을 상쇄시킨 의대생 아들 대니얼을 둔 여인이다.

 

영국 내에서 부촌이란 인식이 깃든 곳에서 살고 있는 그녀, 아들과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애정이 깃든 사이인 모자간의 생활은 어느 날 한 여인의 등장으로 인해 깨진다.

 

독립을 원하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집을 알아보기 위한 진행과정 중 만나게 된 부동산 중개인 회사의 직원인 체리란 여성을 만나면서부터 모자 간의 끈끈한 사이는 서서히 가랑비에 옷이 젖어  흠뻑 젖을 만큼 무거워진다.

 

첫 아이였던 딸을 잃은 아픔을 뒤로하고, 외도를 하고 있는 남편의 불륜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로라의 삶은 오로지 대니얼에 대해서 맹목적인 엄마로서의 모든 정성을 기울인다.

 

그런 자식이 한 여인의 등장으로 인해서 자신과 모든 것을 했던 일들이 하나씩 거부당한다면?

 

가난한 지역의 오밀조밀 붙어사는 집, 일찍 아버지를 잃은 체리는 마트 직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살다 자신의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인이다.

 

우연히 손님으로 만난 대니얼의 성장배경,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여유를 통해 자신의 생활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대니얼과의 만남을 지속하기 부단히 노력하는 그녀에게 로라의 말과 행동들은 사랑이 아닌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집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 모드로 서서히 서로가 서로에게 조여 오는 돌이킬 수 없는 한 사건의 분기점을 분수령으로 파국을 치닫는 과정은 심리 스릴러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의 성장 배경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대니얼이 갖고 있는 여유와 친절, 타인을 배려한 섬세한 행동양식은 체리가  대니얼을  놓칠 수 없다는 하나의 보험이다.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체리의 행동과 이후 서서히 로라를 몰락시키는 과정은 너무도 섬뜩하다.

 

그런다면 로라의 행동은 정당한가?

이 역시 대니얼의 삶을 두고 저지른 말과 행동들은 그것이 설사 아들을 위한 결단이었다 할지라도 비난을 면치 못할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는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 자식이란 의미, 품 안의 자식은 영원한 내 자식이란 모성의 감정이 어떻게 집착으로 변해가는지를 알아채지 못한 여인, 자신의 비참한 삶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체리의 계획적인 행동 실천은 그녀 또한 자신의 사랑은 순수하며 집착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모습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최강의 몰입도를 선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의 사랑의 감정이 집착으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서 오고 가는 두 여인의 팽팽한 날 선 말과 행동들은 주인공들의 ‘사랑’이란 이름 아래 선과 악, 이를 빌미로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심리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공존함을 보인 작품이다.

 

 

인물들의 설득력 있는 내면의 생각과 고백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결핍, 욕망들이 마지막까지 결과가 궁금해지게 만든 책이다.

 

 “나는 내 아들을 사랑해.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나의 사랑은 정당하고 타인의 사랑은 집착처럼 보이는 비난의 기준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을 생각하게 하는 책,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의 행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자 요 근래 읽은 책중 심리스릴러로써 손에 꼽는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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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그간 접해오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접한 책은 희곡 형태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인으로서 동양인의 시각처럼 바라보는 그의 작품들 부분들 중에서 이번 작품 또한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되는데, 바로 죽음 뒤에 우리들을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될까? 에 대한 궁금증을 작가만의 글을 통해 드러낸다.

 

담배를 좋아했던 아나톨 피숑은 폐암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게 되고 이후 이생에서의 삶을 심판받기 위해 이승도 아니고 천국, 지옥도 아닌 그 어느 중간 단계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희곡의 특성상 책의 내용들 대부분이 무대 장치와 대사들이 주를 이루는데, 등장인물들 또한 기막히다.

 

이승에서 부부였지만 이혼한 커플, 이후 죽은 뒤에는 피고 측 변호사로 나선 카롤린, 검사로서 남편이었던 베르트랑, 그리고 재판장인 가브리엘이 피숑에 대한 전반적인 삶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는 내용이다.

 

처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피숑은 이내 이승에서 자신의 삶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사회인으로서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검사 측과 변호인 간의 날 선 공방을 통해 독자들은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는 이렇게도 진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상의 틀을 그려보게 한다.

 

읽으면서 작가가 그동안 그려왔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이승과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어떤 미지의 손길이 닿는 곳,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죽음 이후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그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일들이 겪지 않을까를 작가 나름대로 상상력을 보탠 글들이 유머가 있는 가운데 현실적인 비판 시각도 함께 보인다.

 

특히 피숑의 잘못이 전 이승에서의 직업이 판사였단 사실과 원래 배우 재능이 있음에도 배우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 잘못이 있다는 죄(?)와 이후 반전의  대목에선 작가의 유머가 빛을 발한다.

 

읽으면서 전작인 “타나토 노트(2권)”, “죽음(2권)”, (신)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을 받게 한 작품이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 때보다는 긴장감이나 소재의 신선함이 떨어진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작품의 세계를 통해 매번 다른 시선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자만이 가진 창작력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작품 또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