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다.
또 그 속내를 드러내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내 앞에서 사라져 하고 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나도 박근혜의 얼빠진 행위에 분노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무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작심하고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친인척만 당도리 하면 되는 줄 알았을 뿐, 친인척보다 더 가까운
지인은 괜찮은 줄 알고 믿고 덤볐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알든 모르든 법을 어기는 실수도 실수다.
박 대통령의 행위를 단순히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고, 막중해서
그보다 더 책임 있는 말로 표현하고 싶어도 적당한 어휘가 없을 지경이다.
구 러시아 황제는 알래스카 땅덩어리를 미국에 단돈 몇 푼에 팔아넘기는 실수를
저질렀고, 골대 앞에서 헤딩으로 자책골을 먹는 실수를 범하는 선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위대한 것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을 지키는 민주 의식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법을 어겼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박 대통령의 잘못을 법으로 해결하면 될 것을 초법적인 카드를 들이대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퇴진이 법에 의한 정당한 요구인가?
‘하야’라는 단어가 ‘퇴진’으로 바뀌기까지 4주가 걸렸다.
처음부터 ‘하야’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정치인, 언론, 학식
있는 분들이 앞장서서 ‘하야’ ‘하야‘ 해대는 바람에 진가 민가 하다가 결국
’퇴진‘으로 바뀌었다.
하다못해 하치않은 단어 하나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하물며 막중한 사건이 중심을 찾아 밝혀지기까지는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분노한 국민은 정의를 보기에 급급하다.
분노한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내 세우면서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 들고, 언론은 경쟁적으로 사실이든 아니든 다 들춰내어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인기몰이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노한 시위대 2백만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갓 지나간 미국 선거를 보더라도 언론의 여론조사며, 의회의 트럼프 반대 분위기며
세계가 지켜보는 눈초리까지 트럼프에게 유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고서야 국민의 의중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광화문 시위대만
보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법이 있고, 법이 제시하는 탄핵이라는 절차가 있다.
법은 옆으로 밀어놓고 초법적인 ‘퇴진’이라는 압박카드를 내세워 자신의 득실만
따지는 작태가 눈에 거슬린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입 다물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속내를 읽을 줄 아는
정치인 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이고, 큰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