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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길이아니면표지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무소유의 실천자이신 법정 스님이 열반하셨다는 실감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하고 보니 새삼 다시 마음의 다스림을 깨달아 가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물욕이나 기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에 대한 소유욕을 저버리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지만 불일 암이란 암자에서 평소의 소신대로 실천하다 열반하신 스님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과 그동안 출간하셨던 책의 구절들을 이어서 같이 보는 느낌이 사뭇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길1

 

이 책은  최순희 님의 사진집 <불일암 사계> 속 사진들과 함께 스님의 글들이 같이 곁들여져 있는 책이다.

첫 장을 펼치게 되면 최순희 님의 인생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지고 책 중간과 종반부에 조금씩 할머니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는 정지아 님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이 책에 대한 뜻깊은 것을 알아가게 한다.

 

길2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그 안에서 탐욕과 무소유의 실천을 통한 구도자의 자세를 엿보게 되는 글들은 여전히 담백하고 절제가 된 문장들로 가득 차 있고 이를 뒷바침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최순희 할머니가 불일암에 드나들면서 찍은 사계의 모습들이 더한 감동을 전해준다.

 

길3

 

1979년 한 여인이 스님이 계신 곳에 말없이 나타났다 안팎의 청소를 해주고 말없이 사라지는 행태를 보이기를 여러 해, 스님은 거부하지도 받자 하지도 않으셨다는데, 이미 최순희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알고 계셨기에, 그녀의 혼란스럽던 마음의 구도자로서 지탱해주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만 하게 할 뿐 정확한 두 분의 오고 간 편지들은 무소유의 실천답게 모두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에서 김영랑의 남동생과 결혼 후 사회주의자인 남편을 따라 월북을 하게 되고 이후 전쟁을 통해 빨치산에 있다 동료 몇 명과 함께 아들은 이북에 남겨두고 붙잡혀 평생을 괴로운 심정으로 살다가신 분이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기구한 운명 자체에 대한 갈구하는 심정을 스님을 통해 다스리게 됐고 행여 스님의 구도 생활에  방해가 될까 싶어 자연의 사진만 찍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소중한 불일암의 사계를 흙, 바람, 햇빛, 눈이란 제목을 달아 그때그때의 변화된 자연의 모습과 스님의 평소 모습을 물건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귀중한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길4

복잡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심히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 가끔 이런 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본적인 자신의 마음속을 헤집는 원인을 다스리고 다른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을 되새겨보게 되는 책이란 생각도 들기에 잠시나마 정적인 고요함 속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듯한 책이 아닌가 싶다.

 

                                                                                                                          
                                            

저스티스맨

저스티스맨

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한 사람이 그것도 두 군데서 한 해에 두 개의 대상을 거머 줬다는 것은 실로 어렵기도 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상으로 뽑힌 그 이유엔 그럴만한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이 책을 접하면서 잠시 또 한 번의 흥분을 느낀다.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가로서 그의 작품인 ‘스파링’에 대한 강렬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매번 좋은 작품의 선정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바로 같은 작가란 기사를 접하고 무척 놀랐다.

 

전작에 대한 기대를 또 한 번 느낄 수가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을 상상하기도 했던 바, 역시 이 작품 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글이다.

 

이마에 두 개의 탄알 구멍이 난 상태로 발견된 피해자의 수가 동일한 방식으로 발견이 되고 단지 유일하다 싶은 증거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선 좀체 보기 힘든 권총을 이용해서 죽인 사실뿐이다.

 

당연히 죽은 사람들에 관한 연관성 자체는 물론이고 전혀 어떤 근거도 잡을 수 없이 방황하는 경찰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국민들은 그 대상이 모두 나에게도 해당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어느 날 저스티 맨이란 닉네임을 가진 자가 등장해 이 사건들에 대한 자신 스스로 나름대로의 자료와 논리를 통해서 사건 자체에 대한 전모를 제시하게 된다.

 

사건의 첫 주자의 발생 원인부터 조목조목 지적해나가는 일련의 사실성에 접근한 근거는 소수의 누리꾼들에 의해 이루어지다 어느 순간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게시물을 통해 그 숫자가 오십만이 넘게 되고 순간적으로 누리꾼들의 시선은 저스티 맨이 이루어 놓는 카페 가입을 시작으로 저스티 맨과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종이 어느 신을 떠받들 듯 절대적인 신앙처럼 번지게 된다.

 

익히 익숙한 인터넷 세상에서 마우스 하나로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 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너도 나도 누리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져 있는 사람들의 소양은 이 익명의 세계를 넘나들 때 과연 어느 정도의 양심과 자격을 갖추어져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떤 유명 연예인의 가십을 주제로 토론을 벌일 때 자칭 덕후들의 팬덤현상은 가히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어떤 기사에 대한 내용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나 언행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나 설사 그 연예인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동들을 했을지라도 이미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그 사실마저 인정치 않는 괴력의 모든 행동을 불사하는 경우를 더러 볼 때가 있다.

 

나의 생각이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을 때의 현상, 바로 이 책에서 다루는 저자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댓글 토론이나 그 현상에 대한 흥분을 넘어선 자제하지 못하는 일부 누리꾼들에 대한 모습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의 작은 시작점이 점차 팬덤처럼 커지고 저스티 맨의 주장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에 반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익명의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오고 가는 언어폭력을 넘어서 그것이 마치 진실인양 정의감과 도덕적인 행동에 따른 우월감이 전혀 나와는 연관이 없는 타자에게 어떻게 다양한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소수의 의견의 소중함은 아예 잘못된 식이란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다수의 논리의 대세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들게 한다.

 

폭력이란 것이 단지 어떤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언어라는 것을 통해 행해지는 폭력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려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모양새들은 살인의 원초적인 근본적인 실체는 이제 저리 가고 오로지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난상토론을 토대로 이를 어느새 자신의 왕국 안에서 군림하는 왕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저스티 맨이란 인물과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살인이나 폭력만은 안된다는 사실 하에 저질러지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처벌은 과연 법에 따른 정당한 형량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죽은 자들에겐 저스티 맨에 의한 논리에 의하면 모두 죽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도 없어져도 될 만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란 인식하에 어느새 누리꾼들 사이에 우상처럼 떠오른 게 되는 이러한 사회 현상 속에  그 안에서 무리들 틈에 끼여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들도 과감히 나서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양심, 특히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심과 그럴듯한 논리에 의해 타당성을 부여하려는 의지마저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저자는 정곡을 찌른다.

 

 

-독단적으로 폭력 또는 살인을 저지를 용기가 없는 이들은 한데 뭉쳐 무리를 이룬다. 누군가 불을 지르면 따라 지르고 집회에 참가하면 그곳에 함께 서 있으며 소리치면 함께 고함친다. 그들에게도 역시 모든 게 수월하고 익숙하며 두려움 따위 이제 더는 없다.-p 219

 

악이란 타고났을 때부터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기타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연쇄살인범의 행동이나 저자가 주장하는 본성이라고 부르는 악에 대한 것을 읽다 보면 과연 악과 선의 경계선을 구분 짓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초의 정통성을 지닌 악은 삶의 또 다른 면이자 선이자 색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것을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을 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매혹의 힘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이었다. 단숨에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까 두려워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무언의 합의. 또 하나의 본성.- p 9

 

 

책은 미국의 화가 잭슨 폴락의 그림의 제목을 소제목으로 이용하는 노련함을 보인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익숙지 않는 과감성을 보인 화가의 작품들이 어떤 특정한 논리와 전문가들의 소견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면 그 순간 그의 작품은 이미 어떤 평가 자체에 대한 선을 넘은 명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처럼 이 연쇄살인 사건을 토대로 벌어지는 온라인 상의 누리꾼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심리 그 근저의 기저에는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 즉  도피적인 탈피에서 벗어나고픈 욕망과 그 실현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가상의 익명성이 보장하는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비열함과 뒤틀린 모습들을 통해 스스로의 자생력을 가진 악의 원천으로도 자생할 수 있다는 점, 이런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타인의 주장은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행동까지 갖게 되는 현상들이 새삼 또 다른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쏟아내는  비방과 욕설로 무릎 끊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반대 이론을 제시할 수 없게 만드는 악의 근원은 바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지금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숨어 있다는 사실, 특히 책 종반부에 범인이 하는 행동의 실천과 나름대로의 논리를 보면 왜 저자가 잭슨 폴락의 그림 제목들을 이용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저스티 맨을 내세운 저자의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그려낸 이 책을 통해 또다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도 한 여운이 남아 있는 책이기도 하고, 무심히 던진 돌에 개구리의 생명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경우를 볼 때 한 개인의 무심코 친 댓글로  인해 목숨까지 끊는 심정까지 가게 하는 일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근절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로 넘어가게 한 책이다.

 

저자의 추리기법을 통한 범인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기법도 인상적이었지만 사회 전반부에 흐르는 이러한 현상들을 제대로 그려낸 저자의 깊은 세심한 표현이 기억에 남은 책이다.

저지먼트

저지먼트저지먼트 – 복수를 집행하는 심판자들, 제33회 소설추리 신인상 수상작
고바야시 유카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3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면 함무라비 법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 이 법에 대해 배울 때 기억에 오래 남았던 이유는 동해보복법이란 개념을 벌써 이 시대부터 적용해왔단 점이었다.

 

현대는 이러한 법이 집행되고 있는 몇 나라도 있긴 하다고는 하지만 인권이 성장함에 따라 동일 상의 법 집행은 사실상 어렵다.

그런데 막상 사건의 피해자나 피해자의 남겨진 가족들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것에 비해 가해자는 법이 정한 선고에 따라 집행을 받고 나면 그 죄는 마무리가 된다는 점에서 어떤 점에서는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십분의 일이라도 법이란 체제 아래서 조금의 위안이나마 삼을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엄청난 기억의 후유증은 깨끗하게 해소가 될까?

 

이의 연장선으로 그려진 이 책은 우선 가상의 20XX 년,  죄가 날로 급증해 가는 일본에서 정해진 복수법이란 제정이 행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책은 총 5편의 연작으로 이어지는데, 모두가 저마다의 아픈 사연을 담고 법 집행을 실행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신의 아들을 4일 동안 감금한 뒤 온갖 고문과 폭행 끝에 잔혹하게 숨지게 만든 범인에게 죽은 아들의 복수를 실행하려는 아버지의 비장한 결심과 이행을 다룬 이야기인 사이렌-

정작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두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아픈 심정과 자신의 아들에게 행한 절차를 고스란히 가해자에게 되갚아 주는 과정 속에서의 인간으로서 겪는 고통을 그린다.

 

친할머니를 회칼로 찌르고 죽인 14살의 소녀 이야기를 다룬 보더, 강남 묻지 마 살인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대낮 도심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3명이 죽은 사건과 그 이후 가해자에게 복수법을 할 것인지 법대로 구형을 내릴 판단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다루는 3명의 가족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앵커, 영매한 점쟁이가 자신의 손자 죽음을 예견하고 손자의 친구를 죽인 사건을 되갚아 주려는 죽은 엄마의 사연을 다룬 페이크, 계부와 친엄마의 학대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죽은 누이동생에 대한 되갚음을 집행하려는 10살 오빠의 이야기를 다룬 저지먼트..

 

이야기들의 사연 사연 하나하나가 모두가 실제  생활에서 묻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토대로 그린 상상의 글이라서 처음엔 복수법 제정이 생긴다면 과연 이를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가족들의 원한과 슬픔은 치유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가해자의 또 다른 가족들이 만약 이러한 일들을 겪게 된다면 복수는 또 다른 복수의 심정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까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가해한 사람은 법에서 다루는 고작 몇십 년 정도의 형을 선고받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피해자의 관련자들이라면 무척 마음의 상실감은 쉽게 가시질 않을 것 같단 생각도 들게 하지만 이 책은 그저 법에 정해진대로 실행한다는 진행만이 아닌 진실된 가족관계의 형성과 교류가 필요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가족이더라도 그 안에서 곪고 있을 상처들에 대한 치유 과정이 그저 스치듯 지나간 결과로 이어진 사건의 심각한 과정은 아무리 복수법을 실행한다고 해도 상처의 흔적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는 점, 만약 이러한 결정권이 생기게 된다면 책에서처럼 이런 결단을 해서라도 치유를 받는 것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법대로 행해지는 절차에 맡겨 버리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여전히 갈등이 쉽게 가시게 하질 않는 책인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다 따뜻한 시선 한 번이라도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책이란 점에서 소중함이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안개 속 소녀

안개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저 / 이승재 역 /  출판 검은숲발매 / 2017.05.18.

 

 

 

고요하고 한적한 산골 마을이나 다름없는 아베쇼란 마을에 정신전문 의사인 플로렌스에게 한 통의 전화가 한밤 중 걸려온다.

레베카 마이어란 여 검사가 데리고 온 자는 유명한 수사관인 포겔-

 

별다르게 볼 것 없는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서 벌어진 한 소녀의 실종사건을 수사 중이던 포겔에겐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소설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생활을 꾸려가던 지역이 광산의 발견으로 인해 갑자기 떼돈을 벌게 된 사람들과 오리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살아가던 마을이자, 종교적으로 보면 자생적으로 구성된 강한 신앙으로 뭉친 교구가 있는 곳으로 16 살의 애나 루란 소녀가 성탄 전야에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단이 된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안개가 있던 날에 집을 나선 소녀의 행방은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사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수사관으로서 유명세를 달리고 있고, 한때는 한 사건의 불미스러운 결말로 인해 명성에 흠이 가 있는 포겔이란 형사가 보르기 신참내기 경찰과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보통의 추리라면 이러한 배경 속에 소녀가 지니고 있던 교유관계, 부모와의 관계, 소녀만이 간직할 수 있는 비밀을 모두 파헤치면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도 당연히 보이지만 기존의 책에서 다뤘던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저자는 피해자의 실종을 다루면서 벌어지는 그 주위의 모든 것들을 통해 보임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통상 실종 시간이 어느 정도의 골든타임을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이고, 그 와중에 보다 적극적인 모색의 방안으로 미디어를 활용한다.

 

포겔 또한 오랜 경찰의 생활로 몸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미 실종이란 확신 아래에 자신이 이번 기회에 실수했던 전작의 수사를 만회하려는 노련한 수사를 펼친다.

 

작고 소박한 한 가정에 몰아친 비극, 처음엔 주위 사람들도 모두 염려하고 걱정스러워하며 촛불과 꽃들, 그리고 소녀가 좋아했다던 고양이 인형까지를 그들의 집 앞에 놓고 가는 성의를 보이고 주위를 둘러싼 숲 지역을 샅샅이 파헤치는 열성을 보이지만 이 모든 절차의 행위들을 고스란히 방송 매체란 미디어를 십분 활용해 이 사건을 부각하면서 사건의 모든 주도권을 쥐고 펼치는 포겔이란 형사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영상 속에 흰 suv차량이 포착이 되고 이 차량에 대한 조사는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내보이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로 잡히면서 사건은 좀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의 본성, 특히 이 사건을 토대로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들이 고스란히 방송이란 매체를 통해 보이는 현상들, 실종된 부모와 실종된 소녀에 대한 우상화에 대한 흐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방조적인 호기심과 호시탐탐 이러한 사건들을 엮어내는 미디어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어떻게 작은 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이 사건을 자신의 촉수와 감각만으로 확정 지으며 범죄자를 몰아가려는 포겔이란 형사의 행동, 그 안에는 방송계와 서로 주고받는 이익의 타산 관계와 경찰의 투입 예산까지를 모두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는 실질적인 모습들이 들어 있어 충격적이다.

 

 

창조는 파괴를 선행하고 동시에 그 파괴를 따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눈에는 애나 루 캐스트너를 희생의 제물로 삼아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중략) 희생이 없으면 신앙도, 순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간 세상에서는  벌써부터 애나 루를 신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P175

 

 

“왜냐하면 범인을 체포해야 우리가 좀 더 조금은 안전하다고 그나마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범답안은 따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도 사건에 연루가 되고 공범이 되기 때문이지요. 언론과 대중,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범죄자를 인간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범죄자들을 무슨 외계 종족이나 남을 해하고 악을 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런 범죄자들을…..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그 대단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창의성도 부족하고 다수의 틀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개 개인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범죄자들이 우리 자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p129

 

 

 

작은 마을에서 신앙의 힘으로 살아가는 가족, 그 외에 자신의 또 다른 가정을 유지하고자 들어온 한 가정의 가장이 범인으로 몰리면서 어떤 뚜렷한 증거와 연관도 없지만 이미 범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한 인간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수사방식에서 소녀를 찾겠다는 원래의 초심은 뒤로 가고 미디어의 힘에 의해 실종자는 아예 죽었다는 기정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차후 벌어질 사건들에 관심을 모으는 일반 대중들의 기대심리를 비판한다.

 

평범함은 싫고 뭔가 도저히 눈에서 뗄 수 없는 그 어떤 현혹적인 이끌림, 악마의 등장으로 인해 활기를 띠는 이러한 사건의 현장을 보통의 우리들이란 존재로 불리는 인간들의 심성을 저자는 제대로 보고 근접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주 솔직하게 그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혐의는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 마녀 사냥하듯 몰아치듯 몰아가는 수사 방법의 차원을 넘어 가족까지도 외면하는 사태에 직면한 한 인간의 상실성까지 느끼게 해 주고 있으며, 무죄로 판결이 난다고 해도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입장에서 과연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까지….

그 와중에 보상의 차원으로 ‘돈’이 갖는 유혹과 매력 앞에서 저절로 관심이 가지게 되는 현상들을 실종이란 이름을 달고 펼치는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은  같은 이미지의 소녀들 실종이 이어지다 30년 전에 끊겨버린 사건과 애나 루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긴장모드로 독자들을 몰아가는 흡입력은 대단하다.

 

 

어쩌면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한 신참 보르기 경찰의 시선만 따라갔더라도 포겔의 실수는 없었을지도 모를, 한 소녀의 실종은 결말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과 반전의 묘미를 뒤 몇 장 안에 강타한 사실들을 읽노라면 허걱! 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책이다.

 

모든 걸 영원히 뒤바꾼 밤은 한 통의 전화벨 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첫 구절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할 이 책의 전개 상황은 전혀 예측조차 못했던 사건의 진실과 정말 처단해야 할 자도  따로 있다는 사실의 진실조차도 모르고 넘어가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우월함을  이 책에선 여지없이 치부를 드러낸다는  느낌마저  전해 준다.

 

 

기존의 ‘속삭이는 자’, ‘영혼의 심판’에서도 재미와 추리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저자지만 이 책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썼다가 다시 책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수긍이 갈 만큼 영상미로 만난다면 재미를 배가 시킬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뒤로하고 오히려 다른 곳에 호기심을 기울이는 대중들에게 대한 궁금증을 이 책에서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 만큼 책을 덮고서도 공포가 여전히 가시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책을 읽었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저체온증

저 체온증저체온증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장르를 불문하고 요즘엔 어떤 특정 문학에 대한 기호도가 독자들 사이에선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특히 영미 문학권이 주는 권위와 파워를 생각한다면 한국의 다양한 문학세계의 범주는 그 분야의 다양성이 예전에 비해 훨씬 폭이 넓어졌음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는 북유럽 소설이 차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이번 작품을 대하면서 또 한 번 절실히 다가오게 만들었는데, 사실 국내에서는 다른 책들이 이미 출간이 되었지만 절판이 된 것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척박하고 지구가 태동된 이래 제대로 된  최초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를 상상해보게 된다는 아이슬란드-

내게는 타 작가의 작품을 대한적은 있었지만 이 작가에 대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유럽 경찰 소설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장편소설이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제목이 주는 첫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사실 추리소설이란 형식을 갖춘 책들을 좋아하고 대하다 보면 대강 어떤 흐름에 짜인 패턴들이 눈에 익고, 다음 장면이란 것에서는 상상의 이미지가 대강 맞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 소설은 그런 상상에서 벗어난다.

 

뭐랄까?

좀 다르다는 표현이 정확히 맞게 표현됐다고 나 자신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그 어떤 신선함의 구성, 그 안에서 살아나는 주인공과 주위의 인물들의 사연들을 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도 동화되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주인공 형사 에를렌뒤르 시리즈로 알려진 이 소설은 이미 북유럽 추리에서 가장 인정받고 권위 있는 유리 열쇠상을 연속 2번 수상했다는데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 심리적인 상실감을 같이 느껴갈 수 있게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마리아란 여인이 자신의 별장에서 목을 맨 채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다.

절친인 카렌에게 별장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는데, 막상 친구가 가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던 것.

 

병으로 사망한 엄마와는 유별난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마리아는 엄마의 죽음 이후 계속적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며 죽음의 이후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남편의 말에 수사는 자살이란 결론으로 내리고 그녀는 화장된 채, 사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절친인 카렌은 이후 에를렌뒤르를 찾아가 결코 마리아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란 점에 의심을 두게 된 배경과 마리아가 영매를 찾아가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건네게 되면서 에를렌뒤르는 혼자 본격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책은 이 사건에 대해 중점적으로 수사의 진행방향을 잡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책은 이 사건 외에도 이미 몇십 년이 지난 두 남녀의 실종 사건들을 함께 수사하면서 형사의 개인적인 아픔까지도 같이 보이는 장치를 활용한다.

 

자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조사는 사실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자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볼 때 이 책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아픈 상처와 심리 위축과 자책감, 그리고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외로운 싸움을 에를렌뒤르가 맡은 사건을 통해 섬세하게 그린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실종이 되었다는 아들, 또 다른 여대생의 실종 사건은 ‘우연’이란 것에 초점을 맞추고 결코 사건에는 우연이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끼게 하는 마리아의 사건까지, 책은 형사 개인적인 가정사의 두 가지 아픔을 동시에 보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 순간 몰아친 파도에 휩쓸리고 그 파도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자신을 원망(부모 입장)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돈이 주는 유혹 앞에서 어떤 일들을 벌이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차분히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다.

 

 

***** 에를렌뒤르는 우연의 일치를 다른 것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경험상 그는 우연의 일치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 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를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 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p 272

 

 

그러고 보니 책의 표지를 다시 한번 들쳐보게 된다.

하얀 욕조에 얼음이 들어있고 수도꼭지가 있으며, 옆엔 온도계가 설정된 표지는 이 책에서 보이는 마리아와 그 외에 다른 사람이 겪었던 임사체험을 통해 인간으로서 궁금해하는 사후 이후의 세계는 존재하는지, 죽은 이로부터의 부름을 받게 된다면 그 세계는 어떤 과정으로 들어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유발을 토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 책이 주는 여운은 위축된 심리와 고도의 의료 기술을 이용한 범인의 도덕적인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기타 다른 추리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한다.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든 간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도 신선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심오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에 척박하고 광활한 대지가 연상되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서 온 이 작가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커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만 살아남고 동생이 죽었다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에를렌뒤르가 딸의 충고대로 과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동생을 놓아줄 수 있을지, 또 다른 자신의 삶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산을 올랐을 것이란 희망과 함께 범인이되  범인이라고도 할 수없는  법의 빈약한 체계의 허점을 또 한 번 드러낸 책이 아닌가 싶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분실물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지금은 예전처럼 기차를 많이 타보는 경우가 드물어졌지만 어릴 적 기억으로는 막 신입생 새내기라는 타이틀을 갖고 처음 오리엔테이션이란 것을 가던 사촌들을 볼  때만 해도 가까운 강촌이나 대성리 쪽으로 기차를 타고 다닌 경우를 흔치 않게 본 기억이 난다.

 

서울과 가까운 근교라서 그런지 부담이 적고 청량리 역은 아예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출발지의 첫 시작의 이미지처럼 굳어져 버렸기에 요즘처럼 자가용 시대에 접어든 때에는 이런 낭만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듯도 해서 아쉬움을 남긴다.

 

전철만 해도 노선들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간혹 가다가 바깥의 옥외 구경을 하게 되는 노선을 타게 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신기한 느낌마저 들게 되는 현재, 이 책 안에서 문득 이러한 풍경들을 쫒아 가 보게 된다.

 

도쿄 인근 바닷가 공장지대에 자리한 작은 무인역, 달랑 세 개의 전철량만 있는 이곳에는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 유실물 보관소, 통상 분실물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무실이 있다.

 

그런데 이 곳에는 어떤 사연인지 펭귄 한 마리와 빨간 머리의 소헤이란 역무원이 이곳의 모든 분실물을 관리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동물원 사육사처럼 펭귄에 대한 모든 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책은 총 4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한다.

첫 이야기로 애완묘의 죽음이 1년이 지났지만 항상 자신의 곁에 두고 생활하던 교코란 여자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유골함을 분실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자신과 똑같은 유골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바꿔치기해서 가져가 버린 애완묘 유골함을 찾기 위해 찾아가는 분실물 센터, 빨간 머리에 마치 동물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을 한 역무원의 차분하고도 친절한 말솜씨로 인해 정작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을 듯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연작 시리즈란 특징답게 곧 다음 이야기에 잠깐 등장하거나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들이 연이어서 3편에 실리기 때문에 독자들은 따로 독립된 이야기 속에 전편에 만난 주인공들의 등장이 전혀 낯설게 다가오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란 것에 대해 주목을 하게 된다.

 

홀로 은둔형 생활에 젖은 고교생이 게임에 빠져들어 친해진 어느 게임 마니아의 부탁을 들어주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이 지니고 있었던 초등학교 때 받은 러브레터를 잃어버린 사연, 그 사연의 주인공을 우연찮게 만나면서 벌어지는 예상외의 이야기, 전철 안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이 눈처럼 불어나게 되는 어느 젊은 주부, 이어서 분실물 센터가 들어선 자리의 원 주인인 공장지대의 옛 회장이었던 노인이 자신의 아들과 얽힌 사연, 그리고  그의 손자를 만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그린 이야기들이 분실물 센터를 방문하고 펭귄을 만나면서 또다시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것을 알아가는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때로는 환승을 하면서 잠시나마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우리들이지만 우리들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인연이란 관계의 맺음, 정작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며 깨닫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실물 센터란 장소란 곳에 모두 오고 가면서 깨달아 가는 여정이 특이한 외모와 특이한 동물의 조화로 인해 한적한 분실물 센터를 활기차게 만든다.

 

오렌지색 주둥이, 동그란 머리, 날지못하는 날개, 거친 발, 까맣고 하얀 투톤 컬러의 털을 달고 있는 펭귄이 언제부터 이 분실물 센터에 있게 됐는지, 그 연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들은 마지막 장에 가서야 알게 되는,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만남과 헤어짐이 결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분실물 센터라는 장소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모이면서 인생 안에 있는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하고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분실물 센터에선 소헤이 라 불리는 빨간 머리 역무원과 펭귄이 변함없이 자신들의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실물이란 언제든지 찾아가도 되고 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교코나 그 밖의 다른 인물들처럼 잠시 맡겨두는 장소로도 안정감을 주는 곳이기에 마음의 한편이 아픈 사람들이라면 잠시  맡겨놓고 휴지기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잡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던 인생의 어느 한 부분들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한발 더 세상에 나아가는  네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생(生)에 대해 고마운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는 소헤이란 인물을 통해 다시 한번 누군가와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더욱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 아닌가 싶다.

파문

파뭄

파문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여기 한 중년의 멋진 남성이 있다.

53살의 마르크,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자 그를 선망하는 젊은 여대생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단 규칙이 있다.

어떤 경우더라도 길게 끌지 않는다는 원칙, 대학의 눈이 있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한 여대생과 자신의 집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어라! 여대생이 죽어있네!

마르크는 천천히 그녀의 시체를 끌고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숲 속 동굴 속으로 그녀를 집어넣고 숨긴다.

 

첫 발을 우습지도 않게 내디딘 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그는 긴장감을 갖추되 교수로서의 태연한 행동 또한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 이게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여인의 등장은 전작의 파문으로 시작된 일의 연장선, 그의 주의 깊은 결단력마저 흐려놓는다.

 

죽은 여대생의 새엄마라고 나타난 미리암, 숱한 젊은 피와의 정열을 나눴던 그가 중년의 그녀를 본 순간 또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되고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나가 있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임을 알면서도 완벽한 둘만의 섹스에 몰입한다.

 

저자의 글은 쉽게 읽히는 문장은 아니다.

문장의 단락마다 끊기는 듯한 장면 전환, 책 제목에서 의미하는 파문의 첫 발이 한 여대생의 죽음이 몰고 온 시작점이었을까?를 궁금해하면서 마르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책은 중간중간 그가 저지른 또 다른 경찰관의 죽음을  둘러싸고 또다시 그 시체를 감추는 행동,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자신의 능력이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어 같은 대학 행정처에 근무하는 누나의 힘에 의해 해고의 순간까지도 모면하게 되는 상황까지, 독자들은 저자의 툭툭 끊기는 듯한 불친절한 글의 단락으로 숨겨진 내용들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한다.

 

책은 시종 어두운 이미지와 흡연하는 모습, 누나와의 애증관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의 한 중년 남성이 겪는 트라우마와 정신적인 공황의 방황을 섹스를 통해서 해소하는 여린 정신 미숙아를 대변하는 인물로 내세운다.

 

어릴 적 엄마로부터 학대당한 트라우마로 인한 정서적인 불안 때문에 몸은 어른이되 정신적으론 성숙되지 못하고 비밀을 공유한 채 같이 살아가고 있는 누나 마리안과의 불안정한 사이, 누나와 학과장 라샤르에 대한 사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손에 쥐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해 위축되어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책은 시종 그 어떤 의미를 드리운다.

 

책은 중반을 향해 가면서 또 다른 여대생 아니의 집요한 공략과 그녀가 알려준 비밀에 의해 점차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종반부에 이르러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이루어 보여 주기에 저자의 글에 대한 느낌을 파악하고 읽어나간다면 책의 재미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으며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마르크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파문의 연속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보는 것이 그의 자라온 유년기의 시절과 미리암을 통해 제대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비밀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된 후에 그가 보인 행동들은 파문의 시발점이 여전히 멈추지 않고 그의 인생 모두를 통해 함축되어 있지 않았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진실된 사랑임을 깨달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그가 보인 파문의  결정판의 문장들.

 

안에서 봤을 때, 그가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밖에서 봤을 때, 방갈로가 주위에 금빛을 흩뿌리면서 빛나는 호박처럼 폭발했다.

 

시종 담배를 물고 살았던 남자, 어쩌면 담배는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여유까지 생각될 정도로 흠뻑 빨아 당기면서 심취하는 모습이 자신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그런 맥락으로 다가오는 소재로서 아주 적합하다고까지 여겨지는 매개체가 아닌가 한다.

 

영화 베티 블루, 엘르 원작 작가가로서 처음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내내 자신의 깊은 심연을 통해 서서히 그 속으로 빠져드는 중년의 마르크라는 인물이 갖는 관능의 서스펜스가 서서히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저자의 독특한 느낌을 주는 문장 또한 인상적인 책, 영화로도 개봉했다니 한번 찾아서 봐야겠다.

 

                                                                                                                          
                                            

 

엄마의 야무진 첫마디

 

 

엄마의 야무진 마디  엄마의 야무진 첫마디 – 속터지는 엄마, 망설이는 아이를 위한
정윤경 외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4월

아이의 탄생은 모든 가족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특히 첫아기일 경우엔 더욱 생명에 대한 신비롭고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달라지는 행동이나 말들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체험하게 된다.

 

비단 첫아기만이 아닌 모든 내 자녀들에 대한 기대감들은  부모들의 공통점이고 이런 기대감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이에 맞는 행동과 말들이 부모와 부딪치게 될 때 부모들은 과연 이러한 경우엔 어떤 처신을 해야 올바른 방법의 교육을 했다고 생각될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정말 실제 생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미처 몰랐던 현상과 그 현상에 대한 자세와 처신들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느끼게 해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204가지의 부모 공감 대화법이란 책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연령대를 15세까지 맞추어 그에 어울리는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대화법과 그에 대한 자세, 부부끼리의 대화법들을 고루 수록하고 있어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1

 

2~5세 유아기 때의 자녀들의 특성에 따라 조절 능력을 발달시켜줘야 한다는 점, 여기엔 무조건적인 칭찬이 아닌 칭찬의 목적이 능력과 인격이 아닌 행동과 과정에 맞춰서 해줘야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누구나 그렇게 알고는 있지만 상황에 맞는 처신들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부모라면 자녀의 연령에 맞는 파트를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만큼 고른 분포를 보이는 책이기에 실제 방송을 통해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이해심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엄마차트

초등학교 때의 또래 아이들과의 어울림, 학교 선생님과의 소통을 통해 아이는 점차 규범과 규칙을 학교와 미디어를 통해 배우는 시기인 만큼 부모의 역할은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이 필요함을, 지금 청소년기를 맞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요즘 아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그에 맞는 아이의 눈높이 대화법을 이 책을 통해 실천해 본다면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질 않는 자녀들과의 공감 형성대를 이룰 수 있는 대화 사례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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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예시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는 워킹맘, 싱글맘, 부부간의 대화법과 소통법까지 모두 들어 있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아이의 눈높이 대화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점, 더아나가 우리들이 자라왔던 시대와는 또 다른 내 자녀들의 성장에 맞춘 발 빠른 시대가 요구하는 실생활 체험같이 느껴지는 교육법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부모님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스카이 섬에서 온 편지

스카이섬스카이 섬에서 온 편지
제시카 브록몰 지음, 정서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편지 쓰기를 즐겨하시나요?

 

나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듯싶은데, 막 초 1이 되면서 외할머니께 안부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외삼촌과 살고 계셨던 할머니께 보낸 편지 내용은 엄마가 불러주면 또박또박 글씨를 연필에 의지해 눌러서 썼던 기억, 외손녀를 외선녀로 잘못 썼다가 엄마한테 혼난 기억들…

 

그 후론 방학이면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까지,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 누릴 수 있었던 감성들을 제대로 겪었던 것 같다.

 

편지지에 내용을 쓰고 봉투에 담아 우체국이나 문방구에 가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이나 빨간 우체통에 넣었던 설렘, 제대로 도착했을까?  보내고 받기까지 적어도 3일 정도는 소요되는 그 시간들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고 답장을 받게 되면 그 기쁨은 참으로 컸던 시절로 기억이 된다.

 

이후 컴과 친해지면서 가까운 사이라도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절이 됐지만 여전히 편지란 감성이 주는 매개체는 그런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겐 하나의 추억거리일 것이다.

 

이 책, 기타 다른 책들과는 다른 서간체 소설이다.

 

오로지 서간체, 편지의 형식으로만 주고받는 소설로써 정말 오랜만에 접해보는 형식, 그래서 반가웠다.

 

자자의 실 생활이 바탕이 되어 소재가 된 편지의 형식이라 일반 책들이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글 쓴다는 것에 대한 기억을 몰고 오면서 느린 사랑의 느낌을 느껴보게 되는 책이다.

 

첫 시작은 1912년 3월 미국 일리노이 주 어배나에 살고 있는 21살의 대학생인 데이비드 그레이엄의 편지로 시작이 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팬임을 자처하는 그, 곧 그 시집 작품의 저자인 엘스페스 던에게 팬으로서 편지를 쓰게 된다.

뜻밖의 먼 미국이란 나라에서 자신의 작품을 좋아해 주고 팬으로 편지까지 받게 된 엘스페스는 고마움에 답장을 하게 되고 이후 그 둘은 수시로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가까운 소통의 소재로서 편지를 이용해 기타 다른 가족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그에게 , 막연하게나마 희망적인 사항을 이루기 위한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는 엘스페스, 그에 대한 보답처럼 의사를 희망하던 아버지의 뜻을 뿌리치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까지의 과정들이 둘 사이에 따뜻한 우정처럼, 어떤 때는 오로지 자신의 뜻을 알아채 미리 말하기도 전에 솔선수범해서 행동해주는 친구 이상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책은 당시 스코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야생의 모습을 간직한 스카이 섬에 사는 엘스페스와 미국의 데이비드 사이에 이루어진 편지를 통해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연상의 여자, 그것도 이미 오빠의 죽마고우인 이언과 결혼한 여자인 엘스페스와 아직 풋풋한 소년의 이미지를 간직한 데이비드 간의 사랑은 시간을 훌쩍 넘어 1940년대의 엘스페스의 딸인 마거릿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상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엄마가 간직한 편지를 보게 되면서 엄마가 말한 엄마의 인생 첫 장인 ‘내 삶의 제 1권’이라며 비밀을 간직한 사연을 추적하는 두 갈래의 길을 취하면서 독자들을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게 한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어떤 상황이나 대화 속에서 상대방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글로써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 보이는 과정이 훨씬 더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해와 설득력을 지닐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굳이 어떤 곤란한 경우이거나, 부딪치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게 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론 글이 주는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와 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볼 때, 이 책에서 보이는 설정들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남녀가 전쟁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을 깨달은, 한 발짝도 섬에서 나가지 못했던 엘스페스로 하여금 런던에 오게 된 데이비드를 만나러 결심을 굳히는 행동까지 하게 하는 사랑의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편지 속에 다가오는 말들 속에 숨겨진 행간들의 비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편지에서 점차 팬과 작가로서의 호칭이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처럼 강렬하게 다가오게 만들며, 딸인 마거릿이 겪고 있는 폴과의 사랑과 전쟁과도 비슷한 사랑의 행보를 보인다는 점과도 비교해 보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저자는 다분히 편지란 형식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탈피해 엄마가 간직한 그 사람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딸의 과정과 맞물려 과연 마거릿은 누구의 딸인지도 궁금하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랑으로 인한 그 두 사람의 행보가  한 가족의 분산과 불화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 동안 딸을 홀로 키워온 엘스페스의 인생의 여정 속에 사랑의 대상인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추적해가는 과정까지…. 읽는 내내 독자들은 서간체 소설에서 주는 감동 그 이상을 받을 수 있게 한다.

 

 

 

– 네게 말했어야 했는데,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알려줬어야 했는데. 편지가 그저 한 통의 편지로만 남는 게 아니라는 걸 꼭 말했어야 했는데. 편지지 위에 놓인 말들이 영혼을 적실 수 있다는 걸. 네가 그걸 알 수만 있다면.-P 25

 

 

이처럼 글이 주는 특성을 제대로 표현한 말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엘스페스의 글은 그녀에게 두 사람에 대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시대가 주는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

 

서로의 오해와 한 통의 편지를 보지 않은 부주의로 인한 사랑의 결실은 맺어질 수 있을까를 독자들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주는 묘한 분위기와 뜻밖의 반전이 들어있는 비밀까지 알고 나면 이 책이 주는 서간체 소설의 감동과 또 달리 받아들여지는 ‘진실된 사랑’에 대한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가끔 전쟁 때문에 오랫동안 헤어진 두 남녀가 기막힌 타이밍에 백발이 된 채로 만나게 됐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특히 서로의 배우자가 죽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홀로 지내다 만나게 됐다는 기사들을 접할 때면 인간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는 ‘사랑’이란 감정은 영원하다는 느낌마저 갖게 할 때가 있다.

 

이 소설 속에서처럼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과 헤어짐, 그 후로 마거릿의 편지를 통해 재조명해보는 편지의 주인공 찾기와 그 후에 이루어지는 비밀 이야기들까지를 접하고 나면 당장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편지 형식을 다룬 비슷한 문학 작품인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과 비교해 봐도 좋을 듯하고, 채링크로스 84번지(한비야 님의 추천 도서). 그리고  편지가 아닌 정보 시대에 걸맞은 이메일이란 장치로 이야기를 다룬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까지 고루고루 비교해 읽어보아도 좋을 듯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의 위대함은 거리가 멀고 짧은 것에 비교되지 않는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카이 섬을 나서게 만든 힘의 원천,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강렬하게 다가온 ‘사랑’이란 이름이다.

 

 

꿰맨 심장

꿰맨심장

꿰맨 심장
카롤 마르티네즈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소설의 내용을 다루는 형식 중에서 마술적인 환상이 들어간 대목들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다.

소설이라는 것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 대한 실제같이 여겨지는 장치들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허구라고는 하지만  실제가 결여된 어떤 이미지적인

것만을 강조하는 책들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인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책의 신간 소개를 접히고는 바로 읽고 싶다는, 더군다나 마르케스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는다고 하는데서,  이미 오래전에 마르케스가 나를 괴롭혔기에 이 책은 또 어떤 서술의 힘으로 독자의 한계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 아마도 표지가 우선적으로 눈길을 끌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 속에 던져진 한 여인의 내용들을 접하는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게 들려온다.

 

내 이름은 솔레다드- (갑자기 웨스트 라이프의 노래가 생각나는 것은 이름 때문일지도?)

 

그녀는 자신의 엄마인 프라스키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글의 부분 부분들은 자신이 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쓴 글도 있고 자신이 직접 엄마의 어떤 행동이나 말들을 보고 들을 것을 적는 형식으로 섞어서 그려진다.

 

이미 대대로 여자들만이 간직해 온 비밀 전수를 토대로 엄마는 엄마의 엄마로부터 상자 하나를 받게 되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열어 본 후부터 엄마의 일생은 여러 일들의 곡선을 그린다.

 

실과 바늘을 갖게 된 엄마, 그녀의 특출한 바느질 솜씨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는 찬사와 함께 마을 사람들로부터 때로는 시기, 때로는 도움을 요청받고 도움을 주게 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남편 호세의 투계에 몰입한 결과는 그 지역의 주인 격인 과수원 주인으로부터 몸을 주게 되고 이후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레에 의지한 채 길을 떠나게 된다.

 

책의 내용은 상당 부분을 마술적인 사실주의 글들로 가득 채워져 이끌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방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 보고 느끼는 부분들,

 

“실이 지나가면서 경계가 생기는 이 텅 빈 공간들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하는구나! 드러내고, 숨기고, 세상의 두께를 걷어내고, 저 너머를 보는 것이야말로 황홀경이야! 투명함…. 거미줄의 섬세함은 세상의 한 조각을 틀에 끼워 가리는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기도 하지…. 레이스를 덮어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출하는 거야….”

 

 

읽는내내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라든가 대화들을 통해 독자들은 짐작의 의미와 설정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게 되고 그녀와 그녀들의 아이들이 갖게 된 비상한 능력들은 이후 그들의 삶 자체를 통해 다양한 행로와 모험,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의 활로를 만드는 기능을 하게 된다.

 

벙어리로 살다 상자를 전수받게 된 후 말문이 터지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모든 사람들이 감동과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을 갖게 하는 큰 딸 아니타, 또 다른 딸들인 죽음과 연관된 마르티리오, 몸에 깃털이 달린 채로 분신 같은 검은 새를 달고 다니던 앙헬라, 태양의 빛을 흡수하여 어둠을 밝히는 클라라, 오직 하나뿐인 아들 페드로의 그림솜씨, 그리고 끝에  솔레다드란 이름으로 불리는 나란 존재는 결혼을 포기하고 홀로 살아가길, 고독을 삶의 원천으로 살고자 하는 형제자매들로 엮어진 그들의 가족사는 농민혁명으로 인해 안달루시아에서 벌어진 일과 그 이후의 북아프리카에서 안주하기까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떤 미지의 마술적인 힘들을 동원 하여 그들의 삶을 함께 한다.

 

여기엔 세상의 지배를 하는 주된 자들이 남성이라고 생각되는 현실이 이 책에선 결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헝겊으로 살아 고동치는 듯한 심장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솜씨를 가진 엄마의 힘을 시작으로 아버지의 그릇되고 허망한 목표였던 것에 반기를 들지 못했던 딸들의 존재, 즉 여성의 힘이 현실에서 어떻게 포기가 되는지를 사실주의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삶이 결코 남성들에게 좌지우지되지 않고, 여성들만이 지닌 ‘비밀’을 통해 이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서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씨줄과 날줄의 엮음을 이용한 글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약자들을 지켜내는 힘의 원천, 죽어가는 마르티리오를 살려내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에서도 느낄 수가 있지만 저자가 그린 이 책 속에서의 구절들이 저자 자신의 생각을 들어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자들의 비밀을 통해 전하는 숨겨진 얘기들, 아낙들의 귓속에 파묻혀 있다 젖과 함께 빨리는 얘기들, 어머니들의 입술이 마시는 얘기들. 피와 함께, 월경과 함께 배우는 이 마법”에 그 힘이 있다. “

 

소설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성들의 삶과 사회 속에서 한정 지어진 제도권 안의 여성들의 현실을 통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비판적인 시선을 생각하게 하는 책답게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조차도 모를 만큼 마술에 흠뻑 빠져있다 나오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