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뜸하더니연말이돼가니까도네이션하라는엽서며편지가옵니다.
그중에하나특이한곳을소개합니다.
한국을대표하는단체로서<재외동포재단>이있고,친북한단체인<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있습니다.
<재외동포재단>은한국정부에소속되어있는준국가기관이어서국가예산으로운영되는단체입니다.
한국이잘사는나라가된이상동포들에게손내밀필요도없고오히려동포들을도와주는입장입니다.
그러나<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자체적으로조직한단체로서스스로를진보라고외치지만실은북한을
선전하고옹호하는사람들의모임입니다.
북한정부가자금을지원해주는지어떤지는알수없으나때때로손을내미는것을보면재정이열악해
보입니다.
오늘도편지한통을받았는데통일을빙자한도네이션이그목적입니다.
북한형제자매상봉을알선하는사업도인도적이라고하기보다는재정지원이그목적같아보입니다.
이단체의홈페이지에실린‘새소식’하나소개합니다.
평양친선병원의사왕혜옥의시술을양리기자가쓴글입니다.
<전쟁에서상한다리를완치한재미교포>(작성일:15-11-11)
미국플로리다주코랄스프링스시북서47번거리8530번지에거주하고있는조선계미국시민
홍흡섭선생(80살,e-mail:lvylee513@yat.com.)이형제들과의상봉을위해조선을방문한것은
2015년9월30일이었다.
홍흥섭선생은비행장에서내릴때자기발로걷지못하고지팽이를쥐고사람들에게업혀있었다.
원래조국해방전쟁(1950.6.25.)시기미군의폭격으로인한관통상으로하여선생은우측팔과우측다리를
잘쓰지못하여지팽이를짚고겨우걷는신세가되였다고했다.
선생은조선을방문하기전에건강상태가나빠져다리맥이완전히없어지면서지팽이에의지해걷기도
힘들어앉은뱅이신세가되였다고한다.
선생은조선에도착한다음날인10월1일오후다리가너무아파평양친선병원으로와서금당-2주사약을
집중료법으로맞았다.
그는인차무기력한몸에힘이생기였고그날밤은오래간만에깊은잠을잘수있었으며입맛이생겨
식사도맛있게할수있었다고했다.
첫주사를맞은다음날인10월2일아침다리에힘이뻗치고몸이거뜬해져선생은일어서서지팽이를버리고
걸어다니기시작하였다.
선생은너무기뻐호텔방에서뛰어나와안내원과자기동료들에게《나를좀보시오.조선의금당-2주사약을
맞고이렇게되였소.》라고소리치면서보폭을넓게짚으며껑충뛰기까지하였다.
이때부터선생은자유로이걸어다녔으며모든방문일정을지팽이없이다녔다.
그의동료들은너무도희한하고신기하여놀라움을금치못해하며함께기뻐해주고축하해주었다.
선생은10월7일에출국하였는데출국하는날까지조선친선병원에서금당-2주사약을맞았다.
출국당시그의건강상태는더욱좋아져혈색도좋았고컴컴하던얼굴에생기가돌았다.
치료과정에나는홍흥섭선생이《일장기말소사건》의중요인물인당시《동아일보》기자홍병옥선생의
맏아들이라는사실을알게되였다.
홍병옥선생은1936년8월베를린에서진행된여름철올림픽경기대회마라손종목에서1등을한조선사람인
손기정선수를소개하면서일본의식민지였던탓에선수복앞가슴에일장기를달는사진에서일장기를
지워버린분이다.
그사건으로하여당시《동아일보》는정간처분을받았고홍병옥선생은해고당하여만주로넘어가살다가
나라가해방(1945.8.15.)되자조국으로들아왔는데1950년조국해방전쟁시기남조선의연천근방에서
미군의폭격으로잘못되었고,맏이인자기도그때미군폭격에관통상을입고부상당한몸이되였다고한다.
나는당시애국적인행동을하였던홍병옥선생의맏아들이형제들과뜻깊은상봉을하고조국의품에서
건강을회복하여삶의희열을느끼는모습을보면서저세상에가있는홍병옥선생도기뻐하겠구나하는
생각이들면서저도모르게마음이가벼워졌다.
참으로신통방통한주사도다있습니다.
주사맞고걷지도못하던사람이거뜬이걸을수있다니예수님이아닌다음에야일어날수있는일이나
되는지요.지금세상이어떤세상인데이런말을믿으라는건가?
세상사람들이다북한백성들같은줄아는모양입니다.
스테로이드주사몇대맞았겠지.
왜대문을걸어잠그고살아야만하는지깊이생각해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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