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가폐암선고를받은지도벌써1년6개월이지났다.
아내는매일전화로안부를묻는다.어제호스피스가집에왔었다고했다.
처제는소파에앉아있었다.등을기대지도못하고엉거주춤앉아있다.
나는오래간만에처제를보았다.두손을잡았다.손이따듯하다.
편히누워있지그러냐고했다.누워있으면더불편하다고한다.
처제의불편은호흡을말한다.폐활량이거의바닥에와있다고한다.
병원에올필요가없다고집에서호스피스를접하라고했단다.
앞으로병원에는전화하지도말고문제가있으면호스피스에게연락하라는것이다.
병원에서산소통도수거해갔다.대신호스피스에게서새산소통을공급받았다.
더이상의치료는없으니집에서죽으라는것이다.
미국병원은참야속하다.
옛날아내가첫아이를낳을때도그랬다.아이낳고삼일만에퇴원하라고했다.
하루만더있으면안되겠느냐고사정해봤으나거절당했다.
둘째부터는이틀만에쫓겨났다.
과학적으로이틀이면활동해도된다고는하지만,우리의정서로는매정하다는느낌이
든다.
매정하기로는죽어가는사람에게도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모든문제에과학이라는잣대를들이댄다.과학은증명된사실을말한다.
과학에다가토를달면변명밖에는안된다.하지만과학은너무냉정하다.
인간에관한문제를과학으로만풀려고하면어디살벌해서살겠는가.
어떻게사람이사리를냉정하게만판단할수있겠는가.인간미라는것도있지않은가.
미국사람들에게는그래도소용없다.과학다음에는실용주의다.
치료가필요치않은사람이병실을차지하고있을수는없다는것이다.
가급적이면통원치료를추천한다.집이가장편안한휴식처이기때문이란다.
한국과미국사이에정서적차이는어쩔수없는노릇이다.
호스피스가EmergencyMedicalServiceform을쓰고서명하라고했단다.
정신이말똥말똥할때써야만한다고했단다.
동서가서류를받아들고대신작성하려고보았더니좀심각한물음들이있어서함부로
체크할문제가아니더란다.위기상황이닥쳐오면
심폐소생술을할것이냐,말것이냐.
콜마에들어가게되면산소호흡기를부착할것이냐,말것이냐.
이런것들을죽어가는사람에게결정하라는것이니보기에참딱하다.
본인이직접선택한다는그럴듯한의미도있지만,알고보면주변사람들이책임을
회피하려는측면도있다.죽는것도디지털시대는다르다.
아나로그시대와는달라서죽는것도모두까발려야하는게디지털시대다.
그것도죽어가는사람이직접까발려야하는것이다.
사람이태어나고죽는것만큼은자기마음대로할수없는일이다.
하물며나는이렇게죽겠다고서명까지하면서떠들어댈필요가있겠는가.
디지털시대를가리켜살기좋은시대라고들말한다.그러나꼭그런것만도아니다.
사람은까발리지않고죽음으로서더아름다울때가있다.
그리고나는나의죽음에대해서까발리고싶지않다.
그냥조용히죽고싶다.
내가태어날때모든것을어머니마음대로했듯이,죽을때는모든것은아내마음대로
해주기를바란다.
“다른사람들은나의건강만을사랑하지마는
당신은나의죽음도사랑하는까닭입니다“한용운의사랑하는까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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