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순교성지를 찾아서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리상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조선 중기인

1577(선조10)년에 광주부가 설치되어 지방관 부윤이 상주하다가 1623년에

유수부로 승격되면서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이처럼 유수의 처소가

이전되면서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었고

박해 때마다 여러 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서

잊을 수 없는 순교터가 되었다.

최초의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 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으며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왔다. 이어서 기해박해

(1839년) 병인박해(1866년) 에 이르기 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불행이도 그 행적과 성명을 알 수 있는 순교자들의 수는 극히 적다.

특히 병인박해때는 너무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집행하는 포졸들마저 피를

보는데 진저리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형방법을 생각해 낸것이

백지사(白紙死)라고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막혀 죽도록 하는 방법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툥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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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성지에서 미사를 보기 위하여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드니

다행이 차가 밀리지 않아 일찍 도착해서 십자가의 길기도부터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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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순교자는 광주 의일리(지금 학의동)에 살던 한덕운 토마스로

1801년에 체포되어 이곳 동문밖에서 참수를 당했다.

다른 성지보다도 이곳에 와서 우리는 더욱 숙연하고 경견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평촌 우리성당은 매주 화요일 소공동체 모임인 반모임을 하는데 우리반은

신자가 많지 않아 자동차 한대로 이동할 수 있어서 쉽게 성지를 찾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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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미사참례를 하기 위하여 성당쪽으로

내려오니 여기저기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세월은 참 무심하게도 언제

그런 비극이 있었느냐는듯 흘러가고 우리는 선조들의 굳은 신앙심을

본받고자 잠시나마 숙연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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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성지는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신부님은 미사중에 말씀하셨다. 이곳은 평신도들이 많이 순교한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개발이 늦어졌지만 천주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성지라고.

미사시간 내내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의 고통을 가슴에 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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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미사후 점심먹으러 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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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앞에 5,000원짜리 순두부 백반, 정말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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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부는 7,000 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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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은 8,000원, 다섯명이서 40,000 만원으로 배터지게 먹었다.

감자전이 맛있어서 사진을 깜빡 잊어버리고 먹다가 생각이 나서

이렇게 조각 난 사진을 찍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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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공 신익희 선생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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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성지 미사를 왔지만 그냥 가기가 섭섭하여 점심먹고

이곳에 올 때 마다 들리는 카페 아라비카로 갔다.

점심밥은 5,000원짜리 순두부를 먹었는데 여기 차는 7,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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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커피를 시키고 나는 허브차를 시켰는데 차값이 음식값보다

비싸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폼 한번 잡아볼려다가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하면서 웃고 또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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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산중인데도 해가 길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이름은

주장산(晝長山)이 었다가 다음에는 일장산(日長山)으로 불리우다가

북한산의 대칭으로 남한산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이괄의 난 이후인 인조2년(1624) 에 갖추어 졌다고 하며

이곳에서 제대로 성지순례를 할려면 많이 걸으며 산성일대를 둘러

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겨우 14처 기도와 미사참례만 하고는 밥먹고

차 마시고 노닥거리다 돌아왔다. 성지순례를 간건지 소풍을 간건지….

41 Comments

  1. 揖按

    2013년 10월 31일 at 7:50 오후

    까페 아라비카 … 반가운 이름입니다.

    내가 수서 오피스텔에서 살때, 미국에서 아내가 다니러 오면, 이천등 동남쪽으로 가는
    관문이 남한 산성이어서 참 많이 갔었고, 자연히 아라비카에도 자주 들렸지요.
    그 집 주위의 가을 단풍과 낙엽이 아주 좋았습니다.

    광주쪽 산성문 나가서 좌회전을 하여 조금 올라가면 겉보기엔 화려한 기와집이 있는데
    ( 자세히 보면 왜색조로 지은 날림집이지만) 놀부 보리밥 집이라고 … 가 보셨나요…?
    한상이 떡 벌어지게 차려 나오는데 5-7년 전에는 6,000원인가 7,000원 이었습니다.

    남한산성 천주교 성지.. 나도 2번 갔었습니다.
    내가 갔을 땐 공사 중이라서 좀 썰렁했었습니다.

    천주교 순교자들 중에는 상인들이나 중인등 평민도 있었지만,
    특히 서울, 경기, 충청 방면의 남인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언젠가도 한번 말씀 드린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서울 경기 충청 남인들은 농사를 지을
    자기 땅이 없이(권력을 잡은 노론들이 몽땅 다 접수했으므로) 오직 과거 공부를 해서
    벼슬길에 나가서 녹을 받아야 살 수 있었는데,

    이미 이 당시에는 조선의 관직 숫자대비 과거 응시자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정권을 잡은 노론도 관직을 얻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니,
    하물며 철천지 반대파인 남인들에게야…
    그래서 숙종 이후에는 남인들이 중앙 정계에서 전멸하다 시피했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학식이 뛰어난 남인 학자들이 많았으니, 모두 문전 박대를 당하니,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부인네들의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절망하고 암담한 생활이 되었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성호 이익 선생을 비롯하여 남인학자들이 실학을 내세어서 제도를 개선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들이는 등, 새로운 정치를 하여서 백성 모두가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원을 잡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런논리가 통할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택한 길이 서학이었고, 오히려 이는 남인들의 기를 꺾을 기회로 인식하고 매몰하고 참담한 살륙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승에서는 도무지 헤어날 길이 없으니 차라리 포기하고, 내세, 저승에서 나마 공평하고 진리가 통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너도 나도 서학에 들어가고
    또 대부분이 기꺼이 순교를 받아 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영남일대의 남인들은 중앙과 지리적으로 멀어서, 퇴계, 회재, 서애 등 조선 최대의 학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벼슬 보다는 학문 그 자체에 치중하였는,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대부분이 지주로서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굳이 서학을 믿을 필요까지는 없어서 성리학에 더욱 더 몰입했습니다.
    그래서 영남의 남인학자들에게는 천주교 순교자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기호 지방에 사시던 내 방계 조상님들도 여러분이 순교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천주 신앙은 없어도, 천주교 성지는 가급적 들려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집이 유교집안이지만 집안의 부인네들이 성당에 나가는 것은 허용이 되고 있습니다. 조상 제사를 받들고 효와 예의 실천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말이지요. 2013/11/01 04:40:04

       

  2. 흙둔지

    2013년 10월 31일 at 8:24 오후

    종교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믿는게 아닐런지요…
    그런데 목숨까지 걸고 순교의 길을 걷는다는게
    보통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종교는 저에게 참 어려운 화두입니다.
       

  3. 보미^^

    2013년 10월 31일 at 8:33 오후

    끔찍한 역사입니다. 종교를 믿음은 행복과 평강을 위해서 믿는건데
    그렇게 까지 박해를 받았다는건 범인으로선 생각도 못할 일이지요.   

  4. 좋은날

    2013년 10월 31일 at 9:45 오후

    낙엽지는 남한산성.

    고교시절 꼭 이맘때 찾아가
    낙엽지는 벤치에 앉아 부르던 노래.

    이종용의 [너]가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문안을 드리던
    어머니방의 고상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어머니를 뵙듯 매일같이 봅니다.

    세월이 갑니다.

       

  5. 士雄

    2013년 10월 31일 at 9:59 오후

    자주가던 곳인데 ,,
    계절에 관계없이 길이 참 좋지요.^^
    성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6. 노당큰형부

    2013년 10월 31일 at 11:12 오후

    남한산성
    노당의 누이 부부가 안내하여 계곡에 텐트치고
    1박을 한때가 벌써 36년이 되었습니다.

    걷는것을 싫어 했기에 시원한 계곡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관광을 못했는데
    오늘 관광을 아주 제대로 합니다.

       

  7.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01 오전

    읍안님.
    긴 설명, 고맙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남한산성 성지는 학자들 보다는 평민들이 많이 순교한
    곳이기 때문에 개발이 늦는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누구든 간에 종교를 위해 목숨을 기꺼히 바친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닐거에요.
    특히 오늘을 사는 저같은 사람이야 어디 감히 생각이라도 하겠습니까?

    아라비카에 자주 들리셨군요.
    지금도 손님은 여전합디다.   

  8.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02 오전

    흙둔지님.
    저역시 마찬가지에요.
    그저 발만 열심히 다니는 신자일뿐, 순교같은건 아마 감당 못할
    겁니다.   

  9.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03 오전

    어머님이 신자셨지요?

    남한산성은 제가 강남쪽에서 근무할때는 수시로 다녔던 곳인데
    지금은 자주 못 가는 곳입니다.   

  10.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03 오전

    사웅님.
    그러셨군요.
    틈날때 성지도 한번 운동삼아 들려 보세요.

    고맙습니다.   

  11.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04 오전

    노당님.
    걷는걸 싫어하세요?
    저는 걷는걸 너무 좋아합니다.
    ㅎㅎ   

  12.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04 오전

    보미^^님.
    한국 천주교는 박해역사의 가운데 있어요.
    그래서 성지도 많고 순교자도 많아요.

    고마워요.   

  13. 이정생

    2013년 11월 1일 at 1:24 오전

    전 아직까지 순교지를 가 본적이 없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식만 듣고도 그들의 경건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극심한 고통에서 견디게 하는 힘이었을까 그걸 궁금해 하곤 한답니다. 천주교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순교한 분들은 더욱요.   

  14. 睿元예원

    2013년 11월 1일 at 1:48 오전

    저도 근사한 찻집에 갔었어요.
    올리지 못하니 아쉽지만요.
    요즘은 집에만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지요.
    믿으시는 성지에 들리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니 잘 하신 거네요.^.^
       

  15. 뽈송

    2013년 11월 1일 at 3:07 오전

    남한산성 성지를 다녀오셨군요. 저도 엊그제 우리 뮤지엄 아카데미 회원들과
    같이 새남터와 절두산 성지를 다녀왔지요.
    나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비신자의 자세로 안내자의 해설을 들으니 새롭기도
    하고 좋았습니다. 성지를 가도 이젠 뭔가 하나라도 익히고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이 또 우리들이 가질 자세겠지요.   

  16.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3:57 오전

    이정생님.
    그렇습니다. 유독 우리나라에 순교자가 많은것은 박해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목숨을 내놓을수 있었던 용기가 정말 대단하지요.

    가까운 곳에도 성지가 많으니 다음 서울오면 같이 한번 가봐요.   

  17.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3:57 오전

    예원님.
    집에만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고 단풍도 너무 아름다워요.
    고맙습니다.   

  18.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3:58 오전

    뽈송님.
    그러셨군요.
    절두산과 새남터에서 많은걸 느끼셨겠지요?
    우리가 가질 자세, 그분들을 조금이라도 본받았으면 합니다.   

  19. 북한산.

    2013년 11월 1일 at 4:22 오전

    남한산성 안에 성당이 있나봅니다. 남한 산성은 가끔가는데
    이가을이 가기전에 한번 산성을 돌아봐야 할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20. 김진아

    2013년 11월 1일 at 5:05 오전

    남한산성 성지 다녀오셨군요. ^^

    저희 아이들이 부담 없이 마음 편안하게 다니는 성지 성당.

    아가 때 부터 그러더니..지금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성지 성당이 좋다고 합니다.ㅎ

    오복 손두부..집도 괜찮고, 고 옆 집도 좋아요.    

  21. 지해범

    2013년 11월 1일 at 5:42 오전

    남한산성에 가도 등산만 해서,
    그곳이 기독교 전교와 깊은 관계가 있는줄 이제야 알았네요.
    다음에 가면 찬찬히 살펴봐야겠어요.   

  22.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6:21 오전

    북한산님.
    아, 모르셨군요.
    산성 올라가서 넓은주차장 조금 지나면 있거든요.
    꼭 한번 들려보세요.   

  23.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6:22 오전

    김진아님.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걸 저도 생각했어요.
    진아님네가 그 부근에 사시니까.

    우리는 주로 하우현을 다니는데 남한산성도 자주 가야겠다고 느꼈어요.   

  24.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6:22 오전

    지해범님.
    그러셨군요.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들려 보세요.   

  25. 바람돌

    2013년 11월 1일 at 6:31 오전

    남한산성이라고 하면
    교도소라든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만 알고 있었네요.

    남한산성이 천주교 성지였군요.
    후세 교육을 위해서라도
    역사는 바로 세워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6. 에필로그

    2013년 11월 1일 at 7:13 오전

    와~ 저 두부 진~~~짜 맛있어 보이네요! ㅎㅎㅎ
    오래전에 다녀왔다는데 성지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밥먹은 생각만 난다는 건
    참으로 신자로서 에혀…^^;

    그래서 아름다운 성모님이 흉보실까봐 얼렁 나가야겠어요.ㅋㅋ   

  27. 바위

    2013년 11월 1일 at 9:00 오전

    남한산성이 천주교 성지란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새남터나 절두산, 해미읍성 정도는 진작 알았습니다만,
    아, 그러고 보니 오래 전 전주쪽에 출장 다니다가 전주교구에
    ‘숲정이’란 성지가 있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크게 발전한 데는
    조선 말기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에 힘입었기 때문이지요.
    그걸 잘 알면서도 교리를 내세워 그분들의 순교를 폄하하는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 신자들은 정말 회개해야 합니다.

    또 하나, 이런 숭고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면서도
    종북 활동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물론 가톨릭의 정체성도
    훼손하는 일부 사제들도 뼈저리게 통회해야겠지요.

    멋진 사진 잘 구경하고, 몰랐던 것까지 잘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28. 가보의집

    2013년 11월 1일 at 12:53 오후

    데레사님
    곳곳에천주교 성지가 많이 있어요
    남한산성에서많은 순교자가있었네요
    우리개신교에 비하면 엄청나게순교 가 많았다고 합니다.
    신학 교에서 강의 듣던생각이 납니다 .

    공주에도 있어요    

  29. 해 연

    2013년 11월 1일 at 1:30 오후

    남한산성은 몇번 갔는데 성지가 있는 줄 몰랐어요.
    공연히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천주교의 박해로 인해 개신교는 훨씬 수월하게 들어 왔지요.
    옛날 조선시대 고문이 너무 처참해서
    순교 당하신 분들의 고난이 심했을 거에요.
    그분들로 인해서 나는 얼마나 편한지…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30.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1:11 오후

    바람돌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들이 적지 않지요.
    이곳도 그런곳 중의 한곳이에요.
    신부님 말씀을 빌리자면 평신도들이 많이 순교한곳이라 그렇다는군요.
    이름있는 분들의 순교장소가 아니라서요.   

  31.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1:12 오후

    에필로그님.
    나와 마찬가지구나.
    이렇게 블로그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기억에 안 남아요. ㅎㅎ   

  32.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1:13 오후

    바위님.
    맞아요.
    신부님들이 왜 그러시는지….
    고맙습니다.   

  33.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1:14 오후

    가보님.
    개신교보다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순교자가 많은거에요.
    그러나 이분들 덕에 우린 모두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요.

    목사님 좋아지셨어요?   

  34. 데레사

    2013년 11월 1일 at 11:15 오후

    해연님.
    우리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지요.
    그리고 아마 우리는 할수 없을거에요.
    목숨을 내놓는다는게 쉬운일은 절대로 아니거든요.

    고마워요.   

  35. 나의정원

    2013년 11월 2일 at 5:36 오전

    남한산성을 그저 겉돌기만 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보진 못했습니다.

    좋은 곳을 구경시켜주셨네요.

    ㅋㅋㅋ…
    요즘 차 값이 만만치않죠?

    정말 점심 값보다 더 나갑니다.    

  36. 최용복

    2013년 11월 2일 at 7:34 오전

    저렇게 순교한분들이 많다니 마음 아프네요…

    저도 성지를 몇군데 가보았지만 성지의 모습들 다시 와닿네요.

    저 식당에서 저도 맛난음식 배불리 먹고싶네요~~   

  37. 데레사

    2013년 11월 2일 at 9:12 오전

    나의정원님.
    맞아요. 5천원에 밥먹고 7천원짜리 차 마셨어요.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서 아깝진 않았어요.   

  38. 데레사

    2013년 11월 2일 at 9:12 오전

    최용복님.
    음식값이 좀 싸지요?
    바로 성당옆이라 편하게 잘 먹었어요.   

  39. 수홍

    2013년 11월 2일 at 3:41 오후

    남한산성에도 순교 성지가 있네요?
    언제 한 번 찾아가 봐야겠네요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시죠?   

  40. 데레사

    2013년 11월 2일 at 5:30 오후

    수홍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공사중이라 약간 어지럽긴 해도 11시에 맞춰서 가면 미사볼수
    있고요. 뒤의 14처 기도처가 아주 좋습니다. 산길이라 공기도
    맑고 좋아요.   

  41. 리나아

    2013년 11월 25일 at 4:13 오전

    전 10월 마지막주 수욜에 가서 미사도 보고..전대사도 받고요..
    같이간 네명과 한정식 먹고…음식이 잘못됀는지 귀가하는 순간
    구토와 설사 복통으로 며칠간 혼났습니다.~~~네명중 세명이요
    한사람은 탈안났는데….육식을 싫어해서 고기음식을
    안먹었다는군요..

    참 오랫만에 저..들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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