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눈이 펑펑 날리는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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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봄날 민덴 네바다주(Minden Nevada)에서 점심을 먹고 리노를 거쳐 80번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80번 고속도로야말로 하도 많이 다녀서 젊은 날의 추억도 많지만, 눈 감고도 환한 길이다.

차를 몰고 Donner Summit에 올랐다.

해발 7,239피트(2,206m) 정상 고갯길에 올라서자마자 눈이 내렸다.

4월이어서 봄인 줄 알았는데, 자연의 변화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더니 나중에는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윈쉴드를 틀었으나 눈이 와이퍼 날(wiper blades)과 앞 유리에 너무 많이 끼어있어서 전면이

뿌옇기만 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어딘가 받을 것

같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차 밖에 나서자, 냉동고 안에 들어선 것보다 더 추웠다.

와이퍼 날에서 눈을 털어내고 앞 유리를 닦았다.

이제 갈만한 느낌에 마음이 놓이는가 했으나 불과 5분도 못 가서 앞차의 브레이크 라잇이

들어왔다. 나도 정지했다. 앞을 바라보니 브레이크 밟고 서 있는 차가 길게 늘어서 있다.

앞에서 사고가 났나보다 했다.

조금 기다리면 풀리겠지. 날이 추우니까 시동도 끄지 않고 기다렸다. 히터를 틀고 있어서

차 안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잠시 후에 내차 옆의 갓길로 앰뷸런스가 눈 치우는 트럭을 따라 달려갔다. 조금 지나서

순찰차가 지나갔고 더 있다가 견인차가 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Emergency 차량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사고가 나도 큰 사고인 듯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은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구글이 알려준다.

대형 트럭 3대가 뒤틀렸고 승용차 2대도 찌그러졌단다.

맙소사 이제 집에 가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내렸고, 점점 쌓여만 갔고 날씨는 춥기가 얼음짱 같았다.

 

우리 부부가 젊었을 때였다.

그때도 눈이 내렸다. 스키 타러 이 길을 뻔 찔 오르내리다가 그만 오늘처럼 눈길에 묶이고

말았다. 꼬박 12시간을 도널 써밋에 묶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길이 뚫려서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과 3시간 만에 열린 길이다.

와! 일제에서 해방된 기분이 이랬을 것이다.

눈이 내리는 눈길이어서 엉금엉금 기어 내려오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신나는 걸 어쩌랴.

4월이라서 마음 놓고 나섰던 여행길인데 자연의 변화는 아무도 모른다.

최첨단 AI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야생의 자연은 그냥 야생 그대로였다.

늘씬한 미송에 눈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모습 역시 야생 그대로여서

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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