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돈 쓰는 기쁨에 도취해 있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지내도 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고 으스대기도 했다.
돈 쓰는 재미를 톡톡히 보며 다녔다.
돈을 쓰면 주변 사람들이 좋아했다.
모두 좋다고 하면 나는 우쭐해지는 게 싫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돈 안 써도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술 마시는 사람들이 볼 때, 술 안 마시는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 이해가
안 되듯이 돈 쓰는 재미에 빠진 사람은 돈 안 쓰는 재미를 모른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어떤 미묘한 매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비로써 알게 되었다.
권여선 작가가 문학이 고독과 가난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독자보다 더 고독하고, 더 가난해야 작으나마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권여선 작가의 ‘이모’라는 단편을 읽고서다.
이 작품은 인간 중심 문학적 플롯으로 구성되었다.
이모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독자의 이해를 갈구하고 있다.
나는 이모의 삶에서 공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가난을 즐기면서도 왜 만족하는지 몰랐던 사실을 이모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모가 화자는 아니지만, 이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이모라는 인물은 장녀로 태어나 집안 살림을 도우며 살아야 했다.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까지 도움을 줘야만 하는 삶이었다.
남동생 공부시키랴, 도박 빚 갚아주랴 모았던 돈은 거덜이 났다.
결혼도 미루고 뒷바라지만 하다가 남동생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몰리고 말았다.
10년을 그 빚 갚는데 허비하고 만다.
50도 중반이 넘어서야 혼자 뛰어나가 독립해서 살아본다.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거다.
처음에는 모아놓은 돈을 다 쓰고 죽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계기를 맞으면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몸에 밴 습관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생활비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한 달에 65만 원으로 산다고 했다.
그 중에 30만 원은 월세로 나간다.
결국, 35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산술적으로 하루에 만 원씩만 쓴다고 했다.
화자의 한 달 전화비에 불과하다. 이 적은 돈으로 어떻게 산단 말인가?
5만 원은 관리비로 나가고, 커피, 담배, 쌀, 김치, 휴지 그리고 의료보험을 내고 나면
그 돈의 절반인 하루에 5천 원 정도 쓰면서 산단다.
한 달에 15만 원으로 산다는 이야기다.
“나는 내 가난에 익숙하고 그게 싫지 않다.”
그녀의 집약된 한 마디 속에 그녀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녀는 가장 요약된 삶을 산다.
집에는 컴퓨터도 없고 TV도 없다. 신문이나 전화도 없다.
뉴스는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로 본다고 했다.
온종일 책을 읽다가 저녁에 집에 온다.
담배는 하루에 네 개비만 피운다. 술은 주말에 소주 한 병을 마신다.
그러면서 가난을 충분히 즐긴다.
요리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만드는데 일인분을 만들어도 정성을 다한다.
그녀는 많이 먹는 편이 아니기에 어떤 때는 반공기의 해물 죽을 만들 때도 있다.
조카며느리(화자)가 한번 그녀에게서 점심을 얻어먹었는데
반찬은 조기조림과 시래기 된장국이었다.
비싼 조기가 아닐 텐데도 양념이 밴 살점은 달았고, 시래깃국은 깊고 구수한 맛이 났다.
조기도 시래기도 제철에 무더기로 사다 말린 것들이라고 했다.
이모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낯익은 까닭은 아프면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췌장암으로 숨을 거두기 마지막 날, 가쁜 숨을 내쉬면서 그녀는 혼자 말했다.
“그런데 그게 무얼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것이”
그녀의 아파트 보증금과 통장에 남은 돈은 그녀의 유언대로 상속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1/3을, 여동생에게 1/3 그리고 조카며느리에게 1/3을 상속한다고
지정해 놓았다. 도박으로 탕진한 남동생에게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통장에 입금된 숫자를 보고 조카며느리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한 달에 35만 원씩만 쓰던 그녀가 9년 5개월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김 수남
2017년 4월 6일 at 10:32 오후
네,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이모에 대한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윗세대 분들 중에 참으로 우리 주변에 실제 있었던 이모님들의 이야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성실히 살아 오셨던 많은 이모님 같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