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쌀로 밥을 지으면 반찬이 없어도 맛있다.
배터지게 저녁을 먹고 밖을 내다본다. 6시도 안 됐는데 이미 어둡다.
운동 나가기에는 너무 깜깜하고 그렇다고 퍼지게 드러누워 TV나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가을 날씨 치고는 제법 춥다.
전철을 타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왔다.
초저녁에 불과한데도 거리는 텅텅 비어 있다.
인사동 길을 나 홀로 활보한다. 종로에서 광화문을 향해 걸었다.
운동이 별거냐 숲속을 걷든, 도회지를 걷든, 걸을 만큼 걸으면 되는 것이다.
모두들 두툼한 코트를 입었다.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간다.
아직은 장갑을 낄 정도는 아니라고들 말하는 것 같다.
가죽 장갑을 낀 사람은 나 혼자다. 엇박자만 치고 사는 삶이란.
이순신 동상 앞에서는 시국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람 불고 추운 날씨인데도 모여 서들 찬미를 부른다.
사제단이 내세운 구호가 “신종 쿠테타”
“신유신 독재 타파를 위한 천주교 시국 기도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유신 독재자란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독재자 같지 않은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을 들춰내는 걸로 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컫는 모양이다.
하기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술 취하면 일본 군가를 부르던 애국자였으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자 앞에서는 진짜 애국자였고,
김구 선생은 민족을 위한 애국자였다.
지금 시국 선언하는 신부님들은 다 같이 잘살자는 애국자이다.
다 같이 잘살자? 이거 공산주의가 부르짖다 망한 애국자 아니야?
왜 하필이면 이순신 장군 앞에 모여서 밤낮으로 소원을 하소연하는가.
아마도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나라를 지킨 진짜 애국자였기 때문인 모양이다.
나도 이순신 같은 애국자란 의미가 아닐까?
광화문 앞 정부청사를 지나 전철역으로 간다.
청사 앞에는 개성공단 다시 열라는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농성하고 있다.
어제 오늘로 구호가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 타도”로 변했다.
작금에 박근혜 대통령 두들기는 뉴스를 보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떠오른다. 그때 그 많던 애국자들,
촛불 시위하던 애국자들 지금도 잘했다고 믿고 있는지?
TV 토론에 나와 열변을 토하던 교수님들 지금은 뭐라고 할는지?
우리나라는 애국자가 너무 많다.
TV나 신문, 여론이라고 하는 게 인기몰식이다.
연속극보다 박 대통령 두들기면 시청률이 더 올라가니까 점점 더 뉴스거리를
긁어모으는 형국이다.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일단 한 마디 하면서 화면에 얼굴이라도
내밀고 보자는 식이다.
비선 라인이 있었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마치 인민군이
쳐들어온 것처럼 왜들 이리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순리껏 일 처리가 되어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어디가 덧나나?
천안함 침몰 때도 이렇게까지 난리를 치지는 않았다.
너무들 서두르는 것 같아서 보기에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