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기념일이라고 밤늦게 까지 폭죽 터트리는 소리로 요란하다.
동네가 떠나갈 것처럼 사방에서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다.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밖에서 바비큐 해 먹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뒷마당에서 한바탕 불고기에 갈비 잔치를 벌였다.
아들네 사돈 양반들이 멀리 싱가포르에서 왔다.
일본 사람들은 작으나마 선물을 가져온다. 일본 찹쌀떡이 아니면 이번에는 일일이
예쁘게 포장한 바나나 케이크를 가져왔다.
예쁜 포장을 뜯으면 예쁜 박스가 있고, 박스라야 조그마한 게 작은 케이크 여덟 개가
들어있다. 하나를 꺼내 맛보려고 했더니 단단한 진공 포장을 뜯어야 한다.
포장을 뜯고 보면 비닐 디쉬에 감싸여 있다.
조그만 것 맛보려고 뜯고 뜯고를 끝없이 해 대야 한다.
이중 삼중으로 감추고 있는 게 일본 문화다.
큰딸이며 작은딸도 같은 선물을 받았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아내더러 무엇이라도 작은 답례 하나 준비하라고 했건만
문둥이 뭐 잘라먹듯 입 쓱 씻고 말았다.
이럴 때는 한국인의 무덤덤한 습성이 민망하다.
아버지날을 독립기념일과 같이하겠다던 며느리가 아웃렛에 들러 폴로 티셔츠를
선물로 사 왔다. 막내딸은 책 읽을 때 쓰라고 책갈피에 꽂고 엘이디 전등을 켜는 작은
나잇스탠드를 가져왔다.
뱃속에서 아기가 노는 시티 촬영 사진으로 ‘Happy Father’s Day’ 카드를 만들었다.
아기가 벌써 5개월이 됐단다.
주말이면 들르던 딸이 지난 수개월째 오지 않았다. 애하나 생기더니 바쁘기는 바쁜
모양이라고 했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임신 5개월째라는 사실을. 일 다녀와서 한잠 자고 싶어도 딸애가
보채 싸서 잘 수가 없단다. 늘 피곤하다고 했다. 불쌍한 것, 우리 집에라도 와서 한잠
자고 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냐 딸이냐를 놓고 서로들 점쳤다. 나는 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CT 사진을 판독
했더니 딸이라고 한단다.
첫딸이 이제 겨우 일 년 육 개월이 됐는데, 여동생을 보다니 이제 너의 귀여움은
빼앗기게 되었구나, 그나마 첫딸이 순둥이가 돼서 자매가 싸우지는 않을 것 같다.
11월이 산달인데 2월부터 다시 일 나갈 거라고 했다.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맞기고
일을 나가야 하는 사회 시스템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아기 봐 주는 널싱홈에 예약을 해 놨단다.
기다리는 산모들이 많아서 차례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단다.
친구가 보모인 관계로 이번에도 끼워 넣었다고 한다. 미국에도 새치기는 있기마련이다.
갓난아기는 한 달에 1,800달러를 줘야 한다. 두 살짜리까지 같이 맞기면 3,500달러
(3백9십 만원)를 지불해야한다. 애 기르는데 돈 많이 들어간다는 게 사실이다.
나처럼 나이가 들고 나면 한바탕 왁자지껄 하는 것도 몇 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게 행복 아니더냐?