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있었다는 뉴스다.
매년 추수감사절 다음에 벌어지는 행사다.
샌프란시스코 유니온 스퀘어에 있는 트리에도 불을 밝혔다.
오클랜드 잭크 런던 스퀘어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쉐스타 산에서 베어온 트리에
5000개 반짝이는 불이 들어왔다.
온 세상에 불을 밝힌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 집 거실에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도 불을 밝혔다.
사십 년 전에 인조 트리를 하나 사서, 같은 트리를 세웠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한다.
이제 나는 트리 세우는 것도 지겹다.
늙은이 둘이서 사는 집에 트리는 해서 무엇에 쓰겠나.
그러면서도 또 세웠다. 불을 밝히니 환하면서 반짝이는 불빛이 신선하고 보기에
좋다.
다섯 살 먹은 손주 녀석은 처음 보는 트리라며 좋아한다.
내게는 쾌쾌 묵은 늙은 트리이지만 손주가 보기에는 새 트리인 것이다.
손주는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외친다. 오나멘트는 자기가 달겠다며 아무도 손대지
말란다.
흥에 겨워 노래까지 흥얼대면서 정신이 홀려있다.
사물은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헌것도 되고 새것도 된다.
다음 날, 손주의 입이 쩍 벌어져서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가만히 보고만 있었더니 드디어 기분 좋은 까닭은 스스로 고백한다.
에미랑 같이 가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다가 거실에 놓고 장식했다는 빅뉴스를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했더니, 한번 터진 입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지껄여
댄다. 진짜 살아 있는 소나무를 사왔다면서 인조 나무와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른이 자랑하는 꼴은 보기 싫은데 아이가 자랑하는 모습은 오히려 귀엽다.
아이는 그것이 자랑인줄 모르고 사실대로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딸이 오나멘트도 우리 집에서 예쁜 것들만 골라 가져갔으니 당연히 멋진 트리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손주가 귀엽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손주보다 딸이 더 귀한 것처럼 딸은 부모보다
자식을 더 소중해 한다.
내리사랑이라더니 어쩌면 옛 사람들은 옳은 말만 골라서 남겼을까?
무엇이든 딸이 가져가는 것은 아깝지 않다.
아내는 집어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일 때도 많다.
요긴할 것 같아서 기껏 싸서 주면 풀어보고 이것저것 타박을 하다가 놓고 가 버린다.
내색은 안 해도 아내의 얼굴에 섭섭해 하는 표정이 깃들어 있어 보인다.
저 좋은 건 지가 알아서 할테니 그러지 말라고 해도 똑 같은 행위는 반복된다.
손주 봐준 공은 없다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기껏 봐주고 나면 오히려 왜 잠을 재워서 밤에는 자지 않는다는 둥, 건강에 안 좋은
정크 푸드를 먹였냐는 둥, 단 것 주지 말랐는데 왜 번번이 주느냐 이런 저런
불평이 많다.
불평을 들으면서도 아내는 몰래 사탕을 준다.
이번에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내가 말린다.
아내는 새 껌을 손주에게 준다. 손주는 달콤한 맛을 빼먹고 뱉어낸다.
껌 한 통 다 달아난다고 말리면, 몰래 쑥덕대는 꼴이 결국 거덜을 내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다.
아! 손주 없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