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선한이웃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책을 모두 읽고서 한참 동안 어떻게 써야할지 기준이 잡힐 질 않았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의 작품을 통해 익히 알려진 작가가 그리는 1987년 6월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오랜만에 나온 출간작의 배경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는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출발한 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대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제목만 보고서 내 나름대로의 착각을 한 점도 한몫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한 이웃, 말 자체의 어감은 부드럽게 다가오지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누가 선한 이웃이고 누가 악한 이웃인 지 조차도 모호할 정도의 판단력의 기준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책은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인 최민석이라고 불리는 자를 잡기 위해 당시 흔하게 벌어졌던 대학생들과 경찰들의 대치상황을 통해 이 작전에 투입된 김기준이란 인물, 그리고 연극 연출가인 이태주와 배우를 꿈꾸는 여인이자 이태주의 페르소나인 김진아란 여인, 그리고 김기준의 상사인 관리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그려진다.

 

이태주는 연극으로서 줄리어스 시저에 대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번역한 대본을 수정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무대에 올리지만 한 줄의 번역을 바꾸면서 이내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자신과 동료 배우들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눈초리는 이내 연극계에서 외면당하고 그 자신 또한 미행의 두려움을 느끼며 재기를 노리던 중 진아를 만나게 되고 그는 진아를 내세워 엘렉트라 란 연극을 올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을 듯한 세 사람의 조합과 만남은 국가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하에 길러긴 정보요원 길들이기와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자신의 맡은 바대로 임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김기준이란 인물이 실패한 작전에 대한 만회를 위해 최민석 잡기에 올인하는 과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 빨갱이를 잡고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일은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민석을 쫓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최민석을 쫓았다. 그냥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제대로 일하는 방식이었다._144쪽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했을 뿐인 결과로써의 참혹한 사실들을 접하는 과정에서의 독자들은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며 이후 반전의 결과물을 또 한 번 접하면서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생존 때문에 악이란 것에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딛고 살았다는 자각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의 국가 개입을 통한 한 개인의 인생을 망치는 과정들이 여전히 시대의 아픔을 전달해준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주도권 하에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당시 시대의 흐름은 이토록 쉬운 일도 하기 어려웠다는 사실, 철저한 강약 공세을 쥐고 두 사람을 쥐고 펴락 했던 관리자란 인물이 생각했던 그 나름대로의 선의의 정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은 연극 작품을 통해 은유의 문법을 통한  이태주의 주장이 섞이면서 몰입도는 힘들게 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본 적이 없는 실세 최민석을 잡기 위해 모든 설계도에 그려진 것처럼 착착 옭아매기 위해 조여 오는 김기준과 또 다른 쪽에선 연극에 대한 논쟁으로 그려진 반대의 상황을 통해 과연 이 설정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은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 “범죄를 규정하는 건 의도가 아니라 결과야. 강요에 따랐든 자발적이었든 간에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범죄는 범죄야, 선의의 거짓말도, 어쩔 수 없는 범죄도 없어.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그냥 악일 뿐이라고.”-p 246

 

 

의도한 바는 아닌 선한 행동으로 인한 결과물이 결국 악으로 인식되었을 때의 태주처럼 과연 우리들은 선한 이웃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이웃이었을까?

30년이 흐른 지금의 우리들 모습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선한 이웃은 어떤 기준으로 불렸을 때의 모습이었을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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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악마증명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처음 도진기란 이름의 작가를 대한 것이 바로 ‘악마의 증명’이란 책이었다.

소재 자체도 신선했지만 저자의 이력면에서 더욱 흥미를 이끌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 외국처럼 자신의 활동분야에서 주 전공은 전공대로 활동하되 또 다른 번외의 외전처럼 제2의 창작활동이란 전혀 상반되면서도 연관성이 있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모색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직 판사로서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장편들을 대하면서 한국적인 주 무대를 그린 점, 그런 가운데 법정에서 자신의 일을 보다 상세히 다루고 그 안에서 오고 가는 여러 정황들을 보통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토로하는 상황들이 또 다른 한국적인 맛을 느끼게 해 준 덕에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 또한 갖게 했다.

 

이번에 그동안 각 출판사에서 내놓았던 작품들과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발표한 저자의 작품들은 여전히 다시 읽어도 당시의 흥분과 느낌을 되새기게 한다.

 

특히 ‘악마의 증명’같은 경우는 쌍둥이란 점을 이용해  한 사람의 범죄를 증명한다는 기막힌 설정 때문에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그런 이 작품을 여러 개의 이야기들 속에 첫 번째 주자로 내세운 점은 나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동감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에 첫 주자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저자의 글들은 하나의 성격을 이어가는 형태의 글이 아닌 다양한 문학적인 시도를 한 작품들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섬뜩했던 ‘죽음이 갈라놓을 때’ 란 작품에서 전혀 도진기 작가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냉혹함을 보였던가 하면 남편을 죽인 여인의 정당방위 주장을 위해 혈기 넘치는 변화사의 활약을 그린 ‘구석의 노인’ 같은 작품은 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증거물과 정황들을 가지고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정이 오랜 인생을 살아온 한 노인의 눈에 비친 인생의 또 다른 면을 통해 들여다보는 방향 전환점과는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그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제대로 알고 이런 법 진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사의 새옹지마와 같은 느낌을 여실히 보여줬단 점에서 두 번째로 좋은 작품 대열에 꼽아본다.

 

또한 시간의 연속성의 되풀이로 인한 환상을 곁들인 ‘시간의 뫼비우스’는 당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 밖의 작품들 또한 분위기가 전혀 다른 내용들을 전해 주기에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이제는 현직 판사라는 법복을 벗고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길을 택한 도진기 작가가 과연 다음 작품에선 자신의 신분과 활동에 힘쓰면서 썼던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 작품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특히 책 말미에 저자가 쓴 내용 중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악마의 증명’ 이란 작품의 표절 문제로 방송매체와의 대립을 두었던 결과물의 저간 사정을 짧게나마 알게 된 것이 좋았다.

창작자로서의 자신의 자식처럼 여겨진 작품에 대한 당시의 고통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단 점에서 차후 이러한 소설도 좋지만 단편을 통해서 한국적인 추리 스릴의 장르를 개척할 수 있다는 노력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인 만큼 외국의 소설과 비교해 읽어도 좋은 책이란 생각을 해 본다.

 

도진기 작가의 건필을 빈다.

머그컵을 받았습니다.

컾과 책

 

위블지기 님으로부터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컵을 선물 받았습니다.

요즘은 흔하디 흔한 머그컵이 많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굿즈란 이름으로 해당 금액 이상이면 컵을 주는 행사가 있는지라 집에 컵이 조금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문구, 원하는 문구를 새겨주시는 센스와 함께 머그컵을 받고 보니 아까워서 어디 사용하겠나 싶더군요.

가족들이 연신 탐을 내긴 하는데, 아직은 사용할 엄두도 못내겠고 아는 지인들에게 사방팔방 자랑하는중입니다.

전 얼마 전 읽은 최갑수 님의 글 중에서 발췌해 신청했는데, 선택한 문구가 읽고 썼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네요.

 

먼저 전에 주신 엽서 또한 고이 간직 중입니다.

위블러거들의 분위기에 맞는 엽서 선정과 선물을 주셨는데, 미처 올리질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같이 올려주시면 좋을것 같단 생각을 하신 위블지기 님의 생각에 동참하고자 올려봅니다.

 

 

컵과 우표

 

엽서는 제 나름대로 다시 사진을 찍어 스마트 폰 홈배경 화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과 함께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도 느껴보고, 이제는 머그컵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없는 선물대잔치라서 정말 기분 좋네요.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위블지기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대의 소음

시대소음표지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한 인간의 무한한 창작의 열의와 욕구의 발산은 그대로 그 자신의 몫으로도 남지만 그 이후의 후세대들에 의한 평가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오래도록 인간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게 마련이다.

혹독한 평가이거나 아니면 당 시대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더라도 후대에 이르서 평단의 결과가 바뀌어 오히려 좋은 결과물로 남게 될 경우는 더욱 그렇기도 하지만 이미 유명 인사로서의 지명도를 가진 인물을 소설 속에서 다룬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독자들은 내리게 될까?

 

줄리언 반스의 신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흥분감, 더군다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실존 인물의 인생을 역사 속에서 녹여냈다는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전작들 못지않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쇼스타고비치-

익히 알려진 소련의 유명 음악가라고, 특히 그의 작품은 연주하기 어렵다는 라흐마니노프에 비교된다는  사실만 알뿐 클래식에 관해선 크로스오버와 귀에 익은 음악 정도만 알고 있었던 내겐 흥미로운 인물로 다가왔다.

 

사실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낼 때만큼 창작자들의 고뇌도 만만찮게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상상이 가는바, 줄리언 반스의 글은 역시 실존 인물의 창작과 예술의 세계와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한 개인의 고뇌를 역사라는 이름 속에 작지만 큰  빅의 그림자의 대립을 통해 적절히 잘 녹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기 한 남자가 승강기 옆에 내내 서 있다.

담배만도 벌써 다섯 대를 피웠고 그의 이런 불안은 차라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눈에 낯선 미지의 인물들이 자신을 어서 데려가 주길, 그래서 얼른 죽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편한 잠옷? 하긴 이런 옷을 입고 자길 원하는 부인의 말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정장을 갖추고 침대에 누워 있고 옆에 가방을 가지런히, 언제라도 나갈 준비태세로 잠을 취하는 이 사람, 바로 쇼스타고비치다.

 

그의 탁월한 음악적인 해석과 작곡 능력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촉망받았으나  윤년마다 세 번의 결정적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만 했던 암울한 시기를 보낸 음악가이다.

 

세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그의 음악적인 활동은 두 번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Ledi Makbet Mtsenskovo uyezda>이 스탈린에 의해 분노를 사게 되면서 당국의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고 이후 이 작품은 올릴 수가 없게 된다.

 

이 시기에 같이 활동했던 음악 동료들이 끌려가 죽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 또한 그런 날이 멀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만큼 삶에 대한 생각,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생각은 이후 죽음을 비켜가게 되면서 당국의 비판을 수용하게 되고, 당국이 원하는 음악을 하게 된다.

 

 

낙관1

낙관2

 

당시 소련에서 일어났던 형식주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자신의 작품에 비하면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여겨지는, 음악가의 삶은 점차 모순적인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수긍하되 내면적으로는 창작에 대한 괴로움을 동시에 안고 가는, 아이러니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런 그의 삶은 스탈린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철저히 소련 문화 자체가 통제받는 시기를 거쳐 세계 2차 대전과 후르시쵸프 시대를 맞이하면서 또 다른 음악 창작활동에 전환점을 맞게 된다.

 

진실

저자의 조사와 그 당시 쇼스타코비치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을 근거로 내세운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주는 시대의 소음으로 인한 창작자의 작품 활동을 통해 어떻게 당국의 검열과 교육, 통제를 받고 서방에 날아가서까지 당국이 원하는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그의 인생 전편에 흐르는 여러 가지 고심에 찬 모습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어느 시대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시대가 있는가 하면 위의 시대, 특히 세 시기를 걸쳐서 살아갔던 많은 예술인들이라면 자신의 원대한 창작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초점에 맞추어 작품을 생산해내야만 한다면, 그것을 거절했을 경우에 어떤 보복과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 친지들, 관계자들까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뻔히 하는 상태에서라면 과연 우리들은 쇼스타고비치가 해왔던 행동들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소음진실

그 역시 이러한 부조리한 시대에서 오는 통제와 간섭, 폭력이 난무하고 가난과 고통이 사방에 널려있던 그 시대에 자신보다는 그 자신의 가족들과 주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이를 행해야만 했다는 현실성, 그렇기에 작품 속에 당국의 심경을 거슬리지 않고 자신의 창작의 뜻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수단으로 아이러니를 매개로 했다는 점은 무엇이 옳은 행동이고 그른 행동이라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예술의 진위성, 진정한 예술인으로서의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살아오는 내내 끝없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차라리 미리 죽은 동료들을 부러워해야만 했던 당시의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데서 체제의 불합리에서 오는 한 나약한 예술가의 그 나름대로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진정한 용기와 비겁함의 차이는 결국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체제의 통제에서 그 자신 스스로가 당국에 협조를 하되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과 창작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그래서 오늘날에도 곳곳에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시대의 소음을 연일 들으면서 살아가 는 우리들에게 그가 들려주는 예술과 창작에 대한 열의는 소음마저 잠재울 수 있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생 전 연대를 통틀어 본다면 무난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타 작가들처럼 망명이란 것을 하지 않고 자신의 나라에서 예술이란 것에 온 생애를 바치며 줄 타는 심정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예술가의 삶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티네의 끝에서

마티네의 끝에서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책 띠지의 문구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파스텔톤의 책 표지 그림도 그렇지만 책을 읽기 전에 두루두루 살펴보며 첫 페이지를 열기 전의 강렬함이 다가오기는 모처럼 느끼게 되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책 속의 이런 경험을 해본 적도, 상상한 적도 극히 일부의 책을 통해서나 느꼈을 뿐인 이 책의 내용들은 얼마 전에 읽은 책과는 또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신문에서도 나온 적이 있지만 마티네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시청 근처로 기억이 되는데, 점심 시간을 이용해 직장인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즉 프랑스어 마탱(아침)에서 온 단어인 마티네란 용어를 이용한 이런 종류의 음악을 낮에 들려줌으로써 음악을 쉽게 접해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는데,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그것이 마음 한편의 구석 속에 꼭꼭 숨어 감추어버린 하나의 추억거리로 자리 잡았다 할지라도 첫사랑이란  단어가 내뿜는 지속성은 아련한 기억이란 이미지 속에 또 하나의 사랑의 형성 형태로 남기가 쉽다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접해보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떠올랐던 것은 언제인지는 기억이 가물 하나, 차인표, 이영애 주연의 ‘불꽃’이란 드라마가 연상이 됐다.

 

결혼할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 격정적인 사랑을 잊지 못하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하는 여정과 힘든 다른 생활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책은 이런 두 남녀가 처한 공통된 소재를 갖는다.

 

당시엔  정말 이렇게 짧은 순간에 말 그대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적이 있던 만큼 이 책 속의 두 주인공의 만남도 그렇다.

 

이미 천재적인 클래식 기타계에서는 독보적인 천재로 불리는  마키노 사토시는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 마지막 날 프랑스 RFP 통신에 근무하는 기자 고미네 요코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어떤 첫인상의 강렬함을 느낀 두 사람은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좀 더 이 시간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지만 이내 아쉬운 작별을 고하게 된다.

 

유고슬라비아였던 크로아티아인 영화감독 아버지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요코는 이미 미국인 약혼자가 있는 상태였고 두 사람은 각자가 지닌 감정을 지닌 채, 서로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마키노는 때마침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연주자로서의 한계와 요코에 대한 감정이 겹치면서 슬럼프에 빠지게 되고 요코는 요코 나름대로 바그다드 취재로 인한 파견 근무에서 폭탄 테러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두 사람의 멀고도 먼 사랑의 감정은 우연찮게 한 나라에서 다시 재회를 하게 되는데….

 

철 모를 때의 10대의 사랑과는 확연히 다른, 이제는 세상의 흐름 속에 나 자신을 어느 정도의 타협과 현실에 입각한 이해를 하면서 살아가는 중년들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이 될까?

그 흔하다고 하는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감정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이 사랑을 간직하고 표현하는 감정 표현에는 확실히 신중함을 보인다.

그것이 두 사람이 처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두 사람만의 미래를 약속하기로 한 그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험난한 앞길이 생겼다면, 인생 속에 사랑이 들어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두 사람의 오해와 당시의 여건은 나이 때에 따른 선택의 신중함을 보인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쾌활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고독감을, 일이나 취미 같은 장점은 그럴 리 없다고 간단히 위로해버린다. 그리하여 인간은 단지 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아름다워지고 싶다, 쾌활해지고 싶다고 간절히 꿈꾸는 것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값할 만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없다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p98

 

오로지 연주에만 몰두해온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최대 위기인 슬럼프는 요코만 곁에 있다면 서로의 감정을 통해 알아주고 위로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마키노의 사랑의 흔적은 나이라는 연식으로 인해 머뭇거리게 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해 자제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단 세 번을 만났을 뿐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요코의 생각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이미 알았지만 맺어지지 못한 사랑의 원점에 대한 이야기 흐름으로 인해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우연이 필연인 듯, 필연이 우연인듯한 설정을 해가면서 두 사람 간의 만남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책 속의 장면들은 많지만 이 두사람 간의 만남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것이 마키노의 사정이 급박하게 변해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필연이 우연처럼 제삼자가 등장함으로써, 그 당시의 상황이 이미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 후의 결정으로 인한 각자의 삶은 또 다른 의미를 낳는다.

 

결혼이란 제도에서 사랑으로 맺어졌다고는 하나 이미 마음속의 또 다른 사랑을 간직하고 살았던 두 사람의 삶의 지속성은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여전히 만나고 싶다는 해후에 대한 기대치, 그러면서도 결혼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마키노의 세뇌는 또 다른 아버지로서, 연주자로서, 남편으로서의 책임성을 보인단 점에서 이 책은 한순간에 불타오른 사랑이란 감정을 두고 사랑의 선택을 감행하기보다는 각자가 속한 인생의 길 속에 조그만 사랑의 불씨로 남겨놓은 중년들의 사랑법을 그렸다는 점에서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 나는 결코 요코를 잃고 그 대신 어쩔 수 없이 사나에와 결혼한 게 아니다. 그녀라는 한 인간을 분명하게 사랑해서 오늘날까지 생활을 함께해왔다…..  잠시라도 마음을 풀면 금세라도 바뀌어버릴 듯한 그 위태로운 과거를 그렇게 애써 원래 모습대로 붙잡아두는 것이었다.-p456

 

 

책 속에는 일본인의 느낌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국적인 문제들, 인종, 전쟁, 예술을 다루고 그 다방면에서 마키노의 직업인 클래식의 연주를 듣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첫 만남 이후 5년 간의 시간 경과를 두고 다시 만난 두 사람, 예전의 감정은 갖고 있으되 또 다른 감정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해후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마키노와 요코의 선택이 결코 두 사람 만의 문제만은 아님을, 사랑의 지속성은 또 다른 행보를 통해 느낄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이기도 하고 저자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폭넓은 지식, 사랑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커다란 인생의 자리에 사랑이 차지한 비중을 색다르게 접근함으로써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성을 남겨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만엔 원년의 풋볼

만엔원년

만엔 원년의 풋볼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린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이다.

처음 제목을 대했을 때의 상상은 만엔이라 해서 당시의 환율로 생각해도 어떤 가치, 즉 축구공의 가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일본의 연대를 가리키는 말이란 것을 알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는데, 바로 만엔은 에도 막부 말기의 연호이고, 만엔 원년은 1860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소설은 무척 두껍게 세 연대의 기록으로 보일 만큼 인간의 일대기를 통해서, 아니 거의 100여 년의 한 가문의 일대기를 통해서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과 시대적인 흐름에 휩쓸려 살아가는 과정 속에 인간의 내면의 고찰을 심층 있게 다룬 것이라고 느껴지게 된다.

 

주인공 마쓰사부로의 고향인 시코쿠의 산골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난 1860년(즉 만엔 원년),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막을 내린 1945년, 그리고 혼돈시대인 1960년의 시대를 그린 대작인 만큼 일본의 역사를 한 가문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쓰사부로다.

추한 외모와 기형의 아이를 낳은 후 자신의 아이를 다른 곳에 양육을 맡긴 채 그 상실감에 쌓여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가는 아내가 있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 또한 상실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학생 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갔던 동생 다카시의 귀국과 다카시의 의견으로 조상의 고향이자 자신들의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곳은 100년 전 증조부 형제가 연관된 농민 봉기의 역사와 패전 직후 조선인 부락 습격으로 S 형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두 형제는 각기 달리 이 사건들에 대해 기억을 하고 동생 다카시는 동네 청년들을 모아 축구팀을 만들어 축구를 가르친다.

 

풋볼팀을 만든 이유는 마을의 경제권을 장악한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기 위한 것. 때문에 이로 인한 다카시의 행동으로 인해 두 형제간의 갈등은 심해지는데 이 책은 이러한 여러 갈래의 길을 통해서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본인 내부의 심폐 한 상실감 속에 ‘수치감’을 들어내 보임으로써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불만과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관심의 초점이 그나마 마을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살아가는 조선인에게 향하는 불안성의 조장을 숨 막히는 듯한 광경으로 그려낸다.

 

농민 반란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된 후의 비밀들과 그 비밀들이 탄로남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당시에 조선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풍요로운 생활 속에 또 다른 삶의 행태를 기대하는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어떤 대상을 지목해 분풀이 식의 행동을 하며, 이 두 형제간에 벌어진 가족사의 슬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동생 강간 사건과 형수에게 아이를 임신케 한 행동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작가가 그려내는 일말의 인간 구원의 길,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구원의 길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책은 일본의 역사 연대를 알려주는 칭호도 익숙지 않고 일본의 역사에 대한 큰 줄기는 대강 알았어도 이렇게 자세한 부분들까지의  지식은 없었기에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다만 중간부를 넘어가면서 급속도로 진전되어 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 속에 다른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러한 글의 구성 흐름이 동생의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제삼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의 무기력함과 비양심적인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동생 다카시란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심리 속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악’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읽는 내내 역사를 관통하고 살아가야 했던 인물들의 삶을 쉽게 동화하면서 읽어나가기는 어려웠던 작품인 만큼 일본인 작가가 그려내는 일본인 자신들의 자화상을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점, 인간의 수치심과 방관적인 태도를 통해 또 다른 제 삶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려는 의지를 엿보이는 주인공의 마지막 행동을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면에서 바라보는 생각을 또 달리 받아들여 보게 한 책이 아닌가 싶다.

 

뜬금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뜬금없이

뜬금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페트라 휠스만 지음, 박정미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5월

사랑에 빠지는 시간을 잴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빠른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 듯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느긋하게 천천히 상대방과 자신과의  관계를  여유를 가지고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의 인연에는 어떤 정해진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에 빠지는 것도 작정하고 빠지는 것은 아닐 터, 이 책에서 그려지는 두 남녀 간의 사랑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사랑에 빠지는 그림을 그린다.

 

편집증 환자처럼 어떤 정해진 규칙처럼 쳇바퀴 돌듯 일주일 안에 해아 할 일들을 계획성 있게 처리해 살아가고 있는 27살의 이자벨라-

그녀는 꽃집에서 일하는 플로리스트로서 자신의 직업 외에 즐겨보는 드라마는 꼭 봐야 하고 정해진 요일에 빨래, 운동, 아빠 묘소 방문, 엄마 집 방문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스타일이다.

 

이런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긴다.

11년간 모퉁이를 돌면 있는 베트남 식당에서 즐겨먹던 누들 수프를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폐업이 되어 버린 것, 더군다나 그곳엔 까칠한 셰프이자  사장인  옌스라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온통 그녀가 즐겨하지 않는 음식들 뿐이다.

 

수시로 의견 충돌과 달리 받아들이는 관점들 때문에 전혀 친해질 수 없는 둘 사이는 옌스의 이복 여동생 메를레로 인해 차츰 관계가 이어지게 되는데…

 

이 책은 어떤 우연을 가장한 폭풍처럼 질주하는 사랑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보통의 우리들 모습들 속에 들어있는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가지고 사랑을 이루어나가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까?

 

이자는 자신만이 꿈꾸는 완벽한 로맨스의 전형인 사랑을 꿈꾸는 여인이다.

한순간에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면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둘 만이 느끼길 원하는 여인, 하지만 이혼남인 옌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요, 더 이상 사랑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나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옌스가 봤을 때 이자가 꿈꾸는 듯한 사랑의 희망은 완전히 현실을 배반한 그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 것만은 틀림없을 터,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기반에 어느 날 정말 자신이 꿈꾸던 남자인 변호사 알렉산더란 남자를 만나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아가려는 이자의 ‘사랑에 빠지려는 노력’을 보게 되는 옌스의 감정, 그와는 반대로 이 둘을 이어주려 노력하는 깜찍한 학생 메를레의 활약과 주위의 또 다른 사랑의 커플들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발랄하고 엉뚱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와 차갑게 느껴지면서도 속 깊은 캐릭터로 무장한 두 남녀를 대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이끈다.

 

 

자신도 모르는 순간 옌스를  사랑하고, 옌스 또한 자신에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란 감정을  확신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두려워하던 이자에겐 때론 자유분방함도 필요하단 사실, 그런 자신의 작은 변화를 통해서 세상엔 누들 수프만이 아닌 달콤한 퐁당 쇼콜라도 먹을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둘째, 사랑은 모든 것이 언제나 멋지고 완벽하고 조화로우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그런 게 아니야. 진실을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지!”-p394

 

완벽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빠져들던 이자에겐 어쩌면 옌스에 대한 사랑 감정과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자신과 맞지 않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현실적인 사랑이야말로 행복을 일구어나가는 첫 출발점이란 생각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화려한 고백도 없고 어떤 특정한 장소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두 인물들의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는 읽는 동안 나 자신도 모르게 폭신한 솜이불처럼 사랑이란 감정에 빠지게 하면서  읽게 된 책이다.

 

옆에 퐁당 쇼콜라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티투스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원형은 무엇일까?

가끔 영화나 책을 통해서 접해보는 사랑의 형태들은 실로 다양하다.

처한 환경에서 오는 이별이나 사랑의 첫출발을 다루는 여러 가지 글들이나 영상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의 첫출발부터 아주 남다른 사연들을 지닌다고 볼 때 이 책은 그런 사랑에 대한 감성을 다룬 책이다

 

책은 첫 장부터 이별 장면부터 시작을 한다.

두 사람이 언제 만났으며 사랑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바로 헤어짐이다.

유부남인 티투스는 베레니스와의 만남을 포기하기로 하고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 베레니스는 주위의 모든 충고와 위로를 때론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위로 자체도 안된다는 심히 상실감에 빠져드는데, 우연히 접하게 된 장 라신이라는 프랑스 작가의 시를 접하고서 그가 다룬 말들을 통해 자신의 아픈 심정을 위로받고자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인 장 라신의 생애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독자들은 베레니스가 처한 상황과 장 라신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여성의 심리 상태를 그렇게도 구구절절 잘 그려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그의 생애를 통해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로 돌아가는 이중의 상황을 보게 된다.

 

로마 황제였던 티투스는 자신의 로마을 버리지 못하고 유대인 공주였던 베레니스와의 사랑을 포기한 이야기는 현재의 지금 유부남인 티투스와 버려진 여인 베레니스로 다시 부활하면서 베레니스란 이름은 사랑의 아픔을 겪는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형식을 취한다.

 

여기서 장 라신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 17세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수도원과 또 다른 학교에서 살아가던 시절에 익힌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통해 고유의 언어와 자신이 생각하는 언어에 대한 자유분방한 해석과 번역을 통해 파리로 진출하게 된다.

 

수도원과 궁정생활이란 두 세계의 극과 극을 달리 한 생활은 그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지에 대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비극 작품을 연출하게 되고 이는 곧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책은 기존의 일반 사랑을 다루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흔히 말하는 쉽고 빠르게 습득되는 사랑의 표현방식은 수많은 라신의 언어와 글을 통해 저자의 지식을 마치 독자들이 재 습득하듯이 아포리즘으로  가득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의미와 그 상황이 부여하는 의미를 찾아가면서 읽게 하는 책이기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이 글의 색채는 다른 책들이 전해주는 사랑에 대한 아픔을 대체시킬 수 있는 무언의 압박처럼 다가오는 구절로 인해 난해함과 장 라신이라는 작가에 대한 작품을 들춰보고 싶게 하는 의미를 부여시킨다.

 

사랑의 상실을 나타내는 라신 만이 그려낼 수 있는 언어의 뉘앙스는 아마도 그 당시 라신이 살았던 시대에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의 한 처세술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본인 자신이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살아왔던 수도원의 생활과 궁정에서의 생활 속에서 갈등을 통해 사랑의 아픔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소설에서 라신은 사랑했던 여인과도 헤어지고 죽음을 맞기까지와 현재의 티투스 죽음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

죽기 전에 베레니를 보길 원하는 티투스-

그러나 베레니스는 “그들은 아직 그를 잃는다는 게 뭔지 알지 못한다. 고 말하며  그녀는 이미 , 두 번째 상실은 첫 번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라며 자신 “자기 안에 그런 잔혹함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헸던 것이라” 고 말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부드럽게 다가오진 않지만 묵직한 향이 나는 느낌처럼 다가오는 책, 그러면서도 사랑의 상실을 안고 있는 베레니스의 마음을 달래준 또 하나의 예리한 글들은 책 속의 베레니스뿐만이 아닌 만인의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시대를 뛰어넘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주요 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인 만큼 세속적인 ‘사랑’이란 주제 안에서 볼 수 있는 상실에 대한 감성을 순수 문학 쪽으로  접할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길이아니면표지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무소유의 실천자이신 법정 스님이 열반하셨다는 실감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하고 보니 새삼 다시 마음의 다스림을 깨달아 가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물욕이나 기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에 대한 소유욕을 저버리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지만 불일 암이란 암자에서 평소의 소신대로 실천하다 열반하신 스님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과 그동안 출간하셨던 책의 구절들을 이어서 같이 보는 느낌이 사뭇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길1

 

이 책은  최순희 님의 사진집 <불일암 사계> 속 사진들과 함께 스님의 글들이 같이 곁들여져 있는 책이다.

첫 장을 펼치게 되면 최순희 님의 인생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지고 책 중간과 종반부에 조금씩 할머니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는 정지아 님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이 책에 대한 뜻깊은 것을 알아가게 한다.

 

길2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그 안에서 탐욕과 무소유의 실천을 통한 구도자의 자세를 엿보게 되는 글들은 여전히 담백하고 절제가 된 문장들로 가득 차 있고 이를 뒷바침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최순희 할머니가 불일암에 드나들면서 찍은 사계의 모습들이 더한 감동을 전해준다.

 

길3

 

1979년 한 여인이 스님이 계신 곳에 말없이 나타났다 안팎의 청소를 해주고 말없이 사라지는 행태를 보이기를 여러 해, 스님은 거부하지도 받자 하지도 않으셨다는데, 이미 최순희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알고 계셨기에, 그녀의 혼란스럽던 마음의 구도자로서 지탱해주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만 하게 할 뿐 정확한 두 분의 오고 간 편지들은 무소유의 실천답게 모두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에서 김영랑의 남동생과 결혼 후 사회주의자인 남편을 따라 월북을 하게 되고 이후 전쟁을 통해 빨치산에 있다 동료 몇 명과 함께 아들은 이북에 남겨두고 붙잡혀 평생을 괴로운 심정으로 살다가신 분이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기구한 운명 자체에 대한 갈구하는 심정을 스님을 통해 다스리게 됐고 행여 스님의 구도 생활에  방해가 될까 싶어 자연의 사진만 찍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소중한 불일암의 사계를 흙, 바람, 햇빛, 눈이란 제목을 달아 그때그때의 변화된 자연의 모습과 스님의 평소 모습을 물건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귀중한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길4

복잡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심히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 가끔 이런 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본적인 자신의 마음속을 헤집는 원인을 다스리고 다른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을 되새겨보게 되는 책이란 생각도 들기에 잠시나마 정적인 고요함 속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듯한 책이 아닌가 싶다.

 

                                                                                                                          
                                            

저스티스맨

저스티스맨

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한 사람이 그것도 두 군데서 한 해에 두 개의 대상을 거머 줬다는 것은 실로 어렵기도 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상으로 뽑힌 그 이유엔 그럴만한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이 책을 접하면서 잠시 또 한 번의 흥분을 느낀다.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가로서 그의 작품인 ‘스파링’에 대한 강렬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매번 좋은 작품의 선정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바로 같은 작가란 기사를 접하고 무척 놀랐다.

 

전작에 대한 기대를 또 한 번 느낄 수가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을 상상하기도 했던 바, 역시 이 작품 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글이다.

 

이마에 두 개의 탄알 구멍이 난 상태로 발견된 피해자의 수가 동일한 방식으로 발견이 되고 단지 유일하다 싶은 증거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선 좀체 보기 힘든 권총을 이용해서 죽인 사실뿐이다.

 

당연히 죽은 사람들에 관한 연관성 자체는 물론이고 전혀 어떤 근거도 잡을 수 없이 방황하는 경찰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국민들은 그 대상이 모두 나에게도 해당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어느 날 저스티 맨이란 닉네임을 가진 자가 등장해 이 사건들에 대한 자신 스스로 나름대로의 자료와 논리를 통해서 사건 자체에 대한 전모를 제시하게 된다.

 

사건의 첫 주자의 발생 원인부터 조목조목 지적해나가는 일련의 사실성에 접근한 근거는 소수의 누리꾼들에 의해 이루어지다 어느 순간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게시물을 통해 그 숫자가 오십만이 넘게 되고 순간적으로 누리꾼들의 시선은 저스티 맨이 이루어 놓는 카페 가입을 시작으로 저스티 맨과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종이 어느 신을 떠받들 듯 절대적인 신앙처럼 번지게 된다.

 

익히 익숙한 인터넷 세상에서 마우스 하나로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 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너도 나도 누리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져 있는 사람들의 소양은 이 익명의 세계를 넘나들 때 과연 어느 정도의 양심과 자격을 갖추어져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떤 유명 연예인의 가십을 주제로 토론을 벌일 때 자칭 덕후들의 팬덤현상은 가히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어떤 기사에 대한 내용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나 언행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나 설사 그 연예인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동들을 했을지라도 이미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그 사실마저 인정치 않는 괴력의 모든 행동을 불사하는 경우를 더러 볼 때가 있다.

 

나의 생각이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을 때의 현상, 바로 이 책에서 다루는 저자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댓글 토론이나 그 현상에 대한 흥분을 넘어선 자제하지 못하는 일부 누리꾼들에 대한 모습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의 작은 시작점이 점차 팬덤처럼 커지고 저스티 맨의 주장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에 반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익명의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오고 가는 언어폭력을 넘어서 그것이 마치 진실인양 정의감과 도덕적인 행동에 따른 우월감이 전혀 나와는 연관이 없는 타자에게 어떻게 다양한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소수의 의견의 소중함은 아예 잘못된 식이란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다수의 논리의 대세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들게 한다.

 

폭력이란 것이 단지 어떤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언어라는 것을 통해 행해지는 폭력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려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모양새들은 살인의 원초적인 근본적인 실체는 이제 저리 가고 오로지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난상토론을 토대로 이를 어느새 자신의 왕국 안에서 군림하는 왕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저스티 맨이란 인물과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살인이나 폭력만은 안된다는 사실 하에 저질러지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처벌은 과연 법에 따른 정당한 형량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죽은 자들에겐 저스티 맨에 의한 논리에 의하면 모두 죽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도 없어져도 될 만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란 인식하에 어느새 누리꾼들 사이에 우상처럼 떠오른 게 되는 이러한 사회 현상 속에  그 안에서 무리들 틈에 끼여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들도 과감히 나서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양심, 특히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심과 그럴듯한 논리에 의해 타당성을 부여하려는 의지마저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저자는 정곡을 찌른다.

 

 

-독단적으로 폭력 또는 살인을 저지를 용기가 없는 이들은 한데 뭉쳐 무리를 이룬다. 누군가 불을 지르면 따라 지르고 집회에 참가하면 그곳에 함께 서 있으며 소리치면 함께 고함친다. 그들에게도 역시 모든 게 수월하고 익숙하며 두려움 따위 이제 더는 없다.-p 219

 

악이란 타고났을 때부터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기타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연쇄살인범의 행동이나 저자가 주장하는 본성이라고 부르는 악에 대한 것을 읽다 보면 과연 악과 선의 경계선을 구분 짓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초의 정통성을 지닌 악은 삶의 또 다른 면이자 선이자 색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것을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을 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매혹의 힘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이었다. 단숨에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까 두려워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무언의 합의. 또 하나의 본성.- p 9

 

 

책은 미국의 화가 잭슨 폴락의 그림의 제목을 소제목으로 이용하는 노련함을 보인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익숙지 않는 과감성을 보인 화가의 작품들이 어떤 특정한 논리와 전문가들의 소견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면 그 순간 그의 작품은 이미 어떤 평가 자체에 대한 선을 넘은 명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처럼 이 연쇄살인 사건을 토대로 벌어지는 온라인 상의 누리꾼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심리 그 근저의 기저에는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 즉  도피적인 탈피에서 벗어나고픈 욕망과 그 실현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가상의 익명성이 보장하는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비열함과 뒤틀린 모습들을 통해 스스로의 자생력을 가진 악의 원천으로도 자생할 수 있다는 점, 이런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타인의 주장은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행동까지 갖게 되는 현상들이 새삼 또 다른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쏟아내는  비방과 욕설로 무릎 끊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반대 이론을 제시할 수 없게 만드는 악의 근원은 바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지금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숨어 있다는 사실, 특히 책 종반부에 범인이 하는 행동의 실천과 나름대로의 논리를 보면 왜 저자가 잭슨 폴락의 그림 제목들을 이용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저스티 맨을 내세운 저자의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그려낸 이 책을 통해 또다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도 한 여운이 남아 있는 책이기도 하고, 무심히 던진 돌에 개구리의 생명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경우를 볼 때 한 개인의 무심코 친 댓글로  인해 목숨까지 끊는 심정까지 가게 하는 일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근절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로 넘어가게 한 책이다.

 

저자의 추리기법을 통한 범인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기법도 인상적이었지만 사회 전반부에 흐르는 이러한 현상들을 제대로 그려낸 저자의 깊은 세심한 표현이 기억에 남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