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 고분군은 사비시대 (538-660) 백제왕릉묘역이다.
현재 정비되어 있는 7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도
각각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크게 3개의 무덤군으로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중앙구역에 위치한 무덤들이
그 크기나 위치로 보아 사비시대 역대 왕들의 왕릉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이래 여러차례 조사되었으나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옻칠과 금박으로 장식된 관의 파편만
남아 있었다.
최근 나성과 능산리 묘역 사이의 계곡에서 이곳에 안장된
역대 왕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절터가 조사되었는데 그곳에서
백제금속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백제 금동 대향로가 출토
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능산리 고분군 안내문)
능산리 고분군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라왕들의 왕릉이 대부분 평지인것에 비해 약간
비탈진 곳에 백제왕들은 잠들어 있었다.
왕릉 한 기는 저렇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지만
출입금지로 문이 닫혀 있었다.
기다시피 머리를 숙이고 들여다 봤드니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보존을 위해서겠지…
오른쪽이 의자왕의 기단으로, 의자왕은 당나라에서
병사하여 그곳에 묻히었지만 이곳에 그와 같은 무덤을
만들어 두고 추모를 하는듯….
돌아 나오는 길에 이곳에 출토된 부장품들의 전시장이
있어서 들어 가 보았다. 실제무덤도 이렇게 생겼을테지..
왕릉은 이렇게 돌들로 덮혀 있었나 보다.
이곳에서 출토된 백제금동 대향로의 복제품이다.
진품은 부여박물관에 있다.
능산리 일대는 가을빛이 곱다. 길거리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고, 하늘은 맑고 푸르고…. 부여의 가을을
만끽하면서 그곳을 나와 정림사지로 향했다.
유명한 정림사지 5층석탑이 보인다.
능산리 고분군과 함께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정림사지다.
정림사지의 5층석탑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 국보
제9호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졌고 높이는 8,33 미터이다.
정림사는 사비의 시내 한가운데 있던 중요한 절이었지만
지금은 빈터에 이 5층석탑과 석불좌상이 남아 있을뿐이다.
보물 108호인 석불좌상으로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 있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바로지나불상으로 짐작된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에서 발췌)
정림사 5층석탑의 이 탑면에는 소정방이 공적을 적어
놓았다는데 희미하게 글씨같은것이 보인다.
탑 뒤로 보이는 건물에 석불좌상이 있다.
부여와, 공주는 지금 백제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것을
기념하여 입장료도 반값으로 받고 축제분위기다.
능산리 고분군과 정림사지, 그리고 부소산성과 공주의 무령왕릉등이
2015년에 세계유산이 되었다니 정말 반갑고 축하 할 일이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다.
숙소로 예약해 둔 롯데리조트로 가서 짐을 풀고, 좀 쉬고 다시
나 올 예정이다.
가보의집
2015년 11월 2일 at 8:13 오후
데레사님
덕분에 이렇게 앉아서 봅니다
상세하게 역사의 기록등을 올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오늘도 일등하였습니다
오병규
2015년 11월 2일 at 8:50 오후
옛 고분이나 왕릉을 중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그것이 정말 잘 조성되었고 보존 된 느낌입니다.
중국의 소위 왕(황)릉을 보면 문화적 정서가 달라서 그런지
별로 잘 보존 된 것 같지는 않더군요.
소위 황제의 능이라는 것도 시멘트로 닾어두고….
하긴 조조의 묘나 일부 학정을 저지른 황제의 묘는
의총이라 하여 수십 개씩 만들었으니 어떤 게 진짠지
몰라서도 그럴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고분은 정원으로 이용해도 무방할 만큼
분위기가 최곱니다. ㅎㅎ..
노당큰형부
2015년 11월 2일 at 9:44 오후
데누님 덕분에 백제 문화 유적지 탐방을
이렇게 편히 앉아서 합니다.
감사합니다.
해 연
2015년 11월 2일 at 9:49 오후
백제 공부를 하네요.
의지왕에 대해서 더 알아야겠어요.
마지막 왕으로만 알고 있으니요.
하늘이 구름이 아주 멋있는 날이었군요.^^
벤자민
2015년 11월 2일 at 9:55 오후
그 동안 상대적으로 좀 소홀했던
백제문화를 많이 정리정돈 해뒀군요
백제도 우리 문화인데 잘 보존해야겟지요
건데 저 위의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를
못 들어가게 막아둔 것 까지는 이해하겟는데
그래도 좀 보기좋게 해두지 외부에 보이는 시건장치가 무슨 물건 창고문
들어가는 입구같이 해두엇군요 ㅎㅎ
그래도 왕릉인데 말입니다
막일꾼
2015년 11월 2일 at 11:12 오후
열번째 사진에서 벽돌을 쌓아놓은 것은
왕의 관을 덮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쌓아놓은 벽돌 위에 왕의 관을 안치하기 위한 것으로 압니다.;
덕분에 백제고분군과 무덤 안까지 구경하게 되네요.고맙습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2일 at 11:54 오후
가보님
요즘 계속 일찍 일어나시나 봐요.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2일 at 11:56 오후
종씨님
북경의 명 13릉을 가봐도 우리만큼 아담하지는 않아요.
그곳에서도 발굴당시 공기과 접촉되는 순간 비단옷들이
검게 변했다고도 하더군요.
발굴의 기술과 보존이 아주 중요하지요.
데레사
2015년 11월 2일 at 11:56 오후
노당님
잘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2일 at 11:57 오후
해연님
일기예보는 비 올거라 했는데 이틀내내 맑았어요.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역사의 진실, 우리가 모르는것도 참 많아요.
데레사
2015년 11월 2일 at 11:58 오후
벤자민님
그렇지요? 잠금장치가 꼭 창고같긴 했어요.
좀 더 신경 썼드라면 싶어요.
이제는 부여, 공주의 백제유적지들도 각광받을것 같았어요.
의외로 관광객도 많더군요.
데레사
2015년 11월 2일 at 11:59 오후
막일꾼님
아, 그러세요?
밑에 뭐라고 설명이 있었는데 잘 안 읽었나 봐요.
고맙습니다.
睿元예원
2015년 11월 3일 at 12:27 오전
비로자나불에 눈길이 멈춥니다.
백제문화에 대해 삼천궁녀와
낙화암, 마지막 왕 의자왕 요정도밖에 모르던
백제에 대해 호기심이 마구 솟네요.
아~ 쇼오토쿠 황태자도 생각나네요.
ㅎㅎ 데레사님 덕을 참 많이 봅니다.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2:35 오전
예원님
백제가 일본에 끼친 영향이 크지요.
그런데 막상 우리는 부여쪽으로는 잘 안갔지요. ㅎ
앞으로 이쪽 나들이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탱큐.
선화
2015년 11월 3일 at 1:27 오전
부여 박물관에도 볼게 많았어요 엄청 크고…
정림사지는 못 봣는데… 국사시간에 배운탑~~ㅎ
참 울나라 문화 예술품을 보면 대단하지요?
자랑스런 대한민국입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4:27 오전
선화님
부여박물관은 패스하고 공주에 와서 공주박물관을 갔었어요.
무령왕릉 춮토품이 엄청 화려하고 분량도 많아서 탄복했어요.
자랑스런 대한민국이고 말고요.
west
2015년 11월 3일 at 5:25 오전
선배님 오래만이지요? 블로그는 빠짐없이 보면서도 인사는 못드렸어요. 선배님의 캐나다 후배란 저를 말씀하시는거죠? 조블이 없어진다니 얼마나 맥빠지고 서운한지 모르겠어요. 블로그 없는 저가 이러한데 정작 글 올리시는 분들은 어떠하실지 저는 짐작조차 못할것 같아요.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것을 배우고 감동하고 감탄하고 또 재미있어서 혼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했는데….아쉽고도 아쉬워요.
선배님께 댓글 다시는 모든분들의 팬이기도 하지요. 이달 중순에 남편따라서 잠시 한국에 다녀올 예정인데 선배님 꼭 뵙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말그미
2015년 11월 3일 at 6:14 오전
백제시대 왕들의 능침엔 아무 석장식이 없네요.
왕릉 출토품이 화려하고 양도 많다니
백제시대 왕능에는 많이 소장을 했었나 봅니다.
enjel02
2015년 11월 3일 at 6:33 오전
부여와 공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축제 그럴만하죠
데레사님이 딱 좋은 기기에 잘 가셔서
역사 공부를 하신듯 구경도 하시고 잘 하셨습니다
한국인
2015년 11월 3일 at 9:20 오전
망한 나라의 비극…
임금도 제 니라에 묻히지 못했군요.
누구, 참 정신차려야 합니다.
중국이 한중정상회담에서 이어도 문제를 거론했다는군요.
한국이 만만해 보이니까 빼앗고 싶은 모양이지요?
산성
2015년 11월 3일 at 10:10 오전
정림사에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가봤어요.대신 부여박물관에는 들렸었고요.
카메라 대신 핸폰이라 하셨는데
사진이 참 멋있습니다.
능산리 일대의 가을 풍경도요~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1:00 오전
west 님
반가워요.
맞아요. 카나다 후배는 west 님이에요.
해외에 계시면서 블로그를 안 하시는 분들도 많이 애석해
하고들 있어요. 연말은 가까워 오고 맥 빠져요.
귀국하면 연락해요. 나도 보고 싶어요.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1:01 오전
말그미님
그래서 무령왕릉도 발굴이 뒤늦게 되었고 따러서
도굴도 안 당했던것 같습니다.
신라왕들의 무덤앞에는 석조물이 지키고 있거든요.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1:01 오전
엔젤님
맞습니다. 딱 좋은 시기, 딱 좋은 계절에
갔습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1:02 오전
한국인님
의자왕은 당나라로 잡혀가서 당나라에서 죽었다고 하고
무덤도 그곳에 있나 봅디다. 여기는 가묘죠.
이어도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은 언제나 호시탐탐 우리 영토를
노리지요.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1:03 오전
산성님
저는 이제는 카메라 안 씁니다. 한 2년 되었어요.
휴대폰으로만 찍는지가.
부여박물관도 좋지만 공주박물관이 무령왕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어서 아주 화려했어요. 부여박물관은 그냥 패스했어요.
김현수
2015년 11월 3일 at 10:16 오후
백제의 고도인 부여나 공주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축제를 열기도 했었지요. 지방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되니
아주 좋아 했습니다.
일본이 가까운 신라지역을 놔두고 백제문화를 전수했는지도
궁금한 부분이지요.
데레사
2015년 11월 3일 at 11:45 오후
김현수님
신라와 백제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雲丁
2015년 11월 4일 at 1:24 오후
의자왕의 묘도 있었군요.
백제 고분과 정림사지 등 늦가을을 제대로 만끽하셨네요.
어딜가나 참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입니다.
데레사
2015년 11월 4일 at 5:10 오후
운정님
우리나라 좋은나라 입니다.
가을 길에 나서면 늘 한하운의 국토편력이 생각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