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UC 머시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강봉수 박사. 그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관련 책을 모두 대출해 밤새 읽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인생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는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서울지방법원장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받았다.
명예롭게 은퇴한 후엔, 편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 시절 품었던 물리학자의 꿈은 환갑이 넘어도 버릴 수가 없었다.
강 박사는 성공한 법관이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6회)에 합격해 1972년 대구지법을
시작으로 28년간 판사로 일했다.
제주지방법원장.인천지방법원장에 이어 200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끝으로
퇴임해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9년간 일했다.
2009년, 과감히 물리학 박사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만학도의 당찬 도전은 7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지난 14일 UC머시드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세에 품었던 꿈을 54년이 지나서야 되찾은 강봉수 박사(73)의 얘기다.
“함께 입학한 동기 6명 중 제일 오래 걸렸다. 끝까지 쉽지 않았는데 잘
마무리돼 다행이다.
미국에서는 졸업식을 ‘Commencement(시작)’라 부른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자파에 관해 공부 했는,. 전자파를 한 곳에 집중시키면 강도가
세지면서 수평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초점화(焦點化)된 전자파의 형태와 모양을 관찰하고,
그것을 입자가속기 등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를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뒤늦게 공부하느라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유학와서 접한 물리학 이론들이
거의 외계어 수준이었다.
영어도 안 되고 첫 학기엔 수업을 거의 알아듣지 못해 강의 시간엔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만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 참고도서 찾아보며 이해될 때까지 하루 15시간씩 매달렸다.
그러면서 원래 ‘공부머리’가 좋았다기보다 시험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했다.
그것도 나이 앞엔 어쩔 수 없더라. 시험 직전까지 달달 외웠는데도,
시험지를 딱 펼치면 용어고 공식이고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처음엔 시험점수도 형편없었는데, 그래도 늘 커트라인은 가까스로
통과했다며 웃었다.
고3때까지 물리학과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화학 선생님이었던
아버님이 갑자기 ‘법대를 가라’고 하셔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가
늦게나마 박사학위를 받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시 공부를 하게 돼서 좋다. 힘들지만 모르던 걸 하나씩
알아갈 때의 성취감은 대단하다.
‘아이고 이 어려운 게 해결이 되는구나’ 싶으면 얼마나 기쁜지.
” 미국에선 아무도 나이를 묻지 않아서 유학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나이를 자연스럽게 잊게 되더라.
고등학교 때 하던 공부를 이어서 하고 있으니 마음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래도 너무 늙은이처럼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한국에선 하지 않던
염색도 하고,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청바지도 입어 봤는데, 그건 불편해서 못 입겠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도 괜찮다.
오후 10시쯤 자고, 새벽 1~2시에 잠이 깨 다시 두세 시간 공부하고,
한두 시간 더 잔 후 7시에 일어나 등교하는 생활을 7년간 반복했다.
매일 조깅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큰 문제는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중학교 때부터 배운 클래식 기타를 쳤다.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30분씩 쳤는데 가끔 30분을 넘기면 아내한테 ‘
빨리 공부하라’고 혼나기도 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꿈이 뭐였는지 기억이 난다.
할 것이 정해지면 과감히 뛰어들어보는 거다.
나이가 들면 신경 쓸 게 별로 없어 하나에 정진하기가 더 쉽다고 했다.
강봉수 박사는 앞으로 1~2년간 ‘볼런티어(Volunteer) 연구원’ 신분으로
UC머시드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볼런티어 연구원은 포스트 닥터(박사 후) 과정과 비슷하지만,
보수를 받지 않고 개인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는 “일자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난 내 공부에만 전념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학문이다.
이미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많은 걸 알아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기왕 공부를 시작했으니 인간이 모르는 영역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공헌하고 싶다. 마음이 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