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에서 정선가는 관광기차는 만원이었다.
주중인데도 불구하고 표는 매진되었고 겨우 입석 두 장을 얻을 수 있었다.
기차를 메운 사람들 중 8활은 여자들 이었고, 아주머니들이었다.
기차는 원주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원주와 제천에서 몇 사람씩 내리고 탔다.
기차는 선진국 열차 못지않게 깨끗했고 승객들 역시 잘 교육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선진화 교육을 매우 빨리 받아들이는 민족이다.
언제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더냐? 그래서 후진국 소리 듣던 시절이 있었더냐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들 멋지게 차려입고 매너가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정선은 강원도 산골짜기 깊숙이 박혀있는 외진 곳이다.
사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못했다면 아무도 찾아갈 수 없는 오지 중에 오지였을 것이다.
수려한 산세는 가는 내내 아름다웠다. 스위스의 알프스나 캐나다의 밴프 못지않게
빼어나서 감탄이 절로난다.
당일치기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적어도 하루 묶으면서 살펴봄직한 곳이었고 그럴 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강과 산이 한국에서 가장 청렴한 지역인 것처럼 정선 역시 깨끗한 도시였다.
정선군이 군민과 힘을 합쳐 관광지역 개발과 도시정화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외지인을 대하는 지역주민의 열기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리만치 뜨거웠고 적극적이었다.
정선은 아무리 강원도 산꼴에 위치해 있어도 군민이 똘똘 뭉쳐 잘해 보겠다는 열정을 지니고 있는 한 어느 도회지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기차 안내원이 또아리터널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기차가 굴속을 달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들은 기차가 우측으로 약간 기울어 있다는 것을 감지할 것이다. 이것은 기차가 계속해서 회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 밑에 보이는 기차굴로 들어가서 산 속을 또아리틀듯 한 바퀴 돌아 오른편으로 나오면 기차는 산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했다.
민둥역에서 바라본 민둥산 정상이다.
선평역에서 깜짝장터가 벌어졌다. 10분간 쉬어간다.
감자전 한 잎 천원 주고 먹었다.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면 누가 믿을까?
맛은 때와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달리 나타난다.
모두들 맛 있어 했다. 뭐든지 맛 있어 했다.
오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감자는 강원도의 왕자다.
올챙이국수와 모듬전을 시켰다.
정선음식은 맛 없다고 했다. 그러나 건강음식이라고 가이드가 말해 줬듯이
올챙이국수는 정말 맛 없다. 풀대죽만도 못하다.
오히려 역전 음식점에서 나중에 먹은 ‘메밀콧등치기’가 훨씬 맛 있었다.
‘메밀콧등치기’는 넓적한국수발을 된장국물에 말아주는 구수한 국수다.
명패가 상품보다 요란해서 볼만하다.
이게 다 약초일진대 어찌 그리 아픈 사람은 점점 더 많아 지는지
좋다는 것만 챙겨먹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못 봤다.
‘산도라지’
귀한 것이 흔한 곳이 정선이다.
묵 위에 별처럼 생긴 열매가 말린 ‘마름’이라고 하는 열매다.
마름은 연못가에서 자라는 일년 살이 줄기식물에 달리는 열매로서 따다가 삶아 먹는다.
일제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마름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삶아서 쪼개면 흰 살이 나오는데 맛이 밤맛이다.
작가 채만식 선생의 호 ‘백릉’이 ‘흰 백자, 마름 릉’자를 쓰는데 이것은 마름 열매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제때 호남평야의 쌀은 군산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가져가고 농민들은 마름만 먹고 살았다.
지금은 사라진 음식인줄 알았는데 정선에서는 아직도 마름을 먹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맛은 도토리묵과 청포묵 중간 정도였다.
‘도토리말린묵’
도토리묵을 건조시킨 말린묵이다.
볶아먹고, 무쳐서도 먹고, 튀김, 사라다, 잡채, 피자에 얹어 먹을 수도 있다.
곤드레나물을 관으로 판다. 한 관에 만원
나물 짱아치
600년 묶은 뽕나무
고려 말 제주고씨 일가가 중앙에서 관직을 버리고 정선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심은 나무라고 한다. 전국에서가장 오래된 뽕나무라고.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이곳이 뽕나무 밭이었다고 한다.
기록에 보면 오횡록이 정선 군수로 부임하면서 관아 부근을 둘러볼 때 뽕나무 숲을 헤치고 길을 찾아 관사 앞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뽕나무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뽕나무보다는 고씨네가 살았던 옛집이 지금은 민박으로 바뀌었다.
고풍스러운 고옥에서 하룻밤 유숙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정선문화예술회관 3층 무대에서 정선아리랑극 공연을 공짜로 보여줬다.
사실 보나마나 뻔 할 것 같아서 망설였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1시간짜리 공연인데 괜히 들어갔다가 실망스러워도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못 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 매우 훌륭했다.
정선 아리랑의 유래와 전래를 뮤지컬 식으로 펼치면서 이해를 쉽게 도와주었다.
1864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정선의 아름드리 재목을 서울까지 운반해야하는 뗏목 행렬이 열렸던 것이다.
뗏목을 마포까지 몰고 가는 과정은 매우 위험했다고 한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목숨을 잃는 수도 있다. 뗏목꾼 보수가 군수 월급의 6배였다니 과히 짐작이 간다.
예나 지금이나 돈 잘 버는 남정네를 우려먹는 여자들은 있기 마련이었겠다. 뗏목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주막집이 있고, 주막에는 여자들이 있었으니 늘 뗏군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뗏군을 위한 아리랑이 있는가 하면
정선 아리랑도 있다.
‘정선 아리랑’
세모재비 메밀쌀 사철치기 강남밥
주먹겉은 통굴구에 오글박작 끓는데
낭군님은 야 어데를 갈라구 보선 신발 하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앞산에 올라가면 가지나무, 내려가면 싸리나무
아해나무 밑으로 감는감시에 피꾀리 단풍들적에
앞집에 김도령만 동박 따루 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숙암단임 봉두군이 세모재비 메밀쌀
사절지기 강남밥 주먹같은 퉁로구에 오글박작 끓는데
시어머니 잔소리는 부싯돌 치듯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우리집 시어마니 날삼 베질삼 못한다고
앞남산 관솔괭에 놓고서 날만 쾅쾅 치더니
한오백년 못살고서 북망산천 가셨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네 칠자나 내 팔자나 두동베게 마주보고
북통같은 젖을 안고 잠자보기는 오초강산 일글렀네
마틀 마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 들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읍내 들나드리 허풍선이 궁글대는
주야장천 물거품을 안고 비빙글 배뱅글 도는데
우리님은 어디를 가고서 날 안고 들줄 왜 몰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