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쉬운 게 아닙니다.

IMG_6486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해가 넘어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운동 길에 나섭니다.
아직은 반바지에 셔츠만 걸치고 나서도 한참 걷다 보면 땀이 납니다.
그래도 한여름 같지는 않아서 한결 선선하고 얼마든지 걸어도 무더운 날처럼
땀이 비 오듯이 흐르지는 않아서 좋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해서 작은 변화에도 웃고, 짜증내기를 반복합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나타나는 징후가 신기하기도 합니다.
자연의 변화가 저절로 다가오듯이 기분의 변화도 저절로 옵니다.
운동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빨간 낙엽이 너무나 곱기에 주워왔습니다.
읽던 채식주의자 책갈피에 넣고 덮어놨더니 며칠 만에 식물채집처럼 납작하게
말라 있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초입에 다가왔더군요.
걷다 보면 이웃집 담 너머로 홍시가 되려는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담을 넘어 길 쪽으로 나와 있습니다.
나는 그 하나에 눈길이 작구 갑니다.
어제도 오늘도 유독 그 하나에 시선이 머무는 속내가 부끄럽습니다.
가능성이 있어보이면 자동으로 탐이 나는 마음도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아니면 속세에 길들여진 학습효과일까?

어제저녁은 외식을 했습니다.
형님 생일이라고 식사모임을 가졌는데 노인이 되고 나서는 많이 먹을 수가
없습니다. 대구탕을 시킨 형님이나 육개장을 시킨 누님이나 다 먹을 수가
없으니까 미리 반은 덜어서 싸서가지고 갑니다.
늙으면 돈 쓸데는 음식 사 먹는 일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있을 것 다 있고, 옷도 신발도 살 필요가 없으니 소비는 먹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누님은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주일에 세 번 걷기운동을 합니다.
걷고 나면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모두 똑같은 금액을 갹출해서 지불한다고 합니다.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됐을까요?
속세의 땅 차안(此岸)에서는 마음의 저울이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하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놓은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달 반전에 수원에서 사는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모여서 들 걷고 나면 점심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저것 시키고 소주에다 수육까지 시키고 나면 돈 십만 원 우습게 된다더군요.
돌아가면서 낸다고는 하지만 친구는 술도 안 마시는데 매번 끼어 앉아서 구경하다가
돈만 내주는 것 같아서 더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입니다. 밑지면서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돈 많은 부자도 마음 씀씀이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은 이게 치사한 마음가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생각만 들었지 뭘 어떻게 해 본 일은 없습니다.
다만 깨달음의 세계(彼岸)에 들어서면 이런 작은 문제에 휘둘리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으면 내고, 없으면 얻어먹고 까지는 쉽게 행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내 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해서 내 주기만 하면 마음이 흔들려 지기
마련입니다.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작구 얻어만 먹다보면 마음이 괴로워지는데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참 세상살이가 쉬운 게 아닙니다.
빨간 수의로 갈아입고, 평생을 같이 지내온 나무와 작별 인사를 하고,
손을 놓고 날아온 낙엽을 보면서 변화의 무상함이 생각나서 해 본 소리입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