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러 갔다.
오늘따라 극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몇 안 되는 관객도 상영 중에 나가버리고 말았다.
일 막으로 끝내는 연극처럼 한 장면으로 3시간짜리 영화를 끌고 갔다.
영화라고 생각하고 온 사람은 지루해서 견디기 힘들겠지만,
심오한 내용을 알고 보는 사람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은 명화다.
별장의 리빙룸에서 시작한 영화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별장 리빙룸에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유진 오닐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서전 같은 작품을 쓰면서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는 작품이다.
완성된 작품을 부인의 생일 선물로 주면서 내가 죽은 후 25년 뒤에 발표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8년째 되던 해 수익금 전액을
예일 대학에 기증한다는 조건으로 작품을 공연했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스웨덴에서 첫 공연의 막을 열었다.
유진 오닐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프리처상을 네 번 수상했다.
아버지 티론, 아내 메리, 큰아들 제이미, 작은아들 에이먼드 네 사람이
코네티컷의 여름 별장에서 며칠 동안 같이 지냈던 일을 극화 했다.
작품 속의 작은아들 에이먼드가 20대 젊은 유진 오닐을 그리고 있다.
오닐의 가족이 가장 심오한 갈등 속에서 헤매고 있던 시절을 무 토막 자르듯
한 조각 뚝 잘라서 보여주고 있는 극이다.
한 토막의 무속에는 오닐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뉘우침이 그대로 담겨 있다.
오닐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명배우 캐트린 햅번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다.
어머니 메리는 하녀에게 하소연하듯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한다.
만일, 결혼하지 않았다면 수녀나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녀원 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당시에 이름을 날리던 연극배우 티론을 만난다.
선망의 대상인 연극배우와 사귀는 메리는 동료 학생들로부터 부러움을 듬뿍 받았다.
남편 티론도 한때는 잘나가던 배우였다. 당시 최고의 배우 대역을 맞았다가 극찬을
받은 일도 있다.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한 순회공연도 다녔다. 그러나 티론은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역할만 해도 그만한 돈을 받는데 구태여 무모한 도전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뉴욕 뒷골목 극장에서 몬테크리스트 백작 한 역할만 20년째 연기하다 보니
무능한 배우로 전락하고 말았다.
후일 오닐이 평생 끝없는 도전을 감행했던 것도 그의 아버지를 닮아서는 안 되겠다고
터득한 교훈에서 시작하였다고 술회했다.
아무튼, 무능한 남편 때문에 메리는 삼류 호텔에서 평생을 지내게 되었고
오닐도 호텔에서 낳아 기르면서 산후통증을 이겨내려고 아편을 맡기 시작한다.
친구도 없이 외로움 속에서 고통 받는 메리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오닐은 이해한다.
가족사 중에 가장 시련과 갈등이 심화되었던 시절의 한 토막으로
당시로써는 죽음의 병 폐병에 걸린 막내아들 오닐이 싸구려 주립요양원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다가,
엄마 메리는 아편 없이는 잠시도 참지 못하는 중독자였던 때이다.
아버지 티론은 가난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몸에 밴 전형적인 수전노이다.
전기료가 아까워서 불도 다 끄고 산다.
두 아들은 수전노 아버지가 싸구려 의사를 선택하는 바람에 엄마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원망한다.
아버지는 돈이 아까워서 막내아들을 싸구려 주립요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배우를 때려치운 형은 술 중독에 창녀 굴이나 드나든다.
오닐은 가족사 속에 가장 고난과 역경을 겪던 이야기를 한 토막극으로 남겼다.
그렇지만 긴 세 시간짜리 연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