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수양대군)의죄책감
세조(수양대군)은 친형인 문종과는 딴판으로 무예에 능하고 성격이 대담했습니다. 단종(문종의아들)이 즉위하자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다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중에는 17세의 단종까지 관원을 시켜 죽이고 39살에 왕으로 등극합니다.
세조는 비서실 중심(승정원)의 측근정치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승정원의 힘은 강화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결과로 1468년에 탄생한 것이 원상제 입니다.
왕이 지명한 삼중신(한명회.신숙주.구차관)이 승정원에 상시 출근해 왕자와 함께 모든 국정을 상의해서 결정 하는 일종의 대리 서무제 였습니다.
세조(수양대군)가 세중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것은 이미 악화된 자신의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세조는 원상제를 도입한 해인 1468년 9월에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겨 주고는 그 다음날 52세의 나이로 죽어 경기도 남양주군 진접면 광릉이 세조의 무덤입니다.
세조는 즉위 기간 내내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만년에 가서는 단종의 어머니이자 형수인 현덕왕후의 혼백에 시달려 아들 의경세자가 20세에 죽자 그녀의 무덤을 파헤치는등 폐륜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에게 침을 뱉는 꿈을 꾸고나서부터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그 피부병 을고치려고 상원사를 찾았다가 문수동자에 의해 쾌유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도했습니다.
정희왕후 윤씨는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책봉됩니다. 세조의 첫째 아들(의경세자)가 죽어 둘째 아들인 예종이 19세에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예종이 1년2개월 만에 죽자, 요절한 맏아들(의경세자)의 둘째아들 자을산군(13세.성종)을 그 날로 즉위시켜 섭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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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으로 보는 사도세자 뒤주사건
혜경궁홍씨(사도세자정비)가 쓴 한중록에 보면 사도세자의 뒤주사건은 대체로 영조와의 갈등으로 전개되어있다, 그러나 실록에는 탕평책을 쓴 영조시대의 비극으로 표현되고 있다.
‘탕평정국이 오래 지속되자 각 당파들은 다시 정권을 독점하기 위한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사도세자사건’이다. 세자에 대한 정순왕후(15살에66세영조와결혼했음),
숙의 문씨등의 무고에 따라 영조는 자주 세자를 불러 질책하였으며,이 때문에 세자는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궁녀를 죽이거나 왕궁을 몰래 빠져 나가등 돌발적인 행동을 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영조는 이 사건 이후 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고 세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으로 그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리고 친히 신주에 제주를 하면서 아들을 죽인 자신의 행동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행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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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후손 철종
사도세자가 죽고 정조(사도세자의아들)가 세손이 되자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세력들이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 자기들의 위치가 위험할 것이 염려되어 새 왕자를 추대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막내아들은 전군은 자결하고 은언군과 은신군은 제주도에 유배되나 은신군은 제주도에서 병사하고 은언군은 강화도로 유배지를 옮긴다.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사이에서 태어난 은언군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다. 은언군의 손자 이광의 첫째 아들은 사사되고 둘째, 셋째 아들만 살아 남아 강화도로 유배된다.
천애 고아가 된 두 사람은 강화도에서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짓는 농사꾼으로 살던 5년 후 어느날 갑자기 셋째 원범에게 왕통을 이으라는 교지가 내려진다.
그가 바로 대왕대비 순원왕후(정조의아들인순조의비)의 명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 철종이다. 이 때 철종의 나이 19세이고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였다.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별안간 왕이 된 철종은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하였다.철종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도 민생을 돌보는데 남다른 애정과 성의를 보였으며, 철종 말기에 일어난 민란의 수습과 삼정의 문란을 바로 잡기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철종은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에 마땅히 대항할 방법이 없자, 자연히국사를 등한히 하고 술과 궁녀들을 가까이 했다. 튼튼한 몸을 가지고있던 철종은 급속도로 쇠약해져서 재위 14년 만에 33세 일기로 죽고 말았다. 고양의 희릉 오른편에 예장되었으며 능호를 예능이라 하였다.
p.s: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의 사도세자사건이 실록에서는 어떻게 표현되고있나가 궁금해서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소감은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역질나 는행태라는 느낌입니다. 내가 살기위해 너를 죽여야하는 정치.
내가살기위해어떤모략도,어떤살인도꺼리낌없이해대는양심이없는행태.
자식도죽이고형제도죽이는그러고도결코행복하지않은권력자들.
바보같다고생각했던왕들의배경을보며그렇게밖에될수없었던
바보같은왕들을이해하게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꼼꼼이다읽었으면서도누구가누구의아들인지헷갈리기는마찬가지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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