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골목길사거리코너에작은식료품점이있고,마주보는길건너에는중형식료품점이
있다.중형식료품점에는정육점도있고손님도꽤많은편이어서무엇하나물어보려고
해도주인얼굴보기가힘들다.
어찌어찌기회가와서주인에게물어보면대답이시원치않다.
시시한손님인주제에왜귀찮게구느냐는것같은느낌을받을만큼불친절하다.
나하나정도오지않아도괜찮다는것같은투다.
길건너작은식료품점은정육점도없고물량도딸려서그런지손님도별로없다.
한산한편이다.당연히물어보면자세히설명해준다.
아이가하나나둘쯤있어보이는젊은부부가열심히운영하는가게로보인다.
나는왠지이런가게가마음에든다.도와주고싶고,가고싶다.
새벽4시에잠이깨서뒤척인다.
아직식료품구멍가게가문을열기에는좀이른것같아서6시가되기를기다렸다.
어제밤에미국에서오자마자홈플러스에들려몇가지식료품을사오기는했다.
그러나쌀과두부는식료품구멍가게에서팔아주려고그냥지나친것이다.
홈플러스에서는국적불명의쌀을오늘도정한쌀이라고적어놓고판다.
경품주겠다고개인정보를받아팔아먹는사람들이붙여놓은스티커를믿어도되는지
의문이든다.
그보다동네구멍가게에서는파주쌀을판다.파주쌀은이지역농산물이다.
한번먹어봤는데맛도좋다.같은값이면지역쌀을소비해주는것이좋을것이다.
6시가되면서날이밝아온다.
새벽공기는아무래도차가울것같아서잠바를걸쳐입고모자를써야겠다.
내게는모자가8개나있다.야구모자가7개있고도리우찌가하나있다.
어느작가의‘여덟개의모자로남은당신’이라는책제목이생각난다.
남편이암으로죽었는데항암치료를받으면서머리가다빠지니까모자를쓰기시작했다는
것이다.결국은돌아가시고난다음에남은것은모자여덟개뿐이라는글이었다.
내게있는모자들은주로등산갈때쓰느라고장만한모자들이다.
여행다니다가마음에드는모자가있으면하나씩샀더니그렇게됐다.
한번은여행사를따라갔는데‘블랙야크’사장이동행하면서모자를하나씩나눠줘서
얻어온것도있다.
내가좋아하는야구팀A’s와미식축구팀Raider’s가모자정면에적혀있는것도있다.
가끔친구가들리면모자가많다면서써보고마음에드는모자는가져가기도했다.
그중에내가아끼는모자는짙은녹색에감색글씨로‘Cal’로고가있는모자다.
‘Cal’은버클리대학로고다.아들이대학에다닐때쓰던모자인데집에서나뒹굴기에
가져온것이다.
오늘새벽에는녹색잠바를입는관계로녹색모자가어울릴것같아서‘Cal’모자를썼다.
사실나로서는이모자를미국에서나한국에서나쓰고다니지못한다.
쓰고나가면언뜻보기에마치버클리대학출신인것처럼비처질것같아서이다.
공연히오해의빌미를주고싶지않다.
오늘처럼사람들이없는새벽에잠깐쓰는정도이다.
모자를쓰고구멍가게식품점으로가면서장인어른이생각난다.
둘째처남이육사를졸업하면서받은졸업반지를장인어른이끼고다니셨다.
아들이얼마나자랑스러우면아들의반지를직접끼고다니셨겠나하는생각이든다.
반사적광영을받으려는보상심리에서였을것이다.
나는용기가없어서사람없는데서나겨우아들의모자를쓰고다니는것뿐이지속마음은
같은것이다.
구멍가게는열러있었고손님은아무도없다.
쌀과두부,참외묶음을들고계산대에섰다.
젊은이가검은비닐봉지에넣어준다.
나는알아두어야하겠기에몇시에가게문을여는가물었다.
24시간연단다.부부단둘이서24시간을?하루도쉬는날없이?
언제만나서사랑은언제나누고?
치열하고도처절한삶의투쟁이라는생각이들었다.
무엇이이젊은부부를욕망의늪에빠지게만들었는가?
돈이무섭기는무섭다.
하기야저나이이면목숨보다도돈이더귀하게보일때이다.
나는미국에서오랫동안살면서두부부가밤새도록일하는케이스를여럿보았다.
그러다가갑자기죽었다는이야기도여러번들었다.
머리좋은것은타고나는것이다.부모복도타고나는것이다.돈복도타고나는것이다.
무조건열심히해댄다고해서다부자가되는것은아니다.운때가맞아야한다.
욕심을부려서는안된다.
낮에는일하고밤에는자야하는자연의순리를거스르는건위험한일이다.
엿새는일하고하루는쉬라고도했다.
어느날정신이들면서돈보다목숨이귀한걸알게될때쯤이면이미늦어버렸을
지도모를일이다.
그옛날,부처님은이런세상이오리라는것을알고게셨나보다.
‘천상천하유아독존‘하늘위와하늘아래,오직내가홀로존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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