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도 멋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근심은 더해 간다.
친구들이 하나씩 주변에서 사라지고, 동창 중에 누구는 벌써 갔느니
누구는 치매에 걸렸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의 말 같지 않다.
늙으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우울증을 앓는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도 더 크다.
정신건강 상담원의 말을 빌리면 “상담을 해보면 거의 모든 한인 시니어가
우울증세를 겪고 있고 죽음,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언어제약으로 미국에서 감옥살이 한다’ ‘인생에 의미를 찾지 못 하겠다’며
우울증을 호소하는 시니어가 많다”고 전했다.
특히 치매에 대한 걱정, 불안이 증폭되면서 자살을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늙어가면서 삶의 권태를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멋있다 할 수 있다.
건강상의 문제만 걱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늙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추한 늙음도 큰 문제다.
때로는 술김에 드러내는 속내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되는데, 아집, 독선,
허영,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은 옆에서 보고, 듣고 있는 사람들마저
추잡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하는 사람은 자랑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으나 듣는 사람은 불쾌감마저 든다.
친구 중에 한 사람은 나보다도 나이가 두 살이나 많은데도 돈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줄기차게 뛰어다닌다. 정수기를 팔러 아는 집은 다 찾아다닌다.
가난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도와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돈에 환장한 사람 같아서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하다.
건강이나 노추를 훌쩍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있다 할 수 있다.
나는 늙어가면서 젊은 가수들이 TV에 나와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거의 보지
않는다.
내가 듣기에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노는 것을 보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나로서는 마치 시간 낭비 같은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나만 그러는 줄 알았다.
일전에 김영하의 소설 읽기 방송을 듣다가 이런 대화가 나왔다.
<친구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한다. “너 노인들 나와서 60분간 떠드는 거 보러
갈래?” “아! 나 안 갈래, 듣기 싫어”>
나는 젊은이들도 노인들이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세대가 다르면 서로 거부감을 느낀다.
이런 세상에 나 같은 노인을 달갑게 맞아주는 여자는 없다.
심지어 노녀에게서도 반기는 시선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늙고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가끔, 아주 가끔 친절을 베푸는 아주머니(실은 할머니)를 만날 때가 있는데
이 분은 필시 천성이 마음씨 고운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은 주제에 마음씨마저 영악하다면 이걸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마음씨 고운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친절해 진다면 이것은 돈 안 드리고도
멋있는 노인이 되는 길이다.
늙음에도 멋은 있기 마련이다.
미래에 대한 포기, 사회활동 감소에서 오는 성취감 저하 그러면서 닥치는 절망감,
존재감 상실 이런 일련의 감정 때문에 소침해 있을 게 아니다.
다 살았다고 해서 함부로 마음 놓고 지낼 일도 아니다.
늙는 것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자식과 손자들이 보고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젊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듯이 늙어서도 할 일이 있기 마련이다.
늙은이가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하겠으나 그렇지 않다.
젊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았듯이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자기 일을 자신이 알아서 해 가는 늙음은 늙었어도 멋이 넘쳐 보인다.
엄 경옥
2019년 1월 18일 at 12:47 오전
그동안 안녕 하셨어요?
“ 어떻게 늙을 것인가?’ 이 글은 제가 제일 처음 ( 3년 젼?)읽은 SILHUETTE 님의 글 이에요.
재미 있고, 한줄 한줄 모두가. 공감이 가는 유익한 말씀이예요.
그래서 지금도 자주 읽고 있어요.
제가 병이 생긴 후로는 더 새삼스럽게 느껴 져요.
지난해 2 월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치료( 항암, 수술, 방사선) 끝내고 지금은 회복중이예요.
처음 진단 받고, 치료항때는 많이 햄들었으나,
이제 많이 회복이 되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오래 살고 보니까 이런 경험도 하게 되고,
이 경험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는…..
인생은 60 부터라고 해서,
지난 8년을 오붓(?)하게 살았는데
일년은 투병하고,
내년엔 70 이(벌써?) 되고,
이제부터는 또 어떤 삷을 살아야 하나? 하고…..
감사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수있는?
생각보다 어려울것 같기도 해요.
아침엔 산책으로 시작해서
오전엔 침침한 눈으로 악보를 보며 몇년 전에 시작한 첼로 활을 켜 보기도 하고
저녁엔 간단한 요리을 해서 즐기기도 하고
틈틈이 새로 생긴 손자놈 겨울 모자를 뜨개질 하고,
잠이 안 올때는 멀리있는 친구에게 편지도 보내고…..
SILHUETTE 글 읽는가 도 아주 큰 낙이랍니다..
엄 경옥 드림
silhuette
2019년 1월 20일 at 3:03 오전
댓글을 읽고 마음 아팠습니다.
나는 답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면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이삼일 지나면 읽었던 글도 잊어지기 마련인데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쓰기는 써야할 텐데 무슨 말을 써야하나 또 망설였습니다.
돌아가신 나의 누님이 생각납니다.
누님이 유방암 선고 받고, 수술하고 치료하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5년을 넘기면 완치라고 해서 노력 끝에 5년을 넘겼어요.
그리고 16년을 건강하게 사셨습니다.
65세에 재발해서 10년을 버티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 살아계신 누님.
오로지 누님의 사랑만이 남아 그리움을 더합니다.
여기서 신달자 시인의 글을 조금 추려봅니다.
“많은 것을 내려놓았고 안 되는 것은 포기하고 남들을 존경하고 낮게 낮게
감사할 줄을 아는 이 나이가 좋다.
하느님이 너무 착하게 살았다고 20대로 돌려준다고 하면 아이구 아닙니다 하며
거절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No’다.
혼자 외로운 아침도 저녁도 좋다.
그리고 나의 짝사랑, 손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손주들 사랑은 분명히 짝사랑이 맞는데도 나는 지금 느긋하다.
그리고 행복한 할머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마음이 곧 행복입니다.
신재동 드림
엄 경옥
2019년 1월 24일 at 11:34 오후
댓글 보내 주셔서 정말 반가워요.
사실 댓글 보내 주시리라고는 별 기대 하지 않았었는데….. 그래서 더 감사 합니다.
더구나 돌아가신 누님 생각을 하시게 하고,
공연히 마음 을 불편하게 해드린다고 같아서 죄송해요.
전 별로 생각 없이 그저 어딘선가 Silhuette 님 글을 잘 읽고 있는 독자가 있다는 것만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보내주신 신 달자 시인의 글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꼭 맞는 시예요.
저는 제가 20 대 초반에 미국에 와서,
한국의 현 작가들도 모르고, 한국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어요.
( 박완서 작가가 쓴 신문 연제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을 마지막으로 읽은 기역이 나네요)
그런데 요즘에 한국 인터넷에서 많은것을 배우고 있어요.
좋은 세상이지요?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PS: 신재동 이 본명 이신가요?
제가 어떻게 존칭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