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아내가 깨우기에 일어났다. 애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단다.
왜 기다린단 말인가?
생일 저녁 먹으러 나가자고 왔다는 것이다. 차려입고 따라나섰다.
고개 넘어 한참을 달렸다. ‘달콤한 토마토’ 채식 뷔페 집이다.
이 집은 언제나 손님이 들끓는다. 샐러드 바에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채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깃집에 손님이 많은 데 비해서 미국에서는 채식 집에 사람이 많다.
샐러드를 두 접시나 가득 담았다. 과일도 없이 채소 종류만 많다.
이상하게도 내가 늘 먹는 채소만 눈에 들어온다. 채소도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침에 먹은 채소 저녁에도 먹었다.
토마토 쑵과 빵도 먹었다. 속이 덜 찬 것 같아서 피자 두 조각과 쑵을 더 먹었다.
손자가 네 명인데 외손녀가 가장 인기가 높다.
순하디 순해서 내프킨 한 장 건네주면 그걸로 한 시간을 다 보낸다.
꾸겼다가, 접었다가, 찢었다가, 내프킨에서 그렇게 다양한 소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줄 몰랐다.
손자 놈들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맛에 푹 빠져있다.
평상시에는 먹지 못하던 아이스크림을 오늘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으니 신이 났다.
나도 어려서는 생일이 그렇게도 좋았다.
생일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날이었고, 생일에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내게 최 우선권이
주어졌다.
내 생일이라고 하면 모두 비켜섰다.
아침상에 미역국이 올라왔고, 내 미역국에 고기가 가장 많이 들어 있었다.
생일도 하도 많이 차려 먹다 보니 별로가 되고 말았다.
아니면 미역국을 아무 때나 먹다 보니 생일날도 시큰둥해진 모양이다.
생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마치 귀했던 계란이 천덕거리가 되고 만 것처럼.
그래도 생일이라고 어김없이 선물을 받았다. 며느리가 무선 CCTV를 가져왔고,
딸이 여행용 가방을 들고 왔다.
생일이 별로 달갑지 않은 것처럼 선물을 받아도 신나는 기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막내딸은 갓 낳은 제 딸 이야기만 하고, 큰 딸은 내일 있을 자기 아들 생일파티
이야기만 한다. 며느리는 지 두 아들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하룻밤 남편과 지낼 생각에
들떠 있다.
각자 자기 관심사에 관한 이야기만 재미있을 뿐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라디오 문학관에서 흘러나오는 단편 소설이나 듣는 게 가장 행복하다.
자정이 넘도록 김덕기 작가의 ‘낫이 짖을 때’를 들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