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 파는 포장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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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음직스러운 먹거리가 그려있는 음식점을 보면 저기서는 음식값을
얼마나 받을까 하는 것부터 훑어본다. 가격은 여지없이 나를 실망하게 한다.
나의 기준은 4천 원이 넘으면 비싼 거다. 내 기준에 맞는 음식점은 많지 않다.
일산 신도시 길은 널찍하다. 걸어서 길을 건너려면 한참 걸린다.
넓은 도로를 여럿이 몰려 건너갈 때는 모르겠으나 혼자서 건너려면 별생각이 다 든다.
차에 앉아 녹색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운전자들은 길을 건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시선의 따가움을 느낀다.

인도교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다.
지나다니면서 몇 번 보았지만, 학생 아이들이나 들락거릴 것 같은 포장마차다.
용기를 내서 고개를 디밀고 어묵이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한 꼬치에 5백 원이란다.
칠십은 돼 보이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밟고 올라서 있는지 손님들보다
키가 커서 내려다보면서 서 있다.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이 조금씩 진열되어 있다.
거무튀튀한 물속에 잠겨 있는 어묵인지 오뎅인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할머니더러 어묵이 꽂혀있는 긴 젓가락 같은 나무 꼬치를 뭐라고 부르느냐고 물어보았다.
오뎅 꼬챙이라고 한단다.
한 입 베어 먹으면서 사람들의 입이 스쳐 갔을 이 꼬챙이를 제대로 씻기나
한 건지 아닌지 이런 추잡한 생각을 해 본다.
가능하면 꼬챙이에는 입이 닿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면서 어묵만 베어 먹었다.
할머니가 불 앞에 서 있으니 여름에는 더울 것 같아 보였다.
여름에는 더워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가게를 닫는다고 했다.
더우면 닫고, 열고 싶으면 연단다. 괜히 물어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벌어 뭣하겠느냐고 한다. 죽을 때가 다 됐다는 말처럼 들렸다.
5백 원짜리 동전이 두 개뿐이어서 더 먹고 싶었지만 두 꼬치만 먹고 물러났다.

어두워진 저녁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오는 발길이 포장마차가 있는 길 쪽으로 향한다.
걸어오는 내내 오뎅인가 어묵인가를 먹을까 말까 생각하면서 걸었다.
투명비닐 포장마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동으로 발길이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여지없이 어묵 두 꼬치를 먹었다.
할머니가 흰색 가루 한 줌을 거무튀튀한 오뎅 국물에 넣는다.
나는 조미료를 넣나 해서 놀랐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소금이란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새우젓 산지에서 새우젓에도 조미료를 듬뿍
넣는다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조미료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포장마차 바로 앞에는 대형 불고기 식당이 있다.
3층 건물이 다 불고깃집이다. 2, 3층은 예약 손님만 받는단다.
주중인데도 환하게 불 밝힌 식당에는 고기 구워 먹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고기 굽는 연기와 소주 마시는 모습들이 넓은 창문을 통해 보인다.
젊은 여자들이 많다.
“요새는 젊은 여자들이 술을 잘 마시네요?”
“다 여자들이에요. 여자들 빼놓으면 식당 망해요.” 할머니가 맞받아준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나 하면 조금 전에 오다가 주꾸미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환히 다 보였다.
손님들 반은 여자 손님이었고 테이블마다 소주병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 책을 읽었다.
책 제목이 주정뱅이여서 주정뱅이에 관한 글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제목만 그렇지 그런 글은 없었다.
마지막 장에 작가의 말이 적혀 있는데 작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술이 좋아서
늘 빠지지 않고 매일 마셨다고 했다.
술자리에서는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버릇도 있다고 했다.
지금도 계속 그러하다면서 여자 작가의 술주정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노닥거렸다.

다시 식당 창문을 드려다 보았다.
젊은 여자들이 신나게 마셔댄다.
나도 미국에서 딸을 둘씩이나 길렀어도 누구 하나 술 마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른이 된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을 들락거렸지만 술 마시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아들 친구도 술 마시는 사람은 없다.
식당 창가에 앉아 고기를 구워가며 술 마시는 젊은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취하지나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Comment

  1. 가로수

    2017년 4월 7일 at 8:21 오후

    잦잦한 어묵 이야기 공감합니다.
    60여년전 부산의 대신동 풍경이 닥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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