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길이 목장을 가로질러 가게 되어 있다.
늘 만나던 소 들이다. 오늘은 좀 자세히 보았다.
소도 잘생긴 소가 있다는데 내 눈에는 그게 그거다.
전에는 몰랐다. 뿔이 없는 소가 있다는 사실과 목장에서 암소만 기른다는 사실을.
고깃감으로 팔려나갈 소들이니까 육질이 가장 우선시되리라.
고기가 연해서 먹기 좋은 때에 죽어줘야 하는 운명이다.
사람으로 치면 처녀 예닐곱 살이 가장 적당한 나이일 것 같다.
운명치고는 가장 더러운 운명이다.
소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왜 태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태어나자마자 귀에 명찰을 달았을 뿐 엄마라는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다.
DNA에서부터 뿔이 제거되었으니 방어능력은 아예 없어도 된다는 운명이다.
어쩌면 중국이 우리에게 사드배치 무용론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어느 날 주인의 뜻에 따라 소들은 이 목장으로 파견 나오게 되었다.
파견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한적하고, 먹을 것도 풍부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유유자적 놀면서 먹을 만큼 먹고 뒹굴면 그만이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성이 없는 세상이다.
모두가 암소들뿐이다. 모두가 같은 나이 또래들이다.
소들을 더욱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편해서 죽을 지경이라는 사실이다.
좋은 일만 계속 벌어지면 그것도 겁나는 일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데 어찌 너희들만 편히 살게 놔두겠는가.
그렇다고 머리를 써서 될 일이 아니다.
각본에 쓰여있는 대로 살다가 가야한다.
“귀에 명찰을 달고 살다가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서 최후를 맞으라.”
각본을 읽을 줄 모르는 소들이어서 그렇지 만일 글을 깨우치게 된다면 사단이 나리라.
구로공단 여공들이 생각난다.
결국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태어났고, 돈 때문에 편히 살다가, 돈 때문에 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어야만
한다.
돈은 더러운 인간의 욕망이다.
누군가는 너를 돈으로 보는데, 누군가는 너를 소로 보고 있다.
오늘 내가 너를 소로 본 것은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소가 아니다.
소를 닮은 고깃덩어리인 것이다. 고깃덩어리가 푸른 초원에 둥둥 떠다닌다.
소처럼 생긴 고깃덩어리가…….
조물주의 뜻을 어긴 고깃덩어리가 눈을 꾸벅이며 내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