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 중에 ‘동주’라는 영화가 있다. 사진이 있는 포스터는 못 보고 제목만 봤더니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내 친구 중에는 동윤이가 있고 동윤이 여동생이 동주다.
동주는 청량이 후생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었다.
한번은 남산 드라마 센터에서 연극을 같이 본 일도 있다.
LA로 시집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 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성동본인 친구 여동생이었지만 잘 살아 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났다.
‘동주’라는 영화 제목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포스터를 보니 1930년대 학생들이 등장하는 사진을 보고 ‘윤동주’를 일컫는 구나 여겨졌다.
이미지 도출 방법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윤동주하면 금세 떠오른다. 그러나 ‘동주‘하면 누구를 말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영화 제목 작법에서 실패했다는 느낌이 든다.
윤동주 뭘 가지고 영화까지 만들게 있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갑자기 애국심을 고취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윤동주가 연애를 한 사실도 없고, 뭐 뚜렷하게 내 세워 영화까지 만들 만한 자료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영화를 만들었다니 궁금하다.
아무튼 보기로 했다.
흑백영화다. 제작비는 많이 들었을 것 같지 않았다. 대부분이 세트장 촬영이었다.
스토리는 다 정해져 있는 것이고, 약간의 여자를 등장시켜 맛을 내는 정도다.
동원된 엑스트라도 많지 않았고, 규모도 작은 세트장에서 세트장으로 옮겨 다니면서 찍은 것이다. 영화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우려먹는 식이다.
의외로 관람객이 꽤 많이 들어왔다. 개봉 영화여서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다.
윤동주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인을 좋아하게 되고,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람객이 된 것 같았다.
결국 영화는 영화작품으로써 보다는 윤동주 시인과 시를 우려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윤동주 시인은 유명한 작가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민족시인이다. 그러나 대중적이지 않다.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그친다.
아깝기는 하지만 윤동주는 연속극에 출연하는 타렌트처럼 인기 있는 대중적인 인물이 아니다.
영화 ‘동주’가 기록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도 아니다.
영화를 제작한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