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우리 겨례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을
되새기는 아산 현충사, 참배를 간게 아니고 단풍구경을 하러
다녀온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한20년쯤 된것 같다. 마지막으로 현충사를 다녀온게.
경내로 들어서니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던 현충사와 많이 달라져있다.
우선 많이 넓어졌고 입구에 기념관이 생겨 있어서 좀 헷갈리긴 했지만
잘 정비되어 있어서 더 없이 기쁜 마음이다.
입장료도 주차료도 없는곳이니 안내소에 사람도 없다.
기념관이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로 가늠한다.
현충사에 오면 모과나무가 많았던게 기억에 난다.
그 나무들에 지금도 모과가 주렁주렁 열리나 보다. 나도 딱 4개만 집어들었다.
현충사 경내는 지금 단풍이 한창이다.
정려(庭閭)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고 후세에 본받게 하려고 편액을
조정에서 내려 마을입구에 걸어두는것을 말한다. 이곳 정려에는 충무공과
조카 이완, 4대손 이홍무, 5대손 이봉상을 비롯한 충신, 8대손 효자 이제빈 까지
다섯분의 편액이 모셔져 있다.
저 윗길로 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충무공께서 32세 무과에 급제할때 까지
사셨던 집이 있고 그 옆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활터도 있는데
여기 오기전에 다른곳을 들려서 왔기에 힘이들어서 생략한다.
1706년 숙종 32년에 아산 유생들이 조정의 허락을 받아 세운 사당으로 1707년 숙종임금이
현충사란 현판을 내렸다. 이후 충무공 이순신과 조카인 강민공 이완을 모시는 사당이었으나
1868년 고종5년 흥선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는 충무공
종가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져 묘소와 위토가 은행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것을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여 1년도 안되어 묘소와 위토를 지키게 되었다.
1966년부터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다시 세워지고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 (음 3월 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다례행사를 하고 있다.(현충사 안내문요약)
이곳은 매주 월요일은 휴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