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문고 평대(10월 1일)
책 출간을 위해 출판사와 접촉하던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오프라인 교보문고 평대에 올라가거든 저자가 20권은 팔아주셔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 조금은 흥분했다. 내 책이 교보문고 평대에 진열된다고?
진가 민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내면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책이 과연 팔릴까 하는 문제였다.
이리저리 별별 궁리를 다 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에 라디오 소설을 듣던 중에 멘토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무진 기행이 출판됐을 때 읽고 너무 좋아서 30권을 사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책을 읽고 그 책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겠는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좋은 책이다를 강조하기 위한 멘토였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책을 사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말만 뽑아내서
내게 접목시키려 들었다.
내 딴에는 친하다는 사람 열 분을 골라서 앞으로 나올 책에 관해서 설명해 주고
10권을 사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부탁했다.
30권도 아닌 그까짓 10권 사서 나눠주라는데 뭐 대단한 부탁이랴 싶어 하면서
가볍게 생각했다.
모두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이어서 부담감 없이 들어줄 만한 사람들만 골랐다.
열분 중에 그러겠다고 흔쾌히 승낙해 준 사람은 한 분뿐이었다.
다른 한 분은 전화로 부탁했는데 아예 화를 내면서 한 권이면 몰라도
누굴 봉으로 아느냐는 식으로 기분이 매우 불쾌해했다.
동생네 부부는 돈이 없어서 하면서 뒤로 꽁무니를 뺀다.
정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 살 돈은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돈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 치고 죽은 다음에 보면 빗만 있더라,
돈 없다고 하는 사람 죽으면 여기저기 숨겨 둔 돈이 많더라고 말해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진가 민가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게 별로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친한 친구에게 부탁했는데 이 친구 정면에다 대고 ‘노’라고는
하지 못하고 너는 왜 그리 이기적이냐는 투로 말꼬리를 돌린다.
그때야 비로써 나는 알아차렸다.
세상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도 않고,
더군다나 사서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런 사람들에게 책을 사서 나눠 주라니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였겠는가?
내가 책이 좋다고 남들도 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장 기초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나의 부탁을 받고도 정면에서 면박을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그분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다.
현실을 깨우치고 난 다음에 나는 다시 그분들을 만나 부탁을 취소하면서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사실을 이야기 해 주기에 바빴다.
다행인 것은 그분들이 지나가는 말일지언정 그래도 사 드려야지 하는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중에 한 분은 굳이 15권을 팔아주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지인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분은 다름 아닌 나의 큰 누님이다.
나는 한국에 나오기 전에 두 단체에 구두 약속을 했다.
새로 출판되는 책 50권씩 기부하겠으니 회원들에게 팔아서 기금에 보태
쓰시라고 했다.
모두 기쁘게 받겠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언급했듯이 과연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에 책이 진열되어 있는지
나가보았다.
남들이 사 가지 않으면 나라도 팔아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들어서자마자 왼편 첫 인문 신간 평대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천천히 평대를 몇 바퀴 돌았다. 너무나 신기하고 흥분됐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한 권을 사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영풍문고 본점에 들려봤다. 두 바퀴를 돌아봐도 내 책은 보이지 않는다.
책 진열위치를 추적해 봤다. B 구역 B20-8(입서가)에 있다는 쪽지가 프린트되어
나온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은 단 3권뿐이다. 여기서도 한 권을 사 들고 나왔다.
나는 오늘도 전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간다. 교보문고에 들러 책 한 권을 사 들고
나왔다.
하루에 한 권씩 사 모아 50권을 채워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사면 10%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더군다나 저자가 출판사에서
직접 구입하면 책값의 60%만 주면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제값을 다 주고 매장에서 사는 까닭은 최소한도 자릿값을 지불해 줘야
하겠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